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파간다 - 대중 심리를 조종하는 선전 전략
에드워드 버네이스 지음, 강미경 옮김 / 공존 / 200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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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에서 뉴욕대 미디어학 교수‘마크 크리스핀 밀러’는 이 저술을 “버네이스의 교활한‘프로파간다(propaganda)'"라 하고 있지만, 오늘날 “대부분의 정부가 두려움과 반감을 가지고 바라보는 견해와 주의를 확산시키려는 목적의 은밀한 제휴를 비난하는 현대 정치용어”가 된 '선전(Propaganda)'에 대한 고전으로서의 지위를 가진 저작이다.

1928년 출간된‘에드워드 버네이스’의 ‘Propaganda’는 “사회의 보이지 않는 메커니즘을 조작하는”‘보이지 않는 정부(invisible government)’로서의 권력, 국민을 지배하는 권력으로 파악하고 있을 정도의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다. 

 이 저술을 오늘의 진전된 홍보 및 광고의 전략적 식견으로서 읽는 것은 이 저술의 본질을 보지 못하게 한다. 물론 버네이스의 저작의도에는 당시 사회각계각층으로서 기업, 정치, 사회사업, 교육, 예술과 과학부문 등에 자신의 PR(Public Relation)역량을 입증하고자 하는 전략이 숨겨져 있어, 지금의 광고홍보부문의 기본적 원리와 방법론의 학습에도 기여를 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저작이 오늘에도 의미를 지니고 다가오는 것은 이미“소수가 다수에 영향을 미치는 강력한 수단”으로서‘선전’을 이해하고 있으며, 대중심리학, 정신분석학, 행동심리학 등 심리학을 적용한 과학으로서의 홍보이론을 정립, 발전시켰다는 측면에서 현대 홍보분야의 초석을 다진 저작물로서의 가치를 가진다 하겠다.
특히,‘노엄 촘스키’의 추천사와 버네이스의 본 저술의 비평으로 ‘마크 크리스핀 밀러’의 탁월한 머리말을 포함하고 있는 이 번역판은 <PROPAGANDA>의 고전적 지위를 만끽하게 해준다.
 

‘특정한 원칙이나 행위를 전파하기 위한 제휴나 체계화된 계획 또는 일치된 운동’이라 정의 되는 ‘선전’이 오늘의 현대사회에서는 “기업이나 사상 또는 집단과 대중의 관계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사건을 새로 만들거나 일정한 방향으로 끼워 맞추려는 일관된 노력이다.”라고 그 속성을 진솔하게 적시하고 있는 저자의 성찰은 마치 21세기 미디어 사회를 내다보고 있는 것만 같다.

민주주의의 현실적 참여가 어찌되었든 오늘의 대중은 상대적으로 소수인 집단의 지배를 받는다는 점을 부인 할 수 없다. 이들이 어떠한 수단과 방법으로 서로 다른 사상과 경험, 주장을 가진 이들을 지배할 수 있을까? 즉 대중의 동의 없이는 권력 자신이 원하는 일을 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이러한 점에서 선전은 대중의 마음을 단단히 틀어쥐고, 여론을 의도하는 방향으로 거의 정확하게 돌려놓을 수 있는 수단으로서의 중대한 의미를 갖는다.

버네이스는 이러한 통찰에서 사람들을 통치하고 그들의 생각을 주조하고 취향을 형성하는 도구로서의 선전이 가지는 무한한 권력으로서 의미를 포착하고 있다. 그리곤 이 보이지 않는 권력으로 다수인 대중을 지배하는 선전방법론, 사회심리적 기제와 동인을 통한 여론 경로의 장악 등에 대해 탁월한 역량을 드러낸다.

‘월터 리프먼’의 “‘합의의 조작(manufacture of consent)’은 공적인 영역 어디에서나 없어서는 안 될 필수품이라는 믿음을 갖기에 이르렀다.”는 지적처럼 대중의 의지를 바꾸기 위해서는 얼마든지 진실을 왜곡 조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은 ‘선전’에 대한 악명을 더욱 강조 한다.

거짓말도 반복하면 진실이 된다는 행동심리학이나 , 스스로 하는 판단이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판단은 부지중에 우리를 지배하는 외부영향이 각인해 놓은 인상의 복합물이라는 집단심리학의 발견은 선전방법의 중대한 수단으로서의 틀을 제공한다. 버네이스의 이러한 이해는 당시 대중을 향한 실질적인 선전 전략의 실행으로 입증되고 있다.‘체이스 필드’의 담배판매전략, 쿨리지의 대통령 재선전략, 미국전력협회의 선전전략, 섬유업체의 패션전략 등 “점진적이고 개별적이면서 분산되고 반(反)의식적인 대중의 반응을 목표로 삼는” 대중 관행에 변화를 가져올 환경을 조성하는 은밀한 수단으로서 위력을 발휘한다.

버네이스의 선전이론을 따라가다 보면 오늘 우리사회에서 벌어지는 정부의 여론 장악을 위한 탐욕스런 발버둥, 거대기업들의 미디어를 통해 전개하는 대중의 관행에 변화를 가져올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보이지 않는 권력의 실체를 느끼게 된다. 대중은 시장권력, 정치권력이 획책하는 사실을 모른 채 어느덧 선전가의 의도대로 따르고 있게 된다. 선전가(정치권력, 시장권력)는 자신이 야기하는 소동에 초연해야 한다는 마치 '조지 오웰'의‘이중사고(doublethink)'같은 모호한 정신상태의 외면으로 가장하는 권력을 보는 이유가 설명된다.

알게 모르게 우리는 선전인지도 모르는 선전에 노출되어 소수의 지배 권력의 꼭두각시가 되어 권력이 보여주는 현상을 진실로 믿어버리고 만다. 뉴욕타임스 1면에는 매일 여덟 건 중요 기사가 게재되며, 이 중 네 건, 즉 절반은 선전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이처럼 뉴스기사라는 외피에 숨어있는 선전의 보이지 않는 힘은 대중의 인식을 조작하고 권력의 의지에 동의하게 하는 왜곡을 정당화한다. 탈법적인 강행처리로 대중의 의사를 거스르면서까지 입법화하려고 하는 현 정권이 고수하는 미디어법은 “선전을 가장 끔찍하게 여기는 사람들조차 선전에 쉽게 넘어간다.”는 선전의 속성에 대한 버네이스의 확신에 찬 주장을 뒷받침 한다. 언론을 장악한 시장권력이나 정치권력은 대중을 무한히 기만할 수 있기에 지울 수 없는 욕망이 된다.

“뉴스를 근원에서부터 오염시키는”이 보이지 않는 권력, ‘선전’은 그래서 오늘의 독자들에게도 유용한 시사를 던진다. 탐욕스런 권력에 조종당하지 않으려면 이 조정의 전략은 필독서가 될 것이다. 고전의 가치는 역시 세월에 풍화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중은 당연히 갈수록‘선전’을 불신했지만 선전의 지지자들은 그 놀라운 성과에 혀를 내둘렀고, 그런 가운데 선전은 갈수록 세를 불려 나갔다.」본문 P50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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