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망하는 테크놀로지 - 과학기술학자들 '기술'을 성찰하다
손화철 외 지음 / 동아시아 / 2009년 3월
평점 :
절판


오늘의 우리들은 과학기술의 존재 없이 밥알 한 톨이라도 먹을 수 있을까? ‘과학기술’에 대한 어떠한 인식도 없이 살아가고 있지만, 이처럼 그 존재 없이는 생존할 수 없을 정도로 인간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 바로 기술이라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덧 공기와 같은 인간존재의‘배경’이 되어있다.
그러나 기술의 발전이 인간에게 긍정적 혜택만 주는 것은 아니며, 생명의료 윤리의 문제에서부터 인간성의 훼손, 기술에의 종속이라는 자유의 박탈 등 부정적 문제를 야기하고 있기도 하다.

독특하게도『‘욕망하는’테크놀로지』라는 제목처럼, 과학기술이 마치 생명체라고 주장하는 듯한, 이 저술을 구성하는 28편의 과학기술시론은 인간과 기술, 기술과 사회, 기술의 현재와 미래의 관계라는 성찰을 통해 과학기술의 정체와 특징을 탁월한 이론과 예화로 전달해 주고 있다.
기술은 “인간이 세계를 특정한 방식으로 대하는 태도”라고 정의하였던‘하이데거’의 말처럼, 형체가 있는 인공물로서, 이것이 만들어내는 무형의 서비스와 노하우, 그리고 인공물과 같은 대상을 만들어내는 과정과 기초가 되는 공학 지식을 의미하는 기술에 더해, 인공물이 만들어내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바꾸려는‘의지’까지를 포함하기에 이르렀다.

이제 기술은 세상을 특정한 방식으로 바꾸려는 의지가 각인되어 있다는 의미이다. 오늘의 기술들은 서로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거대한 기술시스템을 형성하고 있으며, 한 두 사람의 의지만으로 통제할 수 없는 상태에 있으며, 결국 기술은 그 자체의 내적 논리에 따라 발전하고, 자체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고 있다. 기술철학자‘자크 엘륄’의“현대 기술이 자율적이 되었다!”는 상징적 표현처럼 “인간이 기술을 발전시키고 사용하는 것이 맞긴 한데, 발전시키지 않을 자유도, 사용하지 않을 자유도 인간에게 없다면 인간은 기술의 주인인가? 하인인가?”하는 질문이 절로 터져 나올 밖에 없는 것이다.

근대이후, 인간의 오만이 만들어낸 자연의 지배 욕구는, 그 자연에 인간 자신마저 포함되어 스스로 지배의 대상이 된 꼴이 되고 말았다. 과학기술을 통한 눈부신 성취 뒤에는 공허함과, 권태만이 남아 있을 뿐이고, 스스로 대상으로 전락했으니 주체는 없어지고 의지만 남은 셈이 되고 말았다는 것이다. 인간의 삶은 기술시스템의 일부가 되어버렸고, 거대 기술시스템은 효율성의 법칙에 따라 움직일 뿐이다. 여기에 인간의 가치나 필요는 효율성의 논리 앞에 무력하고,“인간이 더 이상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인정 할 자유밖에 남지 않았.”음의 다름 아닌 것이다.



이러한 기술과 인간관계에 대한 문제의식은 기술결정론, 사회결정론, 사회구성주의론 등 과학기술학 및 기술철학자들의 다양한 통찰들을 기반으로 하여 기술의 윤리와 도덕성, 기술의 정치성, 기술의 인간사회에 대한 영향과 책임에 대한 화려한 사색이 풍부하게 수 놓여 지고 있다. 일례로 기술철학자 ‘랭던 위너’의 기술의 정치성에 대한‘뉴욕 존스비치 공원’진입로에 놓인 고가도로가 흑인이 이용하는 버스의 통행을 막기 위해 낮게 설계되었다는 예화나, 숙련노동자의 노조를 무력화시키기 위해 전자동 수치제어 공작기계를 만들어내는 것과 같은 지적은 기술의 새로운 범주로의 확장된 이해와 시각을 제공해주기도 한다.

또한 세탁기와 같은 가사기술이나 휴대전화가 과연 인간을 보다 자유롭게 한 것일까? 하는 질문의 답변 역시 낭만적인 긍정만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기대행동의 패턴을 변화시킴으로써 새롭게 인간을 구속하기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부지기수로 등장하는데, 체외수정의 생식보조기술이나 피임기술 역시 여성을 출산이라는 우연적 위험에서 해방시키기는커녕, 사회적 맥락을 달리함으로서 기술을 사용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게 하는 것과 같이 암묵적으로 기술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비합리적이라는 전제에 지배당하게 하고 말았다는 것과 같다.

특히 기술후발국으로서 세계 경쟁시장에서의 생존이라는 명분하에 기술개발에 윤리적, 법적, 사회적 영향은 물론 사회적 합의를 무시하는 한국의 끔직한 현실을 비판하고 있기도 하다. 기술의 잠재적 혜택만 부각하고 불확실한 위험은 축소하거나 무시하며, 윤리의 문제를 제기하거나, 과학기술 발전의 당위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면 국익을 무시하는 반역행위처럼 취급되는 후진적 현실이 궁극에 얼마나 막대한 폐해를 야기하는지 우리 과학기술의 현주소를 반성케도 한다.

기술의 발전이 인류에게 편리와 자유의 확장, 그리고 엄청난 물질적 혜택과 성취를 제공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기술발전의 신화만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는 순간, 기술은 인간의 자율성을 넘어선다고 경고한다. 인터넷이 시공간을 뛰어넘을 수 있는 자유를 인간에게 선사하였지만, 중독과 같은 그 자유에 도리어 묶이게 하는 측면도 있다. 나아가 최근의 “언제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한다는 ‘유비쿼터스’의 환경은 우리가 피부로 느끼거나 의식할 수 없을 정도로 기술은 우리의 일상 곳곳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확산된다. 아마 ‘조지오웰’의 『1984년』에 등장하는‘빅브라더(Big Brothers)’들이 통치하는 ‘제레미 벤담’의 전자‘파놉티콘’의 감시사회로의 이행도 우려 할 수 있는 것과 같이, 기술이 제공하는 기회만을 강조하다보면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다양한 문제에 꼼작 없이 갇히는 신세가 될 지도 모를 일이다.

이 저작은 기술의 철학적,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측면에서 조명된 화려한 통찰들로 오늘의 기술사회에 대한 냉정하고 진지한 성찰을 가능케 한다. 과학기술학에 낯선 독자들에게조차 익숙한 언어로 새롭고, 다채로운 이론적 배경과 지식으로 무장하여 지혜롭게 과학기술의 면모를 이해시키고 있다. 또한 과학기술 지상주의나 이와는 반대로 사회결정론과 같은 편협된 주장을 페기하고, 균형된 시각을 지니기 위한 노력의 흔적들이 더욱이 기술철학과 과학기술학이라는 생소한 분야를 접하는 대중에게 고마운 저술이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기술이 자체의 힘으로 도덕적인 사회를 만든다거나 행복한 사회를 만들어 나갈 것이라고 주장하는 과학기술자, 엔지니어, 사회집단을 향한 기술의 책임에 대한 교훈들은 더 이상 다루기 쉬운 도구가 아닌 기술에 대한 명철한 통찰 이상의 조언이랄 수 있다. “인간을 닦달하는 테크놀로지”, 존재자 중심의 사유가 극에 달한 것이 바로 현대기술이라는 하이데거의 지적은 어찌 보면 인간소외의 미래사회를 향한 우울한 예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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