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 - 행복한 사회를 꿈꾸는 이상형의 나라
성 토마스 모어 지음, 황문수 옮김 / 종합출판범우 / 200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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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과 인간사회의 모순은 시대의 현상에 따라 그 원인은 다른 형태를 띠지만 삶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자유와 상충하는 속박과 억압의 고통은 변질되지 않을 뿐 아니라 더욱 다양한 모습을 하고 인간을 절망하게 한다.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차별과 억압으로부터의 해방, 물질의 편향성과 양극화의 해소 등등 인간사회가 안고 있는 해결되어야 할 부정적 모습은 이젠 생태계 복원과 보전의 문제, 신자유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시장자본주의가 출산해내는 병폐까지 더해져 암울해 보이기만 한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지성들은 시대가 안고 있는 인간사회의 불완전한 현상들에 대한 본원적 문제를 진단하고, 미래를 위한 대안 사회를 설계하고 전망하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지속시켜왔다. 이처럼 인간 세계를 다시 생각하고 모든 억압과 차별로부터 해방된 완전한 자유의 장소, 이상향을 꿈꾸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모색이라 할 수 있다.
‘토머스 모어’가‘어디에도 없는 나라(ou + topos)’, 즉 인간의 세계에서는 결코 실현할 수 없는‘유토피아(Utopia)’를 염원했던 것은 이러한 실패한 낙원인 암울한 인간 세상의 불완전성을 돌파하고, 마침내 도달하고픈 이상적 삶과 사회체제를 향한 진일보였을 것이다.

이 책『유토피아』는 1516년에 출간되었으니 500년이란 정신적 지속성을 유지해 온 저술이다. 따라서 오늘의 이성으로 재단하려들면 근대적인 생명의 존엄성이나 인권관이 출현하기 이전의 시대에서 오는 편협함처럼 시대의 간극으로 뛰어넘을 수 없는 한계에 집착할 수 있다. 그러나 ‘플라톤’이 그의 저술,『공화국』에서 설파한 이상적 국가 이래 중세 암흑기를 거쳐 2000년 만에 비로소 인간자신들의 삶의 세계를 비판하고 완전함을 향한 미덕과 지향하여야 할 도덕성을 갖춘 사회체제를 축조하였다는 것은 어떠한 이유로도 폄하될 수 없는 고귀한 인류의 정신 유산이라 아니할 수 없다. 특히 16세기 초 화폐경제본위의 자본주의체제에 들어선 영국의 정치사회 현실과 인민의 삶을 배경으로 하여 그 제도와 체제의 모순과 부정, 부도덕성에 대한 비판과 대안으로서의 유토피아에 대한 기획은 21세기 오늘에도 생명력을 가지고 우리를 되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힘을 발휘한다.

책의 구성은 모어의 친구인 안트와프 수석장관이었던‘피터 자일즈’의 소개로 유토피아 섬을 탐험하고 돌아온‘라파엘’이라는 인물로부터 유토피아의 제도와 삶의 모습들을 전해 듣는 2권의 형식으로 되어있다. 1권은 정치적 식견과 다양한 세계경험을 지닌 라파엘이 중앙정치 무대에 서지 않으려는 이유로서 화석화된 현실사회의 비판의 변(辯)을 담고 있으며, 2권은 본론이자 핵심이라 할 수 있는 덕이 존중되고 만인이 평등하며 모든 것을 풍부하게 가지고 있는 나라, 이성을 존중하고 삶의 향락인 쾌락을 인간의 온갖 노력의 자연적인 목표라고 생각하는 공동체사회로서의 유토피아를 소개하고 있다.

‘라파엘’의 중앙정치 참여 불응의 변에 대해서

왕과 소수의 성직자, 그리고 귀족과 지주에 의해 통치되는 사회, 최고 권력자에 아첨하고 자신들의 기득권 유지에만 혈안이 되어있는 정치 무대에서 새로운 정치 이념과 개혁 아이디어, 더구나 그들의 지배적 이익에 반하는 정의를 실행한다는 것은 사실상 가능한 일이 아니다. 특히 당대는 자본주의가 태동하는 시기로서 이들 지배 권력의 무차별적 탐욕에 의해 농민이 농토에서 축출되고 엄청난 전야(田野)가 수지맞는 양(羊)목장으로 약탈되고 있던 시대이고, 쫓겨난 농민은 걸인이 되고 도둑이 되어야만 연명할 수 있는 사회, 그리고 도둑으로 내몰린 이들을 정의의 구현이라는 미명하에 사형으로 처벌하는 사회였다.

또한 화폐가치조차 소수의 권력층이 조작하여 폭리를 취하고, 인민을 함정에 몰아넣고 위법의 댓가로 벌금을 징수하며, 법을 자신들의 이익에 맞춰 해석하는 사회였으니 이러한 지배 권력을 향해 그들이 받아들이지 못할 충고를 한다는 것은 실로 어리석은 일일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양태는 인플레이션과 환율 정책을 조정하고, 세수의 항목과 세액감면 및 공제항목의 인위적 조작을 통해 부의 편중된 독식을 추구하려는 오늘의 지배 권력과 다를 바가 없다는 점에서 이들 무리로 뛰어 들어가(실제 뛰어들지도 못하게 내쳐지겠지만) 도덕적 이상을 말하고 뿌리 깊은 사악함의 시정을 말한다면 백이면 백 적으로 간주되어 엄청난 핍박과 고통을 감수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바람을 억제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폭풍우속에서 배를 버리지는 못하는 것 아닌가”하고 항변하며, 더구나 “수년 내 인간이 완전해질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는 것”인 만큼, 이상과 현실의 조화를 도모하려는 간접적 수단이라도 동원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다. 그러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은폐하기 위해 지배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은 현실과는 괴리된 한낱 이상이며 환상이라 경시하며, 모든 부(富)가 극소수의 인물에 의해 독점되고 있는 나라를 번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사회에서는 중앙정치의 참여라는 것이 위선이며 공허한 것이 될 수밖에 없는 것 아니냐는 반대론도 가능하다. 라파엘의 중앙정치 참여 불가의 변은 이처럼 오늘의 우리 사회현실에 비추어보더라도 그 비판적 시각은 시사하는 바가 자못 크게 느껴진다.

이상적 사회, 유토피아에 대해서

유토피아는 인간의 도덕적 이성을 중시하는 스토아적 삶을 구현하는 사회인 동시에, 자연적이라는 삶의 향락적 쾌락을 지고의 선으로 하는 에피쿠로스적 인생관이 지배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일견 모순되어 보이지만 개인이면서 사회라는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의 개인이라는 인간을 떠올리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모습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의 모습은 어떤가? 우린 공동체에서 에피쿠로스적이며 개인의 삶은 메마른 사막이 되어 무참히 이성적이다. 이렇게 삶의 궤도를 찾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인간과 사회가 된 연유는 무엇일까?

이상적 사회인 유토피아를 관통하는 사상이자, 인간사회가 부정하고 부도덕한 나락으로 떨어진 이유를 ‘결핍의 공포’와 ‘탐욕’, 그리고 ‘오만’에서 찾고 있다.
결핍의 공포가 없는 곳에선 탐욕이 들어설 여지가 없다. 모든 생활의 수단이 언제든 획득 될 수 있을 만큼 풍부하다면 굳이 욕심을 부릴 이유가 없어진다. 또한 인간의 허영심도 탐욕을 부르지만 모든 인간에게 균등한 배분이 이루어지게 되면 이 또한 차단된다.
한편 오만이란 것은 계급의 구분을 통해 빛나는 것으로 열등한 지위와 계급, 가난한 사람이 존재함으로써 비로소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속에 달라붙은 지옥의 뱀”같은 오만은 평등과 자유, 참된 민주주의의 실현으로 퇴색되어 버린다.

이와 같은 사회, 인간의 허영심도, 오만도 부질없으며, 결핍의 공포가 사라진 사회, 그래서 개인의 자유가 존중되고, 공정함과 평등이 실현된 사회, 하물며 공동체의 사무를 위해 선출된 인물조차 “다스릴 인민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아데무스(ademus)로 불리며, 봉사하는 자임을 표시하는 사회라면 완전한 사회, 이상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사회를 이루기 위해 실천되는 미덕과 제도는 어떤 것들인가? 유토피아에서 토지는 재산으로서의 가치가 아니라 단지 경작되어야 할 대상으로서의 의미만을 가진다. 개인 소유의 사유재산은 존재하지 않으며 존재 할 이유가 사라진다. 그리고 노동력은 국가가 관리하며, 모든 생산품은 공동 분배된다. 공산주의의 일면을 보이지만 이들은 철저히 유물론을 배척하고, 종교적 자유는 물론 지고한 도덕성으로 무장된 사회이다.

또한 개인의 향락이라는 에피쿠로스적 쾌락, 즉 진리의 관조에서 오는 만족인 정신적 쾌락과 신체의 기관을 충족시켜주고 질병도 걸리지 않는 건강한 상태로서의 육체적 쾌락을 지향함으로써 자칫 사회적 평등으로 박탈될 수 있는 개인의 자유, 즉 자연적 삶에 대한 철학을 존중하는 사회이기도 하다.
이처럼‘토머스 모어’의 이상향은 자유가 없는 행복, 혹은 행복 없는 자유와 같은 딜레마를 연상시키는 <멋진 신세계>나 <1984>와 같은 디스토피아의 세계와는 달리 삶의 조화와 균형을 이룬 세상을 꿈꾸고 있다. 그러나 21세기 우리의 현실은 디스토피아의 세계와 점점 닮아가고 있다. 그래서 케케묵은 갈등으로 그 균열이 날로 커져만 가고 있는 듯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고 새로운 가치와 이상을 실현키 위한 사색의 시간으로 ‘대안사회’에 대한 이 걸출한 지성사의 뼈대를 성찰하는 기회는 여간 유익하고 유쾌하지 않을 수 없다.

출간될 당시 원제목인 「사회생활의 최선의 상태에 대해서, 그리고 유토피아라고 불리는 섬에 대해서 유익하고 즐거운 저작」에서 보여 지듯이 인간의 삶이 도달하여야 할 최고의 선(善)으로서의 세계인 섬나라‘유토피아’의 노동과 생산제도, 교육체계, 정치적 민주주의, 신앙의 자유, 도덕심, 통치 형태 등 설명되는 사회일반의 모습은 오늘에 세계에도 생생한 시사를 던져준다. 또한 즐거운 저작이라는 표현만큼 풍자적 서사로 현학적인 체함을 던져버려 현실 비판에 대한 대중적 관심을 추구했다는 점은 토머스 모어의 보편적 이상을 향한 의지를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게 하여 준다. 불완전함을 자각하고 끊임없이 완전함을 추구하려는 겸허함을 가질 때 우리는 어느 작은 부분에서라도 한걸음 완전에 다가갈 것이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집필한 영국의 16세기의 인권과 삶의 질에 비해 오늘의 우리가 다소 나아진 것은 분명하다 할 것이다. 반대자, 소수자, 약자의 목소리에 담긴 진리를 혹여나 놓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자유와 평등을 외치는 모어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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