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 공원, 농구하는 소녀 ㅣ 여행그림책
천선란 지음, 이주향 그림 / 달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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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그 시간에 대해, 새벽 네시에 대해 말하고 싶다. / p.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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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의 사람들이 나에 대해 단단히 오해하고 있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고요함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말수도 없고, 정적인 편이며, 침묵을 견딜 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당연히 그런 환경을 선호할 것이라고 생각다. 하지만, 나에게 고요는 무서움과 같다. 혼자 있을 때마다 일부러 예능 프로그램 또는 빗소리 ASMR을 재생시킨다. 아무런 소리가 나지 않는 그 정적이 나에게는 너무 공포처럼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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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요한 새벽 네 시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되는 이 책은 천선란 작가님의 산문집이다. 평소 동화책을 별로 선호하지 않아서 고르지 않았을 책이다. 하지만, 작가님의 <천 개의 파랑>은 아직도 많은 분들에게 추천하고 있는 소설이다. 또한, 다른 작가분들과 함께 집필하셨던 <엉망으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라는 에세이가 꽤 오랫동안 기억에 남았던 터라 취향과는 조금 다른 장르임에도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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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주요 내용을 단순하게 표현하자면 작가님의 한 달 뮌헨 살기이다. 그런데 그냥 가벼운 내용이 아니다. 나 스스로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떠난 길이다. 고요한 새벽 네 시의 괴로움을 고백했는데, 독일에서는 그 시간을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으로 사용했다. 공원에서 자연의 소리를 느끼면서 산책하고, 딱딱하기로 소문난 독일 빵을 먹기도 한다. 낯선 땅에서의 한 달은 작가님의 자신을 찾아가는 큰 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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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그동안 작가님의 소설이나 에세이를 접해온 독자들이라면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지점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문체도 쉽게 읽히지만, 감성적인 그림이 더해지면서 작가님의 이야기에 몰입하게 되었다. 그림책이 낯선 독자에게도 충분히 매력적일 것이다. 페이지 수도 얇아서 부담감 없이 넘길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가벼운 마음으로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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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세 가지 정체성이 인상적이었다. 직업으로서의 정체성,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 그리고 자기 자신에 대한 정체성. 그동안 소설가와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정체성을 우선순위에 두고 살아왔는데 자신의 정체성을 오롯이 마주해야 하는 시간을 경험하면서 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인식하셨다고 한다. 직장인이 새벽 네 시를 마주할 기회는 많지 않지만, 우연히 그 시간을 만날 때마다 괴로웠던 사람으로서 깊이 공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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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인, 가족 구성원, 그밖에 부여되는 여러 역할들. 세상은 많은 역할을 요구한다. 그리고 그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착용하게 되는 가면이 있다. 가면을 벗고 온전히 나를 바라본 적이 있을까. 아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이라면 작가님의 내밀한 고백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고요를 두려워하던 내가 새벽 네 시를 다르게 맞이할 수 있을까. 아니, 마지막 페이지를 덮는 순간 그러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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