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위대한 여행
앨리스 로버츠 지음, 진주현 옮김 / 책과함께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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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의 인류, 현생인류라고 하는 종(種)은 과연 언제부터 이러한 모습을 하고 있었을까? 또는 대체 최초의 기원이라 할 수 있는 어떤 출발지가 있었을 텐데 그곳은 어디일까? 그리고 어떻게 지구상의 모든 대륙과 섬에 퍼져 나갔을까? 황색과 흑색, 백색의 피부색과 눈과 코 등 얼굴의 윤곽이 뚜렷하게 차이나는 것은 왜일까? 아무튼 뿌리를 찾아가다 보면 이러한 의구심들이 해결되지 않을까하는 기대를 하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들, 즉 현대호모사피엔스에 대한 학계의 통일적이고 확정적인 결론이 있다는 것일까? 사실 호모일렉투스니 호모하이델베르겐시스, 네안데르탈인 등 호미닌 種에 대한 분류에 있어서 고생물학계도 병합파와 세분파로 나뉘어져 있는 모양이다. 다양한 형태의 화석을 하나의 종으로 묶으려는 병합파와 화석간의 차이점에 주목하려는 세분파는 호모사피엔스니 나아가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니 하는 식의 모호한 각축장이 되고 있다. 게다가 현생인류의 동아프리카 기원을 주장하는 서구중심의 다수파와 오늘의 중국인은 호모일렉투스로부터 진화했다고 주장하는 중화중심의 지역 기원설까지 그야말로 다종다양한 견해들이 있다.

이처럼 절대적이고 결정적인 이론이 정립되지 못하는 것은 입증할 수 있는 구체적 증거의 희소성과 불확실하고 불명료할 밖에 없는 화석에 의존하기 때문이라 할 것이다. 지질학, 생물학, 해부학, 유전학 등을 전문배경으로 한 유능한 고고학자들이 엄청난 과학기술의 도움으로 연구 매진하고 있음에도 수 만년, 수 십 만년 전의 흐릿한 흔적들을 통해 그 계통의 논리성, 역사성을 규명하는 일에는 한계가 존재하는 것이 어쩜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저자인 영국의 해부학 의사인 이 여성학자가 현생 인류의 지난한 발걸음을 좇으며 들려주는 다양한 관점과 고고학적 방법들, 그리고 그 증거인 화석과 유물, 유적에 대한 이야기들은 주류의 주장을 수용할 수도 있으며, 혹은 새로운 돌파구를 발견하거나 반론을 지닐 수도 있게 안내한다. 특히 현학적인 접근을 피하고 인류화석의 발굴지들을 중심으로 아프리카에서부터 아시아, 유라시아, 오세아니아, 유럽, 아메리카대륙에 이르는 직접의 체험적 여정을 에세이로 담아내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고고학을 유쾌한 지식여행으로 이끌고 있어 수월한 이해를 도와준다.

현생 인류에 대한 기원과 그들이 지구촌 곳곳에 이르게 되는 경로는 저자가‘아프리카 기원설’에 학문적 동의를 하고 있다는 의미이지만, 다른 이론이나 주장을 경시하는 것은 아니다. 반대 이론이나 그들이 제시하는 화석과 지질학적 증거, 유물과 흔적들을 그대로 제시하고 있다. 다만, 그 과학적 접근이나 증거물에 대한 연대측정의 불완전성에 대해 논리적인 비판을 하고 있어, 이에 대한 수용은 그대로 독자의 몫이란 판단에 맡겨지고 있다 할 수 있다. 한편 이 저술이 지향하는 대중적 접근이라는 친절함이 돋보이는데, 대략 30여 쪽에 달하는 서문에 지구의 지질학적 연대인 플라이스토세(홍적세), 즉 빙하기의 연대별 세분을 통해 인류의 이동과 기후, 환경의 영향을 연결 지을 수 있게 하여주고, 화석의 연대측정 기법인 발광 연대 측정, 방사성 탄소 연대측정, 포타슘-아르곤 연대측정, 전자스핀 공명법 등이 어떠한 방법을 통해 그 연대성을 적확하게 측정해내는지 그 과학적 신뢰성을 알려주기도 한다. 더구나 모계(母系)로부터만 물려받는‘미토콘드리아 DNA’를 통해 인류의 모계를 역추적하여 그 기원에 이르는 유전기술은 강력한 과학적 신뢰의 기반이라는 새로운 이해를 안겨주고, 이후 본격적인 고고학적 발견들과 주장들을 독자적으로 해석하고 비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다.

저자는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이 가장 많이 발견된 동아프리카인 에티오피아‘헤르토’와 ‘오모 키비시’의 발굴 현장을 시작으로 현생인류의 위대한 흔적을 따라간다.  호모사피엔스는 동아프리카를 벗어나 언제부터 동쯕으로 또는 북쪽과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했을까? 넓게 막아선 사막과 빙하, 산맥을 넘어설 수 있었던 시기는 과연 언제였을까? 그 가능한 이동 경로는 어느 곳이 될 수 있었는지 화석 발굴지들을 연계하여 인류의 조상들의 발자취를 좇는 과정은 진정 신비로울 정도로 경이롭기만 하다. 해안을 따라 대륙에서 대륙으로 그래서 인도를 지나고 동남아시아의 인도네시아로, 그리곤 오늘보다는 해수면이 낮아 근접해있던 섬들을 건너 오스트레일리아로, 또는 동북아시아로 이동하는 대 여정은 그야말로 호모사피엔스라 명명된 4만5천 년 전의 인간 조상들의 생존을 향한 감동적인 집념과 슬기를 느끼게 한다. 그들은 바다를 어떻게 건널 수 있었을까? 배를 만들었을까? 가능한 추측일까? 아니라면 대체 어떻게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현생인류의 화석이 발견될 수 있겠는가! 인도네시아 밀림의 풍부한 대나무와 줄기들, 다양한 식생들, 그래서 대나무로 엮은 원시적 배를 타고 실험항해를 직접 해보기도 하는데, 과연 그네들은 성공한다. 이를 실험고고학이라고 한단다.

이러한 흥미로움이 이 저술 곳곳에 빼곡하다. 동북아시아를 거쳐 베링해를 건너 알래스카, 아메리카 대륙으로 이동하는 인류는 또한 어떤가? 1만2천년 전에야 비로소 간빙기에 접어드는데, 1만4천년~1만8천년 전의 남아메리카에서 발견되는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엄청난 빙하가 북아메리카 대륙에 놓여 모든 생명의 존재를 부인하던 그 삭막한 지대를 어떻게 통과했을까? 아니면 유럽에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대륙에 도착한 인류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매머드의 멸종과 인류의 아메리카대륙에의 도착은 과연 우연일까? 1만2천년 전의 대운석 충돌로 인한 것일까? 이에 대한 가능한 이론과 고고학적 발견들이 저자의 여행체험에 실려 생생하게 수를 놓는다. 아마 저자의 이 인류기원 대탐사의 여정은 엄청난 감동으로 가득했을 것만 같다.

그러나 여전히 풀리지 않는 미궁들이 있다. 유럽대륙에 공존하다 어느 순간 사라져버린 네안데르탈인은 호모사피엔스와 어떤 관계가 있었을까? 왜 그들은 사라지고 호모사피엔스만이 오늘의 인류로 진화했을까? 서로 유전자가 교환되는 일은 없었을까? 그러면서 자연스레 종이 합쳐진 것은 아닐까? 남아메리카 호모사피엔스의 화석은 동북아시아인의 생김새와 다르다. 그럼 그들은 또 무어란 말인가? 무궁무진한 의문과 과학적 해석이 더해진다. 호모사피엔스의 기원과 확산에 대해 이렇게 풍부하고 다채로운 해석을 풀어 놓은 저술은 없을 것이다. 아프리카 기원설, 다지역 기원설, 그리고 중간이론인 아프리카에서 출발한 호모사피엔스와 지역의 원시 호미니드와의 교배설까지 아무튼 흥미롭고 절묘한 고인류학이 독서의 여정을 내내 즐겁게 해준다. 어쨌든 우리 모두는 이들 호모사피엔스의 독창성과 적응력 덕택에 꿋꿋하게 살아남아 문명을 일으키고 이렇게 존재하고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해야 하지 않을까? 재미와 지식과 감동을 함께 느끼게 해주는 따분함하고는 거리가 한 참 먼 걸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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