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역어의 성립 - 서구어가 일본 근대를 만나 새로운 언어가 되기까지
야나부 아키라 지음, 김옥희 옮김 / 마음산책 / 2011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단어는 구체성을 띤 것이던 어떤 관념적인 추상성을 함축하는 것이던 그것을 통해 우린 그것에 해당하는 개념이나 이미지를 떠 올린다.
형체가 있는 사물일지라도 보지 못한 것을 지칭하는 단어를 들으면 우린 단어와 사물을 선뜻 연결하지 못한다. 연상을 만들어내지 못하기 때문인데, 하물며 경험하지도 느낄 수도 없는 추상적 관념어야말로 그 의미 그대로를 이해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 될 것이다.

서구의 문명이 근대화의 물결을 타고 동아시아에 본격적으로 밀려들어 온 것을 일본의 메이지(明治)유신을 기점으로 보면 150년 가까운 시간이 된다. 우리의 경우는 이러한 일본의 근대를 통해 간접적으로 이식되었으니 일본과는 다소 다른 과정을 거쳤다고 할 수 있겠다. 어쨌든 이 낯선 세계의 사물들과 관념의 이해를 위해서는 동아시아의 언어로 번역되어야 했는데, 한 번도 있었던 적이 없고, 느낀 적도 없는, 아니 생각해 본적도 없는 관념의 세계와 사물이니 당연히 자국의 언어에 그런 의미를 그대로 대체할 단어가 있을 리 없다. 당대의 번역어는 이처럼 새로운 단어를 만들어내는 과정일 수밖에 없었으며, 이것은 시대상, 문화적 배경, 사람들의 정신적 구조 등을 반영하는 산물이었음을 의미한다.

저자는 이 이질적인 서구문명을 표상하는 언어를 어떻게 일본의, 동아시아의 언어로 반영하는 가의 과정을 추적하고 있다. 그래서 그 반영과 성립의 과정을 통해서 번역어에 침윤된 문화적 욕망의 재생산의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일례로 18세기 일본에는‘society’라는 특정의 목적을 공통적으로 지향하는 광의의 공동체라는 개념이 있지 않았으며, ‘Individual'처럼 인간 개체에 대한 자율적 존재로서의 개인이란 인식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따라서 이들 단어를 동일한 의미를 가진 자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실로 난감한 일이었으며, 결국 새로운 조어를 만들어내는 작업이 진행되어야 했는데, 바로 이 신조어의 제작과 자국의 언어적 습관에 정착하는 일련의 과정에서 여러 문화적 정신구조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단어로 사회, 개인을 비롯해 「존재, 미, 연애, 근대, 권리, 자연, 자유, 그(그녀)」등 열 개의 단어를 통해 이들 단어가 어떻게 번역어로 조성되고 살아남아 오늘에 기계적으로 치환되는 언어가 되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어떤 단어가 이질적인 사회에 지식으로 들어올지라도 그 구체적인 용례가 여전히 부족한 상태에서 그 뜻을 명확하게 이해하는 것은 힘들 수밖에 없다. ‘교제’나 ‘세상’과 같은 이미 사용하던 단어를 society 의 초기번역어로 사용하지만 이들 기존의 단어로 소사이어티의 의미를 온전히 전달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결과적으로 당시에는 존재하지 않던‘사(社)’와‘회(會)’의 합성을 통해 사회(社會)라는 신조어가 번역어로 정착되는 것처럼 두 글자의 고유의 의미는 사라지고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단어를 만드는 것이다. 이 신조어는 이처럼 의미를 대응시키지 않음으로써 원어와의 의미의 어긋남을 회피하는 방법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당대 일본인들의 한자어에 대한 일종의‘카세트 효과’가 반영된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왠지 어감이 좀 더 고상하고 고급스러운 것과 같은 막연한 느낌, 사실은 텅 빈 보석함(카세트)임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괜찮은 것이 들어 있을 것 같다는 매혹과 같은 현혹이라는 것이다. 이것에는 아주 중대한 시사점이 있다. 교제나 세상과 같은 말을 제치고 본래의 사의 어감도 회의 어감도 없는 사회라는 번역어가 살아남은 것에는 막연히 관련 있을 것이라는 믿음, 의미 반영의 미흡함이 오히려 본래의 의미를 채워 넣을 수 있다는 빈 공간의 역설이라는 발견이다.

또한 기존에 사용하던 일상 속 단어의 의미를 확장하여 바꾸고 그것을 통해 현실 자체를 바꾸고자 하는 것은 이미 현실의 무게를 짊어진 단어로는 한계가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오히려 의미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유행하고 남용되어 다의(多意)적이 되고, 이 다의적이라는 의미 없음으로 인해 그것에 표면적 의미를 부여하여 이면적 의미와 결합하여 번역어로서의 의미를 완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태로 형성된 대표적 번역어로‘근대(近代)’를 설명하고 있는데, modern이 지니고 있던 “시대의 구분중 하나”라는 표면적 의미 외에 가치로서의 시대적 개념인 이면적 의미를 떠맡게 된 것은 하나의 본보기다.

한편 또 다른 카세트효과의 일종으로 beauty의 번역어인‘미(美)’에 대한 소개는 흥미롭다. 『금각사』와 『가면의 고백』으로 잘 알려진‘미시마 유키오’의 미의 트릭을 예로 들고 있는데, 대외적 대화나 평론에서는 미의 개념을 한없이 폄하하고 비난하다가 정작 자신의 소설에서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 이중 행위를 함으로써 모호함과 알 수 없음이라는 인위적인 카세트효과를 불러 미에 대한 우월감을 과시하여 고상한 언어로 고착화시킨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러한 현상을 구태여 허영과 유사한 의식으로 간단히 정의하고 있지만 ‘사카이 나오키’가 그의 저술『번역과 주체』에서 말한 일종의 ‘문화적 본질주의’라는 전체주의적 요소를 발견할 수 도 있다. 이것은 감정이 무매개적으로 공유됨으로써 공감의 일체화가 이루어지는 전체성으로의 합일의 사례처럼 보이며, 공유된 심미적 정서로 통합된 공동체와 국가의 통합체로서의 관점으로 충분히 해석될 수 있다. 바로 이러한 점이 이 책의 한계로 보인다. 비평적 관점을 가지고 있으나 표피적인 판단에 그치고 있다는 점이다. 카세트효과를 야기한 그 근원의 심층에는 다가가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시 책의 주제로 돌아가서 번역어의 문자 그대로 성립과정의 유형을 통해 정신문화적 현상을 탐색할 수 도 있다. 자국 언어의 고유한 특성으로 인한 한계에서 비롯된‘존재(存在:being)’와 같은 단어들이나, 기존의 단어가 지닌 의미와의 모순을 일으키는‘자연(自然: nature)’이나 부정이 오히려 자체의 의미를 덮어버림으로써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 '자유(自由;liberty)'와 같은 단어가 그 예이다. 추상적 의미를 지닌 기본적 동사는 명사화하기 힘들다는 언어적 한계로 인해, be동사의 진행형인 being의 직역인 ‘있음’을 기초로하여 ‘있음론’의 활용이 아니라 ‘존재론’으로 활용하는 것처럼 ‘있음’이 아니라 ‘존재’가 번역어로 살아남는 것이다. 자유의 경우는 ‘제멋대로 구는’이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었었으나 liberty의 번역어로 자유를 그대로 사용함으로써 부정적 카세트효과가 이용되는 양상도 발견된다.

특히 자연은 “저절로 그렇게 된 모습”이라는 ‘자연스럽다. ’의 의미는 지니고 있었으나 nature가 지닌 “정신적이 아닌 외적 경험 대상의 총체, 즉 물체계 및 물체계의 여러 현상”이란 뜻은 없었다.
이것은 자연이 nature의 번역어가 되었다고 곧바로 nature의 의미를 제대로 갖게 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결국 일본문학이 이러한 몰이해(기존의 자연에 대한 인식)로 인하여 소재의 이상화를 배격한다는 구실 하에 ‘자연을 그대로 쓴다’라는 왜곡된 도입으로 이어진 것을 설명할 수 있게 된다. 일본 자연주의 문학을 발흥하게 했으며 이것을 곧 극사실주의 문학인 사소설로 이어지게 한‘다야마 가타이’로부터 번역어 성립과정에서 발견되는 왜곡, 오해, 허영이라는 의식의 총체를 이해 할 수 있게 된다.

오늘날 우리들이 무심코 별다른 저항 없이 사용하는 이들 단어들이 이러한 번역어로서의 성립과정을 겪고 살아남은 언어라는 이해는 우리가 놓치고 있던 관점을 일깨운다. 가장 의미적 접근이 잘 된 적절한 단어가 번역어로 성립하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점이나, 빈약한 의미의 비대칭의 언어가 의미를 채워감으로써 완성되어간다는 것, 한자어 중심의 표현으로 자국 고유의 표현을 잃어버리게 되었다는 것 등의 지적은 우리의 언어 사용에 반성과 귀중한 참조점이 되어 준다. 근대화가 이들 서구문명의 번역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번역된 근대’라 불리듯이 서구에 대한 무분별한 동일화의 욕망과 상실한 주체성의 반영이 아니라 이제 우리의 번역된 단어 하나하나가 우리의 정신과 문화를 담아내는 것으로서 성립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측면에서 우리가 반성해야 할 언어 습관이 떠오른다. 한자어의 조합을 통해 신조어로서 번역어를 만들어 낸 일본인들과 달리 최근의 우리는 영어를 그대로 우리의 언어로 이식하고 있다. 이것은 역시 일본의 서구에 대한 동일화의 욕망, 주체의 상실을 반복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우리의 정신을 서구의 것으로 대체함으로써 그것이 될 수 있다는 문화국민주의적 퇴보라 할 수 있다. 언어란 하루 아침에 자기의 것으로 정착되지 않는다. 어쩌면 속 빈 카세트에 의미를 채워 넣어 완성적인 진짜 보석함으로 만들어가는 일본인들의 일견 허영심 속에 진실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언어는 자국의 정신이다. 이 책이 비록 문화적 본질과 주체의 탐구까지는 나아가지 못했지만 문화로서의 외국어를 자국의 언어로 해석하려는 과정의 치열함을 통해 어떻게 정신으로서의 문화가 변화해나가는지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일본, 동아시아의 근대를 언어와 문화라는 시각에서 새롭게 조명할 수 있는 귀한 계기가 되어주는 저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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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7 13:4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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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6-19 08:1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