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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넛
장진영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10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도넛은 세상에서 가장 완벽한 음식이다. / p.7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주인공 우영우는 김밥을 좋아한다. 그 이유는 음식에 든 내용물을 모두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자폐스펙트럼장애의 감각적으로 예민한 특징을 잘 살린 설정이었다. 드라마를 다 보지는 않았지만, 그 설정이 참 마음에 들었다. 다른 음식보다 김밥을 자주 먹는 편인데, 좋아하는 이유를 가만히 생각해 보았다. 그냥 소풍 가는 느낌이 들어서 그런 것 같다.
도넛을 좋아하는 주인공의 에피소드를 다룬 이 책은 장진영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앤솔로지 작품집에서 두 편의 단편소설과 한 권의 장편소설을 이미 읽었던 터라 어느 정도 알고 있는 작가님이었다. 사실 작품에 대한 인상은 그렇게 좋지 않았다. 특히 교환 독서로 읽게 된 <치치새가 사는 숲>은 지금 생각해도 충격적이어서 잊고 싶을 정도다. 그럼에도 막상 신간 소식을 접하니 기억이 미화되어, 이렇게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도림이다. 그녀는 도넛을 좋아했고,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여의도에 '도림도넛'이라는 가게를 열었다. 줄을 서서 구매하는 것도 모자라 오픈런까지 할 정도로 대성공을 거둔다. 어느 날, 누군가 도넛에 와사비를 넣으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르바이트생의 기지 덕에 오히려 더 많은 손님이 몰려들었지만, 도림은 와사비 테러의 범인을 추측한다. 과연 그런 일을 벌인 사람은 누구일까.
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스토리 전개가 더디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요 사건들도 어느 정도 진행된 이후에 벌어졌고, 범인을 찾아가는 과정도 주인공 혼자 생각하는 방식이어서 체감 속도는 더 늦었다. 그럼에도 페이지가 빠르게 넘어가는 게 의아했다. 몰입하다 보면 마지막에 드러나는 결말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전체적으로는 가볍게 읽을 수 있었는데, 그런 작품을 선호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개인적으로 도림이 가장 친하게 지내는 친구인 조지희라는 인물이 인상적이었다. 지희는 도림의 유일한 친구이자 인생 스승이나 다름없다. 도넛의 식자재를 구해 주고, 고민을 속 시원하게 해결해 준다. 도림은 거의 모든 이야기를 지희에게 전했고, 그녀의 대답에 따라 말하고 행동했다. 읽으면서 아바타로 착각할 정도였다. 누구나 이성적이고, 현실적인 친구가 필요하다고 하는데 그 역할에 어울렸다. 그런데 이상하게 마음이 가지 않았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나는 과연 내 가족과 주변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아니, 그들은 나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했을까. 나 역시 가면을 쓴 채 사회인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살아가기에 나의 모든 것을 보여 주지 않는다. 도림이의 세계와 나의 세상은 같은 선상에 있었다. 마지막 페이지를 덮으면서 멍한 기분이 들었다. 그동안 나조차도 인지하지 못한 채로 살았던 인간의 면모에 다시금 등골이 서늘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