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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큐에게 물어라
야마모토 겐이치 지음, 권영주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3월
평점 :
일본 무로마치 막부 시대의 말기인‘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지배하던 16세기, 다도(茶道)의 명인인‘센 리큐’라는 인물을 통한 다도의 미학, 그리고 이에 얽힌 사랑과 삶과 죽음의 서사시라 하여야 할까. 특히나 리큐(利休)다도의 정수(精髓)에 조선 여인의“처절한 아름다움과 범접할 수 없는 위엄, 그리고 우아함”이 놓여있음은 감성의 동요(動搖)를 일으키게 하고, 작품의 몰입을 재촉한다.
또한 익숙한 시간을 역행하는 구조는 주인공인 리큐의 사사(賜死)라는 최근의 사건으로부터 과거의 시간으로 안내하여 인물의 삶과 배경을 하나씩 드러냄으로써 한 인간이 추구하였던 미(美)의 본질과 그 진실의 심원에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서게 한다. 그리곤 바로 그 정점에 천하제일의 다인(茶人)이 그토록 도달하려한 다도의 진수인 “깊은 산골 속에 돋아난 풀, 그에 깃든 생명의 빛”이자, “자연스러운 소박함 속에서 심원한 조화의 미”의 비밀과 근원을 발견케 한다.
한 꺼풀씩 벗겨지듯 드러나는 세월의 내밀한 과정에서조차‘녹유향합’이라는 열아홉 살 마주했던 그 강렬하고 선명한 숭고할 정도의 아름다움을 구체화 할 뿐이다. 거기에는“소박한 풍정 속에서도 관능적인 풍윤함이 있는 독자적인 다도 세계”의 실재(實在)가 있고, “사람을 죽이는 한이 있어도 갖고 싶을 정도로 크나큰 아름다움”을 말하는 리큐 다도만의 본질이 있다.
문득,‘다도(茶道)’라는 소재 하나로 이 정도의 풍미 넘치는 이야기를 만들어 낸 작가의 역량에 은근히 샘이 나기도 한다. 사실 작품 속 이방인들의 일본 다도에 대한 비판처럼 다다미 2,3장에 불과한 좁디좁은 방에 모여 작은 흙덩이에 불과한 다완(茶碗)을 들고 뻔한 칭찬을 해대며 맛없는 음료를 마시는 행위에 무어 그리 대단한 의미가 있을 수 있겠는가 할 만큼 시시한 소재에서 말이다.
그러나 한 다도 명인의 삶의 역정을 통해 우리네 인생사를 구축하는 다양한 모습들, 다시 말해 한 순간이 지배하는 영겁의 진실, 탐욕과 노여움과 어리석음이란 삼독(三毒)과 같은 사람의 본성에 내재하는 그 품격들이 격돌하는 사사로워 보이기만 하는 역사의 장면들을 절묘하게 그려내고 있다.
최고의 권력자인‘히데요시’의 다두(茶頭)로서 세상의 존경을 받는‘리큐’라는 인물의 심미안(審美眼)의 본질, 화려한 서원다도와 소박한 와비다도를 승계하지만‘소박한 초암(草庵)속의 화사함’이란 그만의 다도 정신을 구성하는 이야기 속 사건들은 삶에 대한 예리하고 풍부한 해석을 품고 있다. 그래서 작품의 탁월한 서사적 재미를 뛰어넘는 인생에 대한 고귀한 사유를 외면키 어렵게 한다.
관백‘히데요시’가 ‘리큐’의 사사를 명령하는 죄목은 사실 변명에 가깝다. 사찰에 건립된 리큐의 목상이 불경스럽다는 것과, 다완을 비롯한 다기를 미적가치라는 명목을 통해 폭리를 취하고 있다는 것인데, 여기에는 “날카롭다는 뜻, 지나치게 날카로운 사람은 배척당한다.”는‘리(利)’라는 이름자나, 히데요시가 던지는 리큐의 내면을 관통하는, “ 너만큼 욕심과 색이 강한 사내는 달리 본 적이 없어.”, “ 마음속에 감춘 교만을 용납할 수 없었다.”는 것과 같은 말들의 반복과 같이 이미 처세, 아니 진정함에 대한 삶의 진실을 어겼다는 보다 본질적인 의미의 결과라 해야 할 것이다.
한편 할거하는 지역의 쇼군들을 복속하거나, 조선통신사를 맞이하는 히데요시의 일화 등 역사적 사건들에 등장하는 행다(行茶)의 의례(儀禮)로 자연스럽게 다도의 효용이나 그네들의 삶으로 체화된 본질을 담아내는 의연한 문장들에서 절로 다도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읽게 된다. 한 낱 차를 마시는 형식례에서 사람을 꾀는 술책으로, 마음의 해방공간으로, 삶을 다스리는 호흡의 완급과, 생명의 우미한 광채까지 헤아리게 되며, 또한“아니꼬워 보이지 않을 만한 겸양”으로서의 고매함이란 어떤 것일지, “고담하고 처연할지라도 그곳에 활기찬 생명의 싹이 있어야 바람직”한 것이란 바로 무슨 형상일지, “똑같이 탐욕스러워도 사람에 따라 품성”이 다르게 보이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지, 촘촘히 들어찬 삶의 태도와 근원을 읽게 한다.
다도와 그 다도를 일으킨 역사 속 다인(茶人)을 말하는 일본의 역사문화 소설에서 삶의 태도와 사람의 품격, 그리고 삶의 본질에 대한 성찰에 공감하는 것은 분명 문학이 주는 사유의 즐거움이 된다. 다만 그 역사는 특정한 하나의 민족이나 국가만의 역사일 수 없다는데 다른 시선이 놓여 질 수밖에 없다. 모두에서 언급하였듯이 이 작품의 시대적 배경이 히데요시가 조선정벌을 준비하던 시점이고, 더구나 조선의 다기, 조선 여인의 상품화와 약탈, 침략에 대한 향수 등이 소재로 등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오다 노부나가’의 하룻밤 욕구를 채워주는 여성 역시 조선의 여인으로 설정하고 있다. 물론 문학작품에 민족주의적 보수성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편협한 비판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진정 한 편의 아름다운 회화(繪畵)같은 작품으로 그 섬세함과 수려한 문장들에 매혹되지만 한편의 씁쓸한 심정을 그저 놓아버리기만은 쉽지 않다는 것이 솔직한 표현이 될 것이다.
리큐의 아내 소온의 말처럼 “싸늘하게 식어 있는데 몸은 달콤한 열을 띠”게하고, “그것이 더욱 서글프고 안타깝게”다가오는 작품이다. 아마 ‘탄탄한’작품이란 이 작품을 위해 만들어진 표현이리라. 삶의 열정과 이상을 다도 미학에 버무려낸 또 하나의 역사소설 걸작이라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