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집중하는 시간 동안, 상상의 비약을 하는 시간 동안, 작가는 매 순간마다 최소 일곱 개의 단어와 표현과 디테일 사이에서 고민해야 하지. 재능 있는 작가들은 거의 무의식적으로 올바른 선택을해. 그들은 정신적인 측면에서 코트 전역에서 슛을 날리는 프로농구 선수와 같아."
어디였더라? 누가 한 말이었더라?
"이런 끊임없는 선별 과정이 문예창작의 기본인데......."
"프랜즌!" 우렁차게 외치며 벌떡 일어나 앉자 두통이 벼락처럼드류의 머리를 관통했다. "프랜즌이 강연한 내용이었어! 토씨 하나까지 거의 똑같아!"
쥐는 그의 말을 못 들은 체했다. "너는 그런 식으로 선별할 능력이 되지만 짧은 순간밖에 유지가 되지 않아. 그래서 장편을 쓰려고 하면(단거리와 마라톤의 차이라 할 수 있겠는데) 항상 그 기능이 고장나지. 여러 표현과 디테일로 이루어진 선택지는 보이는데 선별이 안되기 시작하는 거야. 너는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 게 아니야. 알맞은 단어를 선택하는 능력이 사라진 거지. 모두 맞아 보이고 모두 틀려보이거든. 아주 슬픈 일이지. 엔진은 강력한데 자동변속기가 고장난 자동차와 같다고 할까." - P5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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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중에 그는 비몽사몽의 경지를 헤매며 하느님이 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궁금해질 만큼 통증이 엄청난 상태로 접어들 것이다. 나중에 그는 아내의 이름을 잊어버릴 것이다. 기억하는 건(그마저도 가끔) 어떤 식으로 걸음을 멈추고 서류가방을 떨어뜨리고 드럼의 비트에 맞춰 골반을 흔들기 시작했는지일 테고 그러면 그는 하느님이 세상을 만든 이유가 그 때문인가 보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라고. - P190

척은 여동생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조심만 한다면 아이를 안게 해주겠다고 어머니는 약속했다. 그는 당연히 부모님도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95번 고속도로 고가 위에 낀 얼음으로 인해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지지 않았다. 한참 시간이 흘러, 대학생 시절에 그는 여자친구에게 주인공의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죽는 소설, 영화나 드라마는 많지만 실제로 그런 사고를 겪은 경우는 자신밖에 본적이 없다고 얘기하게 될 것이다. - P191

남자는 영화에서 유령이 그렇듯 점점 희미해지지 않았다. 애초에 있지도 않았던 사람처럼 그냥 사라졌다.
없었던 사람 맞아. 척은 생각했다. 나는 그를 없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삶이 다하는 순간까지 열심히 살아갈 거야. 나는 훌륭하고 훌륭할 자격이 있고 내 안에는 무수히 많은 것들이 담겨 있어.
그는 문을 닫고 자물쇠를 잠갔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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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가 하면 살날이 9개월밖에 안 남았지만 그는 아직 그걸 모른다. 종말의 씨앗(삶이 마지막 한 점으로 좁아지는 지점)이 의사의 메스가 닿을수 없는 곳에 깊게 심겨졌고 최근 들어 서서히 깨어나고 있다. 조만간 거기서 검은 열매가 열릴 것이다. - P1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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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셴단가오와 파인애플 음료요. 본섬의 맛은 정말 감탄을 부른다고 하셨죠. 아오야마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본섬의 맛이라는 건 사실 진짜 맛있는 맛을 의미하지는 않는 것처럼 들립니다. 그것보다는 희귀하고 기이한 짐승을 구경하는 듯한 느낌이지요. 아오야마 선생님이 자기가 흥미를 느끼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는 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선생님의 개인적 취향에 맞추기 위해 강제로 해석을 덧붙이는 건요, 제 솔직함을 용서해주세요, 그건 지식인 계급의 오만입니다." - P390

"미시마 선생님이 보시기에…………… 선의에서 나온 도움이라고 할지라도 기본적으로 그건 오만일 뿐이라는 거죠. 맞나요?"
미시마는 담배 연기 사이에서 잠시 침묵했다.
"세상에는요. 스스로를 옳다고 생각하는 선의처럼 거절하기 힘든 뜨거운 감자도 없지요." - P393

"다정한 아오야마 씨는 이제껏 제게 물어본 적이 없으시잖아요. 제가 정말로 원하는 게 보호인지를 말이에요?"
나는 눈물이 나올 것 같았지만, 샤오첸은 부드럽게 내 귀밑머리를 쓰다듬어줄 뿐이었다.
"아오야마 씨가 아끼는 사람은 당신의 보호가 필요한, 착하고 말 잘 듣는 본섬 통역사니까요. 진정한 왕첸허가, 저라는 사람이 아니니까요! 그런데도 아오야마 치즈코와 왕첸허는, 진짜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요......?" - P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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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내 마음을 읽으려는 듯 눈을 가늘게 뜨고 쳐다보았다.
지금 이 방안은 마치 착시 현상에 단골로 소개되는 그림 같았다. 어떻게 보면 꽃병이고 다르게 보면 두 사람의 옆얼굴인. 공작원으로서의 그와 나는 이 전쟁의 서로 다른 편에서 다투고 있었다. 하지만 부모로서의 우리는 우리 아이들이 자유롭게 숨 쉴 권리를 요구하는 같은 편이었다. 정향 냄새가 가득한 방안에서 우리는 선택의 순간을 감지했다. 서로 대립하는 얼굴이냐, 아니면 하나의 꽃병이냐. - P345

"알리섬이에요." 그가 새하얀 꽃송이를 가지에서 떼어 관광 지도 위에 가지런히 놓으며 말했다. "맛은 브로콜리와 비슷하죠." 그는 웃으며 꽃송이 하나를 입에 쏙 집어넣었다. 이것 역시 안심해도 된다고 내게 확인시켜주는 행동이었다.
"천식에 좋나요?" 내가 물었다. 그는 고개를 끄덕였다.
"교환하죠." 내가 꽃송이 하나를 집어 들자 그는 정향유의 냄새를 맡았다. 새로운 음식을 맛보는 아이들처럼 둘 다 조심스럽게 코를 찡긋거렸다. 그리고 서서히 둘 다 웃음을 터뜨렸다. - P345

나는 이 목걸이와 함께 우리의 진정한 자아를 한쪽으로 치워두고 조이가 다른 이름에 반응하도록 가르치는 삶을 상상해보았다. 브리핑을 듣고 접근 방법을 검토했다. 상당히 안정적인 작전이었다. 그들이 옳았다. 이러면 상대를 속이고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하지만 왠지 거기서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회의실의 화이트보드 앞에 여럿이 둘러서 있는데도 거울이 끝없이 늘어선 복도에 서 있는 것만 같았다. 우리가 지금까지 사용한 속임수와 앞으로 이 작전으로 인해 펼쳐나갈 속임수들을 비추는 거울이었다. 선의의 거짓말로 무장한 화이트보드가 무한정 이어졌다. - P358

엄마는 내가 고군분투하는 걸 눈치챘다며, 진정한 자아를 찾고 그 안에서 살아가려 하는 나의 여정에 공감해주었다. 그리고 스파이세계처럼 실제 세상에서도 사람들은 연기를 한다고 가르쳐주었다. 그들도 똑같이 무언가를 잃을 위험- 비록 생명을 잃진 않더라도-에 처해있기 때문이었다. 나의 예전 세계가 두려워한 위험은 타임스퀘어에서 핵배낭이 터지는 거였다. 하지만 연인의 쌀쌀한 비웃음이 폭탄보다 강력하지 않다고 누가감히 단언할 수 있을까? 여기서 문제는, 그렇다고 갑옷을 입으면 똑같은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거였다. 거짓말로 쌓은 관계, 억지로 강한 척하며 맺은 관계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 P364

연기를 하면 우리는 관계에서나 지정학적 위치에서 스스로 강해진 것처럼 느낀다고 엄마는 말했다. 그럼 안심하게 된다. 하지만 연기는 평화나 권력을 쌓아올리기에는 너무나 조잡한 기반이었다. 그러면서엄마는 자신도 한때는 스스로 느낀 그대로 보고 말하고 행동하는 걸 두려워하는 자기 확신이 없는 젊은 엄마였다고 고백했다. 하지만 그런 연약한 면이 역설적으로 자신을 더욱 강하게 만들어주었다고 했다. 이렇게 얻은 힘과 ‘진짜‘ 자아가 우정과 두 번째 결혼을 견고하게 지탱해주었다. 모든 게 괜찮은 척 연기하던 젊은 시절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방파제에 부딪히는 파도를 바라보며 나의 반석이자 앞길을 비쳐주는 등불 같은 사람을 내게 엄마로 선물해준 우주에 감사했다. 갑옷이라는 허식 없이 마음을 열 때 더욱 강력해진다는 걸 나도 느낄 수 있었다. 카라치나 팔루자, 알레포에서뿐만 아니라 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P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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