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데이아(Medea)’는 어떤 여인인가!


'Medea'는  메데이아, 혹은 메디아라 표기하는데 2500년 전 그리스인들이 어떻게 발음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게 익숙한 ‘메데이아’로 부르기로 하자. 이 여인을 새삼스레 말하려는 것은 기원전 431년 그리스 비극작가 '에우리피데스(Euripides)'가 『Medea』를 그네들의 전설과는 다소 변형된 여성상, 즉 자신의 자식들을 죽인 잔혹한 엄마, 연적을 살해한 복수의 화신으로 묘사한 이래 마치 여성을 바라보는 시대정신을 반영이라도 한 듯 수없이 차용되어 새로운 이미지를 부여받은 몇 안 되는 여인이라는 점 때문이랄 수 있다.


에우리피데스가 메데이아를 자신의 비극작품으로 쓰기 이전부터 이 여인에 대한 전설은 여러 형태로 전해져 왔던 듯하다. 그 가장 중심에 놓인 사건은 역시 자식들을 누가 죽였는가 하는 문제인데, 기원전 8세기 서사시인‘에우메로스’의 「메데이아」에 의하면 헤라 여신의 신전에 숨겼다가 잘못되어 죽게 만들었다는 것이며, 주석에는 바로 그 자식들을 죽인 자들은 코린토스의 아낙네들이라는 설과, 메데이아가 죽음에 이르게 한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친족들이 헤라신전에 숨겨진 아이들을 죽이곤 메데이아가 죽였다고 소문을 퍼뜨렸다는 설이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이 전설이 다시 400여년후인 기원전 431년에 에우리피데스에 의해 메데이아를 자신의 자식들을 직접 죽인 여인으로 변형 시킨 것인데, 이는 작품 내용에서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이자 종속물로서 수동적 삶만을 강요당해야 하는 시대에 대한 강력한 저항 정신의 극단적 상징이라 할 수 있다.

“공연히 영리하다는 이유로 사람들에게 원한을 사고, 쓸모없는 인간이라 욕을 먹고, 오히려 반대로 다루기 힘든 여자라는 말을 듣기까지 한다.” 그러면서 “제가 그렇게 똑똑한가요?”라고 코린토스의 아낙네들에게 반문하는 장면은 이러한 점을 역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이렇게 울분을 토하는 메데이아는 당연히 동정을 받아야 할 대상이다. 숙부‘펠리아스’왕의 교활함에 속아 ‘아르고 호’를 타고 양털을 찾으러 ‘코르키스’로 원정한‘이아손’을 코르키스의 왕녀인 ‘메데이아’가 위험에서 구원해주고 임무를 완수하도록 돕는다. 그리곤 두 사람은 혼인하여 이아손의 고향 ‘이올코스’로 돌아가 펠리아스를 처단한다. 메데이아는 이아손에게는 아내이기 전에 생명의 구원자이며, 그를 명예의 반석위에 올려놓은 인생의 귀중한 조력자이다. 그럼에도 코린토스로 옮겨온 이아손은 코린토스의 왕, 크레온의 외동딸과 혼인하기 위해 메데이아와 자식들을 방치하고, 마침내는 크레온으로부터 일방적인 추방과 처형의 위협을 받게까지 한다. 메데이아가 느낀 배신의 참혹한 심경은 여염집 여인네들의 분노 이상이었을 것이다.


배신한 남편 이아손의 변명 또한 걸작인데, 아내와 자식들의 삶을 보다 윤택하고 확고한 미래의 기반을 얻기 위해 선택한 원대한 방편임에도 속 좁은 여인네인 메데이아가 이를 인정하지 못하고, 자신과 크레온 왕과 딸에게 반목하는 것은 잘 못된 행동이라고 주장하는 것이다.

메데이아라는 여인은 순순히 쫓겨날 여성이 아니다. 코린토스 아낙네들의 코러스가 울려 퍼지는데,


“ 여자야말로 세상에 찬양 받고,

영예 받는 몸이 되리라.

약한 이름은 여자를 떠나리라.”


남성적 권위에 일방적으로 눌리기만 하는 강요된 여성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아폴론의 신탁을 받고 돌아오는 판티온 왕의 아들인‘아이게우스’에게 그의 소원인 자식을 얻게 해주겠다는 약속을 통해 자신의 보호를 언약 받는다.(도피처를 마련함) 그리곤 치밀한 책략을 통해 이아손에 대한 처절한 복수를 실행한다. 자신은 추방명령에 따라 떠날 것이며, 다만 아이들만은 거두어 줄 것을 사정하고, 아이들을 통해 죽음의 독이 묻은 비단옷과 황금관을 이아손의 새로운 아내가 될 공주에게 선물로 보낸다. 이로써 메데이아의 연적인 크레온 왕의 딸이 죽고, 딸을 안고 애통해하던 왕마저 독으로 사망한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이아손의 자식이자 자신의 자식인 아이들을 도륙한다. 배신한 남자가 받을 수 있는 가장 처절하고 참혹한 복수를 하는 것이다. ‘암 표범’, 메사나 해협의 사나운 여괴‘스킬라’라고 불러도 부족할 만큼 잔인한 앙 갚음을 하고 고통과 좌절에 신음하는 이아손을 조롱하며 도주한다.


이것이 에우리피데스가 그린 당대의 여인상이다. 결코 남성중심의 권력에 지배되는 피동적 여성이 아니라 자신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상이다. 이러하니 당대의 그리스 지배계급이 이 작품을 좋아했을 리는 만무하다. 비판과 비난이 쏟아지고 외면당했음은 불 본 듯이 뻔하다. 그의 사후인 기원전 4세기부터 비로소 조명 받기 시작했으니 천재, 시대를 앞선 자는 동시대의 공감을 받기가 수월치 않았던 것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 그리곤 피상적으로 ‘자식을 살해한 잔혹한 여인상’, 혹은 ‘복수의 화신’이라는 표피적인 이미지만이 차용되어 회화나 문학, 철학에 인용되어 왔다.

그런데 21세기 오늘, 메데이아는 또 다른 여인으로 새롭게 해석되고 새로운 여인으로 변형되어 시대를 상징하는 여성상을 발산하고 있다.


‘카를로스 발마세다’와 ‘테스 게리첸’의 소설에 나타난 ‘메데이아’


‘카를로스 발마세다’와‘테스 게리첸’, 두 작가가 그려 낸 그들의 작품 속‘메데이아’는 21세기의 여인들이다. 바로 오늘을 사는 여성, 이 시대의 여성들 초상이다. 그래서 두 작가가 부여한 메데이아의 매력은 예사롭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발마세다의 『서른살, 최고의 날』과 게리첸의 『악녀의 유물』이 그것인데, 전자의 메데이아는 잠든 우리의 모든 감각적 세포들을 깨어나게 할 만큼 강렬한 열정, 관능적 사랑의 고고학을 대변하는가 하면, 후자의 메데이아는 강인한 여성상, 철저하리만큼 자식에 대한 보호본능으로 뭉쳐진 헌신적인 모성애를 보여준다.


『서른살, 최고의 날』에서 메데이아의 화신은 문학 전공의 대학 강사인‘파울리나’라는 여성이다. 이 여성은 “사랑은 육화된 열정”이라고 정의하며 철저하게 자신의 욕망에 진솔하다. 그래서 사랑과 육체의 불가분성을 주장하며, 육체에 대한 욕망의 속성을 탐색한다. 육체를 잃어버린 사랑이란 이미 사랑이 아니며, 따라서 여자를 배신하는 것. 즉 떠나는 것은 생명을 담보로 한 무지가 되어버린다. 그녀의 사랑을 배신한 남자와 단지 그 남자의 새로운 연인이 된 여자는 그녀에게서 육체를 빼앗아간 무지 때문에 응징당해야 하는 것이 된다. 메데이아는 바로 사랑의 배신이 가져올 귀결이다. 복수!


반면에『악녀의 유물』에서는 이름이 그대로 차용된다. ‘메데이아 소머’, 여성을 단지 욕망의 도구, 영원히 소유하기 위해 살해하여 미라로 보관하는 사이코패스 남자를 피해, 자신의 딸을 지켜내려는 강인한 어머니이다. 막강한 권력과 잔혹한 악인으로 상징되는 남성의 권력, 기성의 지배 권력에 강하게 맞서는 의지와 행동의 실천을 보이는 헌신적인 모성애로 뭉쳐진 여인이다. 그러함에도 역시 인간으로서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낼 줄 아닌 여인이기도 하다.

이처럼 오늘의 여성은 자신의 성적 진실이 남성에 의해 억압되고 은폐되어야 하는 은밀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란 생물학적 동질성만큼이나 동등한 것이기에 드러내고 결핍을 요구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 두 작품의 종결이‘복수’라는 에우리피데스 메데이아의 플롯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것은 수천 년의 시간이 흘러도 바뀔 수 없는 보편적 진리라는 것이 있다는 얘기가 된다. 여성의 물신화, 다시 말해서 쾌락을 위한 대상화를 무심히 반복하는 남성적 권위의 몰지각과 파렴치에 대한 경종이다. 여자도 똑같이 인간의 신체를 대상화 할 수 있다는 얘기이다. 바로 죽음, 생명을 빼앗는 복수를 통해 물질화시켜 버릴 수 있다는 말이다. 문자 그대로의 의미야 잔혹하기까지 하지만 남자들의 여자들에 대한 전통적인 젠더(gender)가 부여하는 성의 차별화된 기능, 역할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촉구하는 것이라 할 것이다.


25세기 전에 영리하다고 원한을 사고, 똑똑하니 다루기 힘든 여자라고 학대받던 메데이아는 오늘에 없다. 더 이상 그녀들은 한탄하지 않는다. 적극적이고 거침없이 자기의 욕망을 주장하며, 분노할 줄 알고 복수하는 존재이다. 기원전 431년의 메데이아가 기원후 2011년의 메데이아로 여러 문학 작품들에 환생하는 것은 여전히 몽매하고 각성되지 않은 남자들에 대한 배려일지도 모르겠다. 메데이아, 그녀는 우리들의 딸이고 어머니이며 연인이다. 어찌 사랑스럽고 매혹적이지 않을 수 있겠는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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