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는 남자 - 2017 제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작품집
황정은 외 지음 / 은행나무 / 2017년 7월
평점 :
품절


  

그 모든 사물의 흥망성쇠여, 너 영원한 허망(虛妄)이여!”

-안드레아스 그리피우스, Leo Armenius에서

 

 

어떤 작품집을 읽어나가다 보면 불현듯 앞서 읽었던 작품의 문장들에 더해지는 새로운 기억이 떠오를 때가 있다. ‘11회 김유정문학상 수상 작품집에서는 김숨의 단편, 이혼에서였는데, 이혼의사의 확정 판결을 위해 법정 대기실에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가 들려온, 터무니없는 언어에 대한 민정에 대한 묘사로 부터였다.

 

1. ‘우리라는 말을 하려면

 

생판 모르는 남자의 입에서 흘러나온 우리라는 말이 낯설다 못해 폭력적으로 들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가로 젓는다.”

 

우리라는 어휘는 단순히 말하는 이와 듣는 이를 포함한 여러 사람을 가리키는 통칭이다. 그런데 이 말은 대개 자기보다 소위 사회적 위계가 높은 사람을 포함하지 않으며, 또한 친밀한관계 사이에 사용한다. 그런데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이 우리라니? ‘나를 알아?’

오늘 이 우리라는 말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얼마나 타인에게 무심한지는 구태여 주절거릴 필요가 없을 터이다. ‘수전 손택타인의 고통에 눈을 돌리는 것이라면 우리라는 말을 당연시해서는 안 된다.”고 썼다.

 

황정은웃는 남자로 다시금 내 생각이 널뛰기 시작한 것은 이 지점이었다고 해야 하겠다. 무신경하기 그지없고 이 맥락 없는 언어 때문에.

 

그 사람들 다 어디 갔어?” , 많은 이들이 떠나고 곳곳에 셔터가 내려진 쇠락한 세운상가에서 낡은 오디오를 수리하는 60대의 남자, ‘여소녀에게 그의 딸이 문득 물어 온 질문이다. 그냥저냥 살아 온, 삶인지 죽음인지 모른 채 지내 오는 동안 얼마나 둔감해졌는지, 알고도 굳이 개의치 않게 되었는지말이다. 나는 내 가족, 이웃, 타자를 모른 척하지 않았어! 라고 말 할 수 없다. 그런 내가 그들에게 감히 어찌 우리라는 말로 친근함을 표현 할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내겐 파렴치한 언어로만 느껴진다.

 

같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던 여인 'dd'를 잃은 'd', 그가 권태, 환멸, 한 조각의 정나미도 남지 않은 삶.”을 읽어 낸 그의 아버지 얼굴이 내게 덧 씌워지는 순간이었다고 해야 할까? 그리곤 d처럼 내 입에도 힘이 들어가고 턱이 벌어지지 않는다. 나 역시 웃는 얼굴이 되었을 거라고 생각한다. “이것이 웃음일까?”, 웃음 맞다. 자괴의 웃음. 단지 불편하게 구겨진 것일 뿐일 게다.

 

점포들의 택배를 수거하고 상차하는 d와 여소녀의 기억들이 펼치는 시대사(時代史)의 그 부조리하고 부정의(不正義)한 굴곡과 이에 익숙해져 무력하고 무감한 표정이 하나의 패턴이 된 사람들과 사회의 통찰이라는 담론보다는 내겐, “내가 우는구나 부끄러운 것을 다 느끼는구나 살아서 이렇게 있구나.”라는 피난시절의 일화를 읊조리는 노파의 주절거림에 외려 매달리고픈 심정이다. 어쩌면 공동화(空洞化)되어버린 거대한 시멘트 건물의 좁고 어둑한 점포 속에서 얇고 뜨거운 유리막이 달라붙은 듯한 희미한 빛을 발하는 진공관을 놀라 바라보는 d의 시선과 같은 것인지도. 편리하고 단순하며 무신경한 자백같은 이해라는 말이 아닌, 그저 그냥 하던 대로가 아닌, 자신의 번영과 판단으로서가 아닌, 부끄럽고 놀라워하며 감히 우리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는 그런 겸허함, 타인을, 타자를 알려 하지 않아서, 알지 못해서 송구스러워 하는 그러한 지점에서 시작해야 할 것 같다는.

 

2. 자아만 비대해진 인격들

 

이혼민정이 그녀의 직장 선배였던 영미의 부당한 소문과 이혼에 대한, 아버지의 폭력이 일상화 된 엄마에 대한, 그리고 이혼 확정판결을 위해 대기하고 있는 낯선 타인들에 대한 그 너저분한 이야기들에서 다시금 웃는 남자'd‘의 방백(傍白)이 들려온다. “알아?”라는 기분 나쁜 말의 울림이 반복된다. 자아만 비대해진 형편없어진 인격과 몰이해가 진동하는 이 혐오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일까?를 자문하게 하면서.

 

자기에 대한 이 자문은 이기호최미진은 어디로라는 단편에서 꽤나 선명하게 부각되고 있는데, 자신이 쓴 소설책에 대한 중고 사이트 판매자의 병맛 소설, 갈수록 더 한심해지는, 꼴에 저자 사인본이라는 코멘트에 대한 적의(敵意)가 바로 그것이다. “모욕을 당할까봐 모욕을 먼저 느끼며 모욕을 되돌려 주려는 심경 말이다.

 

작품은 꼴사납게 부풀기만 한 오늘의 사람들이 자아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반향(反響)일 것이다. 모욕을 되돌려 받을 타인, 그 타자의 자아 또한 동색인 것은 물론이고 말이다. 아마 서글프고 부끄러워하는 주인공의 자각이란 지점이 교점이라곤 어디에도 없는 오늘을 사는 모든 사람들의 출발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그런데 이 서글프고 부끄럽다는 고백은 소설가의 자조로도 읽힌다. 중고 사이트라는 물질의 거래 공간에서 어찌 정신의 산물, 사람을 찾는다는 말인가? 모든 것이 사물화 된 세계에서 사물이 아닌 무엇을 주장한다는 것이 얼마나 불가능한 일인지 말이다.

 

이 사물의 세계에서 인간역시 정말 보잘 것 없는 하나의 물적 존재 되어 버린다. 화폐가치로 환산되지 않는 사물이란 것이 있던가? 오늘날 인간은 사물의 구성 세계에서 하위 존재가 된다. 물질을 가진 자가 곧 권력자가 되고, 인간은 이 물질들의 권력에 머리를 조아린다. 사물화 된 세계에서 개와 인간의 차이란 그 경계가 점점 모호해진다. ‘편혜영의 단편, 개의 밤서글픔이란 감상을 그대로 잇는다. “개는 훈련받은 대로 제 빨리 공을 향해 내달렸다.” 개는 주인의 칭찬을 위해 달린다. 자산을 불려 행세하는 장인을 비롯한 처가식구들의 무신경과 오만에 비위를 맞추며 머리를 조아리는 이라는 인물이 자신과 개의 상황을 끊임없이 비교하는 것, 개들의 짖는 행위에 그토록 관심을 갖는 것은 이러한 연유일 것이다.

 

개를 품에 안고 있던 사망자의 노모에게 건설현장 사고처리자인 , 거두절미 보상문제를

매정하게 던지곤 동석한 직원 에게 상황을 맡기곤 나와 버린다. 그리곤 안에게 묻는다. “아까 그 개요. 바닥에 떨어졌을 때 짖었습니까.” 사실 개가 짖었다고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의 이 물음처럼 무기력한 것도 없을 것이다. 여기 어느 지점에서 타자에 대한 무관심, 우리라는 허위의 언어를 끼워 넣을지 찾을 수가 없다. 온통 이것들 뿐인 곳에서.

 

김언수의 소설, 존엄의 탄생은 더욱 비참하다. 떠돌이 개에게 물리곤 동물학대로 즉결심판에 넘겨진 영화감독을 꿈꾸는 백수 진수의 이야기다. 15만원의 벌금형이 내려지자 판사에게 항변한다.

 

저는 개를 패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이 개에게 물렸지요. 어젯밤 그 개와 소동이 있었던 건 그 개가 저의 존엄을, 아니 인간의 존엄을 훼손했기 때문입니다....”

됐습니다. 뭔 인간의 존엄이 개에게 훼손된답니까. 다음.”

 

자기 존엄의 주장이란 것이 이처럼 황당하게 보일 수도 있다. ‘d'의 방백에 또다시 가닿는다. 아마 그저 비대해지기만 한 자아와 형편없는 자존심이 뒤죽박죽 섞인 오늘의 인격에 대한 조롱이지 않을까? 벌금이 없어 부른 선배와의 대화에서 이 시대 청년들의 초상을 읽게 된다.

 

잘난 사람이 되는 건 힘들어. 하지만 못난 걸 인정하는 건 쉬운거야. ...(中略)... 내 바람은 그저 못나지 않을 정도로만 사는 거다. 그것도 요즘은 이래 힘이 든다.”

“(前略).... 꿈도 없이 희망도 없이 그렇게 노예처럼 살겠단 말이에요?”

개인의 열정과 세상의 허기를 맞춰가는 것은 그리 간단하고 쉬운 일이 아니다. 기형적으로 커지기만 한 자기연민만을 핥아대며, 타자가 있는 세상 바라보기를 하지 않는 이 유아적 사회가 어떻게 성숙으로 전환될 수 있을까?

 

프랑스 소설가 다비드 포앙키노스책을 읽는 행위는 온전히 자기중심적인 도취라 하였다. 내겐 이 도취가 작위적인 행위가 아니다. 때문에 작품을 읽어나가다 어느 어휘나 문장에 문득 시선이 멈추게 되어 생각이 널을 뛰기 시작하는 것인데, 이 소설집에선 바로 우리라는 단어와 존엄모욕이라는 상대적인 어휘였다. 아마 오늘을 사는 것이 상처를 받고 주는 행위의 연속이고, 그러면서도 감히 우리라는 언어로 소외를 외면하려는 기만의 삶이라는 자각이 내면 깊이 뿌리내리고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사회와 사람들에 대한 섬세하고 적나라한 통찰을 들려준, 그리고 그러한 곳에서 조차 연민과 흐릿하지만 희망과 위로를 보여주는 이 작품집에 작은 갈채를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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