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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실격 - 다섯 번의 자살과 다섯 편의 유서 같은 소설
다자이 오사무 지음, 이지수 옮김 / 휴머니스트 / 2026년 4월
평점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는 이제껏 이런 기묘한 남자의 얼굴을 본 적이, 역시 한 번도 없다. / p.12
호불호가 갈리는 책들은 본능적으로 의심하게 된다. 어디까지나 경험이지만 그런 책들은 대부분 호평보다는 불평에 더욱 가까웠기 때문이다. 좋은 느낌보다는 안 좋은 감정이 더 강하게 남았다. 거기에 본능적인 주저함이 더해지니 더욱 그런 부류의 책들과는 거리를 두게 된다. 그렇다고 무조건 호평만 가득한 책에 믿음 가지고 읽는 것도 아니다. 책이 사람을 죽이는 것도 아닌데 뭐 이렇게 겁을 낼 일인가.
이 책은 다자이 오사무의 단편소설집이다. 호불호 고전의 끝판왕이어서 예전부터 손대지 않았던 중 하나다. 누군가에게는 인생 책으로 남을 정도로 좋았다고 하는데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 연민의 최종 보스라는 평을 들는다. 주변 사람들에게는 후자의 목소리가 더 많았다. 나 역시도 그런 감정이 깔린 작품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 회피하다시피 했는데 최근 들어 우선 부딪혀 보자는 생각이 생기면서 페이지를 넘겼다.
소설의 주인공은 요조다. 나름 괜찮은 집안에서 태어났고, 외모도 훤칠한 편이다. 누가 보면 부러워할 바탕을 가졌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하나 있다. 자기 연민으로 가득 차 있고, 현실을 회피하기 급급한 천성이 그렇다. 인간을 무서워하면서도 그만큼 사람을 갈망하는 요조는 자신의 처지를 비관해 알코올과 약물로 간접 자살을 수시로 시도하고, 네 번의 직접적인 자살 시도를 반복한다. 다섯 번째 시도로 결국 세상을 떠났다.
술술 읽혀지지만 어려웠던 작품이었다. 줄거리를 이해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서사보다는 요조라는 인물의 감정으로 흘러가는 소설이다 보니 낯선 부분도 크지 않았다. 당시 일본에서 사용하는 문화적인 용어가 등장하기는 하지만 몰라도 내용을 이해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다만 인물의 감정적인 상태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 않았다. 완독까지 세 시간 정도 걸린 듯하다.
개인적으로 요조의 자기 파멸 과정이 인상적이었다. 사실 요조는 겉으로 보면 부러워할 만한 배경을 가진 인물이다. 지금 시대에 대입해도 손색없을 배경이다. 현실에 잘 타협하기만 했다면 탄탄대로를 걸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러나 요조는 너무 유약했다. 작은 균열에 크게 동요했고, 파도를 헤쳐나가기보다는 피하기 급급했다. 처음에는 그 심리와 태도가 답답했는데 책을 덮고 나니 불현듯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요조는 자기 혐오로 죽음을 선택했을까. 오히려 반대가 아닐까 싶었다. 자신을 사랑했기 때문에 닥쳐오는 위기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하려 했던 것이 아닐까. 승승장구하는 커리어, 부러워할만한 결혼. 그것들이 무너지는 현실을 직면하는 대신, 자기 연민으로 마음을 달래고 중독과 자살 시도로 그 순간을 비껴갔던 것이다. 자기 혐오는 그의 본질이 아니라 책임을 유예하기 위한 선택의 언어였는지도 모르겠다. 주저하며 집어든 책이 복잡한 질문을 안겨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