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너지는 환상 - 2008년 경제 위기 이후 세계는 어떻게 달라지는가
알렉스 캘리니코스 지음, 이수현.천경록 옮김 / 책갈피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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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체제 자체의 위기다!” 이 급진적인 선언은 2008년 9월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을 시작으로 세계의 경제를 위기로 전락시킨 미국 발(發) 금융 붕괴가 의미하는 세계경제에 대한 저자의 분석 결과이다. 그래서 1930년대 대공황 이래 최대 규모의 금융폭락으로 지구경제를 오랜 침체로 몰아넣은 이 사건이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본질 자체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렇지 않다면 단순한 경기순환의 일부일 뿐이며, 일부 부패한 거대 금융기업 탓이기만 한 것인지를 추적한다. 또한 시대의 획을 긋는 사건으로 2008년 8월 그루지야와 러시아의 짧은 전쟁이 미국 헤게모니의 최종위기와 세계체제의 전반적 재편의 서막(序幕)을 알린 중요한 역사적 전환점이었음을 지적하며, 미국주도의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체제의 리더십 약화와 다극화하는 세계의 경제체제를 성찰하고 있다.

사실 자본주의를 구성하는 사적 소유권과 계급의 관계성이나, 이윤의 원천이 되는 잉여가치율, 현대 경제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무산임금노동자를 양산하는 자본주의 생산양식의 존재조건 등에서 자본주의가 내재적으로 자체 붕괴의 속성을 지니고 있다고 말하는 것은 진부하기조차 하지만, 이 저술이 바로 오늘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통해 자본주의 체제의 본질적 불안정성을 조명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 시사하는 바를 결코 낡은 가치라 외면하기만은 힘들게 한다.

특히 이번 금융붕괴가 가져온 파장은 단지 금융부문뿐만 아니라 산업일반을 포함한 국가경제 전체의 혼란과 침체를 야기했다는 점에서 이것이 자본주의의 구조나 경향과 얼마나 관계가 깊은지를 이해하는 것은 중대한 의미를 지닐 것이다. 결국 회오리처럼 경제전반을 빨아들인 금융의 오늘의 속성을 이해하는 것인데, ‘신용’의 대두와 이에 기반한 금융파생상품은 물론 개인의 신용카드까지 모든 금융주체를 금융의 그물망 속으로 엮어 넣은 오늘의 경제사회의 모습을 보면 굳이 부가설명이 필요치 않음을 이해할 것이다. 더구나 신용의 문제는 부풀려진 자본의 증식으로 인해 생산자들에게 잘못된 가격신호를 보내고 이는 불균형과 과잉축적의 경향을 악화시키는 원인이 된다. 여기에 논의의 타당성과 검증 가능성을 부여하기 위해 저작의 많은 부분을 시장자유주의자들과 케인주의자 및 마르크스주의자들의 통화정책과 재정정책을 바탕으로 한 경제정책의 이견을 담아내어 실증적인 규명을 하여 이해를 제고시키고 있다.

예로써 시장자유주의자들이 외치는 신자유주의의 주요 목표는 국가의 징세 및 지출 능력의 제한과 억제, 규제완화와 사유화 등의 작은 정부와 경제 불간섭과 같은 방임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금융시장이 붕괴하자 세계의 여타 국가들에 규제완화와 공기업화, 재정지출의 삭감을 압박하고 강요하던 신자유주의 선봉장인 미국과 영국은 어떤 행동을 했을까?  정작 자신들이 궁지에 빠지자 미국은 프레디맥, 페니메이, AIG등 금융기업을 인수하여 국유화하였으며, 영국은 스코틀랜드왕립은행과 로이드뱅킹의 최대주주가 됨으로써 재국유화하는 등 저네들이 먼저 신자유주의의 실천을 배척하였다. 결국 국가의 적극적 개입을 통해서 비로소 위기를 모면하였다는 의미로, 이는 시장의 자동조종기능을 외쳐대던 자유주의자들의 소리가 얼마나 허망한 위선인지를 입증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자본주의체제에서 노동생산성보다 낮은 임금을 지급함으로써 생산성의 성과를 자본이 가져가는‘노동착취’와 ‘자본의 가치를 떨어뜨림’으로서만 이윤율을 높일 수 있음은 대개의 사람들이 주지하는 바이다. 그러나 이 두 가지 이윤율 증대 방법이 세계경제 순환의 강력한 축이 되어 작동하고 있음을 미국과 중국이라는 양극단의 경제를 통해 목격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 온다. 일종의 ‘국가자본주의’를 구사하는 중국의 경우 막대한 자본축적은 물론 국민총생산규모에서 일본을 제치고 미국 다음인 세계2위에 올라섰다. 국내소비는 GDP의 절반도 안 되고 빈민이 8억 명에 이르는 후진국인 중국이 이렇게 엄청난 규모의 자본축적을 이루기 위해서는 중국 노동자들의 낮은 소비, 즉 노동 착취기반에 서있음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반면 미국이란 나라가 부채경제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은 이젠 삼척동자도 아는 얘기다. 동아시아국가들이 착취경제로 쌓아 축적한 자본은 미국의 싸구려 자산과 국채를 사도록 종용되고 또한 달러가치의 하락을 방조함으로써 자신들의 채무를 줄이고 유입된 자본을 마구 써대는 파렴치한 구조이다. 결국 이러한 상시적인 불안정과 불균형의 동반관계와 자본주의의 자기 파괴적 속성은 지속 가능한 체제가 되기에는 본질적인 문제를 내재하고 있는 것이다.

나아가서 금융붕괴로 인한 은행 및 기업의 구제금융은 현대 자본주의가 직면한 딜레마를 여실히 보여주기도 한다. 망하는 기업은 파산하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옳은가, 아니면 국가가 나서서 재정을 투입하여 회생시키는 것이 바른 것인가? 아마 이번과 같은 글로벌화 되어있는 거대금융기업들의 연쇄 적 도산을 그냥 방치했다면 자본가치의 한없는 추락으로 오랜 기간의 심각한 불황을 헤어나지 못했을 것이 분명하다. 그렇다고 대대적인 재정투자로 자본가치의 폭락을 막는 조치는 과잉축적으로 인한 수익성의 위기가 해소되지 않고 위기가 장기화된다는 문제를 갖는다. 이러나 저러나 딜레마를 해소하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자본주의가 수십 년간 해결하지 못하고 낑낑대던 근본적 모순”을 드러낸 것이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처럼 2008년 금융붕괴가 표상한 세계경제의 혼란은 자본주의가 지닌 구조적 불안정성과 한계라고 지적하면서 자본이 가졌던 권력이 국가로 이동하였다고 주장하며, 현재는 자유시장과 상품화 증대에 따른 고통이 너무 커져 반작용으로 규제강화와 탈상품화 움직임이 출현하는, 아직은 이름이 없는 그 무엇인‘착근된 자유주의’라 명명하면서 시장경제가 헤게모니를 누리던 시대는 끝나고 있다고 단언한다. 그렇다고 딱히 시장경제를 대신할 만한 믿을만한 대안 체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결국 자본주의의 대안 모색이 필요하다는 것인데, 이로서 국유화, 소유관계의 완전 폐지, 자본주의 분업의 전면 타파, 협동적 생산형태와 같은 아주 급진적인 체제의 혁신을 내놓는데, 다분히 마르크스 공산주의의 이상과 결부되어 논의의 실효성에 의문을 낳게 한다. 다만, 경쟁논리가 지배하는 시장경제의 대체안으로서 ‘앨버트’의‘파레콘(참여경제)모델’이나, ‘팻 드바인’의‘협상에 의한 조정’모델의 아이디어를 토대로 한 자원배분의 민주적 발상 등은 미래 인류사회를 위한 중요한 참조가 되기도 한다.

수출주도형 경제가 초래하는‘바닥을 향한 경주’를 막기 위해 수요를 키우려면 소득분배의 형평성 실현 노력이 필요한 것이 당연하며, 따라서 최저임금, 노동조합, 기타 사회보장제도의 확대는 중차대한 요소가 될 것이다. 또한 외국자본의 급격한 유출입으로 막대한 고통을 경험한 우리로서는 강력한 자본통제 시스템의 구축 또한 시급한 것이다. 각국의 자본주의는 더 이상 획일적이지 않다. 네거티브한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국가자본주의’에서부터 남미 국가들의‘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 그리고 여러 변형된 자본주의가 공존하고 있다. 국제수준의 자유주의와 국가개입 강화가 결합된 오늘의 착근된 자유주의 체제에서 이미 종주국들도 지키지 않는 신자유주의를 고집하는 우리의 경제체제는 숙고할 당위성이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폐해와 불평등과 불안정에서 인류 사회를 해방시키기 위한 또 하나의 탁월한 담론인 이 저작은 세계체제의 폭넓은 분석의 틀을 제공하여 자기반성과 미래에 대한 귀중한 숙고의 시간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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