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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연
요코제키 다이 지음, 김은모 옮김 / 하빌리스 / 2022년 12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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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사건에는 우리가 알던 것과 전혀 다른 측면이 있는 것 같아요. / p.14
사람의 인연 자체를 크게 연연하지 않기에 반대말인 악연 역시도 개의치 않는 스타일이다. 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주면 최고의 인연이겠지만 피해를 주면 그것은 악연이지 않을까. 인연과 악연은 절대적인 것이 아닌 상대적인 의미를 지녔다고 생각하기에 나 역시 누군가에게는 악연이 되었을 것이다.
이 책은 요코제키 다이의 장편 소설이다. 아마 제목 그 자체로 악연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면 별 생각이 없을지도 모르겠다. 애초에 관심이 없는 부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악연이 만든 범죄 미스터리이기에 궁금증을 가졌다. 단순하게 서로에게 무언가를 끼쳤던 것이 아닌 그게 공적인 영역의 범죄까지 만들었다면 흥미로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상상력으로 기대하면서 읽게 되었다.
소설은 유미라는 한 여성에게 3 년 전 벌어진 살인 사건에 대해 다시 알아보자는 이야기를 건네러 온 한 남자로부터 시작된다. 굳이 꺼내고 싶지 않지만 유미는 그 사건의 아픔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유미가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있을 때에 걸려온 전화에 당혹감으로 미숙한 대응을 했던 적이 있다. 그 전화 이후 지하 아이돌이었던 인물이 살해당한 채 발견된다. 자신의 대응으로 살인이 벌어졌다는 죄책감과 주변의 시선에 못 이겨 결국 면직했다. 시간이 흐른 이후 이 살인 사건을 다시 파헤치려기 위해 나타난 남자가 의심스러우면서도 제안에 응한다. 이야기는 유미와 지하 아이돌의 팬들, 경찰과 용의자 등 살인 사건의 연루된 사람들의 당시 상황과 현재를 교차하면서 내용이 전개된다.
개인적으로는 유미라는 인물에 가장 큰 공감을 했었다. 특히, 직접적으로 살인을 저지르지도, 그렇다고 살인의 원인을 제공하지도 않았지만 묘하게 가지게 되는 죄책감이 무엇보다 크게 와닿았다. 아마 내가 유미의 상황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지에 대한 상상을 했었지만 유미의 반응과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비슷한 답변으로 살해의 빌미를 주지 않았을까. 죄를 저지르지는 않았지만 죄인이 된 것 같은 주변의 시선과 무겁게 내려앉은 마음을 어떻게 할 수 없었을 것 같다.
또한, 읽으면서 아이돌에 관한 내용이 흥미로웠다. 소설에 등장하는 팬들은 전부 성인의 남자들이면서 이들이 좋아하는 가수는 한국에서 다소 생소한 지하 아이돌이라는 설정이다. 전체적으로 아이돌의 이야기가 등장한다. 일본의 아이돌 시장과 한국의 상황은 너무 다르기 때문에 조금 다르게 보였기 때문에 신기했다. 아마 지하 아이돌이 대한민국으로 본다면 지방 가수 정도 될까. 신기한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일본에서 유명한 그룹인 AKB48과 그 중에서도 유명한 멤버가 이름으로 등장한다는 점은 반가웠다.
보통 소설을 읽으면 여러 가지 생각이 관통하기 마련이다. 그동안 소설과 비소설을 가리지 않고 사회적이고도 현실적인 이야기와 연관을 지어 풀어내려는 습관이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조금은 독특한 느낌을 주었다. 읽는 내내 추리에 몰입해 감탄하면서 읽었던 것 같다. 범죄 미스터리에 꽂혀 읽다가 책을 덮고 나니 표지의 내용들이 하나하나 와닿았다. 정말로 우연이 아니었던 살인 사건과 악연이라고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유미와 그들의 연이 책 한 권에 촘촘하게 전개가 되었다는 사실이 더욱 소름 돋게 했다.
하나의 사건 아래에 한 사람은 심지어 목숨을 잃었고, 또 한 사람은 직장을 잃었으며, 다른 이들은 큰 아픔을 느꼈다. 그것도 한 사람의 말도 안 되는 이유 때문이었다는 사실로서 벌어진 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모처럼 인물의 공감보다는 추리의 재미를 느끼면서 읽었던 것 같다. 스토리에 몰입해 읽는 것도 참 오랜만이었다. 추리 소설의 묘미를 새롭게 느낄 수 있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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