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나토노트 1 (연장정)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옛날에 사람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죽음을 두려워하였다. / p.11

​

누군가의 재능을 가지고 올 수 있다면 더 물을 것도 없이 상상력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극강의 S 성향을 가진 사람에게 최대의 약점이 상상력이기 때문이다. 허무맹랑한 스토리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고, 큰 세계관에 공감할 수 없고, 현실에 있는 일이 아니라면 피부에도 와닿지 않는다. 책을 좋아하지만 부족한 상상력이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어렸을 때에는 소설보다는 비문학 계열의 서적을 좋아했던 이유도 바로 그것이지 않을까 싶다.

​

이 책은 베르나르 베르베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적어도 개인적인 기준에서 악마의 상상력을 가진 작가가 바로 베르나르 베르베르라고 생각한다. <고양이>를 읽으면서 감탄했던 기억이 아직도 선명하다. 고양이가 세상을 지배한다는 설정 자체가 터무니없는데 이를 어떻게 납득시킬 수 있을까. 읽고 한동안 길거리에서 고양이를 마주할 때마다 권력이 느껴졌다. 이번에 이 작품의 개정판이 나왔다는 소식에 바로 선택했다.

​

소설의 주인공은 미카엘 팽숑이라는 인물이다. 미카엘은 친구 라울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어렸을 때부터 나눈다. 미카엘의 가족들은 라울과 가까이 지낼 것을 경계했지만 미카엘은 라울이 좋았다. 시간이 흘러 미카엘은 마취과 의사가, 라울은 동물학자가 되었다. 이들은 우주를 탐사하듯 사후 세계를 여행할 수 있는 '타나토노트'라는 이름의 프로젝트를 만들게 된다. 1권과 2권에 나누어 타나토노트를 여행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는다.

​

술술 읽혔던 작품이었다. 언급한 것처럼 상상력이 곧 약점인 독자로서 크고도 넓은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세계를 이해할 수 있을지 조금 걱정되었다. 이러한 걱정이 무색하게 충분히 스토리의 맥락을 인지할 수 있었다. 종교나 철학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이 등장한다는 점에서 깊게 파고들지는 못했지만 재미있었던 작품이었다. 두 권이 총 800 페이지 정도가 되었는데 하루 내내 푹 빠져서 완독했다.

​

개인적으로 무거운 주제인 죽음을 흥미롭게 다루었다는 점이 가장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대한민국 사회에서 죽음은 가족과 이야기 꺼내기 힘든 소재이면서 터부시되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조심하게 되는 부분이었다. 인간이 두려워하는 죽음을 유쾌하고 재미있게 풀어내는 것만으로도 작가의 그 악마의 재능을 뺏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인상적이었다.

​

삶과 죽음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일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책은 독자에게 묻는다. 그럼에도 삶과 죽음에 집착하면서 아등바등 살아내고 죽어가는 게 과연 정답일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고 난 이후 삶의 완급 조절의 필요성을 느꼈다. 어쩌면 이 세계에 발을 붙이고 있는 내가 다른 세상을 여행하는 타나토노트일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책을 덮고 나면 누구나 자신이 타나토노트임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직장인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하이퍼 리얼리즘 소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건 내 인생의 상복이에요. 난 너무나 불행하거든요. / p.98

​

일이 자아실현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말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어렸을 때에는 일을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몰두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많이 들었다. 그에 비해 최근에는 일이 그저 하나의 돈벌이 수단이 된 것 같다. 나부터도 일에서 자존감을 찾던 시기를 지나 공과금과 생활을 하기 위한 직장인이 되었다.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일은 그저 일이 되었을 뿐이다.

​

이 책은 강보라 작가님, 권석 작가님, 김하율 작가님, 박연준 작가님, 성혜령 작가님, 정선임 작가님, 함윤이 작가님, 이태승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작품집이다. 매달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나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소설집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2023 년 첫 호부터 매년 구입해 읽는 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공감되었다. 늘 기대감을 안고 있지만 올해가 유독 더 큰 설렘을 안고 페이지를 넘겼다.

​

소설집에는 총 여덟 작품이 실렸다. 기간제 교사, 공무원, 예능 PD, 웨딩 도우미 등의 직업인뿐만 아니라 월급을 받지 못한 퇴사자도 등장한다. 직장에 속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노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술술 읽혀졌는데 완독까지 두 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그만큼 현실적이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도 수록되었다.

​

개인적으로 박연준 작가님의 <경희와 경희 아닌 것>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경희라는 인물이다. 소규모의 광고 하청 업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윗 직급의 사람들은 경희에게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시키는 듯하다. 실무와 잡일을 무난하게 잘하는 직원이 된 것이다. 바이어 미팅을 앞두고 과장은 경희에게 다소 무례한 행동을 했고, 이 과정에서 경희의 자괴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경희와 어머니 고미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어서 공감되었다. 아마 소규모 회사에 다니는 막내 포지션의 직장인들이라면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상사에게는 업무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는 후임이 필요한데 그게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결국에는 막내가 맡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사사로운 상사의 지시에 내 업무가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업무의 범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에 작품을 읽으니 이게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무실과 동료는 제각각이었다. 과지급된 퇴직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만난 허언증 환자,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지만 직원에게 월급을 밀리는 대표, 자신의 과오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나갔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에서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한 이들에게도, 출퇴근하는 전우들에게도 고생했다는 토닥임을 해 주고 싶었던 작품집이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인간 실격 - 다섯 번의 자살과 다섯 편의 유서 같은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지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4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이제껏 이런 기묘한 남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역시 한 번도 없다. / p.12

​

호불호가 갈리는 책들은 본능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경험이지만 그런 책들은 대부분 호평보다는 불평에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다. 좋은 느낌보다는 안 좋은 감정이 더 강하게 남았다. 거기에 본능적인 주저함이 더해지니 더욱 그런 부류의 책들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호평만 가득한 책에 믿음 가지고 읽는 것도 아니다. 책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겁을 낼 일인가.

​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집이다. 호불호 고전의 끝판왕이어서 예전부터 손대지 않았던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책으로 남을 정도로 좋았다고 하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 연민의 최종 보스라는 평을 들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후자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나 역시도 그런 감정이 깔린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회피하다시피 했는데 최근 들어 우선 부딪혀 보자는 생각이 생기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

소설의 주인공은 요조다. 나름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훤칠한 편이다. 누가 보면 부러워할 바탕을 가졌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고, 현실을 회피하기 급급한 천성이 그렇다. 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만큼 사람을 갈망하는 요조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알코올과 약물로 간접 자살을 수시로 시도하고, 네 번의 직접적인 자살 시도를 반복한다. 다섯 번째 시도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

술술 읽혀지지만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서사보다는 요조라는 인물의 감정으로 흘러가는 소설이다 보니 낯선 부분도 크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문화적인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인물의 감정적인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완독까지 세 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

개인적으로 요조의 자기 파멸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요조는 겉으로 보면 부러워할 만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지금 시대에 대입해도 손색없을 배경이다. 현실에 잘 타협하기만 했다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요조는 너무 유약했다. 작은 균열에 크게 동요했고, 파도를 헤쳐나가기보다는 피하기 급급했다. 처음에는 그 심리와 태도가 답답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

요조는 자기 혐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닥쳐오는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부러워할만한 결혼. 그것들이 무너지는 현실을 직면하는 대신, 자기 연민으로 마음을 달래고 중독과 자살 시도로 그 순간을 비껴갔던 것이다. 자기 혐오는 그의 본질이 아니라 책임을 유예하기 위한 선택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주저하며 집어든 책이 복잡한 질문을 안겨 주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일하는 사람의 초상 - 만들다, 잇다, 지키다, 살피다
김의경 외 지음 / 동아시아 / 202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그들이 계속 그 모습으로 내 곁 있을 거라며 믿으면서. / p.23

​

직장인이 되고 가장 크게 느낀 점은 밥 벌어 먹고 살기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를 다닐 때에는 로또 당첨을 마치 노래 부르듯 항상 말씀하셨던 아버지를 이해하지 못했다. 어차피 먹고 살 정도로 버는데 얼마나 욕심을 부리시는지. 시간이 지나 직장인 n 년차가 된 나는 유전이라도 된 것처럼 친한 친구들에게 매일 나의 소원은 로또 또는 연금 복권 당첨이라는 말을 노래처럼 부르고 다닌다. 돈 벌기가 세상 힘들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

이 책은 장강명 작가님 외 월급사실주의 소설가님들께서 직장인의 인터뷰를 담은 책이다. 월급사실주의 소설집을 참 좋아하는 편이다. 2023 년에<귀하의 노고에 감사드립니다>부터 시작된 것으로는 아는데 매년 구매해 읽었고, 올해 노동절에 발간한 <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을 인터넷 서점에 오르자마자 구입했다. 아마 내일이면 배송이 될 텐데 조만간 읽을 계획이다. 직업인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을 늘 옳기에 선택하게 되었다.

​

책에는 여러 직업을 가진 인물들의 인터뷰가 실렸다. 부제에서 드러나듯 총 네 가지 테마에 맞춰 소설가 열네 분께서 서른한 명의 직업인을 만난 이야기이다. 무대는 한국에서부터 호주에서 근무하신 분도 있었고, 직업 역시도 다양했다. 우리가 자주 매체로부터 접했던 공인중개사, 119 구급대원, 싱어송라이터도 있지만 책이 아니었으면 접하기 힘든 직종들도 있다.

​

술술 읽혀졌던 책이었다. 아무래도 인터뷰집이어서 크게 이해하거나 어려운 점은 없었던 것 같다. 직업 자체가 낯설게 다가올 수 있지만 큰 카테고리로 묶으면 생각보다 주변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은 처음 읽기 전에는 그 직업을 주제로 한 소설집이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인터뷰집이었다는 게 오히려 나았다. 완독까지는 대략 두 시간이 걸렸다. 직종의 독서 편차 또한 없었다.

​

개인적으로 4 부 살피다 파트의 특수학교 급여 담당자분의 인터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처음에는 특수학교의 특성보다는 급여 담당자라는 직종에 포인트를 맞췄기 때문에 크게 관심이 가지 않았다. 나의 직종과 비슷한 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사무국장님, 자주 접하는 사회복지직 공무원님의 인터뷰를 기대했는데 오히려 그분의 인터뷰에서 더욱 큰 공감이 되었다. 특히, 시각장애 특수학교에 재직하시는 분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상 깊게 읽었다.

​

언급했던 것처럼 먹고 살기가 참 어려운 시대라는 생각이 든다. 이건 지금 세대뿐만 아니라 부모님 세대, 그 이전의 조부모님 세대, 그 이전부터도 같은 마음이지 않을까. 직장인들의 이야기를 보면서 그들도 스스로를 건사하기 힘들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면서도 뭔가 표현할 수 없는 동질감이 들었다. 그들 역시도 비슷한 처지라는 점에서 위안을 느꼈을지도 모르겠다. 이들의 이야기가 여러 모로 오랫동안 떠오를 듯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