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카페에서 시 읽기
김용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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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철학을 얘기하고 시(詩)를 쓰고 읽는 것의 궁극의 이유는 무엇일까? 살아간다는 것, 대체 인간의 유한한 삶이란 어떤 것이어야 하고 가치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 그리고 우리 존재의 놓여있는 환경, 즉 세상이란 무엇인지, 무엇이어야 하는지를 깨우치려는, 아니 시도하고 조금은 발견하거나 알아차리는 사유의 여정이 아닐까? 대체 의지도 없이 삶을 살게 된 존재의 살아 갈 이유란 무엇인지, 그 이유가 있기나 한 것인지, 그리고 죽음이란 소멸의 부조리는 또 어떻게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지, 이렇게 모호한 삶임에도 왜 그리 심난하고 힘겨우며 온통 장애물과 거북하고 고통스럽기조차 한 것들이 세상을 채우고 있는지, 이러한 것들을 어떻게 해석하여야 하는 것인지, 삶의 진리란 것이 있기나 한 것인지, 그렇다면 그것은 무엇인지..., 그래서 우린 시에서 철학에서 이들을 찾는다.


그것들에서 우린 우리들의 마음에 어떤 공명을 느끼고, 미처 다다르지 못했던 진실을 발견하곤 각성의 순간에 이르기도 하며, 그릇된 삶의 이해, 환영을 쫓던 자신을 비로소 발견하게도 된다. 또한 실의와 좌절, 삶의 의미조차 상실한 공허함의 그늘에 표정을 잃은 채 방기된 우리들에게 삶의 이정표를 제시하기도 하며, 근원적이고 피해 갈 수 없는 실존론적 외로움에 몸부림칠 때 사랑, 박애, 생명과 같이 삶이 추구해야 할 가치들의 진정한 모습을 드러냄으로써 살아갈 희망을 발견하게 이끌기도 한다. 이 책은 이러한 철학적 성찰을 기초로 시에 투사된 삶과 세상에 대한 각성의 이야기들을 들려준다. 시의 속성인 은유가 지닌 세상의 다르게 바라보기, 경험을 상실한 오늘의 사랑이 실패하는 이유, 그래서 사랑이란 진정 어떤 것인지, 타자와의 관계에만 몰두하는‘직접성의 인간’들이 앓고 있는 절망의 실체, 나아가 “자연에 대한 사랑에서 나오는 분노”에 이르는 진정한 사색과 성찰이 흐른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가 쓴 소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서 대(大)시인 네루다가 우편배달부에게 알려주는 '은유(metaphor)'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책은 일상에서 벗어남과 다른 사실을 나타낸다는 의미가 깃든 “낯선 어떤 것에 속하는 이름을 사물에 적용시키는 것”이라는 정의를 통해 시란 ‘무엇을 다른 무엇으로 보는’ 작업으로서 다른 현실의 장을 열어 밝혀주는 것임을 설명한다. 즉 우리의 세계는 개개의 사물에 대한 이해와 해석을 통해 우리 스스로 읽어낸 그물망이라는 것이다. 보이는 것, 감각적으로 표피에 와 닿는 것만을 인식해서는 세상 본래의 의미를 해독할 수 없다는 말이다. 살아있는 은유, 원 관념이 가지고 있지 않은 다른 어떤 사실이 들어있는 표현, 시어(詩語)의 본성에서 우린 보다 진실에 가까운 무엇들을 인식하게 된다.


난해하고 어렵게만 인식되는 시와 철학의 본질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면 우린 삶의 무궁한 현상들을 보다 풍요롭고 광대하게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마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것의 중심이자 삶의 본질일지도 모를 ‘사랑’에 대한 성찰은 시와 철학의 이 같은 작업의 본성을 통해 세상의 거의 모든 것들, 현상들로 확장되어 인생의 총체를 설명하는 것이 될 게다.

사랑의 시작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우연한 만남, 낯 선 두 사람의 만남은 서로 다름으로부터 야기되는 시련과 고난, 위험이 내재한다. 이 위험을 무릎 쓴 경험을 안 은 채 난 혼자가 아니라 그(그녀)와 함께 하나의 세계와 그 세계의 진리를 만들어 나가는 일이 사랑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오늘의 사랑에는 만남의 우연성이 사라지고 있다. 계층, 집단, 파벌, 그리고 어떤 동일성에 의거한 계획되고 계약적인 만남으로 변화되고 있다. 사랑에도 효율이라는 합리성과 경제성이 자리 잡고, 사랑의 과정에서 야기되는 위험을 배제한다. 결국 “타자에게서 비롯된 시련이나 심오하고 진실 된 온갖 경험을 회피하려 하는 것”이다. 이처럼 위험을 감수하지 않고서도 사랑할 수 있다는 쾌락주의적 사고로 사랑이라는 집의 문턱이나 밟을 수 있을까? “삶의 경험에서 삶에서 중요한 것은 그것이 삶의‘전부’이기 때문”이듯이, 사랑의 경험이 사랑에서 중요한 까닭은 그것이 사랑의 전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효율성이 지배하고, 우연성을 배제하며, 경험을 경시하는 오늘의 사랑행태는 계층과 집단을 분리하고 그 괴리를 심화시켜 사회의 이원화된 정체성으로 갈등을 증폭시킨다.


또한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만 생각하고 대상을 만나는 것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사랑 받고 싶어 하면서도 항상 자기만 생각한다. 그리곤 쓸쓸해하고 고통스러워한다. 사랑은 주는 것이고, 참여하는 것이며, 하는 것이다. 철저히 자신의 능력의 문제, 능동적 활동이다. 자기 스스로 가꾸어나가는 문제이다. “그림을 그릴 줄 모르면서 좋은 대상만 찾아내면 좋은 그림을 그릴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생각”처럼 사랑은 대상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사랑을 대상의 문제로만 이해하는 것, 대상, 바로 3인칭으로 인식하는 것, 나와 너의 관계가 아닌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에서 우린 진실한 사랑을 잃어버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대상이기에 판단하려한다. “너는 부자야, 너는 가난해”, 판단하는 순간 이미 그(그녀)가 존재하는 자체로 사랑하기 불가능해진다. 구분 짓고 차이를 만들어 내는 이 동일성의 폭력에는 그 어떤 사랑도 이미 존재할 수가 없게 된다. 이제 그와 그녀가 아니라, ‘그대’, ‘당신’의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은 일방적 관계가 아니다. 포옹, 악수를 보라! 안는 행위이자 안기는 행위, 서로 맞잡는 행위, 이‘상호주관적 매듭’의 행위가 사랑이다. “그대가 없으면 나도 없는” 행위이다. ‘우리가 존재한다는 명제가 내가 존재한다는 명제보다 우선하는 까닭’은 그래서이다.


이 사랑 못지않은 인간의 존재론적 특성이 또 하나 있다. 바로 ‘실존론적 외로움’, 세상에 혼자 내쳐졌다는 근원적 외로움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 외로움을 아무 관련도 없는‘그리움’으로 인한 것으로 혼동한다. 그래서 사방으로 동료를 찾아 헤매며, 타자를 흉내 내고, “다른 사람들도 다 그런데!”라며 갈래 길에서 어느 길에 발자국이 많은 가에만 매달려 그저 따라간다. ‘편안한 자신감과 자명한 느긋함’이라는 심리적 안정감으로 타자와 일치되기를 원하는,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서 사는 본래적 삶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는 전체주의적 획일성으로 귀환하는 것, 바로 퇴락(頹落)이다.


자신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는  타자의 어떤 모범적 틀에 자아를 짜 맞추려는 식의‘자기계발’서(書)의 열풍에 매몰된 한국사회의 이상 열풍, 페이스북, 트위터 등 소셜 네트워크에 쏠리는 현상이 유난히 많은 것, 투기열풍, 명품 열풍, 몸짱 열풍, 다이어트 열풍, 성형 열풍..., 자신들의 퇴락한 삶에 대한 자각을 잃어버린 사회, 그러니 역사적, 사회적, 윤리적 양심이 들어서질 못한다. 무관심, 방기, 폄하, 비아냥거림 등 가치의 혼란에서 온 이러한 지적 퇴행은 후기자본주의의 욕망의 철학과 손잡고 조작된 내면의 황량한 풍경을 정당화 시키는 왜곡된 욕망으로 치닫게 한다.

“카르페 디엠! 지금 즐겨라! 댓가는 나중에! 내일의 쾌락을 오늘에!” 신용카드가 남발되고, 일상적 옷과 장신구들을 신속하게 초라하고 남루하게 보이도록 하여 페기처분하게 만드는‘패션’이라는 소비물질주의 첨병은 절제와 성찰적 삶은 무능한 인간의 변(辯)이라고 설레발치는데 까지 이르고 있다.


‘마티유 리쾨르’의 『행복 요리법』이라는 책에 등장하는 ‘늑대의 칼날 핥기’라는 우화는 이러한 오늘의 한국사회를 빗대는 우화가 있다.

(날카롭게 벼려진 칼날에 동물의 피를 묻혀두면 피 냄새를 맡은 늑대가 다가와 칼날에 묻은 피를 핥지만 일단 피를 핥다보면 날카로운 칼날에 늑대 자신의 피가 줄줄 흘러내리게 된다. 피 맛을 본 늑대는 멈추지 못하고 계속 칼날을 핥다가 출혈로 결국 죽음을 맞이한다. - 본문 P 285의 내용을 분량상 임의 압축함)

너무 잔혹하다고? 치명적 어플루엔자에 감염된 우리사회의 광적인 탐욕의 모습이 이와 결코 다르다고? “쾌락만을 탐닉하는 향락주의와 소유와 소비만을 추구하는 물질주의, 안락한 도피처를 제공하는 상대주의, 스포츠, 연예, 패션, 미용, 레저에 광적으로 몰입하는 열광주의”, 여기서 아니라고 부정 할 수 있는 것이 있는가? 때문에 사랑이 무엇인지도, 삶의 가치 - 살아야 하는 정말의 이유, 외로움과 진짜 죽는 죽음인 영혼이 죽어버린다는 것, 이에 대한 각성, 진실에 대한 이해로 나아가는‘카뮈’식 실존적 반항에 가치추구를 더한 철학적 인식의 제안은 우리에게 어느 때보다 중대한 실천적 사유가 될 것이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진실과 사랑을 알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유로서 하이데거, 키르케고르, 샤르트르, 카뮈, 샤토브리앙, 스탕달 , 마르셀, 프롬, 레비나스, 푸코, 알랭 바디우, 보드리야르 등의 문학과 철학의 사상적 편린들과 김수영, 김광규, 신경림, 최승자, 강은교, 정희성, 정호승, 도종환, 진은영, 유희경 시인 등의 30여 편의 시가 어우러져 빚어내는 잘 짜인 인생 지침서이다. 또한  저자의 말처럼 “존재의 진리가 스스로 열어 밝히는 ‘고요의 울림’을 듣고 그 말씀을 시어로 보존하는”, 다시 말해서 삶의 지향을 마련해주는 시인, 바로 우리들의 사명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한 장, 한 장, 책 넘김을 할 때마다 시적 갈망이 쌓여지고, 삶의 시련으로 놓았던 어떤 끈을 다시금 팽팽하게 잡아당길 의욕이 일어남을 느끼게 한다. 단순한 앎에 대한 욕구를 채우는 지식의 접근보다는 삶에서 주체성의 회복이라는 보다 근본적인 자아와 세상의 인식적 차원을 제고시켜주는 책이라 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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