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쉬이 잠들 수 없었다. 달도 없어 어두웠고, 어두웠기에 아버지의 말씀이 자꾸 떠올랐다. 아버지는 달조차 나를 보고 숨는구나 여길 만큼 내가 곱다고 하셨다. 기쁨으로 가슴 깊은 곳에서 빛이 새어나올 것 같았고 그 열기에 목이 자꾸 타는 듯했다. 무릇 애모하는 마음이란 그렇게도 몸에 나쁜 것이었다. - P15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시늉, 시늉이 중하다. 약할수록 시늉을 잘해야 돼. - P67

이제야 대장의 말뜻을 조금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딱히 기쁘지 않아도 기쁜 체하는 법, 슬프지 않아도 슬픈 체하는 법을 알아야 했다.
좋아하지 않아도 좋아하는 것처럼 보이게.
싫어도 싫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게.
그러는 법을 알아야 사람을 뜻대로 부릴 수 있음을 대장은 진작에 내게 가르쳐준 것이었다. - P68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충신 혈통 팔아 먹고살 길이 열리면 백번 천 번 충성하겠지. 망조 뻔한 나라에 충성이 가당키나 하냐?"
대장을 놀리려다 오히려 대장이 정말 충신의 후손일지도모른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넌 그걸 믿었냐?라고 하는 대신 충심이 왜 소용없는가를 말했기 때문에. 그렇다면 대장을 따르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충신의 후손도 이렇게 만드는 나라라면 대장 말대로 새 세상을 도모하는 게 당연한 것이다. 나는 하늘의 뜻을 믿지 않고, 따라서 태평도를 믿지 않고, 그러므로 황건군에도 마음이 없었으나, 어쩐지 대장은 믿었다. 너는 사람을 잘 믿어서 탈이다. 대장도 때로 그렇게 말했다. 내가 그런가? 모든 사람을 다 믿는 것은 아닌데. - P23

사람이 되려고 우리는 성문을 나섰다.

겨우 사람이 되려고. - P25

"정 눈물이 나거든 그냥 울어라. 그래도 내가 앞으로 너를 어찌 부르면 좋을까를 생각하며 울거라."
이름을 지어 부른다는 것은 가까이 오라는 뜻이다. 멀리가지 말라는 뜻이다.
곁에 있겠다는 말이다. - P3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불안감은 벌어지지도 않을 일을 대비하는 방식으로 나를 피폐하게 만들었다. - P241

"루크, 넌 나를 공격한 애들과 함께 있었잖아. 불을 피우면서 웃고 있었잖아. 삼촌을 잃은 내 앞에서도 그렇게 행동했잖아. 사이먼, 너는 셀마를 때렸어. 그걸 아무도 모를 줄 알았어? 셀마가 저렇게 돼서 정말로 슬프긴 해? 클로이가 사고를 당했을 때도 슬펐어? 그래서 한다는 게 고작 추모 사이트에 댓글이나 다는 거였어? 네 여자친구였잖아. 그런데 전혀 모르는 사람 일인 것처럼 굴었잖아. 나한테 괜찮으냐고 물어봤잖아. 그게 내 문제인 것처럼, 네 일은 아닌 것처럼 행동했잖아." - P265

세상에는 그런 일이 벌어지는 법이다. 잘못된 생각, 엇나간 선택이 사람들 사이로 퍼져나가면 브레이크를 밟기에 너무 늦은 순간이 온다. 어, 어, 하고 소리를 지르다 쾅. 경찰이 달려오고, 앰뷸런스가 사이렌을 울리고, 보험사 직원이 계산기를 두드리는 걸 본 뒤에야 뭔가 잘못되었음을 깨달을 것이다. - P265

앞서 나열한 어떤 멜라닌도 생명체에 파란색을 부여하지는 않는다. 아메리카 원주민이 인디언으로 불리던 것처럼 블루멜라닌이라는 작명은 근거 없는 편견과 고집의 결과물이었다. 우리는 원하지 않는 이름을 얻었고 그 결과 계층의 일부가 되었다. 오랜 시간이어질 시련이 내 앞에 놓여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내가 싸우고있는 건 사람이 아니었다. 지정할 수 있는 대상이나 인물이 아니었다. 나는 시스템과 싸워야 했다. 인식에 대항해야 했다. 그런 걸 어떻게 이기나 주먹을 휘둘러도 닿지 않는 존재를. 말을 해도 듣지 않는, 귀가 없는 존재를. - P287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이 되면 자전거를 타고 채석장에 갔다.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어둠이 내게는 안식처가 되었다. 빛이 없는 세상에는 색깔도 존재하지 않았다. 사물이 검게 채색된 시간, 물에 잠겨 있는 동안 나는 투명했다. 호수에 둥둥 떠 있으면 어둠은 정수리 위로 시커먼 입을 벌렸다. - P170

"차별은 그 시스템의 피해자만 인지할 수 있는 독가스 같은 거니까. 수십 번의 경힘이 필요한 게 아니야. 몇 번, 어쩌면 딱 한 번의 끔찍한 경험이 회복할 수 없는 상처를 폐에 남기는 거야. 그리고 숨을 쉴 때마다 그 기억이 되살아나는 거지. 사람들은 그걸 몰라. 차별이 강물처럼 흘러야지만 차별인 줄 안단 말이야. 사실 차별은 곳곳에 놓인 지뢰밭 같은 거야. 딱 한 번의 폭발에도 우린 불구가 된다고." - P185

사람들은 선한 얼굴로 살을 벤다. - P195

사람들은 새로운 사실이 알려질 때마다 면밀하게 타격할 대상을 찾아 고개를 돌렸다. - P197

미안해. 사랑해. 잊지 않을게. 숙제를 해치우듯 비슷한 문장이 반복됐고, 그래서 진심으로 애도하는 것 같지 않았다. 사이먼과 루크, 에밀리의 이름도 보였다. 모두 클로이를 사랑하고,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고 했다.
셀마와 나는 추모 사이트에 아무 글도 올리지 않았다. 대신 도니스헬에서 만나 햄버거 세 개를 주문했다. 구석 테이블에 마주앉은 우리는 조용히 클로이를 추억했다. - P199

눈물이 터질 것 같았다. 어쩌면 나는 캔스워시에서 종일 게임만 하는 나를 삼촌이 봐주기를 기다렸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집이나 도서관에 숨어 있지 않고 캔스워시로 왔던 것이다. 종일 게임을 하며 애처럼 투정을 부렸던 것이다. 내가 평안이 아니라 해결책을 찾기 위해 캔스워시를 찾았다는 사실을, 나는 몰랐고 삼촌은 알았다. - P205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