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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가니 - 공지영 장편소설
공지영 지음 / 창비 / 2009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저항 할 수 없는 약자를 무참히 유린하고 학대해온 자를 처벌 하지 않는 사회시스템의 그 추악한 생명력에 무감각해지고 또한 그 시스템에 어떠한 형식으로든 참여하지 않으면 배척되는 사회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기만 한 것인가? 작품은 시스템의 그 견고한 벽을 향한 작은 희망과 정의의 불꽃을 발견하려 한다. 시스템을 구축하고 있는 그 네트웍의 구성들에게 호소하는 것은 온통 욕망의 이해관계로 얽혀있는 그들에게는 어쩜 공허한 울림일 밖에 없을지도 모르겠다.
장애자들과 같은 사회적 약자를 대상으로 하는 특수교육시설, 보호시설에서 이들 시설의 운영주체인 이사장, 원장, 교장 등이 자신을 방어 할 수 없는 장애자들을 성적추행과 노동의 도구로 짓밟는 사건이 툭하면 매스컴을 장식하는 것을 목격하곤 한다. 그때마다 어리석은 대중을 만족시킬 선정적이고 표피적인 언론의 일회성 정보를 보고 혀를 한번 차대는 것과 같이 짧은 연민과 공감을 보낸 것으로 자신의 정의로움에 만족하는 것이 고작이다.
왜 우린 그 부당하고 부조리하며 파렴치한 사건의 진실에 주목하지 않고, 피해자인 그 취약한 사람들을 위해 잘못된 시스템의 시정을 지속적으로 감시하지 않는 것일까.
작품은 청각장애아이자 지체장애자들의 학교이자 기숙원인‘자애원’의 교장, 행정실장, 교사가 이들 연약한 아이들을 대상으로 상습적으로 자행하는 강간, 폭력, 협박, 고문 의 참을 수 없는 추행들이, 세상에서 어떻게 취급되는가하는 우리사회, 아니 인간사회의 비굴하고 야만적이며, 교활한 구조를 통해 적나라하게 해체하고 있다.
가장으로 가족의 부양이란 피할 수 없는 책임으로 자애원의 기간제 교사로 부임하게 되는‘강인호’라는 인물이 겪게 되는 갈등은 바로 우리들이 생활인으로서의 부담과 사회정의를 위한 행동에서의 가치선택이란 어려운 딜레마를 성찰하게 한다.
교사들의 고용과 해고라는 무소불위의 권한을 행사하는 이사장이자 교장, 그리고 행정실장이라는 두 형제의 불의를 외면하는 교사들의 행동에서, 지역의 유지로서 행세하는 이들 형제를 비호하는 경찰과 사법조직에서, 그리고 관할 교육청과 시청 등 감시기관, 교회조직에 이르기 까지 욕망으로 연결된 네트웍은 사회적 불의와 인간의 사악함이 얼마나 공고한 난공불락의 성벽인가를 확연하게 보여준다.
아이의 성적피해를 고소하지만 늑장을 부리는 경찰, 결국은 지역인권센터, 성폭력상담센터라는 시민조직이 나서야 하는 불온한 사회, 신뢰와 정의가 존재치 않는 사회. 약자가 피해를, 불의의 시정을 요구할 공적 기관은 이 땅에서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이 작품의 본질적 무대가 되는 재판과정에서 우리는 바로 이러한 기득권 계층의 공고한 연결망만 확인하게 된다. 가진 것 없는 자들의 돈과 물질에 대한 취약함, 이를 이용하는 파렴치한 기득권자는 용서 받을 수 없는 범죄행위조차 맥없이 허물어뜨린다. 전관예우를 받는 변호사를 선임하고, 기득권자편에서서 위증을 하는 의사, 지역사회의 눈치를 보는 판사, 교회의 이익을 위해 사회정의를 호도하는 기업화된 종교집단까지.
이제 법정은 사회적 강자에게 합법적 면죄부를 발부하는 형식적 기관으로서만 작동한다. 소수의 사악한 이들 기득권 계층의 악행은 그렇다면 어떻게 처단할 수 있을까? 이 부당한 사회시스템을 어떻게 정의로운 시스템으로 전환시킬 수 있을까?
이 견고한 네트웍은 스스로 변하지 않는다. 달콤한 욕망의 쾌락에 사로잡힌 이들 인간군상에 일회적 맞섬으로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님을 이미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고 있지 않은가. ‘소위 실체적 진실’이자 너무도 당연하고 상식적인 사회정의라는 것이 무참히 짓밟히고 외면당하는 것이 현실이다. ‘나’, 바로 우리 개인들이 먼저 변해야 한다. 불의에 저항하고, 악행의 시정을 부단히 요구하며, 정의를 위한 이웃과 약자들, 타인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과 신뢰의 시선을 거두지 않아야 할 것이다. 이 작품은 내내 화가 나고, 파렴치함에 치가 떨려오고, 불의에 영합하는 이 사회에 욕지거리가 터져 나오게 하지만, 어디선가 작은 희망의 불씨들이 항상 피어오르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고귀한 가치를 실현하려는 사람들이 존재함을 일깨운다.
이 땅의 연두, 유리, 민수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서유진 같은 정의를 지켜내려 하는 사람들, 이들을 바라보고 응원할 수 있게 된 강인호 같은 이들의 존재가 있음이 위로가 된다. 타인에 대한 우리들의 작은 연민이 신뢰하는 사회, 정의로운 사회의 밑거름이 될 터이다. 대중에게 또 하나의 사회적 통찰과 도덕적 양심의 각성을 선사하는 빼어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