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알렉산더 광장 1 세계문학의 숲 1
알프레트 되블린 지음, 안인희 옮김 / 시공사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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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황폐함, 혼란과 불안에 유동하는 인간들, 전환기의 이념적 갈등이란 배경 속에서 안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한 인물을 통해 당대의 일상성에 대한 비루함을 시시콜콜 조망하는 작품이다. 베를린 중심부와 동부에서 그렇고 그런 인물들의 흔적을 뒤쫓고, 공적, 사적 사건들이 무질서하게 망라되어 탐색된다. 자기이익과 물질주의, 산업화와 상업화로 갈수록 비대해지고 혼탁해지는 도시의 혼돈과 메마름, 그리고 전후(戰後) 사회주의의 실패와 나치 파시즘의 대두가 교차하는 시대의 클로즈업은 보다 거시적인 역사의 당위성을 생각게도 한다.

이러한 시대의 거칠고 조악한 조명에 못지않게 이 작품을 흥미롭게 대하게 되는 것은 내면, 즉 인물의 심적인 흐름을 통해 피폐한 세상의 단면들과 그로인해 더욱 경외감을 갖게 하는 인간성의 명징한 은근한 회복이라 할 수 있다. 연인 ‘이다’를 살해하고 4년의 수감생활 끝에 대도시 베를린의 사람과 건물 숲에 묻히는 보잘것없는 ‘비버코프 프란츠’ 란 인물의 배경에도 불구하고, 인간 본성에 대한 이해의 직관적 공감을 상실하고 있지 않다는데 매력을 느끼게 한다는 것이다.
작품 초반의 출옥 후 낯설어진 도시의 일원이 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 당황하는 인물, 그리고 고통스러워하는 타인에 연민을 보이는 유대인의 호의와 삶의 의지를 일깨우는 일화는 사실 잃어버려 알지 못하는 오늘의 감성 탓으로 그 인간적 관심과 동정이 조금 기이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점차 프란츠란 인물에 내 자신의 대입이 자연스러워지고, 지극히 정당하고 당연한 모습으로 비춰지는 것처럼 시대를 건너뛰는 보편적 공감으로 몰입하게 된다.

시민에게 의식주의 안정적 보장을 해주지 못하는 사회주의, 이것은 이념의 이론적이고 진실성과는 무관한 생활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에게 어떤 강요도, 지지도 취약하게 한다. 교할하고도 민활하게 이러한 인식의 공백을 침투하는 것은 그럴듯한 물질적 자기만족의 체험이고, 이는 나치의 파시즘이 당시 독일인들에게 쉽게 정착할 수 있었던 이유가 될 것이다. 나치당 기관지를 가판(街販)하면서 살아가는 프란츠에게는 사회주의자들의 공허한 구호보다 이것이 실질적인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이들 이념정당과 지배권력 자체에는 어떤 믿음도 없음을 간접적으로 시사한다. “우린 전쟁터(1차 대전)에서 피를 흘렸어요. 사람들은 우리더러 기다리라고 하지요. 무엇이든 지들 하고 싶은 대로요.” 

 

한편, 소, 돼지 등 가축들의 도축장면의 여과 없는 사실적 묘사에서부터, 상인조합과 부패한 지방권력의 힘겨루기, 당대 여성들에 대한 성적착취, 사기와 도둑질이 만연하는 물질에 대한 비루하고 집요한 집착들, 신발 끈, 신문, 과일판매 등 도시 서민들의 생업수단들, 광고문구와 신문기사에 이르는 망라된 도시의 일상과 면모들이 그대로 열거되어, 있는 그대로의 현상을 나타내는 표현주의 기법은 당대를 상징하는 기계화, 산업화, 도시화, 이기적 물질주의화, 생명, 타자에 대한 무관심등의 폐해에 대한 말없는 저항을 보여준다. 이미 타락한 사회, - “로마도, 바빌론도, 니니베도 이렇게 망가졌고, ~ 中略 ~ 이들 도시들이 그 목적을 다했다는 걸 ~ 中略 ~ 이젠 새로운 도시들을 건설 ~ 中略 ~ 새것을 사야지, 그래야 세계가 살지.” - 구태여 어떠한 자기주장 없이도 붕괴되는 정신과 사회의 변화를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이 뚜렷한 주제를 포획하거나 병행하면서 흐르는 프란츠란 인물의 의식을 따라가는 것은 이 소설의 진정한 묘미이다. 활력도 없고 탈탈 말라버린 두뇌가 되어버렸다는 자각으로부터 시작해서 에로틱한 흥분을 제어하는 의학적 유비를 대입한 원시적 두려움의 묘사라든가, 떠나지 않는 죄의식으로 인한 “양심의 가책, 악몽, 불안한 잠, 통증” 에 대한 오이디프스적 은유, 추악하게 오염된 현실을 대치하는 구약의 절묘한 배치는 독서의 풍미를 더해준다.

세상은 살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는 프란츠의 치졸한 쾌락의 여지조차 인물의 됨됨이를 강화 한다. 죽인 연인의 언니를 찾아가 범하고, 자기의 생존에만 골몰하는 이기적이고 본능적이기만 한 인간이지만, 사기와 도둑질 같은 물질적 이기심에 대한 도덕적 혐오를 보이는 모순된 인간상에서 가치관의 혼란을 보게 된다. 비록 불규칙하고 작은 수입이지만 성실한 대가를 위해 생업에 종사하는 인물로서, 또한 여성을 단지 성적 도구로만 여기는 인간에 대한 교화를 뿌듯해하고, 자신을 기만하여 범죄에 개입케 한 인물들과 집단에 대한 반감까지 악의 유혹에 저항하지만 죽음으로 내모는 극단적 폭력에 버려지기까지 한다. 그럼에도 자신을 파괴하려한 인물들에 대한 복수를 관용으로 승화하여 자기 존재의 존엄성을 지키는 것, 즉 평화로운 삶의 희구를 하지만 자기의 범죄행동을 두려워하는 인간들은 은폐와 두려움의 해소를 위해 악을 멈추지 못한다. 아마 악의 관성(慣性)때문일 것인데, 이처럼 인간사회를 표현주의 방식으로 들여다보고 망라적 관찰자의 시점을 갖게 해주는 것은 이 소설의 특성이라 하여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은 독자에게 그리 친절한 작품은 아닌데, 감정이나 심리적 공감의 연결이 뚝뚝 끊어지고, 인간의 고통이나 슬픔, 즐거움이나 기쁨을 굳이 서술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실 이 때문에 초반에는 고생하는데, 조금만 더 나아가면 바로 이러한 기법덕택에 작품이 더욱 흥미롭고 즐거워지기까지 한다. 독일 표현주의의 대표적 걸작을 접한 지적 보상이 분명 있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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