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론 현대사상의 모험 10
에릭 홉스봄 지음, 강성호 옮김 / 민음사 / 200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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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기술(記述), 역사를 연구하는 방법, 역사학과 역사학자의 자세와 태도, 그리고 역사의 분석과 해석과 관계하는 학문들과의 연계성을 전체사회사라는 관점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역사의 정체성과 당위론에 대한 홉스 봄(Eric John Ernest Hobsbawm)식 진술이라고 해야 할까.

주로 대중을 대상으로 강연하거나 전문지에 발표한 짧은 담론들로 구성된 글이라서 고도의 배경 학문적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수월함이 있으나, 서술적 역사와 같이 일부 비판을 기초로 한 글들의 경우에는 대상학자와 저작에 대한 이해의 결여로 다소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있다. 다만 역사를 어떠한 관점에서 인식해야 하는지, 역사란 바로 이러한 것이어야 한다는 점을 이해하는데 있어서는 아마 최고의 책이라는 점에서 사건사나 연대기정도에 익숙한 우리의 일반적 역사인식을 한 단계 올려놓아 주는 저술이라 할 수 있다.


우선 무엇보다 관심을 갖게하였던 부분은 역사에서‘과거’의 의미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하는 것과 ‘당파’. 즉 특정 이데올로기나 정치적 입장에 자신의 의도를 종속시키는 것에 대한 지적을 들 수 있는데, 바로 근자에 기승을 부리는 뉴라이트의 비뚤어진 역사관에 대한 본질적 잘못을 파악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역사가의 과제는 과거의 의미의 본질을 사회 속에서 분석하고, 그 변화와 이행과정을 추적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과거라고 공식적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연 어떠한 것들일까? 결국 그 공식화된 기억으로서의 과거란 무수히 많은 것들 중에서 특별히 선택된 것일 뿐이다. 더구나 사회에서 늘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을 의식된 역사체계 속으로 통합 시킬 수 있는 것도 아니며, 현재의 논쟁과 불확실성을 심판하는 법정이 되는 경향으로 흐를 경우 인위적 가공물이 되거나 날조되곤 한다.


역사를 정치적 또는 이데올로기적으로 악용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는 우리 역사학계의 현실을 볼 때 1947년에야 비로소 국가로 존재하게 된 파키스탄이‘5000년의 파키스탄’이라고 민족주의적 이데올로기를 동원한 현재의 정당화나, 마케도니아를 말하는 그리스, 이스라엘 시온주의자들의 역사와 같은 시대착오나 날조에 대한 홉스봄의 지적은 “역사가가 자신의 책임을 기억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엇보다 정체성을 강조하는 정치적 격정에서 비켜서 있어야 한다.”는 역사학자의 태도를 시정케 해준다. 그렇다고 역사의 당파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사실 이데올로기나 정치에 완전히 중립적이라는 것은 가능하지도 않을 뿐 아니라 역사학자의 정치참여는 어떠한 형식으로든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탁상공론과 과학적 차이는 엄연히 존재하며, 과학적으로 정당하지 못한 행위에 유혹되어 미리 결정된 자신들만의 교리를 입증하는 데만 참여하거나 실제적인 문제는 교조적 근거에서 거부하면서 사이비 문제를 제기하는 주관적 당파성은 경계하여야 할 요소임을 부인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역사란 대체 우리들, 오늘의 사람들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어떤 의미를 기대해야 하는 것일까? “역사학이 이해할 수 있는 일은 역사변화 전반에 걸친 메커니즘 형태를, 특히 변화가 극적으로 가속화되고 확대되어온 과거 몇 백 년 동안의 인간사회의 메커니즘 형태를 발견하는 것이다.”라고 한다. 즉 역사는 역사적 경험과 관점의 결합에 기초해 현대사회에 대한 전망을 가능케 하며, 미래와 미래를 준비하기위해 요청되는 인간행위를 판단하는 데 필수적 역할을 한다는 점이다. 특히 홉스봄은 ‘사회갈등’에 주목하고 있는데, 이는 한계까지 짓눌려 온 사회구조의 중요한 측면을 표현하기 때문이란 것이다. 예로서 프랑스 혁명기라는 짧은 기간이 동일시간 폭을 지닌 어떠한 시기보다 더 오랫동안 집중적으로 유독 많은 역사연구에 바쳐진 것처럼 어떤 중요한 문제들은 그 폭발의 순간에 평상시 잠재되어있던 많은 것을 드러내기에 사회의 주요변혁과 반응을 전체적으로 명료하게 분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홉스봄의 전체사회사, 즉 기존의 하층계급에 대한 역사, 풍속, 관습, 일상생활을 의미하는 사회사를 벗어나 경제, 정치, 문화, 종교등 사회의 다양한 측면을 전체적으로 파악하려한 역사인식과 관련을 맺고 있다 할 수 있겠다. 특히, ‘마르크스’의 ‘토대와 상부 구조’라는 상호작용하는 상이한 수준들로 구성된 사회라는 모델, 즉 사회현상의 위계질서를 주장하고 자기 지속적인 체계의 경향에 반작용하는 내적 긴장이 사회 내에서 존재한다는 주장에 강한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홉스봄의 역사론을 정립하는 원형적 토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사회에 대한 분석도 그 사회의 생산양식에 대한 분석과 함께 시작해야만 한다는 마르크스의‘생산양식’은 인간사회의 다양성과 상호작용을 이해하는 토대로서 홉스봄의 역사인식에 근저를 이루고 있다 할 수 있다. 이에 더불어 반(反)주류 역사라고 부를만한 분야의 탁월한 선구자들인‘페르낭 브로델’을 비롯한 《아날학파》의 “다양한 행동, 사고, 느낌의 형태를 서로 일관된 것으로 보기위해 이러한 형태들 사이의 논리적 연관성을 발견하려한”‘망탈리테(mentalites)’는 전체사회사에 음양으로 영향을 주었던 것 같다. 마르크스가 역사학에 미친 영향이나 아날학파에 대한 몇 꼭지의 글은 그래서 이 저술, 아니 홉스봄의 역사인식에 대한 중심 사고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부분이 된다.


한편, 19세기 프랑스 歷史家‘미슐레(Jules Michelet) ’에 이르러서야 민중사가 시작되었다하지만 대개의 지역에서는 1950년대 되어서야 비로소 민중사 즉, 국가를 형성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인 민중의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았던 역사가 민중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꽤나 인상적이다. 왜 역사는 왕과 황제, 지배계급 상층부만 이야기 하였을까? 역사는 통치자의 영광과 실용적 용도를 위해서만 저술되는 그러한 역사였다. 결국 사회에 대해서는 어떠한 것도 궁극적으로 말하지 않는 역사, 민중들에게는 어떠한 일이 일어났는지 알 수 없는 역사. 우리 한국의 역사는 여전히 이러한 지배계급의 역사만이 얘기되고 교육의 현장에서 유리되고 있다. 고작 홉스봄의 지적처럼 보통사람의 역사를 기술하는 일부 좌파의 역사조차도 노동운동, 민주화운동의 선구자로 간주되는 인물이나 사건에 맞추어져 진정한 민중의 이야기는 하고 있지 않음에 대한 각성은 새삼스레 당혹스럽기조차 하다.


역사는 사회가 본질적으로 겪는 모든 변화에 대한 기록이다. 그래서 홉스봄이 말하는‘전체사회사’나, 역사 기술에 대한 예리한 비판과 아울러 제시되는 방법론들, 그리고 팽창된 방대한 역사 기술로서 편리한 출발점이 될 수 있는‘상황’에 대한 연구의 제안 등 진정 역사란 무엇인지, 어떠한 것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차원을 달리한 역사의 이해를 갖게 해준다. 그의 저술, 『혁명의 시대』,『자본의 시대』,『제국의 시대』,『극단의 시대』로 이어지는 역사의 심층적 이해를 위한 매혹적인 입문으로서도 손색이 없다. 역사를 말하는 법을 말하는 역사서이다! 역사를 읽으려면 우선 홉스봄의 『역사론: On History』부터 읽으라고 권유하고 싶어진다.


註) 망탈리테(mentalites) : 사회문화현상의 밑바닥에 자리한 집단 무의식 또는 집합기억으로서 인간의 사고와 행위에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심성(心性)구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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