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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
미셸 우엘벡 지음, 김윤진 옮김 / 문학동네 / 2002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작가, ‘미셸 우엘벡’이 초지일관하는 인간사회에 대한 이상향이 있다. 그는 새로운 경쟁과 그칠 줄 모르는 물욕이라고는 없는 새로운 인종, 신인류가 꾸려가는 평화와 자유가 넘치는 미래세계를 희구하는『소립자』같은 작품에 이르기도 했으니 이는 역설적으로 그가 오늘의 인간사회에 지닌 회의와 역겨움의 정도를 표현하는 것이기도 하다.
이 작품역시 오늘의 서구물질사회가 안고 있는, 나아가 서구화를 맹목으로 지향하는 한국과 같은 사회가 받들고 있는 합리적 이성주의라는 것, 그리고 사람의 의견, 취향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포함한 삶의 모든 방식들에 완벽한 표준화를 보장해준 돈에 대한 열정, 그래서 냉정해지고, 지나치게 개인의 존재와 권리에 집착하며, 정확한 규칙과 선행적 합의 같은 것을 강요하고, 그에 열중하며, 마침내 경쟁에 승리하기 위해서 한없이 비안간적이고 잔인해지는 오늘의 사회를, 그 치부들을 거침없이 조롱하고 비웃어댄다.
이런 연유에서 그의 소설은 오늘의 인간들이 위선 속에 은폐시킨 것들을 여과 없이 꺼내들고 마음껏 떠들어댄다. 인종에 대한 속내, 자신의 종교에 대한 편협성, 성적 취향 등까지 마구 쏟아낸다. 나 개인이 싫어하고 짜증나고 폭력적이며, 이기적인 것들을 왜 말 할 수 없다는 것인가? 하고 말이다. 이는 오늘의 권위적 담론이 덮고 있는 억압의 기만성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지, 누군가인 타자에게 강요하거나 선동하려는 의도는 아니다. 이는 냉정한 합리성이라는 척도로만 세상을 재단하고, 그래서 이를 거대한 규범으로 만들어 모든 인간을 그 틀 안에 가두어두려는 사회의 암묵적 통념과 가치관, 윤리의식을 깨부수고자 하는 적극적인 저항 수단이 되는 것이라 하겠다.
이 소설 『플랫폼』에는 극사실적이고 과감한 성적묘사가 주제를 연결하는 문장이라 할 정도로 빈번하게 그러면서도 평범하게 이야기의 중심 틀을 구성하고 있다. 이를 실현하는 이들은 주인공인 문화부 공무원인 ‘미셸’, 그리고 여행사와 호텔 간부인 ‘발레리’인데, 두 사람의 감각적인 사랑의 이야기는 바로 인간의 진정한 행복, 세상이 가야할 길을 상징함과 동시에 무언가 잘못된 길로 들어선 현대사회의 속성과 절묘하게 대비되는 요소로 이 작품에서 비켜나갈 수 없는 핵심장치이다.
살갗이 직접 부딪히는 섹슈얼리티, 그러나 점점 이를 회피하는 현대인들의 정신작용과 행동양식에 도사리고 있는 것은 무엇일까? 하는 질문이기도 하며, 인간의 즐거움, 행복을 위해서 남아있는 거의 유일하다시피 한 본질적인 것이라는 주장이기도 하다.
현대의 도시인들이 “이제 무엇이건 교환하고 싶은 욕망도 안 느끼고”, 또한 멘탈리티(mentality)에 맞지도 않게 된 것은 더 이상 타인을 즐겁게 해주는 것, 자신을 기꺼이 타인을 위해 내어 놓는 것의 의미를 완전히 상실한데 이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건 나르시시즘, 개인성의 강화된 느낌에 침몰되어가는 자본주의 물질사회, 끝도 없이 멈추는 것은 곧 종말이라는 삭막한 형식에서 어쩔 수 없이 출현하는 현상이다. 그러다보니 “제각기 유일한 자기만의 감각들에 흠뻑 빠져 자기 살갗 속에 갇혀”지내게 되는 것이고, 이것이 세상을 보는 오늘의 사람들의 방식이 되어버리고 말았다. 이제 더 이상 타인과 일체화될 가능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행동방식은 고통을 찾고 잔혹해진다. 200여 년 전 꼭‘사드’가 한 말처럼 되어버렸는데, 혹여 우엘벡의 작품이 21세기 판 사드의 계보에 잇닿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랑 할 줄 모르는 현대인들, 서로의 살갗을 부딪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 그저 유혹하고 과시하는 자기도취에 허우적대는 사람들, 그래서 사디스트들인 현대인들은 SM처럼 “모두가 장갑을 끼고 도구를 사용”하며, “결코 살과 살이 맞닿는 일도, 키스나 가벼운 스침, 애무도 없”는 “정확히 섹슈얼리티에 반하는” 행동 양식을 창안했을 것이다. 정확한 규칙과 선행적 합의가 되어 있는 순전히 지적인 세계의 역겨움 속으로. 그래서 이러한 피부 접촉이 없는 이상한 변태행위에 역겨워하는 나는 진정 성적이고 동물적인 모습을 가지고 있기에 정상인 것이니 얼마나 다행인 줄 모르겠다.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그저 권태로운 삶에 체념하고 살아가는 미셸을 스스로에게 회의적인 모습이 좋아 사랑에 빠지는 발레리는 완벽한 섹슈얼리티를 지향하는 인물들이다. 판에 박힌 관료 생활에 익숙한 미셸과는 달리 발레리는 치열한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소위 잘나가는 워킹우먼이다. 그러나 그녀의 선량한 성품과 타인의 즐거움을 우선 배려하는 태도는 일종의 냉정한 현실주의에 종속된 요즘의 여성들과 다르기만 하다. 따라서 그녀는 섹슈얼리티의 근본을 상실한 SM을 싫어하는 지극히 성적이며 동물적인 감성을 지니고 있을 수밖에 없다. 현대인들이 망각하고 잃어버린 것을 간직하고 있는 사람, 이 두 사람의 사랑에 얼굴이 홧홧 달아오른다. 적도의 태양이 작열하는 쿠바의 푸른 바닷가, 그리고 태국의 매혹 넘치는 클럽 등에서 벌어지는 정사는 그 자체 그대로가 살아있음에 대한 기쁨이요 행복을 확인하는 유일한 것이 된다. 물론 인간의 행복에 대해 지나치게 극단적인 결론 아니냐고 할 수도 있겠지만 정말 행복감에 젖어들게 하는 것이 오늘의 세상에서 다른 무엇이 있는가를 진실 되게 고민해보면 그 답변은 그리 쓸만한 게 없을 것이라는 점에서 반증될 것이다.
사실 부분마다에서 비틀린 우엘벡의 시선이 제어되지 않은 채 극단을 치닫는 것은 부인 할 수 없다. 서구 백인들의 동남아, 아프리카, 중남미지역서 벌이는 성적탐닉을 위한 만연한 관광이 마치 서구사회의 현대화가 만들어낸 건조하고 개인화된 세계를 벗어나 보다 인간적인 제3세계의 순진한 관능을 찾는 보상심리라고 합리화하는 것처럼 말이다. 여기에 더해 이슬람에 대해서는 “일신론에 가까워질수록 점점 더 비인간적이고 잔인해집니다. 이슬람은 모든 종교들 가운데 가장 철저한 일신론을 강요”하고 있다면서, 혐오감을 숨기지 않고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더구나 미셸의 연인, 발레리를 이슬람 테러범들의 총격으로 사망하게 하여 그 증오심을 확인하기까지 한다. 어쨌든 그의 주장처럼 내 생각도 말하지 못하는 것이냐, 그래서 뭐가 어떻다는 거냐! 식의 항변은 사상의 자유라는 기본권의 발휘정도로 넘어가야 할 것 같다. 개인의 행복을 도저히 보장 할 수 없는 불투명한 세상, 지금 우리들이 만들어가고 있는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점점 더 자주 의심이 생겨나는 것에 대한 그 근원을 드러내고 대안을 찾는 진심의 여정을 담고 있으니 말이다. 물적 과시에 몰입하고 있는 현대인들, 근본주의적 교조적인 종교와 정치사상이 뿜어내는 광기, 이것에 휘둘려 성과 종족보존의 본능마저 이탈케 하는 현대사회는 과연 지속 가능할 것인가? 하는 의문이다.
“그녀의 육체가 내 몸 아래에서 전율하는 것이 느껴졌을 때 나는 종종 모든 악이 소멸된, 전적으로 차원이 다른 의식세계에 다가선 느낌이 들었다. (中略) 유보된 순간, 평안과 격동을 조장하는 신이 된 것 같은...”.... “이 몇 개월간의 추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행복했음을 증명할 수 있다.”,“내가 사랑을 이해하지 못했다면 그 나머지를 이해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섹슈얼리티를 문학으로, 그리고 사회비평으로 마침내 철학으로 인도하는 그러면서 아름답고 눈부신 사랑이 있는 그런 정말 기묘한 걸작이다. 우엘벡은 결코 그의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 작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