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옌롄커 지음, 김태성 옮김 / 북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죽음 같은 적막과 황량함이 깊은 가을처럼 그의 온몸 위로 내려앉았다. / p.21
몇 해 전, 일하면서 본 근처 저수지의 모습이 강렬하게 남았다. 그동안 보았던 풍경과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보통 물로 가득 차 있는 모습이었는데 어느 순간 보니 수심이 많이 낮아져 있었다. 그해 비가 많이 오지 않아 말랐다는 것이다. 단순하게 달라진 풍경으로만 기억에 남은 줄 알았는데 시간이 흘러 그 잊혀지지 않은 저수지를 다시 생각해 보니 물 부족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위협이 아니었을까. 그렇게 피부로 와닿았던 것은 처음이었다.
이 작품은 옌렌커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중국의 카프카 라는 수식어를 가지고 있는 작가이지만 아직까지 옌렌커 작가의 작품을 읽지 못했다. 위화 작가의 <원청>, 류팅 작가의 <뒤바뀐 영혼> 등 그동안 인상적으로 남았던 중국 작품들이 꽤 많았는데 왜 아직까지 옌렌커 작가의 작품을 접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들었다. 최근에 새로 개정된 작품 소식을 듣고 바로 선택해 읽게 되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셴 할아버지다. 가뭄이 심각해지고 마을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지만 셴 할아버지는 일흔두 살이라는 연세와 심어둔 옥수수를 어떻게든 살리기 위해 마을에 남기로 한다. 할아버지에게는 우연히 만나 함께 가족이 된 장님 강아지가 있다. 강아지와 할아버지는 곡식들과 우물로 살아가지만 오랫동안 비가 오지 않자 각종 방법으로 하루하루 연명한다. 셴 할아버지와 장님 강아지, 옥수수의 생을 다루는 작품이다.
술술 읽혀진 작품이었다. 동화로 착각할 정도로 쉽게 쓰여진 소설이어서 줄거리를 이해하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물론, 농사와 관련된 용어들이 종종 등장했지만 아래 설명이 친절하게 달려 있는 편이다. 페이지 또한 200 페이지가 채 안 되는 소설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한 시간 이내에 완독이 가능하다. 중국 작품에 관심이 있거나 담백하고도 슬픈 이야기를 선호하는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매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셴 할아버지와 장님 강아지가 생존을 위해 버텨가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그래도 끼니를 이어갈 수 있는 것들이 있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하나씩 사라졌다. 물을 길러 가다 늑대와 맞닥드리는 순간, 쥐 배설물 속에 섞인 먹을 거리는 찾아내는 장면은 숨이 막힐 만큼 절박했다. 그 끝에 찾아오는 할아버지와 강아지의 결말은 아이러니하면서도 마음에 오래 남았다.
하늘도 돕지 않 상황에서 두 존재가 끝까지 붙들고 있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이들이 살아가고자 하는 의지는 어디에서부터 비롯되는 것일까. 셴 할아버지와 장님 강아지의 시간을 따라가며 자꾸 그 질문을 스스로 되뇌이게 되었다. 그들의 죽음이 곧 새로운 생명을 틔우게 되는 결말은 우리에게 삶과 죽음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조용하게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슬픈 이야기였지만, 그 슬픔의 크기만큼 읽을 가치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