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에서 달까지 - 파리에 중독된 뉴요커의 유쾌한 파리 스케치
애덤 고프닉 지음, 강주헌 옮김 / 즐거운상상 / 2008년 4월
평점 :
절판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프랑스 보통문화에 대한 감수성 높은 사색적 성찰!

“어떠한 곳에나 고유한 정신이 있다고 믿으면서도 항상 밖에 머물려 하며 끝없는 비교를 통해서 어떤 장소에 경의를 표하는 사람이 돼버렸다.”고 작가는 자신이 ‘지독히 우울한 배타주의자’로 변함을 즐기듯이 그의 일상을 사색적으로 그린 파리 체류기라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숨김없이 드러내는 파리를 상상케 한다. 보편적으로 파리하면 떠올리는 에펠탑, 루브르, 생제르맹거리, 국립도서관, 그리고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진 식당들, 패션과 문학 등 예술의 도시가 분명 이야기 속에 소재로 등장한다. 그러나 그 외형을 비현실적인 사진 담기식 관광자의 식견이 아니라 프랑스와 프랑스인에 깊숙이 침잠하여 그네들의 의식의 뿌리와 사고, 습관, 그리고 문화, 사회로의 발현에 이르는 결과로서 그 내재하는 본질을 성찰하고 있다.

저널리스트 답지않은 음울한 철학자적 사유와 시선이 저작물의 전편을 장악하고 있지만, 참았던 웃음이 푸~아 하고 터져나올 정도의 위트로 프랑스인의 설명방식에 대한 다음과 같은 정말의 프랑스식 주석은 프랑스인의 이해를 명료하게 해학적으로 풀어낸다.

“파리에서 무언가 설명되어야 한다면 누구나 예측할 수 있는 순서대로 설명된다. 먼저 낭만적이고 독특한 개인의 관점에서 설명되고, 그 후로 이데올로기가 더해진 절대적 관점의 설명이 뒤따른다. 그리곤 모든 설명이 헛된 것이란 철학적 설명으로 마무리 된다.” 이 대목을 찾아 읽어보고 배를 치며 웃지 않을 독자가 없을 것이다. 프랑스인들은 울상을 짓겠지만 말이다.

저자의 파리에 대한 단상은 긍정적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파리에 대한, 그리고 프랑스인, 프랑스에 대한 애정은 우울할 정도로 깊고 사무치다. 그래서 그의 프랑스인과 프랑스에 비판적 시선들이 거북하지만은 않다.

일례로서 프랑스인의 오만한 자세는“즉흥적이고 겉만 번지르르한 정중한 자세”에서 표현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리면서, 그네들의 “은근한 확신, 호기심의 부족, 비판적 자기반성의 결여”를 BHV(베-아-쉬-베)백화점 판매원들의 “소비자는 언제나 잘못됐다고 우겨대는 이상한 차이”, 그리고 “파리에서는 은행이 비밀번호를 일방적으로 정해주었다!”고 미국식 합리주의, 시장주의에 빗대어 생산자 중심주의 프랑스 사회의 안일한 낭만주의를 꼬집기도 한다.

특히, “포스트모던적 문화의 그늘에서도 끈질기게 버티는 파리의 문명”의 우직스러울 정도의 세계화와 변화에 대한 저항적 고집을 비판하면서, “국가는 온갖 미사여구로 포장되지만 사업적 거래는 결코 찬양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면 바로 프랑스”라고 까지 사회주의적 관념으로 인한 불편을 비난하기도 한다. 이러한 프랑스인들의 배경 인식으로 “하늘에서 갑자기 내려와 모두에게 듬직한 연금을 안겨주는 비밀정부기관이 있다는 믿음”에 의존하는 ‘비비안 포레스테’의 논문 『경제적 공포』를 빗대어 “하얀 헬리콥터적”사고방식이라 평하며, “프랑스적 낭만적 사고방식에 고리대금과 매관매직을 가톨릭적 편견으로 바라본 책”이라고 거품을 물어대기도 한다.

또한, “사색적인 관찰은 프랑스적 감수성의 핵심이며, 좋은면과 나쁜면 모두에서 프랑스적 무관심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그리고, “프랑스 사람들은 어떤 위기를 맞으면 피하려 하지 않고, 아예 아무일도 없었던 것처럼 처신하기 때문이다.” 라고 프랑스인의 낭만적 무관심과 철학적 습성을 사르트르, 피카소의 독일 점령 하에서의 태도나 ‘콜레트’, ‘앙투완 블롱뎅’, ‘모파상’을 통한 프랑스적 기질에 깊이 동화되어 있는 자신의 감상으로 멋지게 풀어내기도 한다.

이 성찰적인 파리 스케치는 ‘장 보르리야르’, 로렌스 스턴, 쥐페, 오든, 버들레르, 마티스, 마네 등 문학, 미술, 철학적 대가들의 스치는 듯 지나는 일상의 에피소드와 저작들을 종횡무진 드나들며, 사색의 맛을 더욱 고급스럽게 치장해준다. 더구나 “사물로 배우는 강의, ‘르숑 데 쇼즈’”에서 ‘요리와 섹스의 비교’, ‘글쓰기와 요리의 비교’는 그 어느 철학적 사유에도 손색이 없는 명문장들이 수를 놓는다. 그리고 ‘모리스 파퐁의 재판’, ‘원격 오류(프랑스탓이 아니라 외국, 외국인등 외부의 탓)를 부르짖는 프랑스 철학자 필립 솔레르에 대한 비판’, ‘극복하거 피하기 어렵다는 점에 역점을 두지 않고 편하고 일상적인 상황으로 돌아가자는 세 노르말(c' est normal)’을 외치는 프랑스인에 대한 편협하고 옹색한 습성의 이야기들까지 화려하면서도 진중함을 잃지 않는 프랑스에 대한 통찰력이 지면을 풍부하게 하고 있다.

‘사치와 평온과 쾌락’이 교묘히 어울리는 “프랑스적 전통은 ‘평온’이란 분위기를 자아낸다. 마네의 꽃 그림에서 풍기는 평온함, 콜레트의 대화에서 느껴지는 평온함, 오후 3시경 고맙게도 삶의 기운을 북돋워 주는 팔레 루아얄의 평온함, 해가 저물고 식사를 마무리 짓는 시간에 마시는 마지막 커피도 프랑스적 평온함을 더해준다”는 작가의 감상적 파리가 한 없이 멋지게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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