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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까지 바라는 건 욕심이겠지만 - 월급사실주의 2026 ㅣ 월급사실주의
강보라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6년 5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이건 내 인생의 상복이에요. 난 너무나 불행하거든요. / p.98
일이 자아실현과 일치되어야 한다는 말이 많이 사라진 듯하다. 어렸을 때에는 일을 마치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몰두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많이 들었다. 그에 비해 최근에는 일이 그저 하나의 돈벌이 수단이 된 것 같다. 나부터도 일에서 자존감을 찾던 시기를 지나 공과금과 생활을 하기 위한 직장인이 되었다. 일이 아닌 다른 곳에서 나를 표현하고 실현할 수 있는 방법들이 많아졌기 때문이. 일은 그저 일이 되었을 뿐이다.
이 책은 강보라 작가님, 권석 작가님, 김하율 작가님, 박연준 작가님, 성혜령 작가님, 정선임 작가님, 함윤이 작가님, 이태승 작가님께서 참여하신 앤솔로지 작품집이다. 매달 월급을 받는 직장인으로서 나 월급사실주의 동인의 소설집은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2023 년 첫 호부터 매년 구입해 읽는 중이다. 소설에 등장하는 이야기들이 너무 공감되었다. 늘 기대감을 안고 있지만 올해가 유독 더 큰 설렘을 안고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집에는 총 여덟 작품이 실렸다. 기간제 교사, 공무원, 예능 PD, 웨딩 도우미 등의 직업인뿐만 아니라 월급을 받지 못한 퇴사자도 등장한다. 직장에 속해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그 경계에 있는 사람들, 더 나아가 노동과 관련된 이야기들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술술 읽혀졌는데 완독까지 두 시간 내외면 충분하다. 그만큼 현실적이면서 가볍게 읽을 수 있었다. 특히, 올해는 공모전에 입상한 작품도 수록되었다.
개인적으로 박연준 작가님의 <경희와 경희 아닌 것>이라는 작품이 인상적이었다. 소설의 주인공은 경희라는 인물이다. 소규모의 광고 하청 업체에 소속되어 있는데 윗 직급의 사람들은 경희에게 이것저것 잡다한 일을 시키는 듯하다. 실무와 잡일을 무난하게 잘하는 직원이 된 것이다. 바이어 미팅을 앞두고 과장은 경희에게 다소 무례한 행동을 했고, 이 과정에서 경희의 자괴감은 더욱 증폭되었다. 경희와 어머니 고미숙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지금 다니고 있는 직장에서 가장 크게 느끼는 부분이어서 공감되었다. 아마 소규모 회사에 다니는 막내 포지션의 직장인들이라면 비슷한 감정이지 않을까. 상사에게는 업무를 서포트해 줄 수 있는 후임이 필요한데 그게 아래로 내려오다 보면 결국에는 막내가 맡게 되는 구조인 것이다. 사사로운 상사의 지시에 내 업무가 밀리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보니 업무의 범위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는 시기에 작품을 읽으니 이게 내 이야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등장하는 인물들의 사무실과 동료는 제각각이었다. 과지급된 퇴직금을 돌려받는 과정에서 만난 허언증 환자, 고급 세단을 몰고 다니지만 직원에게 월급을 밀리는 대표, 자신의 과오를 해결하기 위해 출장을 나갔 공무원에 이르기까지 각자의 공간에서 고군분투하는 모습들에서 동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 등장한 이들에게도, 출퇴근하는 전우들에게도 고생했다는 토닥임을 해 주고 싶었던 작품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