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심문관의 비망록 -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소설
안토니우 로부 안투네스 지음, 배수아 옮김 / 봄날의책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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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시작인 첫 번째 비망록을 여는 주앙이란 인물의 착란적인 진술을 접했을 때, 이내 이 기묘하게 서술된 내러티브의 작품이 내 손아귀에서 떨어지지 않겠다는 흥분에 휩싸였다. 그리곤 주앙의 아버지이자 이젠 세상에서 지워진 채 요양원에서 너절한 육신을 마감하는 전직 장관인 프란시스쿠당신에게 부탁하니, 멍청이 내 아들에게 이 말을 잊지 말고 전해주기를 부탁하니,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이라는 종료되지 않은 마지막 문장을 곱씹으며 책장을 덮을 때, 내 책꽂이의 중요위치에 보관 해야겠다는 생각으로 가득했다.

 

어떤 문학작품을 접했을 때 강렬한 인상이 그대로 마음에 각인되는 흔치 않은 경우를 맞보곤 한다. 전체주의 독재 권력의 한 축을 나누었던 권력자를 중심으로 그와 관계한 주변의 시시콜콜한 인간들을 망라한 진술또는 추가 진술이라는 이름하에 술회되는 자기변명 혹은 기억의 인출(引出)은 무지하거나 몽매한 소시민적 삶에 대한 빛나는 통찰로 빚어진 진수성찬이다.

 

프란시스쿠의 아들 주앙으로부터 가정부, 하녀, 주앙의 아내, 아내의 삼촌, 혼외의 딸, 정부(情婦), 정부의 모(), 주앙의 동거녀와 그 딸, 운전기사, 아파트 관리인에 이르기까지 사회구성의 모든 계층을 아우르는 이들의 진술들은 20세기 후반의 포르투갈 사회의 민낯을 그대로 드러낸다. 그래서 소설은 바로 이들의 진술’, ‘추가 진술이라는 명제로 구성된 진술의 책’, ‘비망록이자, 진짜배기 포르투갈의 현대사(現代史)이며, 민중 생활사이고, 권력과 그 이면의 고통스러운 인간의 비틀린 욕망들이 수놓인 정신분석학적 기록이 된다.

 

그런데, 이 비망록은 소설의 표제처럼 대심문관의 기록물이며, 누군가의 심판을 기대하는, 아마 그 판단의 몫은 오롯이 독자의 것이라는 듯이 모든 진술들은 단지 과정의 연속선상에 있는 술회(述懷)이상의 주장을 하지 않는다. 인간들의 보잘 것 없는 자기 삶에 대한 인식의 편협함, 권력과 그 주변에 휘도는 무소불위와 공포, 아부와 아첨, 그리고 예외 없이 결탁한 불의한 금융자본가의 파렴치와 도덕적 몰염치, 소시민들의 무기력과 비굴, 이기심과 탐욕이 그 순수한 형태 그대로 발설되고 있을 뿐이다. 바로 이러한 강요되지 않은 담백한 진술의 형식들이 모여 구성원들과 그 사회의 여과 없는 실체를 들여다보게 한다.

 

소설의 배경은 오랜 전체주의 독재정권을 유지해오던 살라자르 정권의 중심인물인 장관 프란시스쿠의 권력이 혁명에 의해 그 정치적 권력뿐 아니라 가계(家系)가 해체되고 몰락하는 역사과정 이랄 수 있다. 이 거대한 역사 담론을 담아내는 장소이자 그릇은 프란시스쿠의 팔멜라 저택이고, 이것은 권력과 그 몰락의 상징 자체로서 모습을 드러낸다.

 

부서진 석상이 정원에 뒹굴고 수영장은 물 한 방울 없이 텅 비었으며 잡초가 개집을 차츰 뒤덮고 마침내는 화단까지 완전히 망가뜨리면서....”

 

이 과정의 상황에서 지껄여지는 19인의 주절거림은 모두 자기 정당화요 합리화며, 또한 세상을 이해하는 개인들의 한계이다. 자기의 목덜미를 누르고 여성을 공략하는 권력이 사랑이라고 하녀는 말하지만 독자는 그것이 폭력임을 알듯이, “나를 사랑하는 거 맞지 이자벨, 그렇지?”라는 문장에서 사랑이란 존재하지 않음을, 오직 불신과 집착 그리고 불안만이 도사리고 있음을 또한 알듯이, 의미 없는 문장들이 발산하는 내재된 진실들이 모여 한 시대를 형성하는 인간들의 의식과 그 사회의 실체적 상황들을 읽어내게 된다.

 

이를테면 프란시스쿠의 아내 이자벨의 불륜이 마초적 인간인 프란시스쿠를 무너지게 하는 것은 으레 불의한 권력이 지닌 속성의 자기반향을 보여주는 것과 같다. 또한, “‘이 여자 아직 안 죽었습니다 장관님’ ....‘이 여자는 바닥에 추락하는 순간 죽은 것이 맞겠지요?’.... ‘이 여자는 바닥에 떨어지면서 즉사한 것이 맞아요 장관님’” 과 같은 장관과 의사의 대화처럼 불의와 비굴이 야합하는 모양은 간통과 흡사하다. 불륜과 야합의 이 닮은꼴에서 전체주의 사회가 만들어내는 것이 정치적 부당성이나 경제적 부패와 같은 사회적 부정의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 개개인의 도덕적 타락, 윤리적 추오, 파렴치한 탐욕을 직접적으로 양산하는 양태를 띠고 있다는 것일 게다.

 

결국 이 위대한 문학작품은 오늘날의 사회적 위계를 구성하고 있는 각 계층의 자기변명을 통해 거대담론에서 소외되고 가려진 실체적이고 진실한 담론의 모습을 끌어내고, 뿐만 아니라 바로 이 진실을 말하는 인간들의 조잡한 내면을 까발리는 행위가 된다. 그래서인지 오늘의 포르투갈을 이해하는, 아니 오늘을 사는 우리 인간들의 섬세한 자화상을 본 것 같은 느낌을 갖게 된다. 안투네스의 서술방식에 그 누가 매혹되지 않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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