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세계
슈테판 츠바이크 지음, 이노은 옮김 / 다산초당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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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러니 그대 회상들이여, 나 대신 말하고 선택하라. / p.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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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죽은 자의 이야기를 통해 과거를 들여다 본다. 고전 소설을 읽으면서 경험하지 못했던 시대상을 접하고, 그 안에서 교훈을 찾는다. 물론, 조부모님이나 어른들로부터 우리나라의 역사들을 듣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미 이 세상에는 없는 이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는 오랫동안 남아 현재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많은 여운과 삶의 이정표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책을 찾는 이유도 그런 곳에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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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애를 토대로 혼란의 시기를 톺아보는 이 책은 슈테판 츠바이크 작가의 에세이다. 작가의 명성은 더 말할 것도 없다고 생각한다. 고전을 별로 좋아하지 않은 지인들도 입문작으로 <우체국 아가씨>, <초조한 마음>을 추천했을 정도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조금 어려운 <마리 앙투아네트 베르사유의 장미> 라는 작품으로 접한 터라 걱정이 되기는 하지만, 에세이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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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테판 츠바이크의 생애를 다루었다. 1881 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생했다. 그 시기의 유럽은 안정된 상태였다. 츠바이크는 유럽의 여러 나라를 다니면서 다양한 분야를 접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그 황금기를 보낸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평탄한 인생이 흔들리기 시작한 것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하면서부터다. 그후 제2차 세계대전과 망명에 이르기까지 그의 발자국을 통해 바라본 역사, 그리고 인간으로서의 소회를 다루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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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다가온 작품이었다. 유럽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으로서 그 시기를 온전히 받아들이기에는 시간이 걸렸다. 그럼에도 츠바이크의 문체나 스토리의 가독성은 매끄러웠다고 생각이 들었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나니 속도가 붙었다. 700 페이지가 넘는 작품이었는데 충분히 완독이 가능했다. 츠바이크의 작품을 자주 접한 독자들이나 그의 문체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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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말의 힘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츠바이크는 단순히 수동적인 태도와 적에 대한 거친 비방 행위에 동참하지 않는 것이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자신이 작가였고, 말이라는 도구를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신념을 표현해야 할 의무마저도 인지하고 있었다. 검열이 삼엄한 그 시대에 <외국의 친구들에게>라는 글을 써서 보냈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윤동주 시인님이 떠올라서 내내 기억에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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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단순한 한 사람의 연대기가 아니다. 잊을 수 없는 유럽사의 기록이자 인간이 살아가야 할 길을 알려 준 길잡이다. 츠바이크는 인간의 욕망과 악으로 벌어진 전쟁에서도 부러지지 않았다. 누구보다 문화와 인간을 사랑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길을 꿋꿋이 걸어간 위인이었다. 그의 삶을 본 우리는 지금 사회를 어떻게 살아가야만 할까. 이 책을 읽는다는 것이 어려운 도전이었지만, 그 도전이 결코 후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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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 ㅣ 여행그림책
천선란 지음, 이주향 그림 / 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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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그 시간에 대해, 새벽 네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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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요함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말수도 없고, 정적인 편이며, 침묵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다. 하지만, 나에게 고요는 무서움과 같다. 혼자 있을 때마다 일부러 예능 프로그램 또는 빗소리 ASMR을 재생시킨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그 정적이 나에게는 너무 공포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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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네 시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책은 천선란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평소 동화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하지만, 작가님의 <천 개의 파랑>은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있는 소설이다. 또한,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집필하셨던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는 에세이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터라 취향과는 조금 다른 장르임에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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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요 내용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작가님의 한 달 뮌헨 살기이다. 그런데 그냥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난 길이다. 고요한 새벽 네 시의 괴로움을 고백했는데, 독일에서는 그 시간을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사용했다. 공원에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면서 산책하고, 딱딱하기로 소문난 독일 빵을 먹기도 한다. 낯선 땅에서의 한 달은 작가님의 자신을 찾아가는 큰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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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접해온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도 쉽게 읽히지만, 감성적인 그림이 더해지면서 작가님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림책이 낯선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페이지 수도 얇아서 부담감 없이 넘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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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세 가지 정체성이 인상적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정체성,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그동안 소설가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셨다고 한다. 직장인이 새벽 네 시를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우연히 그 시간을 만날 때마다 괴로웠던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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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가족 구성원, 그밖에 부여되는 여러 역할들. 세상은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착용하게 되는 가면이 있다.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를 바라본 적이 있을까.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작가님의 내밀한 고백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고요를 두려워하던 내가 새벽 네 시를 다르게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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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ㅣ 워싱턴 포
M. W. 크레이븐 지음, 김해온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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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언제나 다른 뭔가의 일부분입니다. / p.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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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을 읽을 때마다 현실에서 경험하기 싫은 고통에 몸부림을 치게 된다. 사람을 죽이는 방법이 너무나 잔인하기 때문이다. 뉴스에서는 어느 정도 시청자들의 정신 건강과 모방 위험을 고려해 최대한 순화해서 표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걸러서 보도된 사건들 중에서도 꽤 오래 잔상이 남기도 했는데, 소설은 그런 제약에서 자유롭다 보니 자극적으로 느끼는 편이다. 그럼에도 자꾸 손이 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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끔찍한 연쇄 살인 사건을 다룬 이 작품은 M.W. 크레이븐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퍼핏 쇼>와 <블랙 서머>라는 작품을 SNS에서 종종 접했던 기억이 있다. 줄거리 자체는 흥미로웠지만, 장르 소설을 지금만큼 찾아서 읽을 시기가 아니어서 그냥 스치고 지나갔다. 이번에 작가의 신작 소식을 접했는데 그때와 달리 지금은 그런 장르 소설들을 찾아 읽는 편이기에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대감을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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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형사 워싱턴 포다. 포는 데이터 분석가인 브래드 쇼와 합을 맞추어 여러 사건에 투입되었다. 모두가 설레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훼손된 시체와 함께 정체불명의 메시지가 남겨졌다. 당연히 포와 브래드 쇼는 이 사건을 해결하기로 하는데, 해결의 실마리가 보이지 않는다. 사건이 미궁에 빠질 때, '큐레이터'라는 별명을 가진 정체불명의 존재가 드러나기 시작한다. 큐레이터가 이 살인 사건과 맺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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흐름은 쉬웠지만 낯선 배경이 걸렸던 작품이었다. 처음에 걱정했던 부분은 이전 시리즈와의 연계성이었다. 이번 신작으로 시리즈를 접하는 독자로서 전체적인 스토리가 이어진다면 따라가기 어렵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런데 생각보다는 독자적인 이야기로 봐도 될 정도로 흐름을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반면, 드러난 영국의 문화적 배경이나 등장인물들이 다소 헷갈렸다. 이 지점만 적응이 된다면 괜찮을 듯하다. 스릴러 장르를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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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작품에 드러나는 살인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발견된 시체들의 살해 방식이 전부 다르다. 어떤 이에게는 교살 흔적이 있었고, 다른 이에게는 신체 훼손한 자국이 남았다. 지금까지 봐 온 범죄 프로그램의 시그니처와는 다른 결로 느껴졌다. 이 연관성이 없는 사건들을 파악하는 형사들의 능력치에 감탄했다. 하지만, 방식을 떠나 활자로 묘사된 시체의 상태는 시각적으로 끔찍하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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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한 재미로 읽기에는 개운하지 않은 무언가가 남는다. 이는 불쾌감이라는 감정이었다. 작품이 결코 아쉽다는 뜻은 아니다. 등장인물들이 머문 세계에서 벌어지는 사건과 기이한 모습으로 남겨진 시체에 대한 거부감이다. 이 사건들은 어디까지나 소설로만 남았으면 좋겠다. 아니, 소설 안에서도 이런 일은 없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들었다. 인간의 악은 어디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일까. 무엇이 사람을 그렇게 만드는지 내내 머릿속을 휘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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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청
차일린 지음 / 아작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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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세상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알지 못한 채 그들의 무의미한 생이 끝나는 것뿐이다. / p.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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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위해 어디까지 할 수 있는가. 물음표가 뜨는 이 질문에 지극히 현실적인 대답은 내가 할 수 있는 것까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예쁘거나 괜찮은 물건을 사 주는 것과 애정을 표현하는 것이 될 듯하다. 마음 같아서는 목숨도 바칠 수 있다고 말하지만, 이것은 너무 책임감이 없는 대답처럼 느껴진다. 말로는 뭔들 못하겠냐는 질책이 쏟아질 것이다. 그냥 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해 주는 게 깔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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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을 주제로 온갖 기이한 이야기가 담긴 이 책은 차일린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출판사 소개부터 읽은 독자들의 서평까지 난해함을 안고 있어서 한동안 생각조차 하지 않았던 작품이었다. 소설을 읽을 뿐인데 다짐 그 이상의 많은 것들을 준비해야 된다는 게 의문이 들었다. 그럼에도 인간은 어쩔 수 없이 호기심의 동물이었다. 얼마나 심하길래 그런 평가가 나오는지 궁금해서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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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소설집에는 총 열 편이 수록되었다. 연인을 먹는 남자, 집단 난교를 하는 부부, 벽간 소음을 피해 반지하를 알아보는 레즈비언 커플, 자신을 스스로 절단하는 의사, 물감을 먹는 화가, 청각을 잃은 피아니스트에 이르기까지 조금은 특별한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보통의 상식과 반대가 되는 사랑이나 소수자들이 주인공인 사랑도 있다. 소설들의 전반적인 내용은 우리가 쉽게 범접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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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스토리를 떠올리는 것은 크게 어렵지 않다. 다섯 가지 감각에 집중한다면 충분히 머릿속으로 그릴 수 있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하지만, 읽는 속도는 더디게 흘러갔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과 별개로, 심리적인 문제가 컸다. 이미 예상하고 있던 터라 생각보다는 덜 힘들었지만, 그럼에도 잔인하거나 고어한 묘사가 읽는 내내 부담감으로 다가왔다. 미성년자의 독자들에게는 주의가 필요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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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셋의 의미>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청소년인 자녀를 둔 중년의 부부다. 두 사람에게는 은밀한 데이트가 있다. 이는 집단적으로 난교를 하는 것이다. 아내는 남편이 아닌 다른 남자들과, 남편 역시도 다른 남자의 파트너와 성관계를 맺는다. 아내는 남편이 자신과 하지 않지만, 매번 같이 참여하는 것에 불만이 있다. 가장 현실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 중 하나여서 고개를 끄덕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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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사랑을 과연 납득할 수 있을까. 일개 독자가 인정의 여부를 따질 것은 아니지만, 읽는 내내 표현할 수 없는 묘한 감정이 들었다. 이게 유교 문화권에서 성장한 사람의 혼란일 수도, 경험할 생각조차도 없는 사람의 이질감일 수도 있다. 이렇게 멍한 느낌으로 소설을 읽은 적이 거의 없는 듯하다. 이성적으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의 연속이었으나, 허구의 세상에서 가능한 이들의 순애보로 남겨 두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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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적 유전자 (50주년 기념판)
리처드 도킨스 지음, 이한음 옮김 / 을유문화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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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아무튼 유전자가 그토록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 p.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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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이나 외양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면 꼭 어머니께서 입버릇처럼 하시는 말씀이 있다. 좋은 것은 너의 능력이고, 나쁜 것은 무조건 유전이냐는 것이다. 작은 키와 없는 말수는 아버지의 유전이고, 단순한 생각은 어머니의 유전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어머니의 말씀에 동의하는 것 또한 아니다. 남의 말을 쉽게 옮기지 않는 성향은 아버지를, 참을성이 강한 성향은 어머니를 닮았다. 능력보다는 유전이 큰 영향을 주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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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학의 바이블로 불리는 이 책은 리처드 도킨스 저자의 과학 도서이다. 말이 필요없는 비문학 계의 고전이 아닐까 싶다. 올해 독서모임으로 칼 세이건 저자의 <코스모스>를 함께 완독하고 있으며, 빠른 시일 내에 유발 하라리 저자의 <사피엔스>를 읽고 싶다. 그래도 책 좀 읽는다는 독자들이라면 자존심과 같은 책들을 접하고 싶은 마음이 크다. 마친 100만 부 기념판으로 리뉴얼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페이지를 넘기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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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을 비롯한 생물들이 다양한 행동을 하는 것을 유전자의 관점에서 풀어낸 책이라고 볼 수 있다. 사람이 존재하는 이유로부터 시작해 유전자의 복제, 생물체의 공격성, 유전자가 행동하는 방식, 인간의 가족 계획, 암컷과 수컷의 생식, '밈', 선악 등 유전자를 마치 의인화해서 각 장에서 유전자 중심의 진화론적 관점으로 다양한 생물학적 현상과 행동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의 행동과 문화 역시 이러한 진화의 틀 안에서 바라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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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보다는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이었다. 사실 읽기 전부터 난이도에 대한 부담감이 컸다. 고등학교 때 생물 과목을 배웠던 것과 현재 나의 지식 수준을 적어서 읽을 수 있는 책인지 AI의 판단을 묻기도 했다. AI는 충분히 완독이 가능한 수준이라고 답했는데, 그 예상이 어느 정도는 적중한 것 같기도 하다. 전문적인 지식은 낯설었지만, 걱정했던 것보다는 이해가 되었다. 친절하게 풀어 쓴 지점이 만족스러웠다. 관심이 있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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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부모의 투자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부모가 자녀에게 투자하는 행동을 유전학적 관점에서 설명하는 부분이다. 그런데 그 부분을 읽으면서 대한민국에 만연한 '남아선호사상'와 'K-장녀'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딸은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살림 밑천으로 여겨지는 사이, 아들은 엘리트 코스의 교육을 받게 되는 과거의 우리 문화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것을 유전학적 관점으로 설명할 수 있을지 의문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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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전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윗 세대로부터 내려온 많은 정보를 담고 있었다. 인간의 생존과 개인의 행동에도 유전자는 생각보다 큰 영향을 미쳤다. 유전을 단순히 신체적 특성에 국한해 생각했던 시야를 조금 더 넓게 바라보게 되었다. 하지만, 문화와 환경이라는 변수 앞에 생긴 의문은 여전히 남아 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도 온전히 이해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든다. 과연 인간은 어디까지 유전자의 영향을 풀어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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