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면의 도시 자음과모음 하이브리드 총서 5
정진열.김형재 지음 / 자음과모음(이룸)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우린 각종 권력이 만들어 낸 무수한 장치와 제도, 법규 같은 시스템에 그 어느 때보다 잘 길들여져 살고 있다. 더구나 자본주의가 만들어 낸 물질의 풍요와 소비, 향락의 물결은 이러한 시스템에 도취케 하여 마치 자유와 평등에 어떠한 제약이나 폭력성에 노출되지 않은 듯한 착각으로 몰아넣는다. 약삭빠른 이들은 자본과 권력의 하수인이 되어 혹여 권력과 부의 대열에 승차할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에 이 시스템의 강화에 혼신의 힘을 다한다. 그것이 마침내 자신과 자신의 가족과 동료, 이웃, 그리고 타인들을 향한 잔혹한 비수인 것을 알지 못한 채.

이 책은 일상의 삶을 덮어 인간 개체를 지배하는 바로 이러한 “시스템이 제공하는 기성화된 포맷의 균열된 틈에서 새어나오는 정보들을 재가공하고 재배열”하여 그것들이 어떻게 개인들을 좌절케 하고, 권력을 행사하며 삶의 불평등성을 심화시키는지, 또한 개인들의 자유를 억압하고 자신들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있는지, 그 실체를 드러내는 작업을 수행한다.
특히 CCTV, 지도, 명함, 전단, 다이어그램, 주민등록증, 인터넷사이트의 이미지, 이정표 등 시각적 언어들의 조각들을 재료로 하여 지배 시스템이 은폐한 새로운 의미들을 드러내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한 기획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편리성이나 삶의 안전성을 내세우는 시스템으로서의 도구인 CCTV나 신용(교통)카드를 생각해 보자. 맨해튼의 CCTV(감시카메라) 분포도가 예로 등장하는데 과연 이것이 범죄예방이라는 안전한 삶을 위한 도구로 설치되고 작동되고 있었을까? 대다수의 사람들은 자신들을 감시하는 자의 입장에서만 생각하는 터무니없는 가정을 한다. 자신이 노출되고 감시당하며 추적당하는‘보이는 자’로서의 시선은 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일까? 결코 우리 대다수의 시민들은 감시당하는 자들이다. 이 분포도를 분석한 결과 맨해튼의 대량 자본소유자들의 재산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었다. 결국 권력과 자본을 지키기 위해 대다수의 시민을 감시하기 위해 설치된 것이지 시민의 삶을 보호하기 위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신용(교통)카드는 우리의 행선지와 이동경로, 시간, 먹은 것, 구매한 것 등 개인의 삶을 유리알처럼 드러내고 이것은 자본(금융)과 국가(공권력)가 개인을 구속하고 이용하는 근거로 활용 한다.

게다가 지문과 개인의 거주지, 주민번호등 신상내용이 기재된 주민등록증은 국가나 공권력 등 소수만이 접근하는 정보가 아니라 누구나 요구하고 이용하는 일상적 자료가 되어버림으로써 국경너머까지 접근을 허락하는 지경에 이르러 있다. 우리 사회가 개인, 프라이버시 침해에 대해 얼마나 무심한지, 사적 자유를 소홀히 취급하는지를 보여주는 한 징표라 할 수 있다.
이러하다보니 전화번호와 메일주소를 필요로 하는 성매매 비즈니스가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에까지 깊숙이 침투하는가하면, 노출된 개인을 등급화하여 신용점수를 매기고 개인의 정체성을 그들의 잣대로 결정해버린다. 사람들은 이제 시스템이 쳐놓은 제한된 그물을 벗어날 수 없다. 그 범주화된 경계 내에서 시스템의 입맛에 맞는 행위만 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 외에도 익명의 누군가가 작성하여 인터넷에 올린 조중동언론과 재벌의 혼맥도라던가, 막후실력자, 밤의 대통령, 배후 세력, 침묵의 카르텔 등 표면적 사실 이면에 긴밀하게 얽히고설킨 인적네트워크를 그린 다이어그램같은 시각언어들은 완전경쟁 시스템 하에서 공정한 경쟁을 한다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기만과 불온한 불평등을 읽어내게 한다.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진 대기업이라는 거대 자본이 어떻게 가격담합과 독과점으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대다수 시민의 경제를 착취하는지 이 구조도가 한 마디로 정리해 주는 것이다.

한편, 이 책의 표지그림인 시청광장의 사진은 소위 소통과 의견 표출의 공간으로서의‘광장’이 탐욕스럽고 부정한 권력에 의해서 어떻게 훼손되는지를 보여준다. 시민의 촛불시위를 방해하기 위해 무장한 시위진압대와 경찰버스로 에워싸거나 광장 개방을 금지하는 작태를 자기들만의 언어로 합리화 한다. 강남권의 압도적 지지로 간신히 당선된 시장은 16차선의 넓은 광화문 거리를 조형물로 가득 채움으로써 광장 고유의 기능과 의미를 상실시키는 작업을 잽싸게 완료했다. 시민의 의사 표현공간을 봉쇄하겠다는 적극적 의지일 것이다. 자동차의 행렬이 그치지 않는 도심의 도로 한복판에 분수를 뿜어 올리는 공공 쉼터를 만든다는 이 천박한 발상, 위선과 기만을 무어라 해야 할지, 게다가 그곳에서 속없이 헤헤대는 인간들을 보는 것은 정말 눈뜨고 보지 못할 짓이다.

시각 언어가 이와 같이 우리에게 은밀하게 그 비밀을 속삭이는 예는 무수하다. 지하철 역사를 안내하는 안내도와 주변지도에서 우린 거대 상업 자본만이 독식하여 시민들의 삶을 온전히 지배하는 양상을 목격하게 된다. 영세지하상가와 주변상가는 이젠 몰락하여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다. 먹고, 마시고, 입고, 놀고, 이동하는 모든 순간을 이들 거대 자본이 지배한다.

이 책은 이처럼 우리들이 무심코 지나치는, 혹은 일시적 흥미로 흘깃 보았던 것들, 그리고 일상적 삶을 에워싸고 있는 무수한 시각적 이미지들, 이 도시가 쏟아내고 있는 수많은 기호들의 이면에 어떤 부정함이 은폐되어 있는지, 그것들의 실질적 의미가 무엇인지를 실체적으로 드러내어 진정한 시민적 자유와 평등, 진실한 삶의 세계를 이해케 하는 또 다른 관점과 방법을 안내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존재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권력과 거대 자본이 얼마나 교활하고 내밀하게 시민의 삶을 훼손하고 있는지 알아야만 정의(正義)로운 사회를 요구할 수 있으며, 말 할 수 있게 된다. 아주 짧은 글이지만 다양한 시각언어들의 실례와 결합하여 효과적인 비판 양식을 제공하는 참신한 기획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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