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목숨을 구한다는 것, 그건 사랑에 빠지는 것과 같아.
그것보다 더 좋은 마약은 없지. 누굴 구하고 나서 한 며칠 동안은, 길을 걸을 때 눈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달라져 보여.
나 자신이 불멸의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하고.
마치 내가 구해낸 게 바로 나 자신이었던 것처럼 말이야.

-마틴 스콜세지의 영화 <비상근무> 중에서 - P27

그 분은 정말 형언하기 힘든 슬픔에 잠겨 있는 것 같았어요.
저는 그 분이 여러 번 이렇게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었어요. 에스투 콤사우다데스 데 투.
그녀 : 당신이 그리워‘ 라는 뜻이죠?
그: 맞아요. 거의 그런 뜻이죠. 제가 위로하자 그 분이 이런 말을 해주시더군요. 포르투갈에서는 멀리 떨어져 있는 것에 대한 그리움과 갈망을 ‘사우다드‘라고 표현한답니다. 고향을 떠나 먼 곳에서 살고 있거나 고인이 된 사람들에 대한 진한 애정과 슬픔 같은 것도 사우다드겠지요. 그런데 그 말은 다른 언어로는 뉘앙스까지 정확하게 옮길 수 없다더군요. 그건 설명할 수 없는 영혼의 상태, 모든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순수 그대로의 슬픔, 한 같은 것을 의미한다고 해요. - P67

줄리에트는 자신이 줄리에트 보몽 변호사가 아니듯 현재 누리고 있는 행복 역시 온전하게 자신의 것이 아님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자신이 도둑질한 이 순간의 이미지를 끌어 모아, 고독한 저녁마다 결코 싫증나지 않는 오래 된 영화를 보듯 되풀이해 떠올리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단 몇 시간일지라도 짜릿한 행복의 광휘는 이따금씩 삶이 우리에게제공하는 환멸과 권태의 일상을 충분히 견디게 해준다. - P102

비행기는 엄격한 관리규정에 따라 모든 안전점검을 완벽하게 마친 상태였다. 게다가 제작한 지 8년밖에 안 지난 최신기종이었다. 보통 3백 시간 비행 후에 실시되는 체크A, 4천 시간 후에 실시되는 체크C 그리고 마지막으로 2만 4천 시간 비행 후에 실시하는 대점검까지 무사히 마친 비행기였다. 대점검은 6년마다 한 번씩 6주 동안 운항을 중단시키고 기계공과 엔지니어들에게 기체의 철저한 분석과 점검을 맡기는 과정으로 그 비행기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결론이 내려진 바 있었다. - P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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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애오."
할멈이 마땅찮다는 표정으로 금손이를 살펴보더니 한마디 했다.
"말랐다이."
누가 봐도 포동포동했다.
"말라서 볼품이 읍슴메. 갖다 버리야지..." - P1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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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병과는 크게 4개 분야로 나뉘는데, 전투병과, 기술병과, 행정병과, 특수병과이다. 전투병과에는 보병, 포병, 기갑, 공병, 정보통신, 정보, 항공, 방공이 해당되고, 기술병과에는 병기, 병참, 수송, 화생방이 해당되며, 행정병과에는 인사부관), 군사경찰(舊 헌병), 재정, 공보정훈(군악 포함)이 해당된다. 특수병과에는 의정, 군의, 치의, 수의, 법무, 감찰, 군종이 다 포함된다(육사·학군·학사장교로 임관할 때는 의정을 제외한 특수병과 선택은 불가능하다). - P106

행사가 종료되면 졸업생들은 행사장 뒤편의 강재구 소령* 동상으로 달려간다. 졸업생들은 졸업식 꽃으로 꽃다발 대신받은 꽃목걸이를 동상에 던져서 건다. 성공하면 장군이 될 수 있다는 미신 때문에 거의 모든 졸업생이 행사의 당연한 순서처럼 달려간다. 성공하기가 쉬운 것은 아니라서 어느 틈엔가는 졸업생들도, 그걸 지켜보는 사람들도 저절로 응원하게 된다.

*1965년 베트남 파병 준비 훈련 중 수류탄 투척 훈련을 하다 실수한 병사가 떨어뜨린 수류탄을 몸으로 덮어 중대원들의 생명을 구하고 산화한군인. - P121

흔히 소위 계급장을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라고 부른다. 광이라는 것은 빛의 밝기를 나타내는 단위로, 오만 촉광의 다이아몬드라는 말은 소위 계급장이 오만 개의 다이아몬드의 빛만큼 밝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아마도 나처럼 소위로 임관한 장교들의 마음에 가득 차 있는 자신감의 크기만큼 빛나는 걸 표현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 P122

나는 항공병과와 보병병과 모두 가지 못하고 인사병과를 선택했지만, 1년 정도 보병병과로 꼭 한 번 생활해 보고 싶었다. 가만히 앉아서 하는 일보다는 몸을 직접 움직이면서 소대원들과 함께 생활하는 것이 더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기행병과를 택한 이상 임관해서 곧장 하는 소대장(보병병과에서 소위에게 부여되는 첫 직책) 1년 말고는 그럴 수 있는 직책이 없다.
지금 생각해도 같은 병과 남군 동기들은 했지만 나는 경험하지 못해서 매우 아쉽다.
나와 같은 병과로 임관한 두 명의 남군 동기는 첫 직책이 보병 소대장이었기 때문에 임관 후 보병학교로 갔다. 반대로 나는 처음부터 인사병과 소위로 일을 하기 때문에 육군종합행정학교로 갔다. 육군의 각 병과는 각각의 병과학교를 운영하고 있으나 인사, 재정, 군사경찰, 법무, 군종병과는 통합하여 육군종합행정학교라는 하나의 병과학교에서 교육을 한다(별도로 운영하기에는 각 병과 인원수가 적다). - P124

"화랑! 신고합니다!
소위 박미영 등 ○○명은 2007년 6월 21일부로 제11기계화보병사단으로 전입을 명 받았습니다!

*각 부대마다 고유의 경례구호가 있다. 해당 구호는 11사단의 경례구호이다. 공군과 해군의 모든 부대는 ‘필승‘이라는 구호를 사용한다. 별도의 구호가 없는 육군부대는 ‘충성‘이다. 지상작전사령부는 선봉, 5군단은 승진, 6군단은 진군, 7군단은 북진, 수기사는 맹호, 1사단은 전진, 3사단은 백골, 6사단은 청성, 8사단은 돌격, 9사단은 백마, 특전사·5사단·7사단은 단결, 15사단은 필승, 28사단은 태풍, 50사단은 강철, 51사단은 전승, 지금은 해체된 20사단과 26사단은 각각 결전과 공격, 역시 해체된 27사단은그 유명한 이기자이다. 육군사관학교의 경례구호는 ‘충성‘이다. 내가 입학하기 직전까지는 ‘통일‘이었다가 현재 구호로 바뀌었다. - P127

임관해서 우리가 일하게 되는 공간에는 간부와 병이 함께 섞여 있다. 여기서 말하는 간부란 장교, 준사관, 부사관을 통합해서 지칭한다. 장교에 해당하는 계급은 소위 - 중위 - 대위(이상 위관급 장교), 소령 - 중령 - 대령(이상 영관급 장교), 준장-소장-중장-대장(이상 장성급 장교, 보통 장군이라고 함)까지이다. 준사관 계급은 준위라는 단일계급으로 소위 계급장과 같은 모양이지만 색이 금색이며, 부사관은 하사 - 중사-상사-원사계급으로 되어 있다. 계급의 서열은 부사관 <준사관 <장교순이다. - P130

"통신보안, 병인사관리장교 박미영 소위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립니까(다나까체를 쓰다 보면 이런 말투를 사용하게 된다)?" - P133

사고 당일에도 주말에도 흐르지 않던 눈물이 그제서야 쏟아졌다. 아빠는 당시 육군 감찰로 근무하시던 작은아버지에게 바로 전화를 거셨다고 했다. 육군 감찰은 국민들이 군부대를 대상으로 넣는 민원을 해결하고, 부대 내 부조리한 일을 조사하고 감독하는 일, 부대원들의 고충을 해결하는 일을 한다. 작은아버지는 아빠에게 국민신문고를 통해서 해당 내용에 대해 민원을 넣으라고 조언하셨다고 했다.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된 민원은 해당 부대로 내용이 이첩되어 민원인이 요구하는 내용에 대해 기한 내 반드시 답변을 하도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런 방법을 통해서는 현역인 내가 정당한 보고체계를 거치지 않아서 피해를 받을 수도 있으니 나는 나대로 정상적인 보고계통을 거쳐서 보고하라고 말씀해 주셨다. 부장은 내 직속상관이었기 때문에 부대 내의 사람에게 보고하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결국 우리 부대의 상급부대(교육사령부)의 여성 고충상담관에게 보고했다. 부대로 돌아가서기다리면 필요한 조치를 해주겠단 답을 듣고 복귀했다. 아빠가 국민신문고를 통해 접수한 민원은 육군본부의 감찰실로 넘어갔다. 접수하고 나서 며칠 뒤 육군 감찰실장(2성 장군)이 직접 내 휴대폰으로 전화를 해서 육군에 아직 이런 장교가 있다는 사실이 미안하다며 신속하게 처리해 주겠다고 했다. - P182

장군이 대위에게 직접 전화해서 이렇게 말할 정도면 문제를 그냥 덮어버리진 않겠다는 생각을 했다.
결국 아빠가 민원을 접수하고 내가 상급부대 여성 고충상담관에게 보고한 후에야 나는 내 지휘관인 학교장에게 보고했다. 부대장은 부장과 같은 병과였고 오랫동안 함께 근무한 인연이 있어서 중간에 문제 자체를 덮어버릴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어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모두 하고 나서야 보고를 했던 것이다. 학교장님은 내 보고를 모두 듣고는일을 해결하는 데 최대한 도움을 주겠다고 하셨고, 다음 날부터는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고 해주셨다.
그 후 사건 조사를 위해 곧바로 수사관들이 찾아왔다. 내가 여군이기 때문에 여군 수사관이 함께 참석한 상태에서 모든 것이 진행됐다. 사건 조사를 하려면 사실관계를 명확히 해야 하기에, 내 진술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내가 겪어야 하는 일은 최악이었다. 우선 자필 진술서를 쓰고, 녹화·녹취가 되는 장소에서 수사관이 당시의 상황을 매우 세밀하게 묻는다. 다양한 질문을 하지만 결국은 같은 대답을 요구하는 내용인데, 대답하기 위해서는 덮어두고 싶은 기억을 다시 자세히 떠올려야 한다. 내가 잘못했다고 뭐라고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처음 보는 수사관들 앞에서 내가 당한 일을 사진으로 보듯 설명해야 한다는 것 자체로 굉장한 수치심을 느꼈다. - P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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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모든 것을 이해할 수 있었다. 더는 카페를 찾지않는 손님들을 이해하듯 앨리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었다. 그야 나는 감독이고, 배우고, 이야기꾼이니까. 인간의 마음을 이해하는 것은 나의 특기라야 하니까. 끝끝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나 자신뿐이었다. - P303

만약 누군가 이 애를 다치게 하거든 그 자의 뼈와 살을 모조리 발라버려야지.
아이를 통해 나는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이 아무렇지 않게 잔학해질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 P337

혹자는 내가 여자를, 마리아를, 앨리스를 서사의 도구로 격하시켰다고 비난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내 생각은 다르다. 나는 마리아가 그 지지부진한 서사에 더 참여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언덕을 둘러싼 남북의 마을은 마리아에게는 너무 좁은 세계였다. 마리아는 갈등을 심고 평화를 거둔 후 미련 없이 떠난다, 포와로, 서사 밖으로.
스크린 밖으로. - P352

그 여자는 밖에 있다. 지금 있다. 어디에나 있을 수 있다. 그 여자는 내 의도에 갇힌 적이 한순간도 없다. 언제나 내가 예상하지 못한 자리에서 나를 똑바로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발견된다. 내가 쓴 앨리스가 나를 발견한다. 내 특기는 여주인공을 놓치는 것. 나는 언제나 내 인생의 서사를 스스로 장악하고 있다 착각해왔다.

그리고 현앨리스가 나타난다.

이것이 나에게 일어날 모든 일의 가장 불가해한 요약이다. - P353

쓰는 동안 여러 차례 계획을 변경해야 했다. 쓰기가 힘에 부쳤고 이미 써놓은 대목들이 적처럼 느껴질 때도 있었다. 적이라 생각했던 장면들을 목발처럼 의지하게 되는 순간들도 이상한 일이다. 사람의 일 같지가 않다. 인간이 할 짓이 못 된다는 생각과 일개 인간의 뜻만으로 되는 일이 아니라는 생각이 동시에 든다. - P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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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없는 헛소문이라도 큰 피해를 낼 수 있지요. 그런데 누군가를 무너뜨리려고 거짓을 꾸며내는 인간도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해요. 인간은 입체적이지만 표정은 앞면에만 있어요."
알쏭달쏭한 말을 하며 선생이 손으로 가리킨 것은 내가 가게 벽에 걸어둔 각시탈이었다. - P1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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