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가쟁명 - 유가.묵가.도가.법가
이중텐 지음, 심규호 옮김 / 에버리치홀딩스 / 2010년 1월
평점 :
품절


다분히 매력적인 책이다. 공맹과 묵가와 도가, 법가의 경전을 해석하고 그것의 심오한 진리를 단순히 소개하는 것이었다면 일찌감치 치워버렸을 게다. 다시 말해 이들 제자백가(諸子百家)를 직접적, 전면적, 구체적으로 계승하자는 교조적 진술을 반복하는 것이 아닌, 현대 사회에서 가치와 의미를 지닌 방법과 사고방식이라는 핵심을 찾는 추상적 계승 작업을 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다투어 이야기 한다’는 쟁명(爭鳴)처럼 아집에 사로잡혀 자신의 생각을 바꾸려 하지 않는 결점 투성이의 인간들에게 타인을 이해하고 세계를 인식하려했던 당대의 치열한 격론의 장, 사유의 터전이 수천 년 동아시아의 사상적 지배이념이었을 수 있는 힘으로서의 배경을 절로 확인케 하고 있다.

 

이들 제가백가가 활약한 시대는 기원전 5세기부터 300여년 남짓한 춘추전국시대라는 소용돌이 사회이다. 공자를 필두로 맹자로 이어지는 유가(儒家), 유가의 예악(禮樂)을 반대하고 겸애(兼愛)를 주장한 묵가(墨家), 유가와 묵가의 유위(有爲)가 세상을 어지럽힐 뿐이라고 무위(無爲)자연을 주장한 도가(道家), 그리곤 무위와 유위의 조화를 도모한 법가(法家)에 이르는 사상의 다툼은‘세상을 인식하는 법, 치국(治國)의 방법, 사람다움의 방법’에 대한 생각을 단련시켜 준다. 그래서 저자는 이들 4대가의 사상적 배경과 이념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은 왜 그러한 사상을 발전시켜야 했는지를 통해 궁극적으로 이들을 어떻게 오늘에 계승할 것인지를 논의한다. 이 과정에서 설명되는 경전의 토막들과 일화가 조화를 이루며 그 사상들의 비교로부터 도출되는 비판과 수용의 전개는 지적 재미와 아울러 자연스레 생각의 방법으로 연결되어 분석, 핵심파악, 재해석이 이루어지는 명쾌함으로 견인된다.

 

이들 제자의 사상들이 당대에 서로 다투어 이야기되면서 더욱 공고한 사상으로 발전하였듯이, 반대 의견을 충분히 자유롭게 비교해본 결과, 즉 다양성의 존재 속에서 비로소 진리를 발견 할 수 있으며, 이 다양성 이야말로 균형과 창조의 탄탄한 원천임을 다시금 확신하게 된다.

더구나 지금까지 지니고 있던 동양사상에 대한 미천한 지식으로 미처 발견치 못했던 묵자의 공리주의, 만인의 평등이라는 민권사상 등을 제자들로부터 보게 되는 야릇한 흥분에 감싸이기도 한다.

 

1. 유가와 묵가의 다툼

 

이 두 사상의 쟁론은 타자에 대한 인식의 다름에 있다. 인애(仁愛)와 겸애(兼愛)라는 사랑에 대한 인식의 뚜렷한 차이인데, 나와 내 가족, 내 친지에 대한 사랑이라는 자기사랑으로부터 시작하는 유가의 혈연중심의 사랑과는 대조적으로 타인을 나처럼 사랑한다는, 즉 타자의 사랑이라는 타인의 존중에서 시작하는 묵가의 개념은 그들이 지향했던 대상을 의미한다.

나와 타자를 구분하는 유가, 자타를 동일시하는 묵가, 요즘의 말로하자면 유가는 구별짓기, 즉 차별을 말하고 있으며, 묵가는 평등의 정의를 말하는 것이다. 이것은 유가의 중심사상인 예악(禮樂)의 비판으로 이어지는데, 예(禮)란 군주와 제후, 대부, 사(士)와 같은 상위계층의 질서로서 등급과 차별을 의미한다. 이 차별로 인해 소외된 평민과 노예 등 하위계층을 위무하기 위한 것이 악(樂)으로서, 즐거움과 음악이라는 조화를 이용하는 것이다. 즉 예악이란 차별의 제도이다.

 

당연히 만인의 평등이라는 민권사상을 주창했던 묵가로서 예악을 비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인식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군주제인 당시에 평등과 질서가 유지되는 사회를 실현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고 평등한 만인의 만 가지 주장은 질서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강력한 최고의 지도체제를 구상했는데, 바로 전제정치, 일종의 독재정치체제로의 귀결이 되고 만다. 평등과 민권을 추구했지만 결과는 전제와 독재가 되고만 미숙함에 머물고 말았다. 유가에서 우린 지배 권력이 자신들의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행하는 태도의 역사적 기원을 볼 수 있다. 하위 계층에 대한 일종의 우민화, 고착화 정책으로서 쾌(快樂)와 음악(音樂)을 이용하는 것이다. 드라마, 아이돌, 성형과 패션, 명품과 연예계의 너저분한 이야기들인 엔터테인먼트의 홍수 속에 몰아넣음으로써 차별화된 세상을 인식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아마 이러한 반면교사도 이 책의 미덕일지 모르겠다.

 

2. 유,묵가와 도가의 쟁론, 그리고 법가의 탄생

 

기막힌 비유가 있는데, 묵자는 의협심이 대단한 인물로서 문제에 처한 백성이 있으면 어디든 달려가 도움을 주곤 했다. 그래서 그를 “털 하나 남지 않을 정도로 일했다.”고 말한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도가의 시발을 이룬 양주의 경우는 순기자연(順基自然), 즉 자연스러움을 따르는 것이 평화롭게 만드는 유일한 방법이라 하면서 “털 하나 건드리지 않을 정도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유가나 묵가든 무엇을 하면서 오히려 세상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을 뿐이니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도가의 주장이 일견 옳은 말처럼 들리기도 한다. “몸이 없으면 병이 날 리 없고, 질서가 필요하지 않으면 질서에 관한 문제가 발생할 이유가 없다. ” 그러나 세상에 어찌 질서가 없을 수 있으며, 내 신체의 존재를 부정할 수 있단 말인가? 결국 무엇을 하나 안하나 마찬가지라면 도가의 주장은 있으나 마나한 것이 되고 만다.

묵가는 자신에게 이득이 될 일은 전혀 하지 않은 반면, 도가는 남에게 이익이 될 일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으니 이 두 사상의 비유를 보고 있노라면 실없이 웃음이 배어난다. 어쨌거나 당대를 풍미했던 사상의 독특한 발상과 혹은 심오하기도 한 이들의 생각을 쫓는 여정은 즐거운 작업이 된다.

 

이제 한 술 더 떠서 이들 유위와 무위의 논쟁을 단 칼에 해결하려 한 세력이 등장하니, 그들이 법가이다. 사람이 자꾸 무엇을 하려하니 안 된다면 사람이 아닌 것으로 무엇으로 하면 되지 않겠는가? 결국 무위이면서 유위인 어떤 것의 주체로서 법(法)을 세우는 것이다.

인간이 무엇을 판단하면 정실이 개입하고, 부패하니 그것을 법에 맡기면 될 것이라는 사유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 근원적 사고는 당대에는 아마 대단한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역시 한계를 노정하고 있었는데, 오직 군주만을 위한 제도였다는 점이다. 군주의 권력과 지위와 재산을 지키기 위한 제도로서 철저하게 제안 된 것이다 보니 법치가 아니라 권치(勸治)로서 모사(謀事)의 술책으로 전락했다는 점이다.

 

문득 우리의 법집행에 대해 생각게 된다. 우리역시 법치국가라 하면서 법 앞에 만인은 평등하다고 말한다. 그런데 실제 법의 집행과 적용에 있어서 평등치 않다는 것을 체감하지 않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오히려 공공연히 유전무죄(有錢無罪) 무전유죄(無錢有罪)라는 말이 성행하지 않는가? 권력자와 부자에게는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 아마 한비가 이해하고 있던 형(刑)으로서의 법인 백성의 통치만을 위한 것으로서 20세기 전의 법가의 권치로 퇴행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빵을 훔친 자는 징역을 살지만, 수십억을 받아 처먹은 자들은 떡 값이거나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처벌되지 않는다. 주민등록법을 어기고 불법의 투기를 하면 서민들은 처벌되지만 고위공직 후보자는 역시 기억나지 않거나 미온적인 인정을 하면 유야무야된다. 2000여 년 전의 경전에서 법치가 권치가 되지 않을 길을 찾는 것도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3. 백가쟁명의 교훈

 

제자백가들의 3세기에 걸친 이러한 사상의 대격돌이라는 토양이 수십 세기를 내려오며 풍화되지 않고 여전히 무수한 사상의 밑거름이 되는 것은 역시 다름에 대한 수용과 비판을 통한 다지기로 견고해졌기 때문일 것이다. 우린 논쟁다운 논쟁을 하지 못한다. 남의 말에는 귀를 닫아버리고 자신의 말만 주절거리는 나르시시즘에 빠져 독단만을 주장한다. 결국 다양성이 창출해내는 창의와 조화, 진리의 추구는 멀어지고 만다. 그들은 진정으로 격론했다. 타인의 말을 경청했으며, 그를 담아내는 그릇으로 다시 논쟁했다. 유가, 묵가, 도가, 법가의 중심 사상들을 쫓다보면 그러해야 함과 해서는 안 될, 내쳐야 할 것들에 대한 분별을 알게 된다. 분별력, 정말 옳고 그름을 분별할 줄 아는 도덕적 정신력을 상실한 요즈음의 우리에게 진정 인간을 위한 공헌의 정신을 깨우치게 한다.

 

춘추와 전국시대라는 기원전(BC)5~2세기의 이전투구(泥田鬪狗)의 혼란, 오랜 질서인 주왕조의 예악이 붕괴되면서 시작된 백가쟁명은 이렇게 21세기에 그들 선제자의 사상에 담긴 구체적인 상황과 원인에 내재된 보편으로서의 태도와 법칙, 정신들의 합리적인 부분을 계승하는 것을 돕는다. 물론 백가쟁명이 꼭 이러한 추상적 계승의 가치로서만 있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우리에게도 남아있는 각종 제례의 형식적 기원이나 관습적 예절의 양태 속에 어떤 정신이 숨 쉬고 있는지, 이들의 철학으로서, 문화적 기원으로서의 원형들을 알게 되는 심지(心智)의 성숙이란 즐거움도 있다. 이들 백가는 중국의 사상적 기원으로서가 아닌 우리들의 정신에 깃든 동양 사상의 기초이다. 이들을 경(經) 과 전(典)의 단순한 문구의 해석이라는 차원에서가 아닌 세상에 대한 인식과 실천 방법론으로서 고찰하는 이 새로운 기회는 서구사상 일변의 분석적 양식에 견주어 결코 손색이 없음을 느끼게 된다. 무궁한 지적 매력을 담고 있는 책임에 틀림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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