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르부아르 오르부아르 3부작 1
피에르 르메트르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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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은 아주 비열한 장면의 세세한 묘사에서 시작된다. 4년이나 지속되던 전쟁이 끝나기 채 열흘도 남지 않은 1918112,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한 귀족가문의 배경을 가진 장교 프라델은 자신의 병사 사살을 독일군의 저격 사망으로 위장하여 전투를 속개한다. 이후 증거인멸과정에서 프라델은 목격자인 병사 알베르를 흙더미에 매몰되어 죽음의 위기에 처하게 한다. 다리부상으로 의식을 잃었던 병사 에두아르 페리쿠르는 사력을 다해 알베르를 구조해 내지만, 얼굴 중 하악부(下顎部)가 날아가는 중상을 입는다.

 

이렇게 시작되는 발단, 이 사건적 장면에서 드러난 인물들의 면면이 전후(戰後)의 사회 질서 속에서도 단절되거나 전복되지 않고 두려움과 도피, 곤궁함과 죽음의 노출로 혹은 의기양양과 협잡과 탐욕 등, 여전히 유효한 심리적, 사회 경제적, 정치적 관계들로 그들 삶의 행보를 결정짓는다.

 

1. 끝나지 않은 전쟁

 

종전으로 동원 해제된 알베르는 자신의 생명을 구해준 얼굴의 반을 잃은 에두아르와 함께 한다. 알베르는 전우의 고통을 줄여주기 위한 몰핀의 조달과 생계를 위해 삶의 곤궁함에서 허우적댄다. 전쟁에 동원되기 전의 직장인 은행은 그의 복귀를 거절한다. “<우리의 소중한 병사들에게 경의와 감사의 빚을 지고 있노라>고 가슴에 손을 얹고 선언하던 국가는 이미 존재하지 않는다. 전쟁은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내는 수단이었을 뿐, 죽지 않고 살아 돌아온 이들을 공동체는 알지 못한다.

 

알베르는 흉괴(凶怪)를 은폐하기위해 자신을 죽음으로 내던졌던 프라델에 대한 두려움, 복귀한 사회의 냉담함으로 항상 경계의 눈을 치뜨며 모든 것이 의심의 대상인 불안의 일상을 피하지 못한다. 에두아르 또한 미래를 상상할 수 없다. “자신의 얼굴을 포함해 모든 얼굴이 사라져 버린 얼굴 없는 세계에서집착할 것이 없는 삶을 지탱할 뿐이다.

등 돌린 사회는 이들에게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고, 눈에 보이지 않지만 어디서나 무겁게 그들의 삶을 옴짝달싹 못하게 내리누르는 것, 그들이 전혀 이해 할 수 없는 적과의 싸움이 종료되지 않는다.

    

이와는 달리, 퇴락한 귀족가문의 프라델은 재계의 명망가인 페리쿠르가()의 여식인 마들렌과의 혼인에 성공한다. 쇠락한 성()과 이름뿐인 가문의 복원, 자신의 명예와 부의 축적을 향한 야비한 탐욕으로 똘똘 뭉친 이 인물은 페리쿠르라는 배경을 통해 권력층의 연결고리를 획득하고, 전선에 묻힌 병사들의 유해발굴과 이장(移葬)이라는 막대한 이권 사업을 권력의 후광과 뇌물, 향응을 통해 획득한다. 승인받은 관의 나무 재질을 낮추고, 병사의 유해를 톱으로 잘라내서 입관시킬 정도로 관의 크기를 줄이고, 시신의 신분확인 절차 없이 마구잡이로 처넣고, 유품은 절도하며, 빈 관에 흙을 집어넣어 이장 수량을 늘리는 등 악질적 물욕을 가차 없이 쏟아낸다. 이 인물 역시 전쟁은 진행 중이다. 이들에게서 전쟁이 전정 끝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2. 유령사업과 기만사업

 

자기기만과 유대감과 원망과 반감과 형제애 등이 뒤섞인 지극히 복잡한 관계를 유지하며, 고립된 삶을 살아가는 알베르와 에두아르(외젠)는 갈등 끝에 각기 누추(陋醜)와 저열함의 세계를 벗어나기 위해서, 시간을 보내고 죽음을 준비하기 위한 짜릿한 놀이로서 <애국적 회상>이라는 이름의 전사자 추모 기념비를 제작해주는 유령 사업에 착수한다.

 

착수금의 마련을 위해 알베르는 전사한 것으로 알고 있는 에두아르의 아버지인 재력가, 페리쿠르의 은행에 자리를 잡고, 횡령을 통해 카달로그 제작, 우편 발송비용 등을 조달한다. 알베르는 유족들의 애절함을 이용하는 자신들의 사기 행위까지 더해 삶은 피폐해져 가지만, 연인 폴린에 대한 열정으로 작은 위안을 갖는다. 이에 비해 에두아르는 그들이 은거하는 집 주인의 딸인 루이즈와 각양의 얼굴 마스크를 만들어가며, 비할 바 없는 도발의 쾌감을 즐기며 행복감에 도취한다. 예상대로 100만 프랑을 초과하는 신청금이 그들의 손에 들어오지만, 사기 행각은 마침내 드러나기 시작한다.

 

한편, 부정과 위협을 통해 수익을 늘려가던 프라델은 군사묘지 조성사업의 관할 정부인 연금부에서 파견된 퇴물 관리 조세프 메를랭에 의한 감사에서 비위사실을 지적당하고, 이를 무마하기 위해 건네준 10만 프랑이 도리어 사업의 부정함을 자인하는 형국이 되어 돌아온다. 사업에 암운이 드리우기 시작하고, 도움을 요청했던 장인 페리쿠르는 물론 아내에게까지 인맥을 통한 사법적 처벌의 회피 시도는 좌절되기에 이른다.

 

전쟁이 낳은 세상은 그 끝을 향해 달려 나간다. 알베르와 에두아르, 프라델. 어쩌면 비정한 세계, 얼굴 없는 세계, 싸울 대상을 알 수 없는 세계와의 싸움은 애초에 승산이 없는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국가라는 이름하에 자행되는 것들, 공동체라는 허구의 존재는 인간 개인의 삶에 책임지는 어느 누가 아니다. 그렇다면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삶을 황폐화시킨 직접적 요인을 만들어낸 프라델의 야비함과 이기적 욕심만을 비난하고 단죄하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일까? 젊은이들을 전쟁으로 내 몬 장본인은 누구인가? 전쟁이 끝나고 이들을 정상적인 삶으로 복귀할 수 없게 한 장본인은 또 누구인가? 이 순환적인 질문의 답은 무관심과 외면으로 자기 안위에만 몰두하던 기성세대의 이기심 아니었을까? 특정되지 않아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공동체의 이름으로.

    

3. 패배함으로써 끝나는 이야기

 

전사자의 유해 발굴과 이장사업의 비위를 조사하는 메를랭은 전쟁에 무관심과 냉소를 보내던 인물이다. 그런 사람이 버려지듯이 묻힌 젊은 병사들의 즐비한 유해와 돈벌이 수단으로 마구잡이 취급되는 현장을 목도하게 됨으로써 억울한 희생자들로서 젊은 전사자들을 바라보는 시선을 비로소 얻게 된다. 젊은이들을 대량으로 학살한 전쟁, 그럼에도 그들의 취급은 부당함을 넘어 분노의 상황에까지 이르고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이젠 끝내버려야 해....,, 이 놈의 전쟁을 이젠 끝내버려야 한다고.”라는 그의 자조(自照)의 목소리에 실려 다시금 종료되지 않은 그들 사회의 전쟁이 외쳐진다.

 

이 같은 기성세대의 반성은 또 다른 관점에서 반복되는데, 도발적인 그림에 몰두하며, 성적 정체성까지 혼란을 주는 대상으로 인식되어버린 자신의 후계자이기를 기대했던 아들에 대한 재계의 권력자인 페리쿠르의 돌연한 회한과 죄책감이 그것이다. 전사자인 아들 에두아르에 대한 비로소의 애도에서 시작된 전사자 기념비 건립사업의 추진에 몰두한다.

이것은 아버지와 맞붙어 패배한 전쟁에 대한 반복임을 시사하는 에두아르의 유령사업이 예술가들과 부르주아들간의 영원한 싸움으로 선언되는 것에서 이미 페리쿠르의 사업은 실행될 수 없는 한계를 내재한다.

 

이제 이야기는 오직 한곳을 향해 모여든다. 종전(終戰)에도 불구하고 지속되는 보이지 않는 전쟁은 끝나야만 한다. 폭죽처럼 다발적이고도 집중적으로 프라델, 그리고 알베르와 에두아르의 사업은 대형 스캔들이 되어 터진다. 전쟁을 끝내지 못했던 사람들은 자의건 타의건 그 끝에 이른다. 에두아르의 아버지에 대한 전쟁, 페리쿠르의 아들에 대한 회한의 전쟁, 프라델의 탐욕의 전쟁, 알베르의 빈곤과 트라우마와의 전쟁, 메를랭의 소외와 정의의 전쟁은 패배하는 것이 인간적이라는 하나의 결말을 남기며 종지부를 찍는다.

이들 모두에게는 이해할 수 없는 적수, 이미 적수가 될 수 없는 대상없는 싸움에서 패배를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했는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얼굴을 한 마스크를 쓰고 천사의 날개를 단 채 달려 나오는 에두아르와 질주하는 페리쿠르의 차량이 부딪는 비극적 장면에서 안도감을 느끼게 되는 것은 흐릿하기만 했던 삶의 본질을 발견케 하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처럼 소설은 공동체의 무관심으로 사회에서 배제된 채 빈곤과 자기경멸의 삶을 지탱해가야 하는 상이 병사들과 전쟁을 자신들의 명예와 권력, 부의 토대로 인식하는 계층의 혐오스러움은 동일한 광기의 흐름 속에서 경합한다. 그리곤 예견 된 파멸을 향해 치닫는다. 또한 이러한 상황을 야기시킨 장본인일 수 있는 재계와 정치권력의 상부 층들의 무관심과 외면, 국민이라 불리는 개인들 또한 이러한 방임과 외면에서 그 책임을 회피할 수 없음을 드러낸다.

 

이 진지한 주제의식들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이야기로서의 즐거움 또한 풍요롭다. 프라델이라는 인물을 통해 치밀어 오르는 역겨움과 분개를 끊임없이 자극하며, 얼굴 없는 사내, 에두아르를 통해 세상에 대고 우스꽝스러운 주먹 감자 한 방을 먹이며 그와 함께 미칠 듯한 행복감을 안겨 주기도 하고, 단지 생의 안정만을 희망하는 알베르의 연인 폴린과의 소박한 사랑과 평범성의 꿈을 쫓는 것만으로도 이야기로서의 몫을 다한다. 한편의 기막히게 잘 연출된 우아한 비극을 본 듯한 느낌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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