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주워진 세계
아사쿠라 히로카게 지음, 이구름 옮김 / 해피북스투유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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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집은 고독이다. 그럼 텅 빈 청결한 집에 사는 나는 고독하지 않은 걸까. / p.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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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하면 아무것도 하기 싫어진다는 말을 몸소 실감하는 중이다. 최근 회사의 일로 많은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침대에 누워 있는 시간이 꽤 많아졌다. 이렇게 독서를 하고, 리뷰를 적는 게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게 아니었으면 이미 주말을 내내 침대에 누워 보냈을 것이다. 침대에 붙어 꼼짝도 못 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제 주위를 둘러보고 청소해야 할 시기가 오는데 그게 가능할지 스스로를 믿지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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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레기집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이 책은 아사쿠라 히로카게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요즈음 사회적인 문제를 다루었다는 측면에서 관심이 갔다. 마침 이번 주말에 인터넷 기사로 그 내용을 다시 접했고, 최근에 읽었던 성혜령 작가님의 <임장>이 인상 깊었던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또 다른 이야기를 가진 작품이 궁금했다. 일본에서는 이를 어떻게 바라볼까. 기대를 가지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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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쓰레기를 처리하는 위탁 업체에서 계약직으로 근무하는 아사히다. 고향을 떠나 도쿄로 온 아사히는 말할 수 없는 비밀을 가지고 있다. 바로 결벽증을 가진 아버지의 영향으로 청결에 집착한다는 점이다. 반면, 아사히의 옆집에 사는 도모에는 어머니의 영향으로 버린 물건을 하나하나 집으로 가지고 오는 습관을 가진 인물이다. 과연 두 사람은 이웃으로 친해질 수 있을까. 안 맞을 것 같던 아사히와 도모에의 이야기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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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술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무엇보다 현실감이 강점이었다. 이름을 지우고 본다면 어느 한국 작가의 소설로 착각할 정도로 너무나 피부에 와닿았다. 긴장감 측면에서는 약할 수 있지만, 지금 이 시대의 이야기라는 측면에서 재미있게 읽었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 소재를 다루는 작품을 원하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게 당신의 이야기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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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아사히의 이야기가 흥미로웠다. 아사히의 집에는 아무것도 없다. 찹쌀떡 하나 먹지 않는 사람이다. 밀가루가 떨어질 것을 염려해서다. 그런 아사히가 직장 동료 민토의 제안으로 도모에를 집으로 데리고 오는 일이 생겼다. 세 사람이 모여 술을 마시는 것은 아사히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이 더러워지는 광경을 보기 싫어 불을 끄고 작은 불빛에 의지해 술을 마시는 장면은 다른 세계의 사람처럼 낯설게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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뭘 그렇게 욕구를 억누르면서 청결에 집착하고, 남이 버린 더러운 물건을 뭐 하러 집으로 가지고 올까. 아사히와 도모에는 얼핏 보면 연민보다는 답답함을 주는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답답함보다는 공감을 느꼈다. 나의 친구들이었다면 울면서 함께 보듬어 주고 싶었다. 이렇게 이들을 바라보게 된 것은 내면에 나의 모습이 비쳤기 때문이다. 작품이 주는 영향은 동질감 그 이상으로 크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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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니스나무
윤고은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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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과거의 어느 지점을 자꾸 맴돌다보면, 그 끊임없는 복기가 신비한 파동을 만들어낸다. / p.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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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주말에 SNS를 보다가 독서 기록을 AI에 프롬프트로 입력하면 보고서처럼 써 주는 게시물을 보았다. 읽은 책이 워낙 많아 몇 차례 오류가 났지만, 결국 분석 결과를 받아 볼 수 있었다. 많은 분석 내용이 흥미로웠지만, 그중 눈에 띈 것은 '로맨스를 즐겨 읽지 않는다'는 대목이었다. 인생 소설 중 하나가 이도우 작가님의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인 독자로서 조금 이해가 되지 않는 부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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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은 색다른 로맨스 장르를 다루는 듯한 이 책은 윤고은 작가님의 장편소설이다. 작가님의 작품은 처음 접하는 것인데,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인 <밤의 여행자들>이라는 작품을 관심 있게 보고 있었다. 그동안 한국 작가님의 소설들은 나름 재미있게 읽은 독자 중 한 사람으로서 이번에 신작을 먼저 접하기로 마음을 먹고 선택하게 되었다. 푸릇푸릇한 표지가 인상적으로 다가왔고, 페이지를 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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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미아와 태오, 자동화가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두 사람이다. 미아는 생존가방을 기획하고 만드는 회사에서 근무하는 직장인이며, 태오는 지하철 인턴이다. 두 사람은 러닝대회를 계기로, 업무로 만나 서로에게 감정을 키워간다. 테니스 나무처럼 푸릇푸릇한 사랑으로 펼쳐질 것만 같은 두 사람의 관계는 태오의 게시글과 그에 대한 반응으로 조금씩 균열이 간다. 사랑은 과연 유지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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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금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단순한 로맨스 장르로 알고 시작했는데, 막상 읽다 보니 SF 장르의 분위기를 느꼈다. 소설의 세계관이 처음에는 머릿속으로 그려지지 않았다. 어느 정도 익숙해지고 난 다음부터는 페이지가 쉽게 넘어갔다. 그래도 얇은 분량이라 부담이 없었고, 몰입감이 좋았던 소설이었다. 뻔한 사랑 이야기를 좋아하지 않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색다른 사랑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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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태오의 글로 벌어지는 사건이 인상적이었다. 지하철 K선에서 사고가 발생했고, 태오는 이를 발견했던 사람이었다. 그리고 그 내용을 SNS에 게시했는데, 그게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회사에서는 태오를 지켜 주지 않았고, 사람들은 그 사건을 두고 악성 댓글을 달았다. 소설 속 허구의 세상이 현실감 있게 다가온 유일한 장면이었다. 이게 지금 사회에서도 아무렇지 않게 벌어지는 게 내내 기억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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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일을 겪고 나면 인간은 성장하기도 한다. 더욱 성숙해지고, 비슷한 일을 가볍게 넘기기도 한다. 태오와 미아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이들의 사랑보다는 각자의 발전을 더욱 응원하게 되었다. 이게 단순한 로맨스로 읽히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이렇게 두고 보니 사랑의 결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나는 로맨스를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결이 다른 사랑 이야기를 기다려 온 독자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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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거당한 집 - 제4회 박지리문학상 수상작
최수진 지음 / 사계절 / 202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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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둘 중 어느 쪽도 죽지 않고 살아남는 길을 찾았다면서. / p.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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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다 보면 자동으로 물음표가 떠오르는 소설들이 있다. 파트릭 모디아노 작가의 <추억을 완성하기 위하여>, 버지니아 울프 작가의 <댈러웨이 부인>처럼 마치 한 장의 사진처럼 장면을 붙잡아 두는 스토리 그렇다. 줄거리를 요약하는 습관이 있는 독자로서, 이런 작품 앞에서는 손이 멈춘다. 이런 소설의 리뷰는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까. 그렇다고 물음표 하나로 시작하고 마지막까지도 물음표 끝낼 수는 없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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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을 아예 소재로 삼은 물음표 같은 이 책은 최수진 작가님의 단편소설집이다. 출판사 SNS를 통해 박지리문학상이 올해를 끝으로 마무리된다는 소식을 접했다. 적어도 나에게 박지리문학상은 금 난해한 문학상처럼 느껴졌다. 자주 시청하는 북 크리에이터님의 월말 정산 영상에서 현호정 작가님의 <단명소녀 투쟁기>에 관심이 갔지만, 단요 작가님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는 어려웠다. 이번에 접한 작품 역시 걱정을 안고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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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총 세 편으로 구성되었다. 모두 근 미래인 2031년 원전 사고를 겪은 이후를 배경으로 한다. 첫 번째 작품인 <길 위의 희망>은 2036년에 광주광역시의 국아시아문화전당에서 화자가 시위대와 함께한 이야기를 다룬다. 두 번째 작품인 <점거당한 집>은 2044년 백남준아트센터가 있는 용인에서 예술가 남매에 관한 이야기를 그린다. 마지막 <금일의 경주>는 2044년 원전이 있는 경주가 무대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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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어렵게 다가왔던 작품이었다. 처음에는 세 편이 예술가의 이야기라는 점 외에는 세 편의 공통점이 와닿지 않았다. 세 편을 단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연결성이 보였지만, 하나의 장편소설이라고 하기에는 그 관계가 너무 느슨하게 느껴졌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파악해야만 하는지 당최 답이 보이지 않았다. 그러다 다시 읽게 되었는데, 그제야 어렴풋이 알 것 같았다. 박지리문학상에 관심을 가지는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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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공간의 이야기가 인상적이었다. 광주광역시의 아시아문화전당은 시민의 문화 공간으로 지금도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소설 속 아시아문화전당은 시위대의 생활 터전이 되고, 백남준아트센터는 남매의 서사와 어울리면서 단순한 예술 공간 그 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처럼 보였다. 또한, 역사적 건물이 많은 경주는 원전 사고로 폐허가 되었는데 내가 머릿속에 그려 왔던 장소들이 다르게 그려진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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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예술의 기법 중 하나인 모자이크를 활자로 표현한 듯한 작품을 만났다. 처음으로 페이지를 덮고 나니 물음표가 떠올랐고, 두 번째 덮고 나니 그 물음표가 두 배가 되었다. 온전히 작품을 이해했는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드는 것은 덤이다. 그럼에도 여기에 등장하는 이들이 머물렀던 공간만큼은 머물렀던 공간만큼은 선명하게 남았다. 매일 스치고 지나가는 나의 공간들을 조금은 낯설게 바라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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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풍류 - 멋스럽고 운치 있게 서울을 감각하는 법
은모든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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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양이든 온도든 언제나 적정한 정도를 취하라. / p.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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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서 나의 눈물 버튼이 된 에피소드가 있다. 바로 첫 회에서 삼천포가 신촌의 하숙집을 찾아오는 여정이다. 지하철 환승하는 방법을 몰라 '신촌행' 열차를 무작정 기다리고, 지하철 9번 출구를 찾아 계단을 몇 번이나 오르내린다. 심지어 시골 사람을 무시했던 택시기사는 삼천포에게 바가지까지 쓴다. '서울 이곳은'이라는 노래는 서글픔을 더했고, 서울에 살아본 적도 없는 촌년 펑펑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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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이야기를 담은 이 책은 은모든 작가님의 에세이다. 불과 삼 년 전부터 '서울국제도서전'에 가기 위해 2박 3일로 서울 여행하는 것이 하나의 루틴이 되었다. 첫 해에는 광화문 근처를, 두 번째 해에는 여의도 근처를 다녔다. 올해에는 안양천 근처에 숙소를 잡고, 서대문 역사 투어를 했다. 아직 더 가고 싶은 곳이 많은 지방 사람으로서 도움을 받고 싶어 선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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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는 제목 그대로 서울에서 즐길 수 있는 풍류에 관한 이야기다. 익혀 먹어도, 생으로 먹어도 맛있는 굴을 예찬하는 글, 요즈음 뜨고 있는 국립중앙박물관, 서울의 매화가 가장 풍성한 '청계천 하동매화거리' 등 서울의 맛, 서울의 멋, 서울의 흥이라는 테마를 가지고 작가님이 서울에서 누린 경험담과 정보가 담겨 있다. 거기에 작가님과 주변 지인들의 진솔한 생각과 삶을 바라보는 시각이 고스란히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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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작가님의 소설을 접한 적이 없는 독자로서 에세이를 이렇게 접한다는 게 나름의 걱정이었다. 에세이는 확실히 호불호가 있는 편이어서 작품을 읽기도 전에 편견을 가지게 될 것 같은 기우가 들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는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읽었다. 서울에 대한 지식이 없는 지방의 독자들에게 추천한다. 공감보다는 새로움으로 다가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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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들어가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작가님께서는 소설 창작을 배우려는 성인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하셨는데, 문장의 빈약함에 자책하는 대신 바깥에서 부지런히 경험하자는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전하신다고 한다. 두 문장으로 줄이면 '잘하고 싶은 일을 꾸준히 하자. 계속하기 위해 잘 놀기도 하자.' 최근 직장에서의 스트레스로 신경이 예민해지고 있던 상황에서 이 이야기가 왠지 모르게 큰 위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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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은 여전히 미지의 도시다. 아직 가지 못한 곳이 더 많고, 다가가기 어려운 곳이라는 것도 변함이 없다. 내 생애 서울에서 사는 일 또한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만큼 여러모로 무섭게 다가온다. 그럼에도 작가님의 이 에세이 하나면 앞으로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매년 서울을 찾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힘들고 지친 일상에서 벗어나 쉬어 갈 큰 휴식처가 되지 않을까. 앞으로 내가 그려 갈 서울의 풍류가 더욱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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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두대와 욕조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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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시몽은 이제 그 순간이 도래하는 걸 보기 위해 자신의 모든 걸 희생할 각오가 되어 있었다. / p.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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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단골 소재 중 하나인 역사 이야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특히, 다른 나라에서 벌어진 일이라면 더욱 거리를 둔다. 정보가 부족해 그 처참함을 온전히 이해하기 어렵고, 글자를 읽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세계가 내 안으로 밀려드는 것도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막상 읽고 나면 여운을 경험할 때가 많다는 것은 참 아이러니하다. 권력이 사람을 짓밟고 전쟁이 되풀이되던 역사가 신화처럼 아득해지는 날은 과연 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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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을 소재로 한 이 책은 조나탕 베르베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대한민국에서 사랑을 많이 받고 있는 작가 베르나르 베르베르와 이름이 비슷해 기억하고 있었다. 그러다 작년에 읽었던 <등장인물 연구 일지>라는 작품이 꽤나 인상적으로 남았다. 뭔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을 주었는데, 이번 신작 소식은 전혀 다른 분위기의 이야기라는 점에서 호기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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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은 시몽이다. 시계공인 아버지 테오와 함께 살아가던 시몽이 공화군으로 고향을 떠났다가 다시 돌아오게 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시몽이 생각했던 것과 달리 고향은 폐허가 되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어머니는 감옥에 갇혔으며, 아버지는 돌아가셨다. 시몽은 아버지를 죽였던 총독 카리에르에게 쳐들어갔지만, 스스로를 창녀라고 소개하는 여자로부터 묘한 제안을 듣고 복수를 하게 되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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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혁명 시기라는 낯선 시간적 배경과 많은 인물들의 등장, 벽돌에 가까운 600페이지의 무게 등 전반적인 특징만 놓고 본다면 부담스러운 작품이었다. 그럼에도 스토리의 몰입감이 그 부담을 상쇄할 만큼 컸다. 결론적으로는 그 걱정이 무색하게도 술술 읽을 수 있었다. 역사를 관통하는 이야기가 낯선 독자에게도 권하고 싶다. 정보가 없어도 충분히 완독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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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악인 카리에르의 행보가 인상적이었다. 카리에르는 자신의 권력을 위해 시몽이 살고 있는 마을을 전멸시키다시피 했다. 또한, 이익 앞에서는 무슨 일도 서슴지 않았다. 시몽이 자신에게 복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도움이 될 때까지는 두고 보았다가 쓸모가 없어지는 순간 가차 없이 버렸다. 그의 온갖 행동에 혀를 내두르게 되었다. 지금까지 읽은 어떤 인물보다 악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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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몽의 이야기에서 왜 기시감이 느껴졌을까. 과거 5.18민주화운동이 불현듯 떠올랐다. 권력을 위해 수많은 목숨을 희생시켰던 카리에르의 모습이 그날의 권력자와 고스란히 겹쳐 보였다. 아마도 몰입할 수 있었던 이유는 이러한 현실감에서 비롯된 분노 때문일 것이다. 제목의 단두대가 이토록 절실하게 느껴진 소설은 처음이다. 역사는 여전히 반복되고, 지금도 흐르는 중이다. 권력이 사람을 짓밟는 일이 신화가 되는 날은 아직 멀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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