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색 쇼크 - 고령화, 쇼크인가 축복인가
테드 피시먼 지음, 안세민 옮김 / 반비 / 2011년 7월
평점 :
절판


인간은 엄마 뱃속부터 늙기 시작한다. 모든 인간은 죽음이 인접한 회색지대를 통과해야 한다. 그런데 이 회색지대가 현대문명이 제공하는 각종 환경조건에 의해 길어지고 있다. 즉, 전 지구적으로 인간사회가 ‘고령화’되고 있으며, 급기야는 ‘고령사회’가 되고 있다는 말이다. 인구구조가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것인데, 노년 인구의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아지고 있는 것이다. 노년 인구가 많아진다는 것이 문제가 되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들이 지니고 있는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 특히 부정적 인식에 기초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무능하고, 무기력하며, 느려터진데다 기억력조차 흐리고 탐욕스럽고 더럽기까지 하다는 혐오와 경멸의 의식이 그렇다. 평균수명은 지속적으로 늘어나 지금의 10~20대는 100살에 육박하는 삶을 살 것으로 추정된다. 그렇다면 이들은 인생의 절반을 사회에서 배제된 채 이러한 고정관념에 의해서 소외된 회색의 세월을 살아가야 한다는 얘기가 된다. 왠지 노년의 삶에 대한 재정의와 재구성이 필요한 것 같지 않은가? 이러한 고정관념에 기초한 사회인식과 공공정책, 경제적 행태는 수정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아마 오늘의 사회, 특히 세계에서 손꼽히는 급속한 고령화가 진행되는 한국사회는 엄청난 충격과 혼란의 소용돌이에 빠지고 말 것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전 지구적 과제가 된 피할 수 없는 고령화의 흐름을 어떻게 대처하고 활용할 수 있는가에 대한 그야말로 다각적인 방향에서 폭넓은 방법들을 단지 머리로만이 아니라 몸으로 찾아내고 있다. 노년의 삶이란 무엇인지, 고령화 사회로의 이행에 따른 사회경제적 구조의 변화란 어떤 것인지, 이로인해 야기되는 정치사회적, 경제적 문제는 무엇인지, 그 문제들에 직면한 국가와 지역사회들은 실제로 어떻게 대처하고 있는지, 그리고 여기에 도사리고 있는 노동자와 기업가, 여성과 남성, 자식과 부모, 청년과 노년의 갈등과 해결을 위한 지향점은 어떤 것이어야 하는지를 국가별 실례와 일화를 통해 심층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노년에 대한 인식과 고령화 사회의 현실


고령화라는 전 지구적 시스템의 문제는 회피하거나 그 어떤 처방을 통해 중단시킬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단지 대처 방법만 있을 뿐이다. 노년에 대한 이해와 인식은 극명하게 나뉜다. 쇠락인가하면 새로운 욕망의 전환기로 받아들이기도 한다. 특히 경제적 능력을 기반으로 정신적 육체적 능력을 가진 노인들이나 나이로 자신들의 능력을 규정하는 인식에 저항하는 자들은 노년을 마치 활력의 시기로 이상화시키는 위험한 주문을 외쳐댄다. “60세는 새로운 40세다!”라는 터무니없는 구호를 외치면서. 그러나 대다수의 노인은 세계 최고의 부국인 미국의 은퇴자들 절반이상이 50,000달러(한화 6,000만원)도 못되는 재산을 가지고 사회에서 이탈된다는 통계나, 65세 이상 노인 중 30% 이상이 빈곤 수준을 밑도는 생활을 한다는 영국의 예처럼 점점 가난해지고 생활수준이 악화된 상태가 된다는 것이 현실이다. 하물며 사회보장시스템이 열악하고 미비한 한국사회의 심각함은 거론할 여지도 없다.

이러한 배경에는 나이에 대한 고정관념이 작용하기 때문인데, 사회가 노인을 기피하는 노인 혐오증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항상 실제보다 젊다고 생각하며 노년은 자신과 무관하다는 생각에 지배당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소위‘공포관리이론’에 기초하고 있는데 노인이라는 죽음의 공포를 피해야 한다는 생래적인 종교적 관념에 포획되어 있으며 이를 회피하려는 원시적 인지활동 탓이라 하는 모양이다. 물론 이러한 고정관념을 벗어난다는 것은 인간의 중추적이고 본원적 인지활동이기에 쉽지 않은 일이지만 고령화라는 새로운 현상을 마주하게 된 인간은 이러한 인지적 본성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노력을 진행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이러한 노인에 대한 부정적 인식은 나이든 자를 생산에서 배제시키고 지위를 낮추며, 그들의 역할을 폄하하는 힘으로 작동한다. 우리사회는 이보다 더욱 잔인하다. 아마 어떤 기업이든지 50세 이상의 근로자를 찾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다. 산업화와 근대화라는 변화중심의 트렌드에 전통이 밀려났고, 경험적 지혜가 창조력과의 대결에서 쫓겨났다. 또한 배금주의를 부추기는 소비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 정책은 도덕적 신뢰성보다는 개인적 욕망의 정당성을 우위의 가치로 둠으로써 나이든 사람들은 일 할 곳을 잃었다. 이러한 도덕적 진공 상태는 고령화 시대에 정작 요구되는 공동체의 연대와 가족적 결합을 파괴함으로써 노인의 부양, 사회안전망의 확충에서 심각한 문제를 야기한다.

또한 그들에게 재정적 빈곤과 사회적 지위의 하락을 가속화시킴으로서 오히려 사회적 부담을 가중시키는 역효과를 낳고 있다. 물론 복지포퓰리즘이라고 필수적이고 절대적인 사회보장체계를 경멸하는 기득권을 차지한 부유층은 부담을 회피하니 그저 빈곤해진 대다수의 중노년층을 방치하면 될 걸 뭐가 문제냐고 할지도 모를 일이다. 과연 이러한 무관심과 회피로 사회가 유지될까? 그리고 보수 특권층과 자본가들의 탐욕이 유지 될 수 있을까?

이것은 근년에 발생하는 중노년층과 청년층이 동일한 자원을 나눠가지려고 경쟁하는 현상들에서 그 우려스러움을 발견할 수 있다. 청년 실업의 지속과 일자리를 잃은 4,50대 중년층이 사회 초년병에 돌아갈 일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는 것이다. 서로 생존하기 위한 불가피한 행동인데, 여기에는 사회 및 경제시스템, 신자유주의 지향 정부의 무책임과 몰지각, 그리고 과잉 탐욕이 도사리고 있다. 결국 임시직, 계약직, 파트타임직의 저임금의 초래로 중산층은 저소득층으로 이탈되어 재빠르게 빈곤층이 증가하는 빈곤국의 소득구조로 재편되고 있다. 엄청난 극소수의 부자와 대다수의 빈자가 사는 불평등사회의 고착화로. 또한 직업을 구하지 못한 젊은이들의 지속적 실업은 사회 활력을 저하시키고, 고령화 사회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부담을 악화시킬 것이다.

더구나 이러한 양상은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결혼이 늦춰지고 출산을 하지 않거나 하더라도 인구보충율에 훨씬 미치지 못하는 수준에 머물 것이다. 사례로 등장하는 스페인이나 일본의 젊은이들처럼 가임 여성들의 자궁이 계속 비어있는 상태가 될 것이다. 이것은 국가 생산력을 저하시키는 직접적 요인으로 이어지며, 가뜩이나 부양해야할 인구가 늘어난 상황에서 그 사회적 부담의 한계로 매우 곤란한 지경이 될 지도 모른다. 한국사회의 다자녀 지원금 제도는 부유한 계층에게 부를 몰아주는 방식이다.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할 수 없는 대다수의 젊은이들, 즉 가난한 대다수의 시민을 위한 정책과는 멀어도 한 참 먼 책략일 뿐 이다. 근본적인 대책, 젊은이들이 일 할 수 있는, 그들이 중산층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우선되어야 한다. 여기서 시작되지 않는 정책은 결코 이 사회가 마주하게 될 고령사회가 야기하는 구조적 문제를 해결할 수 없을 것이다.

고령자들의 사회 - 선진국의 실례들

책은 고령화 사회를 맞이하거나 고령자들로 인해 야기되는 현상을 스페인, 미국, 일본의 실례를 통해 산업구조가 어떻게 재편되어야 하는지, 고령자들을 돌보는 사회적 시스템과 이로인해 유발되는 사회적 현상이 어떤 것인지를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우리가 무엇을 준비해야 하고, 고령자들을 어떻게 처우하여야 하는지, 그리고 발생하는 문제점들 마다 어떻게 대처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중대한 시사를 던져준다.

미국 남부 플로리다주의 ‘새러소타’라는 노인인구의 비율이 절대적으로 높은 지역을 예로 들고 있는데, 도시 인구의 대다수를 점하는 노인들의 생활양태로 인해 도시산업구조가 어떻게 변화하고 형성되는지, 그들이 필요로하는 것이 진정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해준다. 지방정부와 중앙정부가 그네들의 경영방식과 공공서비스에 대한 기존의 체계를 재검토하여야 하는 이유들이라 할 수 있다. “비용이 아무리 바싸더라도 삶은 여전히 인기가 있을 것”이라는 말처럼, 회색지대에 있는 사람들은 건강한 삶을 추구한다. 그들은 새로운 관계를 맺어 삶을 재구성하고 싶어하고, 신체활동을 위해서 학술강의는 물론 예술수업에 참여하려 한다. 노년의 속성인 비인간화와 비가시화, 주변화에 도전하려하며, 살아있는 동안만큼은 최상의 건상을 유지하려 한다.

또한 자녀들에 의지하는 것 외에 다른 대안이 있다면 기쁜 마음으로 대안을 선택하려 한다. 이러한 현상은 노화방지 치료 서비스를 활성화하고 각종 질병의 치료를 위한 의료산업을 산업의 중심영역으로 변화시키며, 그들의 인지능력과 재정을 보호하고 지원하기 위한 로펌, 회계법인, 건강관리 부문을 진작시킨다. 또한 그네들의 정신과 육체적 건강을 위한 사회적 네트워크의 요구로 인해 교향악단, 극장, 아트센터가 재배치되며, 간호학교, 홈케어 산업이 부양된다. 지역과 이웃이라는 공동체를 떠나려 하지 않는 고령자의 특성은 건강과 장수에 유익하며 따라서 이들 공동체를 지원할 시설을 확충한다. 이것이야말로 신체의 마모를 촉진시키는 외로움을 차단하는 효과적인 사회시스템이라 할 수 있다.

이와 같은 미국의 사례는 고령화 사회에서 고령자들을 위한 정책과 산업구조를 편성하는 방향을 읽을 수 있게 해준다. 한편 스페인의 경우는 고령자들에‘돌봄 서비스’의 동향과 정책의 일면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제공하고 있다. 보살핌이 필요한 인구는 노인인구 15명중 1명 꼴이라고 한다. 도와주는 사람의 비율도 높아져야 함을 의미한다. 게다가 이 인구는 계속해서 증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역시 신생아의 출산율이 우리처럼 극도로 낮은 상태이다보니 생산 가능인구이자 노인 부양인구의 감소로 고충을 겪고 있다. 이들은 남미 개발도상국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여 그 부족한 인력을 충당하고 있다. 한국사회도 외국인 거주자가 백만명을 넘어섰다고 하지만, 단순한 산업노동 인력으로서만이 아니라 궁극적인 한국사회의 동력원으로서 적극적인 유입정책을 검토하여야 할 것 같다.

우리 정부도 고령화를 대비한 정책의 일환으로 대대적인 사회복지사의 양성이나 간호조무사 등 의료서비스 인력을 확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기능적 인적자원의 충당으로 고령화 사회의 대처가 되지는 못할 것이다. 자연 발생적인 은퇴자들의 도시를 위한 기획이라든가, 사회복지 및 요양시설과 그 운영 및 지원시스템의 확충, 사회적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고령자들의 일자리 창출, 나아가서 50대 중노년층의 조기은퇴를 종용하는 사회의 구조적 인식의 변화를 통한 직업의 안정성 확보 등 근원적이고 미래지향적인 정책들이 조속히 시민적 동의를 얻어내고 실천되어야 할 것이다.

우린 신자유주의와 자본주의의 교조적 신봉으로 내가 중심이라는 개인적 욕망만의 추구를 지향해왔다. 물질적 풍요의 이미지를 끊임없이 제공하는 정부의 선전으로 가족과 공동체의 공감이 결여되고 파괴되었다. 이는 돌봄을 받아야 하는 고령자들이 급격히 증가함에도 사회보장시스템이 열악하며, 개인의 능력으로만 이를 극복하기를 바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전통적인 부양의무를 사라져 버리게 한 꼴이다. 뒤늦게 물신주의에 경도된 이웃나라인 오늘의 중국사회가 과거 유교적 전통을 상실하여 가족간의 부양정신을 상실한 채 허둥거리는 것과 상통하는 것이다. 이 도덕적 진공상태를 메우기 위한 정신적 부패를 시정할 제도적, 정책적 방안의 마련도 시급한 과제라 할 것이다. 부모의 부양의무가 옛날 남의 얘기처럼 되어버린 오늘의 한국사회는 그나마 더욱 복원되어야 할 미덕일지도 모른다.

고령화 사회가 우리에게 안겨주는 과제는 우리만 마주하는 것이 아니다. 전 지구적 문제이다. 따라서 그 대응책은 여러 선진국들의 대처에서 우리가 실천하기 유용한 정보와 정책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책은 그러한 의미에서 종합적이고 실천적인 실례들을 풍부하게 제공하고 있다. 취업과 실업의 문제, 산업의 문제, 노년의 생물학적, 심리적 의미와 경제적 사회적 파급의 문제, 공공정책과 관점의 변화에 대해서와 같이 총체적인 고령화 사회의 이해를 갖게 되는데 더없는 가이드가 되어준다. 회색지대의 연장이 우리들에게 쇼크가 될지, 아니면 인간사회의 새로운 전환이 될지는 어떻게 대응하는가에 달려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가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고 시민적 연대감을 되찾아 모든 사람들이 신뢰하고 안심하며 살 수 있는 건강한 사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램을 가져본다. 정부 정책자들, 입법기관의 입법자들, 경제 및 공공서비스 기획 및 일선 행정관료들, 그리고 사회복지기관 관련자들이 관심을 기울여 읽어주었으면 하는 기대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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