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덴티티 경제학 - 정체성이 직업.소득.행복을 결정한다
조지 애커로프 & 레이첼 크렌턴 지음, 안기순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0년 12월
평점 :
절판


섣부른 판단이자 결론일지 모르겠지만 인간의 모든 이론과 학문은 결국 한 장소로 모이는 것이란 생각을 하게한다. '아이덴티티(Identity)', 즉 정체성(正體性)이란 개개집단 또는 개인의 행동과 사고를 지배하는 환경과 집단 내 인간들의 상호작용에 의해 내재화되고 습관화된 특질이라 할 수 있을 것인데, 이는 그간의 사회분석을 지향하는 여러 성찰에서 용어를 달리하긴 하지만 개인과 사회집단의 행동을 지배하는 요인으로 지적되어 왔다. 일례로 푸코나 바디우가 말하는 소위‘장치’라는 것처럼 제도와 규범, 사회적 취향등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배경의 상호작용이 인간의 행동을 억제하거나 방임하는 형태로 작동하는 힘이라고 역설한 것과 상통하는 것처럼 말이다.

‘아이덴티티 경제학’이란 이 낯선 경제학의 새로운 접근은 전통 경제학이 설명하지 못하거나 놓치고 있는 인간의 인지적 편견과 심리학적 발견을 반영한 행동경제학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실제 효용의 선택에 있어서 개인이 소속된 사회집단의 배경에서 비롯되는 선호나 취향이라는 정체성, 다시 말해서 사회적 맥락에 기인하는 동기에 의해 효용을 결정한다는 관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이 정체성 개념을 사용하면 현대경제학으로 설명하지 못했던 명예나 의무는 물론 성차별, 인종차별, 조직 갈등 등 사회 제반의 현상이 규명 가능케 되어 그 현상의 원인과 치료에 대한 탐색의 범위를 넓혀줄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실례(實例)를 위해 기업조직과 교육,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빈곤과 인종차별의 현상에서‘정체성’이 결정적인 동기임을 밝혀내고 있다.

저자들은 이 정체성을 구성하는 요소로 개인이 어떠한 집단적 소속 또는 위치에 포함되거나 포함되려하는 지라는‘사회적 범주’와, 그 집단 또는 사회의‘규범과 이상’, 그리고 ‘정체성 효용의 이익과 손실’의 저울질을 중심으로 인간의 동기가 사회적 맥락에서 변화하는 모습을 발견하고 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 소개되는 실험사례나 관찰된 일화는 우리 사회가 해명하지 못하거나 이론(異論)으로 분열되어 갈등을 겪고 있는 현안 문제들이어서 이해와 관심을 집중시킨다. 일례로 기업경영자들을 아주 혹하게 하는 매력적인 장으로, 기업조직의 갈등을 해소하고 효율적 경영관리를 위한 영감을 제공해주고 있는 것인데, 성과에 따른 인센티브의 공정한 설정은 생산성과 연대하여 항상 고민에 빠뜨리는 부분이다. 어떤 조직이든 조직의 이상과 규범에 충실한 부류와 이에 반발하는 부류가 있다. 충성하는 집단을‘인사이더’라 하고, 적대하는 집단을‘아웃사이더’라 하면, 인사이더는“적은 노력을 기울일 때 정체성 효용을 잃지만 아웃사이더는 자신이 일부라고 느끼지 않는 조직에 많은 노력을 투입할 때 오히려 정체성 효용을 잃는다.”이 경우 아웃사이더에게 인센티브를 지급한다고 해서 과연 생산성이 제고되겠는가 하는 것이다. 실제 많은 기업들이 금전적 인센티브로 효과를 내지 못하는 상황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는 군대조직이나 대기업들이 자아상을 효과적으로 변환시켜 공동의 정체성을 분명하게 형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신입 생도나 직원에게 입사초기에 강도 높은 혹독한 훈련을 실시하는 원인을 설명하는 것이다. 즉 아웃사이더를 인사이더로 전환시키기 위해 투자하는 것이다. 단 이 전환비용, 즉 정체성비용이 아웃사이더의 생산성 저하로 인한 손실보다 적은 수준에서 실시 될 것은 물론이다. 목표 달성도 하고 자원을 저감시킬 수 있는 효과적 발상을 자극하는 다양한 일화들은 일선 경영자들에게 분명 유용한 장이 될 것이다.

한편, 우리사회는 물론 세계의 많은 지역에서 교육문제처럼 민감하고 집단을 분열시키는 주제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학교를 효과적으로 만드는 사항들, 개혁프로그램의 성공과 실패 원인, 학생이 학교에 가는 이유, 교육수요의 파악”등에 이르기까지 학부형, 교사, 교육 정책자에 아주 긴요한 시각을 제공하는 정체성과 교육경제학의 장은 이즈음의 우리사회의 현실에 비추어 볼 때 실로 적시(適時)의 내용이 아닌가 한다. 아웃사이더가 되어 교사와 학교에 적대감을 갖는 학생이나 그들의 집단이 지향하는 정체성의 효용이 무엇인지를 이해하는 순간, 그리고 그 이해를 바탕으로 학생과 학교, 교사가 상호 동일시하고 일체화하기 위해 공동의 노력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된다면, 기존 경제학의 주장처럼 학생의 기술과 미래의 수익을 극대화하는 것이 교육의 목표라는 기계적 교육의 편협성과 어떠한 사회갈등의 봉합을 위한 처방도 제시하지 못하는 헛된 정책을 개혁할 수 있을 것이다.

이처럼 규범이나 이상의 변화와 같은 정체성으로서만이 비로소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고 경제적 분석과 판단을 가능케 하는 예가 풍부하다. 남녀에게 적절하다고 생각되는 직업이 서로 다른 것이나, 이 남녀라는 성의 구분이 희석되어 어떠한 시장구조의 변화도 없음에도 직업의 구분이 점진적으로 사라지는 현상역시 정체성으로 해독할 수 있다. 소수자 우대정책이나 직업훈련프로그램과 같은 공공정책의 수립에 있어서도 인사이더와 아웃사이더가 의미하는 정체성의 반영은 절대적인 경제적 의사결정에 있어 필수적 요소가 되어야 할 것이다. 아울러 개인의 자선행위나, 광고, 정치행위, 나아가 증오와 폭력, 범죄의 행위까지 정체성이 경제분석의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이유로 설명되고 있다.

행동방식에 대한 규범은 사회적 맥락에서 사람들의 지위에 따라 결정되며, 동기는 사회적 맥락에 따라 변한다. 어떤 행동은 소비를 증가시킬 수도 있지만 정체성에 대한 효용을 감소시킨다. 한 개인은 이런 상충관계에 균형을 맞춤으로서 효용을 극대화한다고 가정하고 있다. 개인의 효용 선택은 전통 경제학처럼 합리적 이성에 의한 선택도 아니며, 그렇다고 인지적 편견의 작동에 의해서만도 아니다. 바로 개인이 속한 사회적 범주와 그 범주 속에서의 이상과 규범의 틀에서 결정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이 새로운 개념의 사회분석 틀을 접하는 순간 우리사회의 요즘과 같은 극단적 사회 분열의 해소에 많은 도움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과 국가와 사회 및 경제적 문제를 전반적으로 이해하는데 유용한 툴(tool)로 손색이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학문적 비판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 15년 남짓 된 출발점에 서있는 유아상태의 학문이다. 그렇다고 정체성 경제학 자체가 학문적 유아상태라는 의미는 아니다. 이미 고전경제학에 수많은 취향적 효능을 반영하고 심리적, 인지적 편향이라는 행동경제학의 토대위에 서있는 학문이다. 새로운 세계를 열어가기 위해 어쩌면 반드시 밟아가야 하는 길을 정말 유일하게 안내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간결한 언어와 일화로 짜임새 높게 압축된 정체성경제학을  개괄한 최초의 입문서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국가산업 경제, 교육, 여성 및 노동분야의 정책자들, 정치 및 정당인들, 기업 경영자들에게 이즈음 반드시 읽어두어야 할 필독서로 권유하고 싶은 저작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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