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추전국 이야기 3 - 남방의 웅략가 초 장왕 춘추전국이야기 (역사의아침) 3
공원국 지음 / 역사의아침(위즈덤하우스) / 201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우선 중국의 고서들을 무비판적으로 그대로 옮겨오는 여타의 이야기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이 12권의 저작은 신선하다. 서로 다른 내용의 진위를 검증하고, 허구에 불과한 진술이라면 왜 그러한지, 역사는 어떻게 해석하고 이해하여야 하는 것인지, 오늘에서 우리가 발견하고 새겨야 할 것은 진정 무엇인지를 말하는 역사서이다. 지리적 역사성은 물론, 지역의 특수성과 당대의 역학적인 국제질서, 정치문화적 당위성의 배경에 대한 고증에서부터 『사기』,『여씨춘추』,『국어』,『신서』,『좌전』에 이르는 총체적인 사서들의 비교분석까지 실로 방대한 작업의 산물로서 저자의 노력을 읽을 수 있는 저술이다. 아마‘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가 서구 고대사를 대표한다면, ‘공원국’의 『춘추전국 이야기』는 동양 고대사로서 이를 뛰어넘는 저술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춘추시대란 기원전 8~5세기경 중국대륙의 고대국가들이 중원의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할거하던 시기라 할 수 있다. 특히 이 방대한 저술 중 제 3권인 「남방의 웅략가 초(楚)장왕(莊王)」은 오늘날의 거대한 중국이라는 나라를 등장하게 한 기원전 7세기말~6세기 초의 중원 중심의 중국관을 요동치게 한 역사의 전환 시기라는 측면에서 예사롭지 않은 관심을 가지게 한다. 소위 남쪽의 오랑캐라고 치부하던 화하중심의 중국인의 허세를 여지없이 허물어대는 독자적인 남방문화의 발흥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아마 초가 등장하지 않았으면 중국의 팽창은 거기서 멈추었을 것”이라는 역사인식처럼 황하이북의 중원의 낡은 사상만으로는 팽창하는 세계를 담지 할 수 없었다는 이해이다. 초(楚)의 대두는 그만큼 오늘의 중국을 이루는 결정적 역사의 대사건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한수와 장강을 끼고 있는 물의 나라, 물을 빼고는 말 할 수 없는 나라인 楚는 이미 많은 의미를 품고 있다. “흐르는 물은 소통의 물이자 싸움의 물이다.”라는 구절처럼 문물의 자연스러운 교통을 만드는가하면 곧 갈등이 도사린 불온의 상징이기도 하다. 힘이 강대하면 세력의 확장을 위한 유용한 통로이지만 반대의 상황에는 그만큼 불리한 것이다. 역사는 양면을 그대로 우리에게 보여준다. 기원전 614년에 왕에 등극한 장왕(莊王)은 춘추오패 중 한 사람으로서 당대 중원중심의 무대에 초라는 나라를 등장시킨 인물이다. 일개 오랑캐로 치부되던 남방의 한 나라가 영토를 확장하며, 중원의 패권국으로 자임하던 진(晉)과 제(齊), 그리고 진(秦)을 위협하는 또 하나의 패자로 부상하였으니, 중원 중심의 중국 역사는 새롭게 재편되어야 했을 것이다.

비로소 역사의 무대에 초나라를 등장시킨 핵심 인물인 장왕, 그리고 장왕이 그러할 수 있도록 조력한 재상‘손숙오’의 됨됨이에 대한 기록은 그대로 정치학이고 도덕철학이 되고 삶의 지혜가 된다. 유명한 절영지회(絶纓之會)라는 고사처럼 장왕의 관대함은 돋보인다. 아랫사람을 끔찍하게 아꼈던 군주, 무(武)란 무릇 창을 멈춘다. 즉, 지과지무(止戈之武)를 말하며, “포학한 것을 금하고, 병기를 거두어들이며, 큰 것(나라)을 지켜가고, 공업을 안정시키며, 백성을 평안히 하는 것”이라 말하는 멈춤과 절제, 바름(正)의 정신이 선 군주가 대업을 이룰 수 있는 것은 어쩜 당연하게 보이기조차 한다. 적과의 싸움에서 승리하였을 때, 죽은 적군을 위해 슬퍼하고 승리를 상례로 처리하는 자세는 적에게까지 외경을 갖게 하는 존재였을 것이다. 중원의 패자인 진(晉)의 남하를 경계하기 위해 진의 위성국들인 정(鄭)과 송(宋),진(陳)등을 복속시킬 때에도 한 결 같이 무력보다는 화해와 동반자로서의 협력을 요구하는 덕의 정치의 진수를 보게 된다.

이와 더불어 『사기』에서 훌륭한 관료의 원형으로 칭송되는 재상,‘손숙오’의 청렴과 자신을 내세우지 않는 관료의 미덕은 장왕의 무사(無事)를 보완하는 탁월한 정책가로서 초의 성장을 주도한다. 이들 장왕과 손숙오의 사상적 배경으로『노자』사상이 깃들어 있음을 설명하는 장은 이 저술의 또 하나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운동은 관성의 지배를 받아 평형에서 멈추지 못하지만 멈출 줄 아는 것, 자신의 임계점을 명확히 인식하려 한 것이나,“골짜기는 낮은 곳에 처하기에 물을 받아들인다.”는 노자의 정신이 그대로 스며들어 그 낮춤이 주변국을 초에 끌어들임으로서 패자로서의 성장 동인(動因)이 되었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인물의 해독에 못지않게 당대의 국제질서와 사건들에 얽힌 사회, 경제적 배경이나 각 나라들의 정치적 상황, 하물며 군제나 토지제, 기타 문화적 차이에 대한 치밀한 설명들이 왜 그러한 역사를 만들어내게 되었는지를 명쾌하게 납득시키고 있기도 하다. 일례로 초와 진(晉), 양국에 치명적인 결과를 만들어낸‘언릉 전투’에 얽힌 진의 충신‘사섭’의“밖이 편하면 반드시 안의 우환이 있습니다.”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에 대한 충언은 이 저술의 매력적 구성을 대변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사건과 그와 관련한 고사, 그리고 그 의미에 내재한 파급적 현상들이 미시적이고 때론 거시적 관점을 아우르면서 역사적 통찰을 해내는 것이다. 이로부터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하는 지혜들은 정말 번뜩인다. 전쟁과 권력과 정치의 상관관계, 그리고 도덕성의 문제에 까지.

이 저작의 비판적 시각이 특히 돋보이는 것은 중원 중심의 북방 연합을 와해시키고, 춘추질서의 새로운 담지자로 등장한 초나라에 대해 중원과는 다른 강한(江漢)일대의 토착문명을 기원으로 독자적 정체성을 가진 국가로 재조명하고, 인간에 대한 관념적 선진성을 지닌 초의 사상과 문화를 흡수함으로서 비로소 초라하고 낡은 중원을 탈피해 중국의 팽창이 가능해졌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이라 할 수 있다. 중국 고대 한자 기록의 5할은 허구라고 초나라를 저평가한 편협한 중화사상과, 자신의 실력이 부족하면 보이는 중국인들 특유의 정신승리법인 허세의 위선을 비판한다. 주 왕실을 무시하고 독자적으로 왕을 칭하며 황하가 아니라 한수와 장강에 제사를 지낸 남방의 패자, 낭만과 실용의 정신, “눈보라의 차가움과 꽃의 정열이 한꺼번에 있는 곳”, 초(楚)의 문화를 비범하게 읽게 해주는 걸출한 역작이다. 빛나는 성찰들이 즐비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