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니가 남긴 것
애너 퀸들런 지음, 김지현 옮김 / 리프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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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다른 아내를 맞이할 수 있지만 우리는 절대로 다른 엄마를 가질 수 없다는 거예요. / p.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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곧 아버지의 2주기가 온다. 매년 이 시기가 되면 나도 모르게 기분이 다운되어 있는 편인데 그 지점을 제외한다면 크게 달라진 점이 없다. 오히려 삶의 순간마다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중이고, 실제로 과거에 비해 많이 잘 살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가족들 역시도 아무 걱정 없이 나름의 살아가는 방법을 찾아가고 있다. 가끔 이런 모습들이 하늘에 계시는 아버지께 미안하지만 오히려 더 잘 살고 있다고 응원해 주실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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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으로 만나게 된 책은 애너 퀸들런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사랑하는 가족을 떠나보내고 남은 이들에게 남은 것은 무엇일까. 이미 경험으로 체감하지만 소설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조금 더 공감할 수 있지 않을까. 더불어, <강물이 멈춘 날>이라는 작품을 같이 병렬 독서 중이다. 그 작품과 같은 출판사인데 여운이 남아서 신작을 망설임없이 페이지를 넘겼다. 비슷한 결이지 않을까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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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애니의 가족이다. 애니는 네 자녀의 어머니로, 갑자기 뇌동맥류로 세상을 떠났다. 그렇게 남겨진 남편과 자녀들은 준비하지 못한 이별이 낯설기만 하다. 정신없이 흐르는 하루하루를 평범하게 보낸다. 남편은 더욱 일에 몰입하고, 자녀들은 학교에서 지원해 주는 상담 서비스를 받는다. 애니의 생전 이야기와 현재 가족들이 애니의 부재 안에서 살아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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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이는 지극히 사적인 경험에서 오는 몰입도와 공감일 수도 있겠지만 소설 자체가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감정이 올라와 조금씩 멈추는 구간이 있었지만 그럼에도 담담하게 그려진 스토리가 좋았다. 감성적인 독자들에게는 큰 여운을, 이성적인 독자들에게는 생각할 지점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도파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을 때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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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가족의 반응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애니의 장례가 끝나고 계절이 지나가지만 가족들은 생각보다 무덤덤하게 살아간다. 상담 선생님의 질문에 괜찮다는 이야기를 건네고, 남편은 낯선 여성에게 든 신체적 반응에 죄책감을 느낀다. 오히려 애니의 친구가 과거 겪었던 약물중독 증상을 보인다. 타인이 힘들어하는 게 더 의아했지만 들여다 볼수록 곪아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더욱 슬프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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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간 이는 돌아오지 않지만, 남은 이들은 어떻게든 살아내야만 한다. 영원히 겪고 싶지 않은 일이자 여전히 믿기지 않는 일이기도 하다. 애니의 이야기를 하나하나 곱씹으면서 남은 이들의 마음에 정말로 크게 공감했다. 남은 자들의 기억에서 잊혀져 간다는 것에 분노를 느낄까, 여전히 기억해 주는 것에 기쁨을 느낄까.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며, 하늘에 묻고 싶었다. 대답을 듣지는 못하겠지만 이들 마음속에도, 내 마음속에도 답은 나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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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우사 - 거미는 움직이지 않는다
최윤석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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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리고 눈에 새기듯, 마지막까지 강민의 모습을 바라봤다. / p.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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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싫어하는 안티보다 한때는 좋아했다가 증오로 돌아선 안티가 더 무섭다. 아이돌 덕질을 했을 때부터 주변인들로부터 늘 귀에 못이 박히게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다. 실제로 팬이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안티로 돌아선 이들을 보기도 했다. 아직까지 누군가를 그렇게 미워한 적이 없는 사람으로서 의아하기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해가 간다. 많이 아는 만큼 단점도 더 크게 보이게 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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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최윤석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줄거리에 가장 큰 흥미가 생겼다. 팬이었던 한 남자가 복수하는 이야기. SNS 지인들에게도 호평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읽기 전에 검색해 보니 전작 <달의 아이>를 접했다. 언급한 작품은 판타지 느낌이 강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이번에는 아예 다른 스릴러 장르여서 더욱 큰 기대가 되었다. 더운 여름을 이겨내 줄 스토리를 기대하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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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아내와 이혼하고 혼자 아들을 키우고 있는 싱글 대디인 천명관이다. 축구 선수를 꿈꾸었지만 불운의 사고로 보험 처리 업무를 맡고 있는데 축구에 대한 열정이 대단하다. 특히, 서울 FC에서 뛰는 최강민 선수의 광팬이다. 우연히 최강민 선수를 만나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최강민은 팬심을 무기로 명관에게 점점 큰 부탁을 했고, 자신의 잘못을 넘긴다. 명관은 강민을 향한 복수를 위해 칼날을 간다.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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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빠른 속도감이 가장 크게 체감되었다. 잠시 손을 내려놓을 틈이 없이 독자에게 긴장감을 선사한다. 흐름 또한 군더더기없이 진행되는 편이어서 완독까지 채 한 시간이 안 걸렸다. 최근 들어서 이렇게 빨리 완독한 적이 없었다. 그만큼 속도에서 오는 몰입감이 좋았다. 아무 생각없이 가볍게 읽을 장르 소설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는 그만큼 매력적으로 다가올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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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상징하는 단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제목인 '파우사'는 상대가 움직일 때까지 공을 소유하고 있다가 기회를 만드는 축구의 전술적 용어다. 실제로 명관은 덫을 놓고 강민이 들어오기만을 기다린다. 또한, 게임 용어 중 하나인 NPC 역시도 비슷한 예시로 인물을 가장 잘 표현해 준다. 이렇게 스토리의 흐름을 비유하는 용어들이 내내 머릿속에 박혔다. 축구에 대해 모르는 사람이지만 이 단어는 절대 못 잊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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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티로 돌아선 팬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을 이용한 악인이다. 강민의 말과 행동은 비열하기 짝이 없었고, 명관의 복수는 시원하고 통쾌했다. 사실 잔인함을 비교한다면 후자가 훨씬 강렬하지만, 그 어느 것도 강민의 민낯에 비유할 수 없었다. 권선징악, 그리고 죄를 짓고 살지 말자. 조상들의 그 흔하고도 뻔한 말씀을 강민에게 전하고 싶다. 아니, 스스로 깊이 마음에 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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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의 문법 - 두려움, 불길함, 섬뜩함을 자극하는 노골적이고 미묘한 것들에 대하여
듀나 지음 / 어크로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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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보고 싶어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습니다. / p.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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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포 장르와는 거리를 두는 성향이라고 생각했다. <곡성>, <부산행>처럼 너무나 유명한 작품뿐만 아니라 얼마 전 개봉한 <호프>, 명불허전 해외 공포 영화의 끝판왕 <엑소시스트>에 이르기까지 관심조차도 없었다. 평소 겁이 많은 스타일이어서 일부러 피했다. 그런데 호러 장르의 소설이 생각보다 무섭지 않게 느껴진다. SNS에서 뜨거운 작품들을 하나씩 읽는 중인데 지금까지 그 기대에 부응하는 스토리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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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 소설을 조금이나마 재미있게 즐기고 싶어서 선택한 책이 바로 듀나 작가님의 인문학 도서다. 그동안 작가님의 작품을 종종 접했지만 솔직하게 기억에 남지는 않았다. 나의 제한된 상상력으로는 도저히 그 세계관들을 그릴 수가 없었던 것이다. 흥미있는 스토리도 단편적으로만 이해하게 되었던 것 같다. 이번에 공포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소설과 다른 인상을 경험하고 싶어서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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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공포를 다루지만, 이론적인 이야기보다는 작가님의 사견이 담긴 책이다. 호러 장르의 영화 감독인 '스티븐 킹'과'스탠리 큐브릭'의 기법 차이, 소설가 '에드거 앨런 포'와 '러브크래프트'에 대한 이해처럼 소설이나 영화 속 문화에서 드러나는 공포 이야기, 처녀귀신과 괴물, 뱀파이어, 좀비 등 우리가 매체에서 자주 보고 들었던 귀신에 이르기까지 공포의 모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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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 와닿았던 책이다. 언급한 것처럼 그동안 공포 장르를 잘 모르는 사람 중 하나다. 최근 접하고 있는 소설들도 대부분 한국 작가의 작품에 편중되어 있다는 측면에서 책에 등장하는 감독과 작가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었다. 읽는 내내 인터넷으로 검색했는데 조금이나마 알고 있었더라면 더 풍부한 감상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더욱 재미있는 게 와닿는 책일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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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14장의 <남은 것들에 대하여>라는 목차의 내용이 인상적이었다. 이스라엘에는 이상한 법이 통과되었다. 바로 테러 혐의로 유죄를 받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기본 형량이 사형이라는 것이다. 심지어 60년 넘게 사형이 집행되지 않는 나라에서 특정 집단의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법을 만든 것이다. 공포의 크기가 상대적이라는 사실을 이미 인지하고 있으면서도 가장 피부에 와닿았던 파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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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 반대편에서는 인간이 가진 욕심으로부터 오는 생명의 위협감을, 같은 지구 안의 누군가는 의식주가 해결되지 않는 원초적인 본능을, 작가님께서는 원고 마감 기한으로부터 오는 약속의 압박감을, 이야기를 접한 나는 새로 알게 되는 세계에서의 혼란을 느낀다. 그저 저마다 가지고 있는 공포의 형태와 크기만 다를 뿐이다. 어쩌면 살고 있는 이 세상이 하나의 공포는 아닐까. 앞으로 경험하게 될 공포의 세계는 깊고도 다르게 보여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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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없는 것들의 밤
정보라 지음 / 현대문학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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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가제본을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에게는 없다. 피도 눈물도 땀도 체온도. 생명도.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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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인간을 지배한다는 이야기. 인공지능 서비스를 자주 이용하는 입장에서 그들이 오류값을 낼 때마다 아직은 먼일이라고 코웃음을 치지만, 파파고가 이세돌 바둑기사를 이기는 이야기를 접하게 되는 순간 현실로 체감되고,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기계와 인간은 어느 순간부터 뗄 수 없는 존재가 되었음은 명백하지만, 과연 기계가 인간을 지배하는 날이 올까. 아직까지도 많이 혼란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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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과 허구 그 사이에서 공상을 펼치다 집어든 정보라 작가님의 연작소설이다. <지구 생물체는 항복하라>, <고통에 관하여>, <붉은 칼>에 이르기까지 세 번째 접하는 소설이다. 지금까지 읽은 작품들 중 인간의 저항이라는 카테고리에 가장 잘 어울리는 작품을 꼽는다면, 역시 정보라 작가님의 소설이었다. 기계에 저항하는 인간들의 이야기를 다루었다고 해서 기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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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 나는 죽음의 위기에서 선이라는 이름을 가진 이의 도움으로 흡혈인이 되었다. 그녀가 사는 시대는 기계가 인간을 사는 세계를 지배한 후, 기계를 온전히 믿는 추종자들은 기계에 저항하는 이들을 찾아 처단한다. 인간의 흔적이 없는 수영장에서 기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인조인간 빌리와 주인공 무리가 함께 기계 연구소를 무너뜨리고, 기계 무리에게 저항해가는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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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현실적으로 상상이 가능한 장르를 선호하는 독자로서 SF나 판타지 또는 필모그래피 자체가 곧 장르인 작품의 세계관은 완독률이 낮다. 이 작품은 명백하게 후자에 속했는데 사회 이슈와 철학을 관통한다는 점에서 읽는 내내 여러 번 곱씹으면서 읽었다. 분명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작품을 한 호흡에 완독할 수 있었던 것은 스토리가 주는 몰입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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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화장실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이 화장실에서 타인의 피를 빨아들이고, 빌리로부터 받았던 ‘인간의 조건’에 대한 질문을 다시금 되뇌이는 장면과 화장실 안에서 벌어지는 그 여성의 서사는, 오늘날 우리가 자주 접하는 몰래카메라 범죄를 겹쳐 읽게 만드는 장치처럼 느껴졌다. 그 공간이 주는 불쾌함과 냄새가 마치 코끝을 맴돌았다. 여러 모로 이 계절에 너무나 잘 어울리는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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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기계와 기계 추종자, 기계 저항인과 흡혈인의 싸움이 아니다. 지배하려는 권력과 그에 맞서는 자들의 저항이자 투쟁의 이야기다. 거칠고, 더럽고, 잔인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 그들의 습도 높은 이야기가 이 여름의 불쾌함과 어울러져 더욱 피부에 와닿았다.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는 미묘한 현실과 소설에서 볼 수 있는 가상의 경계선에서 공상의 그림을 더욱 짙게 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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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을 헤엄치는 초콜릿구라미
마치다 소노코 지음, 이정민 옮김 / 하빌리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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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사람이란 원래 그런 거야. 영원이라는 건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이지. / p.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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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다른 인간을 구원할 수 있을까. 소설의 주인공들에게는 너무 흔한 일이다.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하는 나에게 손을 내밀어 준 친구, 절망의 끝에서 죽음을 떠올렸을 때 삶으로 다시 이끌어 준 낯선 이, 더 나아가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 시절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은 할머니에 이르기까지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이었지만 현실로 들여다 보면 사실 잘 모르겠다. 사사로운 구원은 쌓여도 삶을 변화시키는 구원은 기적인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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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마치다 소노코 작가의 연작소설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냉탕과 온탕을 오가는 매력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다. 현재 다섯 편째 나오는 베스트셀러 <바다가 들리는 편의점 시리즈>와 많은 독자들에게 조금 낯선 소설 <새벽의 틈새>가 바로 대표적인 예시다. 전자는 전형적인 힐링 소설로 불호에 가까웠다면 후자는 누군가에게 선뜻 추천해 줄 수 있는 명작으로 남았다. 과연 이번 작품은 어느 쪽의 손을 들게 될 것인가 궁금증이 생겨 읽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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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총 다섯 편의 작품으로 이루어져 있다. 공간적 배경과 등장인물을 공유하되, 이야기를 이끄는 주인공만 작품마다 바뀐다. 처음에는 친구를 임신시키고 떠난 남자와 그 남자를 기다리는 친구가 등장한다. 다음 작품에는 둘 사이에 태어난 아들과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는 여자아이의 이야기로 스토리가 이어지는 식이다. 그렇게 주인공이 다른 누군가로부터 구원을 받는다거나, 인생을 구하는 이야기를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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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소설에 숨겨진 이들을 찾아가는 재미가 있었다. 다른 작품에서 이미 보았던 조연이 나왔을 때의 반가움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또한, 평소 관심 없던 물고기와 이야기를 연관 짓는 방식도 신선하게 느껴졌다. 그럼에도 어느 정도 예상이 가능한 소재와 흐름이라는 점에서 약간 아쉬움도 들었다. 가볍게 읽을 일본 작품을 찾는 독자들이라면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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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물결 사이를 떠다니는 옐로>라는 단편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주인공은 남자 친구를 떠나 보냈다. 아니, 남자 친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나면서 그녀를 버린 것이었다. 충격에 힘들어하던 그녀는 한 식당에서 일하게 된다. 그 식당에는 스스로를 '온코'라고 부르는 여장남자 사장 후미가 있다. 어느 날, 후미에게 과거 직장 동료였던 다마키가 엽서를 들고 나타나면서 벌어지는 며칠 사이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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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미가 불륜을 저지른 남편으로부터 고통받던 다마키를 구원했듯, 소설 속 인물들은 저마다의 방법으로 가족을, 친구를, 이웃을 살렸다. 이들은 직접적으로 생명을 구했고, 간접적으로 삶의 의지를 불어 넣어 주었다. 이 또한 소설이기에 한낱 허구의 구원이 크게 와닿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그럼에도 인류 구원의 희망을 이들의 이야기로부터 조금이나마 믿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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