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역열차 - 144회 아쿠타가와 상 수상작
니시무라 겐타 지음, 양억관 옮김 / 다산책방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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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주인공이 그들의 삶의 목표라 할 수 있는 욕망들을 추구하며 내외적인 적대적 요소들과 무수한 갈등을 일으키고, 그것에 도달하려는 용기와 좌절, 그리고 희망을 향해 돌진하는 모습을 통해 우린 인생의 또 다른 진실을 찾기도 하고, 마음의 정화를 느끼기도 한다. 그런데 이 소설은 이러한 현대소설의 양식과 사뭇 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자기 삶에 대해 이렇다 할 의욕도, 희망도 없어 보이고, 삶의 균형을 깨는 요인들이라 이해하기에는 열악하기 그지없는 것들에 증오하는 태도의 인물로부터 고착화된 의기소침과 좌절만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열패감이 장악하고 있기 때문인지 쓸쓸하고 우울하다는 분위기 이상의 무엇에 도달하기가 여의치 않다.

마치‘다자이 오사무’의 작품『인간 실격』의 주인공이 부활한 것만 같은 인상을 받는다. 작가 자신의 신변에서 일어난 일상의 이야기를 수기처럼 써내려간 사소설(私小說)의 리얼리티가 극적 재미를 기대했던 독자를 배반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작가의 개인사에서 인간과 세상의 보편적인 무엇을 발견하거나 공감할 수 있어야 하는데, 사실 그것이 교감하는데 낯설다는 것이다. 또한 대단원을 향한 휘몰아치는 갈등과 그 해결이라는 재미와 감동이 있어야 하지만 사소설로서는 작가 인생의 대전환이나 혹은 죽음과 같은 극적인 상황에서나 가능한 것이니 이것이 박탈당한 이야기에 몰입하는 것이 수월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그럼에도 은근히 시선을 붙잡는 마력이 있다.

1.
마흔이 넘은 작가가 자신의 청년기 기억을 술회하고 있다. 성범죄자인 아버지, 가족에 보내는 사회의 시선, 그것은 수치심과 굴욕감에 포획되게 하고 보통사람들의 사회, 그 평범함의 세계로 진입하는 것에 보이지 않는 장벽이 된다. 가까스로 중학교를 마치자 그가 선택할 수 있는 사회란 것은 막노동 이외에는 존재치 않는다. 항만에서 냉동 창고 하역작업의 막 일꾼으로 생활을 견뎌가지만‘간타’란 이 인물은 이조차 시큰둥하다. 하루 노동하곤 끼니를 구할 돈이 없어지면 다시 노동에 나선다. 그에게 목표란 것, 삶의 균형이란 것의 의식이 없다. 그러니 깨지고 말고 할 평형 상태란 것이 없다. 먹고 마시고 싸는 원초적 본능의 충족만이 전부다.

세상에 대한 낙심과 자신에 대한 혐오에 기초하는 좌절은 이렇게 희망의 기대를 지워버린다. 이러한 간타의 일상이 하역작업에서 동갑내기의 전문대학생을 만나면서 변화하는데, 타인과의 친근한 대화에 굶주렸던 그로서는 그를 만나는 즐거움으로 성실한 일용직 노동자의 대열에 서는 것이다. 이것은 술과 매음굴을 찾을 수 있는 금전에 대한 약간의 여유를 덤으로 주고, 창고 내에서 일하는 자의 점심 특혜와 지게차 운전기능을 습득할 기회가 된다. 그러나 희망을 제거한 인간에게 이를 실천할 용기나 열정이 있을 리가 없으니, 그에게 주어질 것은 다시금 단순 하역 노동자로의 복귀다.

한편 전문대생의 여자 친구인 대학생이 추구하는 삶의 목표가 그에게는 지적 허영이라는 역겨움으로만 인식되고, 열등감을 일깨운다. 이것은 그와 그들을 구분하는 일종의 구별 짓기로 이해되고 분노를 터뜨리는 구실이 된다. 이 사건은 유일한 친구를 잃어버리는 계기가 되고, 보통 사람들의 무리 속으로 다가 가는데 실패했다는 말이 된다. 열아홉 살 중졸 학력의 청년이 성범죄자의 아들이란 무게를 떨쳐내고 세상으로 나오는 것, 그가 삶의 욕망을 찾으려고 단단한 세상 경계의 벽을 깨기까지에는 평범한 우리들이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고역의 시간이 필요 했을 터이다. 그러나 여전히 하루벌이 일용 노동자의 삶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에도 그의 작업복 뒷주머니에 지니고 있던 사소설 작가 ‘후지사와 세이조’의 작품 복사물이 어느 순간 깨어났기에‘고역 열차’라는 신산한 삶의 얘기를 우리에게 들려줄 수 있었을 것이다.

2. 
소설 『고역 열차』는 이처럼 열아홉 살 하역노동자로서의 삶의 기억인 「고역 열차」라는 미완의 이야기를 완성하려는 듯이 마흔이 넘은 사소설 작가로서의 삶인「나락에 떨어져 소매에 눈물 적실 때」라는 제목으로 비로소 욕망에 갈등하는 보통사람의 세상에 들어선 자를 얘기한다. 문학계의 파벌이나 인정이 개입하지 않은 그야말로 공정한 심사로 정평이 난 문학상으로서‘가와바타(川端)상’을 상정하고, 자신의 작품이 최종 후보작에 오르자 그에 대한 솔직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다. 동종업자들의 자의적 평가에 휘둘리지 말아야 한다는 신념에도 불구하고 수상의 영광에 대한 기대를 떨쳐내지 못하는 헛된 집착의 비참함에 사로잡힌 자신에 대한 혐오, 자기부정과 합리화의 갈등을 보여준다.

달관한 척하면서 체념을 강요하지만 영예에 대한 희망, 그 명성을 얻지 못하면 일생 후회할 것만 같은 안타까움에 시달리는 것인데, “무작정 대접 받고 싶었다. 수많은 여성 독자들의, 설령 일회성의 무의미한 소통이라도 좋으니 어쨌든 하룻밤만은 속 일 수 있을 만한 인기를 얻고 싶었다.”는 고백은 코끝을 찡하게 울리는 감동을 준다. 소설가로서 인생을 마치고 싶어 하는 사소설 작가의 염원, 지니지 못했던 삶의 균형을 향한 작은 욕망이 현실의 아쿠타가와(芥川)상으로 전해졌으니 그가 비로소 세상에서 갖게 된 희망, 꿈의 실현으로 괜스레 덩달아 긍정으로서의 삶을 느끼게 된 것처럼 고무되는 것이다. 욕망 없는 세계에서 그를 건져준 사소설의 세계, 은근히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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