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날
칼리 월리스 지음, 배지혜 옮김 / 황금가지 / 2022년 12월
평점 :
절판



등지고 있어도 여전히 지구를 느낄 수 있다. / p.15

지구 멸망을 다룬 디스토피아 소설과 영화에 관심이 없는 편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선호하지 않는 편이다. 지구가 소멸하거나 멸망해 인류가 사라진다는 게 아직까지는 피부로 와닿지 않는 부분인 것이 가장 큰 이유이다. 먼 미래의 일처럼 느껴져서 몰입이 깨질 때가 많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이유는 읽으면 읽을수록 마음이 불편해진다. 

현실성이 없기에 몰입이 안 된다는 이유로 선호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또 다른 이유로 공감으로 든다는 게 조금은 모순이 있기는 하지만 상황 자체에 대한 몰입은 되지 않으나 처한 인물에 대한 공감은 너무나 잘 이루어진다는 게 문제다. 내일이 없을 것처럼 살아야 한다는 말을 많이 듣지만 진짜 더 나을 곳도 없이 막다른 골목에 갇힌 인물이라면 말이 다르다. 그야말로 살기 위해 고군분투를 하는 모습들을 보면 마치 내가 경험하는 것처럼 마음이 답답해진다. 그런 감정을 느끼기 부담스럽다 보니 자연스럽게 멀어진 감이 있다.

이 책은 칼리 윌리스의 SF 장편 소설이다. 사실 표지만 보고 벌레가 원인이 되었던 전염병 이야기를 다룬 한국 영화 한 편이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런 디스토피아 영화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머릿속에는 전염병이나 지구 멸망을 다룬 이야기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그 영화가 연상이 되는데 이 소설 또한 그랬다. 누가 봐도 무서운 표지에서부터 줄거리까지 취향과 거리가 멀었지만 출판사에서 나온 소설 중 하나를 참 재미있게 읽었다. 이번에도 기대를 가지고 읽게 되었다. 불호 취향의 소설을 읽으면서 조금씩 넓혀가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 테러로 많은 사람이 사망한 하우스오브위즈덤 호에 자흐라와 자스가 다가오면서 시작된다. 자흐라는 바이러스 테러를 일으킨 용의자로 지목된 박사의 딸이며, 아버지의 명예를 다시 세우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자스는 바이러스 테러의 유일한 생존자이지만 자흐라 일당의 인질이 되었다. 테러가 일어난 지 십 년이 지난 이후 이들을 포함해 각자의 목적을 가지고 십 년만에 하우스위즈덤 호에 발을 딛게 되었다.

주인공인 자흐라와 자스라는 인물의 시점으로 전개가 되고 있으며, 목차 역시도 간단하게 자흐라와 자스로 나누어져 있다. 두 사람은 연관이 있지만 반대의 입장에 서 있는 사람이라고 보여진다. 특히, 단순하게 두 사람 개인의 이야기가 아닌 더 거슬러 올라 부모님과의 어떠한 인연을 가지고 있으며, 목적부터 많은 것이 다른 사람이다. 단지 두 사람은 같은 공간에서, 그리고 같은 사건에 대한 이야기를 가진다.

표지에서부터 디스토피아 세계에 대한 향기가 풍겼지만 바이러스 테러라는 소재 측면에서 보았을 때 언급했던 한국 영화가 더욱 강하게 떠올랐다. 그러나 이 소설은 지구가 아닌 우주를 공간적 배경으로 삼고 있다는 측면에서 더욱 웅장하고 크게 느껴졌다. 또한, 영화와 다르게 정부 기관과 각자 개인의 이야기 등 그물처럼 너무나 이해할 수 있는 관계가 많다 보니 초반에는 각자의 인물과 상황을 이해하는데 조금 어려움을 겪기도 했었다.

개인적으로 자스의 입장에서 소설을 공감했고 또 이해했다. 자흐라도 중요한 인물이지만 테러의 용의자인 아버지를 두둔하는 듯한 느낌을 많이 받았기에 조금은 부정적으로 생각했던 게 사실이었다. 피는 물보다 진하기에 가족으로서의 생각에는 동의할 수 있었다. 그러나 결론적으로 아버지가 테러를 일으킨 범인이라면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간 것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 죄책감은 가지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는 나중에 비밀이 풀리기는 하지만 초반만 놓고 보면 자스의 감정에 더욱 큰 공감이 되었다.

반면, 자스는 유일한 생존자로 하우스오브위즈덤 호에서 부모님을 잃은 인물이어서 더욱 마음에 와닿았다. 내가 자스였다면 자흐라에게 악감정이 들 수밖에 없었을 것 같은데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은 묘사되지 않았다. 자스가 자흐라의 아버지께서 테러 용의자로 의심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기에 그럴 수 있겠지만 충분히 독백이나 무언가 혼자의 감정으로 부모를 잃은 것에 대한 억울함이 표출되었을 법도 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소설에서 그려진 자스는 생각보다 단단하고 또 차분했기에 그러한 이야기가 더욱 안타깝게 느껴졌다.

보통 디스토피아 소설에서 현실감을 느낀 적이 별로 없는데 소설은 읽으면서 지금 살고 있는 세계에 대한 생각이 많이 들었던 것 같다. 특히, 애덤이라는 인물을 보면서 강한 분노를 느꼈다. 애덤은 자흐라의 쌍둥이 동생들을 데리고 있다. 어떻게 보면 자흐라가 하우스오브위즈덤 호에 도착하게 된 이유 중 하나도 애덤의 의견이 들어갔다고 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 이 부분이 가스라이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모두가 잘 살기 위해 하우스오브위즈덤 호에서 살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했지만 결론적으로 애덤은 자신의 이익과 노력을 헛되게 하지 않기 위해 자흐라를 다그쳤다. 심적으로 약할 때에 내리는 채찍은 약이 될 수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하우스오브위즈덤 호에서 발생한 문제에 대한 내용이었기에 다수의 생명을 위해 자흐라의 말을 들었어야 되는 일이었다. 더 나아가 가족을 빌미로 협박까지 했었는데 인간의 본성과 이기심을 다시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

자흐라와 자스, 어떻게 보면 반대에 속해 있던 또 다른 누군가의 희생 등 정의를 실천하고자 했던 다수의 사람들 덕분에 애덤이라는 인물이 더욱 악역으로 보였던 점도 있었다. 늘 선과 악이 대립되어 있는 세상이지만 그래도 인간을 생각하는 마음이 있기에 그 부분은 참 마음이 따뜻하게 다가왔다. 중반을 넘어 자신의 목숨을 걸고 필사적으로 하우스오브위즈덤 호로 오는 사람들을 막고자 했던 이들의 희생은 더욱 인상 깊었다.

꽤 두꺼운 페이지 수를 가진 소설이었음에도 평균 시간보다 빨리 완독할 정도로 몰입해서 읽을 수 있었다. 물론, SF 소설이라는 특성상 우주나 우주선 등에 대한 지식이 등장해서 조금은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그것을 제외하고 보더라도 참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SF 소설 앞에 호러 스릴러 장르라는 단어를 확인할 수 있었는데 우주선이라는 막힌 공간적 배경에서 생명을 위협받는 인물의 시간, 바이러스에 감염될지도 모른다는 심리적 압박감이 들었다는 측면에서 공포가 고스란히 와닿았다. 솟아날 구멍이라도 있는 막다른 골목에 갇힌 듯했다. 호러, 스릴러, SF라는 조금은 다르게 보이는 세 장르를 느낄 수 있어서 그것 또한 만족스러웠다. 

소설을 깨달은 점은 디스토피아 이야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다르게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현실 감각이 아닌 몰입감의 문제이지 않았나 싶다. 이 정도로 현실과 막연 사이를 오갈 수 있는 소설이라면 충분히 도전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상력과 현실감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시간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좋은 소설이었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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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요코제키 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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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에는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 p.14

사람의 인연 자체를 크게 연연하지 않기에 반대말인 악연 역시도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최고의 인연이겠지만 피해를 주면 그것은 악연이지 않을까. 인연과 악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악연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요코제키 다이의 장편 소설이다. 아마 제목 그 자체로 악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연이 만든 범죄 미스터리이기에 궁금증을 가졌다. 단순하게 서로에게 무언가를 끼쳤던 것이 아닌 그게 공적인 영역의 범죄까지 만들었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상상력으로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유미라는 한 여성에게 3 년 전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다시 알아보자는 이야기를 건네러 온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굳이 꺼내고 싶지 않지만 유미는 그 사건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유미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에 걸려온 전화에 당혹감으로 미숙한 대응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전화 이후 지하 아이돌이었던 인물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자신의 대응으로 살인이 벌어졌다는 죄책감과 주변의 시선에 못 이겨 결국 면직했다. 시간이 흐른 이후 이 살인 사건을 다시 파헤치려기 위해 나타난 남자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제안에 응한다. 이야기는 유미와 지하 아이돌의 팬들, 경찰과 용의자 등 살인 사건의 연루된 사람들의 당시 상황과 현재를 교차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유미라는 인물에 가장 큰 공감을 했었다. 특히,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도, 그렇다고 살인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가지게 되는 죄책감이 무엇보다 크게 와닿았다. 아마 내가 유미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한 상상을 했었지만 유미의 반응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비슷한 답변으로 살해의 빌미를 주지 않았을까.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죄인이 된 것 같은 주변의 시선과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또한, 읽으면서 아이돌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소설에 등장하는 팬들은 전부 성인의 남자들이면서 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는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지하 아이돌이라는 설정이다. 전체적으로 아이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의 아이돌 시장과 한국의 상황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보였기 때문에 신기했다. 아마 지하 아이돌이 대한민국으로 본다면 지방 가수 정도 될까. 신기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그룹인 AKB48과 그 중에서도 유명한 멤버가 이름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반가웠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관통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소설과 비소설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이고도 현실적인 이야기와 연관을 지어 풀어내려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읽는 내내 추리에 몰입해 감탄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범죄 미스터리에 꽂혀 읽다가 책을 덮고 나니 표지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정말로 우연이 아니었던 살인 사건과 악연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유미와 그들의 연이 책 한 권에 촘촘하게 전개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소름 돋게 했다. 

하나의 사건 아래에 한 사람은 심지어 목숨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직장을 잃었으며, 다른 이들은 큰 아픔을 느꼈다. 그것도 한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사실로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모처럼 인물의 공감보다는 추리의 재미를 느끼면서 읽었던 것 같다. 스토리에 몰입해 읽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추리 소설의 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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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원더 아르테 오리지널 14
엠마 도노휴 지음, 박혜진 옮김 / arte(아르테)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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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의 감시자는 이 점을 유의해야 한다. / p.278

요즈음 영상화로 구현될 소설에 눈길이 가게 된다. 과거에는 모르고 읽었던 소설이 영상화 확정이 되었다는 이야기를 주로 듣는다면 최근에 책을 많이 읽게 되면서 홍보 문구로 더욱 관심을 가지고 읽는다. 소설과 영상에는 큰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새록새록 기억을 되새길 수 있다는 점에서 찾아서 읽는 게 좋다.

이뿐만 아니라 나름 스토리를 읽으면서 머릿속으로 영상을 구현하는데 이러한 재미도 있다. 흔히 가상 개스팅이라는 표현으로 SNS에서도 많이 회자가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실제로 캐스팅이 된 배우의 모습을 보고 실망하는 경우도 있지만 기대할 때가 더 크다. 가장 좋아하는 소설 중 하나가 드라마로 제작되었을 때 생각했던 주인공의 이미지와 배우가 조금 다르기도 했었는데 막상 보고 나니 배우는 역시 직업이라는 감탄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잘 어울렸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책은 엠마 도노휴의 장편 소설이다. 사실 넷플릭스를 결제하고 있지만 가끔 보는 사람 중 하나이다. 오죽하면 전 세계로 히트를 쳤던 한국 드라마도 보지 않았을 정도인데 뭔가 묘하게 눈길이 갔던 작품이었다. 표지에서부터 신비로운 느낌이 들었고, 줄거리만 보았을 때 영상화로 구현된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기 전 원작 소설을 꼭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읽게 되었다.

소설은 애나라는 소녀를 중심으로 전개된다. 애나는 주님의 성수만 먹는 아이로 추앙을 받는 존재이다. 기적이라고 불릴 정도로 큰 이슈가 되는 듯한데 애나가 살고 있는 곳에 나이팅게일의 가르침을 받은 리브라는 간호사가 온다. 리브는 수녀원 수녀와 함께 교대하면서 애나가 실제로 음식을 먹는지 감시해 달라는 요청을 받는다. 처음에 리브는 사기극이라는 추리를 하면서 애나를 열정적으로 감시한다. 증명하려는 목적으로 일하던 리브는 점차 애나에게 빠져들면서 이를 파헤치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소설을 읽는 내내 온전히 리브의 입장에서 이해가 되었다. 처음에는 역시 리브처럼 한 아이를 대상으로 한 가족에 대한 사기극이라고 짐작했었다. 우선 성장기의 아이가 영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서 오랜 시간을 버틴다는 것 자체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소설에 표현된 애나는 너무나 건강한 소녀였다. 리브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크게 어렵지 않았는데 보통 며칠 굶으면 말할 힘이 없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모르는 사이에 영양분을 공급해 줄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대로 근무하는 수녀가 있을 시간에 말이다.

그렇게 의심의 씨앗으로 읽게 된 이야기는 중반에 이르러 완전히 생각을 바꾸게 된다. 물론, 이 역시도 리브의 감정적인 흐름과 비슷했다. 중반에 알게 된 애나 가족의 이야기와 더불어 종교라는 큰 벽이 참 답답하게 만들었다. 아마 리브가 일에서 시작해 일로서 끝내고자 하는 감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갔더라면 애나의 상황에 마음을 쓸 일이 없었을 텐데 점차 애나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하면서 이성과 감정 사이에 많은 혼란을 느끼게 된 것 같다. 이야기에 빠져든 나의 입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크게 세 가지 생각을 했다. 첫 번째는 종교에 대한 문제이다. 소설은 많은 것들이 종교와 이어져 있다. 주님의 성수를 먹고도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보이면서 종교인들의 신념을 더욱 견고하게 했고, 애나가 많은 사람들의 만류에도 끝까지 단식을 이어가는 이유 또한 주님의 뜻이었다. 종교가 없는 입장이기에 이러한 그릇된 신념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리브 또한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에서는 거의 유일하게 종교가 다르기에 조금이나마 이성적인 시각으로 애나의 건강을 살폈다. 물론, 감정을 앞세울 때 리브를 붙잡게 만든 이는 아이러니하게도 종교를 가진 사람이었지만 말이다. 종교가 주는 신뢰에 대한 무서움도 간접적으로 실감하게 되었다. 그러한 지점이 개인적으로는 너무 무서웠다.

두 번째는 가족이 가진 가치관의 문제이다. 크게 보면 종교와 연관이 되겠지만 너무 무책임하다고 느껴졌다. 애나의 가정사로 하나의 비밀이 드러나는데 같은 일을 반복하려고 하는 가족들의 태도 역시도 의문이었다. 사람 위에 그 무엇도 없다는 입장이기에 더욱 부정적인 시선으로 읽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었다면 모르겠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아동 학대라는 느낌까지 받았다. 다른 이들이 멀쩡하게 보인다고 했을 때에도 애나의 상태를 보았다면 이를 말렸어야 했다. 또한, 애나의 말을 믿었어야 했다. 그러나 부모라는 사람들은 이를 믿지 않았다. 점점 자녀가 스스로를 죽이는 모습을 보고도 반응하지 않았다는 점은 참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했다.

세 번째는 리브의 양가감정이다. 어떻게 보면 딜레마이기도 할 텐데 리브의 모습에서 고스란히 느껴졌다. 처음에 리브는 감시의 목적으로 누구보다 객관적인 증거를 남겼다. 매일 애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음식을 먹는지 감시한다. 간호사라기보다는 감시인에 더욱 가까운 듯해 보였는데 애나에게 마음이 간 이후로부터 리브는 간호사의 입장으로 기울어진 것처럼 보였다. 나름의 의학적인 지식에 의거해 애나를 설득하고, 의사에게 애나에 대한 몸 상태를 전달한다. 나중에 이르러서는 기적을 지키기 위해 못본 척하는 어른들의 신념을 바꾸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등장하는 인물들 역시도 리브에게 이러한 점을 경고하는데 그게 더욱 리브에게 몰입할 수 있는 이유이기도 했다. 리브는 누가 뭐라고 해도 간호사이기 때문이다. 본분을 저버리지 않은 모습이 참 인상 깊었다.

책을 덮으면서 여운이 많이 남았다. 특히, 후반에 이르러 애나가 금식을 하는 새로운 이유가 발견되면서 더욱 감정적으로 와닿았다. 어린 아이를 희생으로 삼아 종교의 가치관을 견고히 하려는 어른들의 그릇된 모습을 보면서 우리 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무조건 종교적인 이유에서뿐만 아니라 어른들의 몰상식으로 아이들을 학대하는 경우까지 포함해서 그렇다. 민감한 사안이기는 하지만 보도를 통해 이런 일들을 종종 접한다. 또한, 예전에는 아무렇지 않게 느꼈을 모태신앙이 아동 학대로 회자되고 있는 것도 소설을 읽으면서 깊이 논의할 문제라고 느껴졌다.

조만간 넷플릭스로 이 영화를 볼 계획을 가지고 있다. 활자로 읽는 스토리 자체가 무겁게 와닿았기에 영상으로 구현되는 내용이 더욱 궁금해졌다. 단순하게 종교적인 문제로 읽었던 책이었으나, 더 나아가 아동 학대의 문제까지 고민할 수 있는 계기가 되어서 좋았다.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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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비밀이 없다
우샤오러 지음, 강초아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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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현실을 관통하는 이야기들이 참 묵직하게 다가올 때가 많았습니다. 그러한 맥락으로 도가니 역시도 참 마음을 아프게 한 영화이자 소설이었는데 이 소설로 가정 내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깊이 고찰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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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의 아이들
이케이도 준 지음, 민경욱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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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실을 알고 있는 것은 위에 선 인간뿐이다. / p.336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생각보다 많다. 특히, 한국 작가님들 중에서는 도장 깨기를 목표로 삼을 정도로 애정하는 작품이 있다. 열 개의 손가락으로도 부족할 정도여서 예전 작품부터 현재 신작까지 하나하나 읽기 버겁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분들의 세계관을 읽으면서 나름 위안이 되거나 스트레스 해소가 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없다. 이것 또한 하나의 덕질일까 싶다.

그동안 한국 문학을 위주로 읽는 편이었는데 올해부터 일본, 영미, 더 나아가 중국과 낯선 나라의 작품들을 읽으면서부터 선호의 폭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서양 문학은 아무래도 문화의 차이가 큰 편이기에 작품 자체가 와닿을 수는 있겠지만 작가의 작품을 섭렵할 정도로 매력적으로 느낀 경우가 많지 않았다. 심지어 읽은 외국 작품은 첫 작품들이어서 다른 작품이 존재하지 않는 경우도 생각보다 많았다.

해외 작품들 중에서 작가까지 눈에 들어온 몇 안 되는 케이스가 있기는 하다. 서양 작가 중에서는 앤디 위어가 유일하고, 일본 작가 중에서는 두 명이 있다. 사실 한 명의 작가는 하나씩 섭렵하는 중이어서 조만간 한국에 나온 작품을 거의 읽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다른 한 명의 작가는 읽었던 한 권의 장편 소설이 너무 강렬하게 다가와 그 자체로도 최애 작가가 된 케이스이다. 바로 다른 작품을 구입했었고, 내년에는 시리즈로 나온 소설을 구매해 읽을 계획까지 세울 정도이다.

이 책은 몇 안 되는 최애 작가 중 한 명인 이케이도 준의 장편 소설이다. 후자에 속하는 작가인데 서평단으로 읽었던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너무나 좋았다. 곧 구매한 다른 작품을 읽을 예정이었는데 우연히 출판사 이벤트로 이케이도 준의 작품을 선물로 받았다. 한자와 나오키, 변두리 로켓 등은 어느 정도 이름은 알고 있었는데 선물로 받은 작품은 처음 듣는 제목이어서 더욱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동안 읽고 싶다는 생각은 간절했지만 세상에 읽을 책들이 많다 보니 우선순위에 밀렸다. 이제 더 미루면 내년으로 넘어가야 하기에 시간을 쪼개 이렇게 읽게 되었다.

소설의 배경은 도쿄제일은행의 나가하라 지점이다. 총 10 화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지점장 후루카와부터 은행에 근무하는 사람들의 가정사, 속내 등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어떻게 보면 연작 소설이라고 보여질 정도로 한 편에 한 명 이상의 새로운 인물들이 등장해 자신의 이야기와 처지를 말해 준다. 또한, 도쿄제일은행에서 벌어진 고액의 도난 사건과 직원 실종 사건이라는 큰 틀의 이야기도 함께 진행된다.

읽으면서 애정하는 작품인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떠올랐다. 하늘을 나는 타이어가 중소 기업의 고군분투기를 다루었다는 점에서 배경 자체부터 크게 다르기는 하지만 직장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이라는 게 비슷하게 와닿았다. 에피소드 중에서 기업이 도쿄제일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거나 은행 직원이 응대하는 모습들을 읽으면서 그때의 인상 깊은 감정들이 떠올랐다. 은행 직원들의 실적에 치이는 모습은 여전히 안쓰러웠고, 기업 간부와 은행원 간의 기싸움 역시도 뭔가 답답하게 만들었다.

가장 인상적인 인물은 부지점장 후루카와이다. 고등학교 졸업 후 입사해 권력욕이 강한 인물이다. 지점장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 직원들을 아주 쥐어잡는 것도 모자라 현대 사회에서 흔히 꼰대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권력을 부리는 인물이기도 하다. 특히, 상사의 말은 곧 법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데 이에 대해 의문을 품는 직원에게 폭력을 가해서 경고 조치까지 받았다. 대졸 직원들과 자신보다 먼저 승진한 후배인 지점장을 보면서 열정을 가지는 모습은 좋지만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자격지심이자 열등감으로 보였다. 그런 면에서 좋은 감정으로 기억에 남았다기보다는 전형적인 회사에 제거되어야 하는 인물로 각인이 되었다. 아무래도 가장 초반에 등장하는 인물이기에 더욱 부정적으로 노출이 되어서 안 좋게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큰 사건이었던 도난과 실종 사건에는 다른 인물에 비해 크게 관련이 없음에도 말이다.

그밖에도 야구 유망주로 살다가 특채로 은행에 들어온 인물은 뭔가 짠한 마음으로 응원하게 되었으며, 도난 사건의 용의자로 몰린 직원을 보면서 읽는 입장인 내가 더 억울하다 느껴지기까지 했다. 다사다난하면서 우당탕탕 흘러가는 은행 직원의 분투기가 마치 대한민국에서는 보통의 직장 생활처럼 보였다. 물론, 돈을 다루는 직종이기에 크게 보면 조금은 다를 것 같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는 아마도 은행에서 직장 생활을 했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으로 너무나 실감나게 표현이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인물들의 개인사들도 공감이 되었는데 가장 크게 인상 깊었던 점은 큰 사건에 대한 전개 방식이었다. 다른 추리 소설이라면 초반부터 큰 사건이 등장했을 텐데 이 소설은 은행원들의 좌충우돌 소소한 이야기들 위주로 전개된다. 공감하다 정신을 놓고 나면 그제서야 100만 엔 도난 사건이 등장한다. 심지어 등장한 이후에도 개인의 이야기들이 우선적으로 나타난다는 느낌이 들었다. 중간에 잊을 만하면 관련 사건으로 실종된 직원과 100만 엔의 출처 등이 불쑥 튀어나온다. 그런 면에서 직장 소설이라고 봐야 맞겠지만 묘하게 긴장감이 흘러서 추리 소설의 묘미도 느낄 수 있었다. 이렇게 읽으면서 범인을 찾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도 했다.

은행 직원은 이렇게 일한다는 점을 너무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소설이었다. 가끔은 전문적인 용어들이 나와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다르게 생각하면 현실감이 느껴졌다는 장점도 있을 것이다. 아마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충분히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 역시도 이 주류에 속해 있기에 개인적으로는 참 만족스러운 소설이었다. 덕분에 내년에 이케이도 준의 소설을 도장 깨기 하겠다는 다짐은 더욱 견고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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