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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조건 - 꽃게잡이 배에서 돼지 농장까지, 대한민국 워킹 푸어 잔혹사
한승태 지음 / 시대의창 / 2013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여성 저널리스트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저임금 노동현장에 뛰어들어 빈곤의 늪을 사회구조적으로 파헤친 유명한 저술『노동의 배신』 의 한국판 번안이라고 해야 할까? 집필자에겐 이러한 비유가 마음에 들지 않겠지만 결코 폄하하려는 의미에서의 진술이 아니다. 한국의 현실이 신자유주의 선봉국인 미국의 노동생태계와 한 치의 차이도 없이 닮은꼴이기에 떠오른 생각에서 일뿐이다.
사회의 불평등 성향이 짙어질수록, 또한 대중의 상상력이 퇴화할수록 빈민의 존재는 사회에서 보이지 않는다고 얘기되곤 한다. 이렇게 그 존재에 대한 이해가 결핍되어 있다보니 자연 이러한 상황을 사회구조적으로 고민하려는 시도가 어렵게 되고 만다.
그래서 돼지농장, 꽃게잡이, 공장노동의 현장에 자기 육체와 삶의 현실을 오로지 바치는 체험의 수기는 이 사회에서 눈에 띄지 않던 실체들의 진실을 비로소 보이는 것으로 말해주는 숭고함을 지니게 된다. 바로 이 고발은 가난, 빈곤의 구조적이고 본질적인 속살을 보여준다. 가진 자들, 권력자들이 자신들의 몽매함과 이기심을 얹어 빈곤을 의지의 결핍으로 치부하는 것의 무지와 오류를 밝히는 작업으로서.
빈곤을 왜곡하려는 가진 자들의 몰염치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그치질 않는다. 보수언론은 틈틈이 복지의 보편적 확대정책에 각종의 흠집을 내기위해 발악을 하면서 수십조에서 수조원에 이르는 개인적 부를 축재한 재벌의 탐욕을 지키려고 혼신을 다한다. 점차 가난이 대중화되고 빈곤이 만성적이 되어감에도 이 그릇된 구조의 근본적 틀을 다시 잡으려는 시도는 어디에서도 가능치 못하게 봉쇄되고, 어느 노인의 말처럼 자본주의가 아니라 ‘反사회주의’가 바로 한국의 이데올로기라고 비아냥거리는 것의 진실 일 것이다.
![](http://image.aladin.co.kr/Community/paper/2013/0202/pimg_729034103823336.jpg)
책에 소개된 체험의 일화들은 한결같이 육체가 무너져 내릴 정도로 노동을 해도, 정신이 손상을 입을만큼 고통을 받으며 일을 해도 먹고살기가 더욱 힘겨워지며, 노동을 할수록 가난해지는 이 사회의 실상이다. 이 노동자들에겐 삶에 여가다운 여가를 즐길 시간도 돈도 허락되지 않기에 그들이 헛된 지출을 하는 것도 아니다. 단지 생명장치를 유지하기만 하는데도 이러하니 이것이 이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일까? 그럼에도 사회를 위해 책임의식이라곤 한 번도 지녀본 적 없는 자들은 저임금 노동자들을 게으르고 의존적인 계층이라고 매도한다.
이 같이 이미 열심히 일해도 가난해지는 구조가 정착되어 있음을 알지 못한다고 우기는 세력들을 보면 이 사회에 뿌리내린 저임금 노동의 현실은 아마도 당대에는 사라질 수 없지 않을까하는 절망적 관망까지 하게 한다. 만성적 빈곤으로부터 헤어 날 수 없게 구조화된 저임 노동시장의 생생한 체험의 기록은 그래서 권력이 왜곡시켜버린 이 부정적 구조를 가능한 시급히 교정하라는 안타까운 구조신호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더 이상 이 사회에 대한 신뢰가 손상되어서는 위험하다는 신호 말이다.
체스의 말(장기 의 卒에 상당)이 한 칸씩 움직여 상대측의 마지막 선에 도달하면 여왕적 지위를 갖게된다는 저자의 바람을 온전히 담은‘퀴닝(Queening)'과 같은 획기적 전환은 아니더라도 노동에 정당한 대가가 주어지고 그를 통해 성실한 한걸음이 쌓이면 보다 나은 삶, 희망이 있는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구조적 변화가 이루어져야 하지 않겠는가.
이 땅의 저임금 노동현실, 가난의 굴레를 벗어날 수 없는 구조는 노동자들의 의지의 결여가 아니라 희망을 지닐 수 없게 만드는, 희망의 결핍을 강요하는 왜곡된 구조임을 선언하는 저자의 수고에 지지를 보내게 된다. 빈곤 지수가 매년 나아지는 그런 사회를 위해 새 정권은 MB정권의 탐욕스런 부자정치와는 다른 행보를 할 것이라 억지스런 기대를 가져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