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대학교 동아시아 도서관의 이효경 사서가 『책들의 행진에 기록한 도서관 영토전쟁 사건을 요약하면이렇다. 2008년 7월 8일, 북미 한국학 사서들은 미 의회도서관이 독도의 주제어 변경을 검토하고자 회의를 소집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 이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신속하게 행동에 나섰다. 미국 의회도서관 관계 부서에 독도 명칭 삭제의 부당성을 알리는 서신을 보내고, 한국 대사관과 정부 관련 부처에 상황을 전해 도움을 청했다. 상황을 알리는 한국 언론의 보도가 뒤따랐다. 7월 15일, 미 의회도서관은 결국 독도의 주제어 변경을 보류했다. 불과 일주일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북미 한국학 사서들의 발 빠른 대처가 없었다면 도서관이라는 영토에서 독도를 빼앗겼을지도 모른다.
미국 사서들도 도서관의 언어를 바로잡기 위해 자정 노력에 나섰다. 도서관이 사용하는 주제어의 차별성과 편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예컨대, ‘여자 우주비행사‘는 있어도 ‘남자 우주비행사‘라는 주제어는 없다. 애당초‘우주비행사’의 기본값은 백인이어서, ‘히스패닉 미국인우주비행사’나 ‘인디언 우주비행사’는 목록화되지만 ‘러시아인 우주비행사’는 그렇지 않다. - P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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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사서는 어느 정도까지는 건축가이다. 사서는 책 전체를 하나의 구조물이라 상상하며, 그곳에서 독서가가 길을찾고 자아를 발견해 살아가도록 책을 쌓는다."

-- 알베르토 망겔, 밤의 도서관 - P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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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기 위험에 처한 책을 구하기 위해 싸우는 사서들도 있다. ‘게릴라 사서‘라 불리는 이들은 1989년 처음 등장했다. 그해에 느닷없이 발생한 강한 지진으로 샌프란시스코 중앙도서관이 크게 손상되고 서가가 파괴되는등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건물이 완전 복구되기 전, 작은 임시 열람실을 개방했지만 책을 비치할 서가가 턱없이 부족했다. 도서관은 대대적인 장서폐기 작업에 착수하고 모든 책을 ‘그해 대출이 된 도서‘, ‘지난 2년간 대출이력이 있는 도서‘, ‘2년 넘게 대출되지 않은 도서‘로 분류하고, 각각에 그린카드, 옐로카드, 레드카드를 꽂아두었다. 음악, 예술 분야를 포함한 상당수의 도서가 폐기위험에 처하자 몇몇 사서가 창고에 몰래 침입해 책에 있는 레드카드를 그린카드로 바꾸어 책 구출 작전을 벌였다. 이들이 게릴라 사서의 시초다. - P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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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긴 세상의 모서리였어. 이 뾰족한 끄트머리에조차 붙어 있지 못하게 되면 더는 서 있을 곳이 없는 그런 곳. - P341

아마도 네 성별이 달랐더라면 이런 이야기가 나돌지는 않았겠지. 그런 말들과 마주할 때마다 너는 엄마를 떠올렸다.
매일 악플과 계란 세례에 시달리는 기분이 이랬겠구나. 엄마는이런 싸움을 했던 거구나. 너는 최선을 다해 태연한 표정을 연기했지만, 솔직히 서글픈 티가 났다.
네 지지자들이라고 해서 꼭 네 편이 되어주는 것은 아니었다.
그들은 각자 마음속에 품은 ‘완벽한‘ 구세주의 모습을 네게 덧씌운 뒤 멋대로 네 존재를 망상했다. 자신들의 그 완벽한 기준에서조금만 벗어나도 애정 어린 조언이라는 이름의 제재가 가해졌다. 네 옷매무새가 조금만 틀어져도, 말투가 조금만 달라져도, 순수해 보여도, 순수해 보이지 않아도, 계산적이어도, 계산적이지않아도, 화장을 해도, 화장을 하지 않아도 모두 문제가 되었다.
너는 어떤 사람들에겐 ‘동양의 신비로운 소녀‘ 여야 했고, 어떤사람들에겐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여야 했다. 기성 정치인처럼 세련되어야 했지만, 동시에 기성정치와는 담을 쌓은 언더독처럼 보여야 했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열심히 공부해야 하지만,
논리로 상대를 이겨먹어선 안 되었다. 왜냐면 그건 ‘리더로서의포용력이 부족한‘ 행동이니까.
어떤 사람들에게 너는 그저 예비 신붓감일 뿐이었다. 그것도아이를 갖지 못한다는 딱지가 붙은 그들은 네 외모와 성격은 물론 별자리와 혈액형과 MBTI까지 따져가며 네가 누구의 신부로어울리는지 가상의 짝짓기 놀이에 몰두했다. 대체 왜 너의 요리실력 같은 걸 궁금해할까. 평생 네 눈길 한번 끌지 못할 머저리들 주제에 어찌나 다들 자기 성적 매력을 과신하는지, 한심한 멘트로 널 유혹하는 오빠들만 모아도 작은 나라 하나는 건국할 수 있을 것 같았다. - P368

네 말과 행동 하나하나에는 숨 막히는 평가가 뒤따랐다. 그때 이랬어야 했다. 저랬어야 했다, 너나 할 것 없이 훈수만 늘어놓으며 네 발언의 아주 일부만을 잘라 끝도 없이 조리돌림했다. 결과를 놓고 한마디 얹기란 너무나 쉬운 법이어서, 사람들은 마치 아침 체조 하듯 몸풀기로 너를 품평하곤 했다.
누군가 네 영상 속 한 장면을 캡처해 비난하는 자막을 달고 소셜 페이지에 올리면 그 페이지를 본 사람들은 다시 자신의 소셜 페이지에 옮겨 붙인 뒤 비난을 한 줄 추가했다. 비난도 복사가 되다니. 수를 헤아릴 새도 없이 빠르게 복제되는 냉혹한 손가락들이 너를 아래로 아래로 끝없이 잡아당겼다. 너는 마치 심해로 빨려들어 가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우습게도 네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은 강수진 뿐이었다. 모두로부터 멀어진 네게 강수진은 네 입장을 이해하는 유일한 존재였다.
그날 역시, 강수진은 침울해하는 네 얼굴을 보자마자 위로의 말부터 건넸다.
"신경 쓰지 말아요. 사람들은 원래 한심하니까. 세상은 원래 촌스러운 사람들의 추태로 넘쳐나는 겁니다."
"그래도 조금쯤은 이해해줄 줄 알았어요."
강수진은 태블릿을 내려놓고 손을 내밀었다. 너는 흠칫 놀라며 내 눈치를 보았으나, 결국 그의 손을 잡았다.
"모두가 서로를 이해할 수 있으리란 기대를 버리세요. 그건불가능한 소망이니까."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서로를 파괴하고 말 거예요. 두려우니까." - P369

"그래서 세상이 안 바뀌었나요?"
"... 충분하지 않아요."
"알아요. 충분하지 않다는 거. 그래도 아이들은 섬 밖으로 나왔잖아요. 그 변화는 돌이킬 수 없어요. 한 번 풀려난 아이들은다시는 섬으로 돌아가지 않을 겁니다. 그 아이들은 자유를 아는어른으로 자라날 테고, 우리와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겠죠. 미약하지만 한 걸음 전진했어요. 다음 싸움은 거기서부터 시작될 거고요. 그렇게 조금씩 나아가는 거예요."
"그럼 우리는요? 지금 당장 우리는 어쩌고요?"
강수진은 한숨을 쉬었다.
"화경 씨는 어떤 때는 하태빈 씨 같다가 어떤 때는 조유영 씨같군요. 대체 둘중에 어느 쪽입니까?"
"둘 다 옳은 걸 어쩌라고요."
"아무튼 제 말은 화경 씨가 전부 짊어질 필요는 없다는 거예요. 이건 수도 없이 반복되어 온 여정이에요. 세상은 이미 수천 번 열차를 갈아타며 여기까지 온 거라고요. 하지만 종착역까지 단숨에 도착한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러니 이제 그만 차를 세워요. 짐을 내려놓으세요."
너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미 운전대 뺏겼어요." - P3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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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홀린듯 그 순간을 카메라에 담았다. 그 한 장의 사진이 모든 걸 바꿔놓았다. 맨몸으로 맞서는 네 앞에서 한 걸음 물러서는 경찰들의 모습. 찰나의 구도가 한층 너를 거대해 보이게 했다. 백 마디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아우라를 사람들에게 각인시켰다.
그날 너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바로 그랬기에 너는 승리했다. 네 앞에 선 경찰들이 조금만 더 악했더라면, 네가 조금만 덜 상냥했더라면 미래는 완전히 달라졌으리라. 하지만 사태는 절묘한 균형을 찾아 네 곁으로 흘러갔고, 언제 터져도 이상하지 않았던 혁명의 에너지는 너라는 상징적인 분출구를 찾아 일제히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데비안트인 네가 데비안트가 아닌 아이를 위해 몸을 던졌고,
그로 인해 사람들은 처음으로 혁명을 구체적으로 상상할 수 있게 됐다. 데비안트만의 반란이 아니라, 소외된 모두가 함께 연대하는 모습을 그게 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그건 중요한 일이지. 변화가 시작되려면 우선 그 변화를 상상할 수 있어야 하니까.
그래. 그날 너는 승리했다. 사소하지만 변화를 만들어냈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걸. 차라리 그냥 거기서 모두 함께 죽어버렸으면 좋았을 텐데.
당황한 경찰들 앞에 당당히 마주 선 너는 양손을 내밀며 이렇게 말했다.
"제가 주동자예요. 저를 체포하세요."
결국 너는 체포되었고, 그렇게 우리의 혁명은 시작되었다. - P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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