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시의 하루
홍남권 지음 / 파코디자인 / 2010년 5월
평점 :
절판


사실 1500년 전의 과거를 오늘의 관점으로 이해하려다 보면 국가관, 관습, 문화를 비롯한 인간사유의 이질적 변화로 인해 불가피한 오류가 발생할 여지를 배제하기 어렵다. 해서 오늘날과 같은 뚜렷한 영토의 경계와 민족적 동일성과 같은 근대적 국가의 개념을 적용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대하면서 역사인식에 있어 그 진실을 통찰해내는 작가의 시선에서 한낱 기우였음을 알게 된다.

권력의 역학관계, 인물들의 정당한 반목과 명분, 안시와 고구려 중앙세력과의 느슨한 연결 관계, 전쟁에 참여하는 민족의 다양성, 동북아의 국가질서와 위계, 그리고 고구려와 당의 헤게모니 장악을 위한 동북아 최대의 역사적 충돌로서의 이해, 한 중 일을 잇는 거시적 통찰 등 역사를 해석하는 관점에서 탁월하다. 고구려와 백제, 그리고 당의 얽힌 이해관계의 냉철한 통찰에서 비롯된 역사적 당위성에 기초한 플롯의 정교함이 소설의 지적 풍미를 한층 높여준다.

수륙 65만 대군을 동원한 당 태종 이세민의 고구려 침입이 안시성 전투를 전환점으로 고구려의 승리로 전해져 오지만 성(城)주‘양만춘’이란 이름과‘혈전’이었다는 정도 이상의 역사적 기술을 배우지 못했던 내겐 이 작품의 세세한 일화들과 그 역사적 배경의 이면에 대한 해석에서 안일하기만 했던 우리네 게으른 역사의식을 새삼 반성케 되기도 한다.
요동성, 건안성, 부여성, 안시성 등 요하를 경계로 한 요동지역에서부터 한수 이북까지의 광활한 영토를 호령했던 고구려의 기상이 어느덧 반토막 난 작은 반도의 영역으로 축소되면서 그 웅원(雄遠)의 기지를 잃어버린 것만 같은 안타까움이 있던 차에 그 체증을 명쾌하게 풀어내는 지성의 정수를 발견하는 즐거움을 준다.

우선 소설은 왜 인구 10만에 불과한 안시성의 공략에 당 군의 총력이 장기간 집중되어야 했는지, 고구려 중앙정권의 지원은 그렇게도 미흡했는지에 대한 역사적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왕권의 정통성을 상징하는‘평강공주’와 중앙정권을 장악한‘연개소문’과의 갈등과 같은 내부정치의 문제, 안시성의 중요 광물자원의 보고로서의 가치와 생산지로서의 전략적 위치에 대한 발견은 소설이 말 할 수 있는 역사 통찰의 새로운 시선을 제시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이에 더해 소설적 재미를 더하는 허구로서, 이세민의 전쟁 당위성에 대한 주장이나, 백제의 왕자인‘계백’을 통한 위태로운 외교적 실리추구의 거대한 기획으로서의 관점 등은 팩션문학에서 기대 할 수 있는 가치의 최고를 성취하고 있다 할 수 있다.

안시(安市)의 성주,‘하루’, ‘봄’을 의미한다는 하루는‘만춘(萬春)’의 이름이기도 하다. 안시성을 일으키고 지켜온 고구려의 어머니, 평강공주와 그 소박한 궁의 모습, 백성의 삶을 우선하는 정치, 자원의 이성적인 관리는 엄청난 정예의 적군을 소수의 응집된 양민들의 힘이 방어하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인지에 대한 하나의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지도자의 솔선하는 리더십은 손녀인 하루에게 그 전통과 지혜를 엄하게 이전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일반 백성과 평등한 소통과 교우로서의 성장과 엄격함은 오늘의 권력층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남다르게 느껴지게 하기도 한다.

아마 소설적 백미는 이세민의 안시성 공략을 훈수하는 계백의 전술들이라 할 수 있는데, 여기에 공격과 방어의 지략을 하루와 계백의 미묘한 애정전선에 가미하여 전설처럼 내려오는‘주필산 전투’, 훗날 적군의 피로 물든‘적원(赤原)’이라 명명된 혈전의 현장이 가슴을 뜨겁게 오르내리게 한다. 작품의 어느 곳에서도 자의적이거나 논설적 장광설을 늘어놓지 않음에도 우리의 역사 성찰을 위한 시선을 한 층 제고시켜주고 있다. 굳이 민족의 자긍심을 주장하지 않지만, 소설의 지적 재미에 빠져있다 보면 어느새 우린 역사의 진실을 마주하고 있음을 발견케 된다. 고구려의 심장, 고구려의 영혼, 아니 한국인의 영혼을 복원하는 역작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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