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한계급론 - 문화.소비.진화의 경제학 e시대의 절대사상 25
원용찬 지음 / 살림 / 2007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유한 계급론』은 고전경제학의 전제인 기계적이고 의인화된 애니미즘적 사고를 전복시킨 최초의 경제학이라 할 수 있다. 오늘날 복잡계경제학이나 행동경제학의 준거점을 제시하였으며, 희소성과 산술적 효용 같은 수동적으로 맞추어지는 인간이 아니라 능동적 행위의 주체로서 인간 행동을 통찰한 선견을 지닌 이론이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古典으로서 오늘의 자본주의 사회를 분석하고 과시적 소비현상을 설명하는데 이처럼 직접적인 이론적 배경과 영감을 제공하는 책도 없다는 측면에서 그 학문적, 실용적 가치는 아무리 존중해도 모자라다 할 것이다.

또한 과시적 여가와 소비라는 상징체계에 근거하여 소비와 문화에서 기호의미론을 최초로 열었으며, 경제학을 단순한 물질주의에서 해방시켜 해석학의 차원으로 끌어올려 ‘소비 상징의 해석학’이라 불릴 만큼 현대사회의 특성인 소비중심의 경제행동을 분석하는데 중대한 틀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사고의 기저를 형성하는‘베블런’의 인간본성에 대한 정의는 ‘제작본능’과 ‘경쟁심’으로 대별된다. 인간의 영원한 특유의 본성으로서 제작본능이란 인간생명의 존속이나 증식에 직접적 도움이 되는 활동을 말하며, 경쟁심이란 자신과 남을 비교해 뽐내거나 공훈과 명성을 얻으려는 인간본능이라 할 수 있다. 결국 베블런은 이 두 개의 본능을 중심으로 하여 인류의 습속을 고고학적 기원에서 발굴해 낸다.

특히 이러한 인류의 역사에서 사유제도, 즉 소유가 어떻게 출현하였으며, 계급적 서열질서가 발생했는가에 대한 그의 고찰은 소위 상류계층, 그의 표현대로 유한(有閑)계급의 행동과 심리적 양태를 설명한다. 수렵과 채취를 통한 자급자족과 공정한 배분을 기초로 한 협력 중심의 공동생활 시대에서는 소유나 서열의 개념이 존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폭력을 통한 약탈을 행동양식으로 한 무리에게는 그 약탈의 성과물, 즉 전리품을 많이 획득한 자일수록 존경과 명예의 각광을 받게 되었음을 추측하는 데는 그리 어려움이 없다. 이는 결국 피땀 흘려 일한 노동의 대가 없이 남의 것을 빼앗는 행위만으로 생존과 지위를 획득하는 사회로 전환되었음을 의미한다. 약탈자가 존중받는 시대, 그래서 이 약탈적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받고 부러워할 만한 양식으로서의 사고습관으로 확산되고 당위화 되었다. 바로 야만의 시대, 야만적사고가 인간의 습속으로 체화되어 버린 것인데, 여기에는 몇 가지 중요한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 폭력과 야만을 칭찬하는 야만사회에서는 더 이상 인간의 땀과 노고가 미화될 수 없다는 것이며, 이 약탈과 폭력으로 획득한 공훈(exploit)은 집단 전체에 존경과 미덕의 기준이 되고, 이에 근거하여 계층의 차별화, 서열화가 이뤄졌다는 점이다. 게다가 전리품은 소유, 즉 사적소유가 개인의 생산적 노동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는 도덕적 인간이라 자부하는 우리들에게 당혹스러운 사실을 확인시켜주는 것이 된다. 바로 이러한 사고 습관이 인간행동의 본성에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습관화된 문화적 상징체계는 우리를 지배하고 있는 관념에 여실히 내재되어 있다. 겉으로 노동은 신성하다고 하지만 내심으론 생산 활동을 비천한 것으로 경멸하며, 노동에 참여하지 않고 소비하는 생활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나아가서 자신은 일하지 않아도 소비생활을 넉넉히 즐길 수 있다는 과시적 행태를 지향하는 것이 오늘의 소비행태 모습이기도 하다.
결국 소비를 과시하는 행동은 나는 너보다 우월적 지위에 있음을 자랑하는 것이며, 비천한 노동에 참여하지 않는 존재임을 주변에 드러내 서로를 구별하고 차별하는 방식이 된다.

이러한 행동양식은 그 어느 자본주의 국가보다 물질주의에 경도되어있고 유교적 선민의식이 깊게 자리 잡고 있는 한국 사회에 유독 심하게 표출되고 있는데, 공학이나 기술을 도외시하고, 공장, 농업 등의 노동을 천시하는 기질이나, 고가의 해외 브랜드 가방을 사기위해 늘어선 길고긴 행렬, 내 자식만큼은 노동을 회피하고 유한계급의 부르주아적 대열에 진입하기를 희망하는 학부형들의 망국적 과외열기 등 헤아릴 수 없는 양태가 입증하고 있다. 이는 바로 타인에 대한 우월함과 성공을 표현하고자 하는 관습적인 표현이라 할 수 있다. 노동이 생산한 재화는 원하지만 생산하는 노동은 회피하려는 욕구, 바로 야만인의 약탈적 습속의 발현이라 할 것이다.

이러하다보니 중, 하류층의 너도 나도 상류층의 과시를 모방하기 위해 경쟁적으로 소비에 참여한다. 모두 똑 같은 브랜드 가방을 메고, 주말이면 차를 몰고 교외로 해외로 여가를 위해 떠난다. 그러나 정작 상류층은 이들이 멘 가방, 이들이 보내는 노동과 다를 바 없는 여가에는 관심이 없다. 중하류층이 쉽고, 단기간에 따라하거나 대가를 지불할 수 없는 것들을 하며 과시한다. 경주마에 투자하고, 요트를 타고 자기들만의 선상 파티를 하며, 고가의 예술을 감상하고 식별하는 안목을 키워나간다. 골프채 메고 해외나가면 상류층이라고 착각하는 졸부들이 도저히 따라갈 수 없는 문화적 생활도식을 가지고 구별하고자 하는 차별을 극복할 길은 없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이 넘을 수 없는 상류층들의 아비투스는 단시간에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이를 베블런식으로 말한다면, “제작본능은 생산노동의 불참 속에 매몰되고 경쟁심과 합체하여 명예를 뽐내는 과시적 행동으로 표출”되어,  “너와 나는 근본적으로 다르고 부러움을 자아내는 선망의 대상이 되도록 자랑”함으로서 건너갈 수 없는 거대한 문화적 자본에 질식케 하는 것이다. 인간 생활에 직접적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 결코 생산적 여지가 없는 비생산적인 것들, 쓸모없는 지식과 취향을 세분화 시켜 발전시킨 구입 불가능한 예술들, 노동과 시간이 쓸데없이 낭비된 불완전한 수제품들이 더욱 비싸다는 역설이 실현된 기형적 사회로 내달리고 있다. 상류층을 모방하기 위해 안달하는 중하류층의 계층 도약에 대한 막연한 환상은 인간을 지배함으로써 노동 없이 사는 상류층의 점점 보이지 않고 은밀하게 이루어지는 소비로 적대감이 아닌 동반의식으로 조작하고 있지만, 어느 순간 이들이 도저히 상류층을 흉내 낼 수 없게 될 때 그 갈등과 파괴적 양상은 상상하기 어려운 것일 것이다.

베블런이 비난하는 것은 과시적 소비와 여가를 통해 타인의 시샘어린 비교를 하고 차별화하려는 유한계급의 행태이지, 사치와 낭비가 아니다. 갈수록 극단화되어가는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간극, 제작본능이라는 인간의 창조적이고 생산적인 양식의 멸시환경, 모두가 비생산적 낭비를 통해 과시하려는 소비주의적 풍조의 위협성을 지적하는 것이다. 특히 상류층이자 기업영리계층은 중하류층의 소득과 에너지를 소진시키고 과시적 소비를 전파함으로써 하류계급을 보수화시켜 자신들의 소유를 더욱 늘려나간다. 그럼에도 중하류층은 자신들의 살을 깎아 먹는 줄 모르고, 여전히 상류층의 교활한 행동을 추종한다. 그러나 영원히 이들 중하류층이 상류층의 술책에 놀아나지만은 않을 것이라 여겨진다. 제작본능과 경쟁이라는 약탈적 본능의 두 본능의 비중이 오늘은 분명 약탈적 본능이 앞서 자기 해체와 파괴라는 타나토스의 세계에 우리 사회가 몰입하고 있지만 이 오염된 체계는 반드시 정화될 것이다.

“자기중심적, 질투, 시기, 자기도취, 타인과의 공감결여, 속임수 등으로 자기를 확장하려는 나르시시즘”에 빠져있는 오늘의 사회, 주체성을 상실하고 타자의 욕망을 획득하는데 전전긍긍하는 우리들, 자기 자신들의 내면을 불편하더라도 들여다보아야 할 때이다. 신분상승의 무형적 가치, 즉 위신재(prestige goods)를 생산하려는 눈물겨운 중하류계층의 과시적 여가는 노동행위에 불과하다. 이 여가노동에서 귀환할 때 마치 자신이 유한계층인양 착각의 덫에 빠져들지만, 실체와 진실을 보는 안목을 키워야 할 것이다. 우리가 지양하고 배제하여야 할 것이 무엇인지, 우리들이 지향하여야 할 제작본능, 노동의 가치가 무엇인지를 말이다. 우린 쾌락과 고통의 재빠른 계산기도 아니며, 더 이상 엄청난 광고마케팅 비용으로 낭비를 제도화시켜 지속적으로 영리를 추구하는 이 체계를 마냥 수동적으로 따라가서는 안 될 것이다. 베블런의 문화자본과 제도로서의 경제에 대한 이 고찰은 오늘의 인간행동과 사회현상을 해석하는데 여전히 유용한 지혜를 안겨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