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넥팅 - 창조하고 연결하고 소통하라
데이비드 건틀릿 지음, 이수영 옮김 / 삼천리 / 2011년 12월
평점 :
절판


우리는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확신하는 존재자이다. 이 관계맺음에서 나를 피력하고 인정받고 공감받기를 희망한다. 그때 우린 피력하기 위한 무언가라는 소재를 대상으로 하는데 그 소재는 자신의 생각이나 신체가 경험한 것, 즉 생각과 느낌의 일부, 몸과 마음의 통일체인 무엇을 드러내고 그것으로부터 타자와의 연결이라는 연대감이 주는 평온함, 온전한 자유로움, 자존감을 맛본다.

이 책은 우리를 이러한 존재자로서의 자존감과 연대감으로 이어주는 궁극의 요소를‘만들기’라고 말하고 있다.

 

이 만들기라는 행위에는 사람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새로운 것을 생각해 내는 능력”, 즉 창조의 과정과 느낌이 담겨져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거기에 새겨지는 인격과 개성, 고유한 본성이 내재하는 것이고, 이 행위를 통해 안으로부터의 동력을 얻는다고 한다. 다시 말해 “공을 들이고 있고 바라고 있기 때문에 곧 존재하게 되리라 느껴지는 것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몸 뿐 아니라 의식과 영혼의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이며, 그로서 인류가 되고 우리 삶은 행복해지고 다채로워진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오늘의 우리의 삶은 어떠한가? 이러한 만들기의 터전에서 아주 멀리 배격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학교교육은 기계적 구조화되어 일상의 경험과 분리된 구조로서 추상성만을 주입하고, 자본주의적 노동 분업체계는 극히 일부분에만 참여하게 되어 온전한 무엇을 만드는 것, 개인 고유의 창조성을 발휘할 수 있는 여지를 박탈하고 있다. 결국 “우두머리가 낱낱이 가르쳐주는 대로 흠잡을 데 없이 물건을 만들어내는 도구”가 되는데 불과하여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자유롭게 표출하거나, 자신의 노동을 장악하지 못하게 한다. 여기에 자기의 느낌과 생각이라는 고유의 창조성과 자존감이 개입할 여지는 상실되고 만다.

 

저자는 인류사회의 중심 가치로서 개인의 자발적 창조성을 강조한 ‘존 러스킨’과 ‘윌리엄 모리스’의 투박한 장인의 결과물과 미술공예운동의 사례를 통해 소박한 삶과 수준 높은 사고에 이바지하는 만들기라는 행위 속에 내재한 창조성, 행복감, 민주성, 연대감을 얘기한다. 우리들은 자신의 노력만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온전한 하나를 다루고 싶어 한다. 바로 이 자신만의 창조성을 드러내게 될 때 보다 완벽한 사람이 되었다고 스스로 느끼게 된다. 비록 그것이 매끈하지 않고 불완전함이 있을지언정 이 불완전성 덕분에 더욱 뚜렷한 인간적 요소가 드러나고 특별해진다. 아마 권력자와 엘리트에 기대어 예술성을 인정받으려는 미술이 저마다의 기벽과 재능이 한데 어우러져 불완전함과 상상력, 그리고 능력만큼 표현된 결과물이 지닌 이 투박함만큼 존재의 지위를 상징할 수는 없을 것이다.

 

이것은 “창조성은 느껴지는 것이지 외부 전문가의 검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라거나, “결과물의 양과 쓸모가 아니라, 정말의 즐거움은 대체로‘과정’에 있다.”라는 말과 같이 기술적 성취의 인정보다는 사람 냄새나는 작업, 정서적 공감, 만들기라는 행위 그 자체의 느낌에 본질이 있음을 의미하는 것일 게다. 즉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행위에는 일상적 창조의 기쁨, 타자와의 공감의 교환 등 부드럽고 평온한 세계와의 연결을 만들어 준다. 이것이야말로 자유롭고 창조적인 소통이라 할 것이다. 책은 이와 같이 인간은 “스스로 일하고 무언가를 만들 때 더욱 행복하고 세계와 결합되며 발전하고 배우기 쉽다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생각”에 바탕을 두고 자유로운 자기표현의 세상인 웹2.0 기반의 개방적 커뮤니티의 플랫폼들을 우리 인류가 지향해야 할 사회적 가치의 중요한 터전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일례로 많은 이들이 어떠한 보상도 없는데 왜 많은 수고를 필요로 하는 블로그를 할까? 하는 질문을 한다. 우린 블로그에 자기만의 기억이나 일상의 단상, 책이나 영화, 음반에 얽힌 감상이나 관련 정보들을 쓰거나 스크랩하고 링크하며 편집하는‘자기만의 만들기’를 통해 자신과 연관된 측면에 관심을 표현하거나 내보인다. 비슷한 친구들과 연결되고 싶어서, 자기 존재와 사상을 드러내고 그것이 관심을 받고, 나아가 다른 이에게 긍정적 반응을 일으켜 공감과 지지와 격려라는 정서적 지지와 의미 있는 사회적 연결을 기대하기 때문일 것이다. 바로 만들기란 자기의 자유로운 생각과 느낌의 표현이며, 이는 타자들과의 공유이며, 나아가 그들의 반응이라는 협력의 형태를 통해 상호교류와 인정, 믿음과 공통의 가치를 향한 공동체의 형성, 상생하는 사회, 창조와 다양성이라는 역동적 문화에 이바지 하는 힘임을 증거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유튜브, 트위터, 페이스북, 블로그 등으로부터 형성되는 연결이 과연 이렇듯 사회자본의 화려하고 낭만적인 긍정성만 있는 것일까? 일시적이고 단순한 느슨한 관계, 의미 없는 조잡한 영상들, 비슷하거나 공통된 관심으로만 엮여 오히려 폐쇄적인 발칸화된 적대적 그룹의 양상만을 부채질하여 연결 사회 자본을 약화시키고, 웹2.0 기반의 거대기업들이 참여자들을 산업 도구화하는 움직임은‘만들기’의 고유한 긍정성을 저해한다. 더구나 낯설고 이질적인 것은 제거하려는 권력화 된 힘들의 어리석음이 빈번하게 개인의 창조성과 자유, 민주주의를 차단하려 한다.

 

그렇다면 이러한 부정적 측면들 때문에“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서 적어도 한 사람의 활발한 지성이 물질 또는 디지털 세계와 만나는 과정”이랄 수 있는‘일상의 창조성’, 만들기가 지닌 개인의 자유와 평등, 민주주의, 다양성의 획득과 개인들의 결합을 만들어내어 연결이라는 귀중한 사회적 가치를 포기해야만 하는 걸까? 도구가 일정 수준을 넘어서 비대해지면 통제, 의존, 착취, 무기력이 증가한다는 것을 우린 경험의 실제를 통해 잘 알고 있다. 따라서 우리는 생각과 문화를 자유롭고 제약 없이 표현하고 공유할 기회를 차단하거나, 이를 사용하는 이들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는 산업적 도구화에 대항할 답변을 항상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오랜 민주주의 전통”을 기반으로 월드와이드웹을 만들어낸 ‘버너스 리’의 “순수한 중립성”의 정신처럼, 일상의 창조활동을 촉진하는 체계를 우린 만들어 낼 수 있다고 제안하고 있다. 공짜이용이 아니라 작은 정보들에 값을 지불하면 거대 포털, 플랫폼들의 산업적 도구화를 막을 수 있으니 우리 이용자들이 이러한 개방커뮤니티 플랫폼의 이용에 대한‘사회계약’을 체결하자는 것이다. 만일 이용대금의 지불이 마땅치 않다면 각국의 정부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하여 전 지구적 온라인 저장소를 만들어 커뮤니티를 제공하는 비영리재단을 만들고 문지기도 없는 최소한의 규제로 창조활동을 돕는 것도 인류의 행복과 사회관계의 총량을 높이는 것이니 가능하리라는 것이다.

 

개인을 “그저 소비자로 여기고 노동자들을 얼굴 없는 서비스 공급자로 만드는” 오늘의 신자유주의 시장 시스템은 개인들의 발언권을 거부함으로써 창조성과 사회 자본을 상실시키고 있다. 사람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만들기의 자유로운 행위, 참된 자기표현의 길을 위해 자유주의적이고, 자립적이며, 대항 문화적이고, 반소비주의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이‘연결 사회자본’의 인류 문화적 가치를 주창하는 이 책은 손으로 만든 사물과 자연과 사랑과 연결되는 참된 공동체 촉진의 길을 발견하게 하고 있다.

만들기와 행동주의를 결합시켜 일상의 창조성이라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고 나누는 일이 인간의 행복과 연대감을 축조하는 사회의 중심 가치임을 다시금 확인케 하는 열린 공동체, 아름다운 네트워크를 향한 따뜻한 지성의 웅변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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