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들 펭귄클래식 109
조르주 페렉 지음, 김명숙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웅진) / 201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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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소설적’인 작품이 발표되자 프랑스 비평가들은 “위대함이 없는 시대와 장엄함이 없는 세계에 관한 충실한 보고서”라고 격찬했다. 즉 대중매체가 욕망하도록 가르쳐준 것만을 갈망하는 무력한 소비사회와 그 속에서 자신들의 내적 삶을 사물들에게 복종당하고 장악당하여 길들여진 사소한 존재로 전락한 인간의 완벽한 묘사라는 것이었다. 모든 인간들이 사물들을 소유하고 자기의 것으로 만드는 꿈, 그것이 곧 이상이며 존재이유라고, 그것이 바로 삶의 진실이라고 여겼던 상처투성이의 욕망의 세상을 묘파한 60년대 프랑스 지식인의 시선은 사실 2011년 지금의 우리사회, 우리들의 초상에 더 가깝다. 아니 우리들이 더욱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는 사회에 있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한 마디로 오늘의 사회를 우린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가 사는 체계의 모습이 이 사회분석서 같은 소설에 그대로 담겨있다면 지나치다고 하여야 할까. 우린 사물들에 사로잡혀 사물이 내리는 명령, 물질적 부(富)를 꿈꾸는 데 온통 혈안이 되어 있지 않은가? 광고사회, 소비사회라고 부르는 이 시대의 정의처럼 “구입을 유도하고 갈증을 도발하며 경쟁과 상품의 가열된 사기와 쾌락을 촉발하는” 그런 곳이란‘프랑수아 누리시에’의 정당한 지적은 그래서 획득가능성과 실현성과의 간극으로 인간들을 더욱 신음하고 고통스럽게 한다.

사물들은 인간들이 자신들에게 봉사하도록 만들어 낸 것이다. 그러나 편리와 신상품에 대한 광기어린 집착과 같은 욕망들을 창조하는 광고사회인 자본주의의 생리는 사물들 자체가 삶인 것처럼 가치를 전도시켜왔다. 본질이 호도된 것인데, 이처럼 사물의 획득에 대한 꿈과 몽상, 인간들이 희구하는 것에 진실이 자리잡는다는 측면에서 사물의 소유가 진실이 되어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진실을 인간들이 과연 정복할 수 있는가는 정말 꿈에 불과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니 삶 내내 물질적 불안에 시달리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신음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기도 할 것이다.

이야기(livre) 속으로...

이야기의 대상인물인 스물다섯 살 젊은 커플‘제롬’과 ‘실비’만큼 오늘의 대중을 묘사한 인물도 없으리란 생각을 갖게 된다. 소위 ‘주변 지식인’이라는 범주에 속하기도 하며, 프티부르주아라는 자본주의사회의 대표적 계층이라 할 수 있는 우리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이들은 문화와 지식으로 무장한 사람들이고 그래서 꿈과 몽상에 신속히 달려갈 준비가 되어있는 자들이다. 거침없이 쏟아지는 광고의 홍수들, 그리고 사물들, 이것은 그들이 성취할 수 있는 세계라고 상상하게 한다. 사람들의 비극은 바로 이처럼 외부에서 발생한 문화가 점차적으로 자신들의 내면의 형태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알지 못한다는 데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 주어진 욕망들과 그 실현 가능성 사이에 벌어진, 다시 말해 현대 소비사회에 의해 야기된 갈등으로 사람들의 정신은 분열되고 마모된다. 제롬과 실비는 멋진 아파트, 자동차, 고급식당, 화려한 바캉스, 안정적이고 높은 사회적 지위를 꿈꾼다. 이들은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에 맞서는 개성을 결핍한 인간, 내면의 불안을 잊게 해줄 치열한 전투, 진정한 전쟁이 부재한 젊음이다.
욕망을 실현코자하는 계획을 수없이 구상하지만 그 물질의 소유를 위한 여건은 늘 부족하다. 그래서 금방 화를 내며 없애버리곤 한다. 현실적인 삶이 늘 불안하고 허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것이다. 이처럼 감정적인 생활의 상당부분이 경제적인 것과 긴밀히 연결되어있다 보니 설혹 어떤 사물의 획득이 있을지언정 늘 불만족스럽고 불안한 행복에 멈추고 만다.

그렇다면 소유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사물을 지님으로써 얻게 되는 쾌락의 단순한 소유라면 그 소유는 곧 그 이상의 소유를 꿈꾸게 한다. 획득하고 성취하려는 욕망이 적절한 의지로 조절되지 못하고 좋은 취향이라는 순수한 자질로 초월되지 못하는 소유는 불만과 불완전한 기쁨에 머물게 할 것이다. 아마 늘 불안의 반응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결국 소시민화 되어 결핍의 불만 속에 안주하던지 여전히 부자가 될 수 있다는 환상(부자가 되더라도 그것은 영원한 과정에 불과할 것이라는 의미에서)을 꿈꾸거나 할 것이다. 또는‘보장된 행복’을 준다는 광고에 무관심하여 소비에 대해서 파업을 선포하는 태도를 취할 것이다. 사물의 소유가 인간 영혼의 창조적 부활이란 수단으로 이어지지 못하는 한 이러한 괴로운 욕망을 떨쳐내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사물에 대한 욕망을 창조하는 자본주의 소비사회의 속성은 인간 개체들을 분열시키고 불안과 불만족한 존재로서 병들게 한다. 이 불온하기 그지없는 자본주의의 생존방식은 잔혹하며 비인간적인 피투성이의 욕망의 세계로서만 작동하는 것이다. ‘조르주 페렉’의 “단순한 방법으로 살기를 방해하는 수많은 사물들(상품들)에 대한 광고 유혹”이 바로 ‘사물들’이라는 대답은 이러한 욕망의 시선과 물질적 재산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 답변이라 할 것이다. 또한 오늘의 대중이 사물이라는 저주스런 신비에 물신화 되고 있음은 잠자고 있는 의식의 깨어남에 대한 요청이기도 할 것이다. 사물들의 욕망과 소비사회에 의해 생성된 유혹에 민감하고 확실하게 반응하는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한 이 소설적 이야기는 노동과 물질적 쾌락에 대한 사회학적 관점의 유익한 증명과 인식을 제공한다.
인간 모두를 소유의 욕망에 신경증적 발작을 앓게 하는 현대 소비사회의 전경을 한 걸음 떨어져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이 책에는 이처럼 우리들 삶의 태도에 실체적인 의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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