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수 알바 내 집 장만기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25
아리카와 히로 지음, 이영미 옮김 / 비채 / 2010년 10월
평점 :
품절


지구 반대편의 사람이 동시에 의견을 나누고 영상과 정보를 교환할 정도로 엄청난 소통 수단이 일상화된 시대, 세계인이니 세계화니 하는 대화의 거리가 없어진 세상이라고 하지만 정작 오늘의 개인은 소원한 소통으로 외로움은 더욱 증가하는 역설적인 사회가 되어가고 있다. 사회의 가장 작은 단위인 가족조차도 이 문명의 이기가 단절을 재촉하는 압력으로만 작용할 뿐이어서 이웃은커녕 부모와 자식간의 공감대를 상실시키고 대화를 불편하게하며 궁극적으로 사라지게만 한다.

성인으로 성장한 아이들은 물질경쟁을 위해 극한의 생존시장으로 등이 떠밀리지만 세상살이의 선배인 부모와 절해고도(絶海孤島)와 같은 약육강식의 야생적 초원에서 길을 찾지 못하는 자식은 이조차 공통의 주제로 소통할 기회조차 찾지 못하는 것이 오늘 우리네의 모습이라 해도 지나친 이해는 아닐 것이다. 게다가 이 작품의 배경인 일본사회의‘에고(자기주체) 없는 공동체사회’라는 특성은 따돌림이라는 집단폭력까지 더해져 개인을 더욱 소외시키고 고립감에 심한 상처를 입히기까지 한다.

어렵게 입사한 직장을 3개월 만에 호기롭게 박차고 나온‘세이지’라는 청년, 용돈 벌이로 알바(아르바이트)를 해가면서 구직활동을 벌이지만 사회는 그렇게 만만치 않다. 아직은 미숙하기만한 청년은 자기 연민만으로도 고통스럽고, 아버지의 따가운 시선과 거북한 질책은 반목을 키우기만 한다. 이렇게 분열되어만 가는 가족 속에서 동네 여인네들의 20년에 걸친 어머니에 대한 보이지 않는 집단 폭력은 마침내 피해망상을 동반한 불안장애 등 심각한 우울증으로 내몰지만 남편과 아들은 이러한 징후에 무심하기만 하고 마침내 의사의 아내가 되어 출가한 누이의 관심으로 발견되기에 이른다.

같은 거주공간에 있지만 아내, 어머니의 고통과 병세조차 알지 못하는 남편과 자식, 더욱이 출가한 딸이 어머니의 치료를 요구함에도 아내의 유약한 성격 탓으로 돌리고 무관심으로 일관하려는 이기적이기만 한 아버지의 형상은 50대 가장의 비뚤어진 자존심과 고집을 대변한다.
건설현장에서 막노동을 하며, 인부 아저씨들로부터 아버지들의 처지와 생각을 배우고 삶의 겸허함이 지니는 지혜를 읽어낸다. 자신만의 질서와 지혜를 다져온 아버지들이 이해 할 수 없는 상황이란 곧 부인되고 무시될 수밖에 없는 것일 수도 있다는 것, 그렇지만 그네들이 쌓아온 삶의 지혜에는 많은 영양분도 있다는 것이며, 배려함으로써 이해를 구하고 존중함으로써 보석같은 삶의 노하우들을 배울 수도 있음을 터득한다. 마침내 어머니가 시달리는 정신병이 얼마나 위중한 것인지를 아버지 스스로의 깨달음으로 견인하고, 그의 가장으로서의 권위에 숨겨진 지혜를 존중함으로써 부자의 갈등은 점차 해소되어간다.

어머니 정신병세의 원인이 된 이웃의 질시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이사’해야 한다는 것, 작품의 제목처럼 백수알바생인‘다케 세이지’가 집장만을 위해, 즉 가족을 위해, 또한 바로 자신을 위해 자기 삶의 책임을 비로소 수행하는 사람으로 곧추 서는 것은 배려와 이해와 존중이란 막혔던 혈관을 뚫어 원활한 소통이 이루어짐으로서 사랑이 교류하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천방지축의 백수 청년이 성숙한 성인으로 성장하는 소소한 일련의 현실적 구직활동이나 직장생활의 흐믓한 일화들이 소설의 풍미를 이끌고, 고독하기만 한 현대인들에게 가족의 중요성과 해체된 감성들을 추스르는 방안을 제공해 주기도 한다. 사실 “돌이키기엔 늦었지만, 포기하지 않으면 늦지 않을 거라고...”와 같은 뻔한 조언들이 진정한 의미로 다가설 때 우리들의 정신세계는 한층 깊어지고 풍요로워 질지도 모른다. 권위적이기만 한 이 땅의 아버지들, 자신들의 세대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소통을 단절하는 딸들, 그리고 아들들, 자기를 잃어버린 어머니들 모두가 자신들을 돌아보게 하는 작품이다. 재미있는 일상의 이야기들로 가족의 모습을 따뜻하게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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