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읽는 힘, 사기열전 - 2천 년 전 고전에서 배우는 70가지 인생 수업
김태현 지음, 사마천 원작 / 리텍콘텐츠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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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삶, 즉 인생이란 시대와 인연이 짜놓은 판 위에서 펼쳐지는 운명의 합작품이다!”

 

<열전(列傳)>은 《사기(史記)》 130편 중 70편을 구성하는 역사의 진정한 동력인 개인들- 장수, 상인, 학자, 자객, 등등 - 에 대한 생생한 인간학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때문에 제왕과 제후들을 다루는 <본기(本紀)>나 <세가(世家)>와 달리 사람 냄새가 가득해서 그들의 행적은 더욱 더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 밀착된 교훈들로 다가온다. 특히 사마천의 현실주의에 기반한 관점은 인간이나 세상에 대한 실체적 양태들이어서 도덕적 이상과 같은 괴리감을 덜어 낼 수 있다. 이러한 요인 때문에 이 책에서 우리들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에 대한 인식과 다른 모습들을 발견하게도 되는데, 유방을 도와 한나라의 제국통일 공신들인 명장 한신이나 책사 범저가 시기심으로 탁월한 재능의 인재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장면들처럼 인간의 다면성을 새삼스레 발견하며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한 의구심이 깊어지기도 한다. 아마 오늘의 언어로 해석한 이 책을 읽게 되면 “사람을 읽는 힘”이란 것에 대한 통찰력을 조금은 더 지니게 될지도 모르겠다.

 

그것은 삶을 관통하는 최고의 가치란 무엇일까에 대한 사유의 길을 발견하는 것이 될 수도 있고, 인간 본성의 양면성을 보며 비극적 인간드라마들에서 펼쳐지는 세상의 이치에 대한 해독의 순간일 수도 있으며, 인간의 감춰진 이해관계와 악의를 꿰뚫는 것의 한계를 직시하며 인간의 가변성마저 계산하는 종합적 지혜란 것이 과연 가능한지를 탐색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아무리 재능이 넘치고 가치 있는 과업을 성공적으로 수행할지라도 주변의 인간들과 세상은 그것에 온전한 보상을 하기는커녕 온갖 질투와 음모, 나아가 죽음으로 몰아가기가 일쑤인 실상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네 인간 세상이기에 이러한 물음들로 가득한 이 책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와 타인과의 관계, 이 세상에 대한 이해의 기반을 어떻게 정립해야 하는가 하는 삶의 가치를 정립해보는 시간이 되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은 인문학자 김태현 박사가 옛 지식으로 박제되어버릴 수 있는 2000년 전의 고전 《사기 열전》에 오늘이라는 현재의 숨을 불어넣어 생동하는 실천적 지식으로서 새로운 언어로 해석하여 쓴 인간학이라 할 수 있다. 총 70편의 열전을 야망과 처세에서부터 인생과 허무에 이르는 7장으로 범주화하여 인간 존재의 본질과 마주케 함으로써 삶의 가치와 사유의 시선을 생각토록 이끈다. 그것은 정상의 자리에 섰을 때 어떻게 그 성취로 쥐어진 권력과 재화를 절제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것에 의해 발휘되는 힘의 행사를 멈추어야 할 시기를 선택할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인 범저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세상의 이치란 “해가 중천에 뜨면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는 이 당연함을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못하는 인간들을 향한 경고의 목소리일 것이다.

 

한편 희대의 탐욕스러운 인간으로 회자되곤 하는 훗날 진시황이 되는 정의 친아비인 여불위의 얘기는 범저가 멈출 때를 알았음에 반해 여불위는 권력의 욕망에 눈이 멀어 그만 멈추지를 못한다. 복중에 자신의 아이를 가진 애첩을 진나라 왕에게 들임으로써 나라를 자신의 손아귀에 쥐려했던 야망은 바로 그 야심이 자신의 운명까지 파멸시키는 것을 보게 된다. 인간의 욕심이란 그칠 줄 모른다. 세상을 온통 기회와 거래 관계라는 잣대로 들이댔을 때 자신조차 그 관계로 치환된다는 것을 아는 것이 그토록 어려운 것인지, 아무튼 인간은 그 한계를 인식하는 데 서툴기 그지없는 존재이기에, 더욱 인간관계와 세상의 감춰진 진실을 꿰뚫어보려는 지혜가 필요한 것일 게다.

 

“天下凞凞 皆爲利來 ; 天下壤壤 皆爲利往 (천하희희 개위리래 ; 천하양양 개위리왕) 천하가 떠들썩한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하여 오고, 천하가 북적대는 것은 모두 이익을 위하여 간다." - <화식열전(貨殖列傳)>, p47

 

이 문장은 오늘과 같이 부가 신뢰와 능력을 대신하는 시대를 긍정하는 하나의 목소리일 수 있겠다. 이는 부를 일군 거상들을 그저 칭송하거나 이익에 몰두하라는 얘기가 아니라, 시대를 읽는 지혜와 자신을 다스리는 절제력의 결합을 통한 자유의 쟁취와 존엄한 삶을 추구하려는 인간의 면목을 긍정의 시선에서 바라보는 이야기다. 인간의 물질적 욕망을 부정하기보다 이를 삶을 지탱하는 에너지로 인정하고 긍정함으로써 그 부유함이 모든 사람들이 자유와 안식을 누리는 시대의 동력이 되기를 소망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사실 이렇게 자연의 섭리, 순응을 긍정하는 얘기도 있지만, 열전에는 온통 시기와 질투, 권력의 비정함처럼 ‘나’ 자신이 통제 할 수 없는 타자를 비롯한 시간의 거대한 흐름, 보이지 않는 적들에 의해 참담한 운명에 직면한 인간의 이야기들로 수두룩하다.

 


비범한 능력을 지니면 이를 두려워한 나머지 배제되거나, 혁혁한 전쟁의 승리를 안긴 장수를 기다리는 것은 열광적 환영이나 귀중한 보상이 아니라 간신들의 시기와 음모로 죽음이 기다리기도 한다. 또한 오국연합군 총사령관이 되어 제나라 정벌에 나섰던 기원전 284년의 연나라 상장군 악의(樂毅)가 70여성을 함락하고 나머지 두 성의 함락에 시간을 보내고 있을 때, 이를 악의가 일부러 정복하지 않고 오히려 자신이 제왕이 되기 위해 그곳 백성들의 마음을 얻으려한다는 반역의 행위로 몰아 국가의 운명을 위태로움에 빠지게 하는 간신배들로 득시글대기도 한다. 전쟁터에서 해임된 악의는 조나라로 망명하고 연나라는 제나라에게 다시 함락시켰던 70여 성을 빼앗기고 자신들의 안위마저 위태로운 지경에 빠지고 만다.

 

"차가운 권력의 속성은 타인을 포용하는 도덕적 관념보다 상대를 짓밟는 치밀한 계산에 먼저 반응한다."  - <위기 무안후 열전>, p119

 

나는 <악의 열전(樂毅列傳)>, 이 이야기에서 지금의 한국 정치현실을 본다. 그 어느 때보다 국제정세가 우리에게 이로운 시기가 아니다. 진정한 리더가 없을 때 그토록 비난하던 간신들은 국가가 위난에 닥치면 그저 나라를 팔아먹고 적에 빌붙어 자기 배를 채우려 국가배신을 일삼았던 아픈 역사가 있다. 우리 역사는 이러한 무리들로 인해 오랜 시간 열등국가 소리를 들어야 했다. 저자 김태현은 “상황 변화에 따라 튀어나올 본능적인 방어기제와 질투를 미리 계산”할 줄 알아야 하며, “성취가 가져올 타인의 시기심과 리더의 불안을 세밀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야기의 교훈을 말하지만, 타인의 불안과 질투까지 미리 가늠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실천적 행위가 될 수 있는지 의심스럽기만 하다. 물론 이러한 진단은 인간의 저열한 본성을 인정한다면, 그것마저 가늠하는 예지를 지녀야한다는 말일 테지만, 지금까지 보여 온 인간행태를 볼 때 과연 인간 능력의 한계로 그것이 가능한 것인지 모르겠다.

 

대조적인 두 열전이 있는데, <순리 열전(循吏列傳)>과 <혹리열전(酷吏列傳)>이다. 요즘 한국의 사법부가 정치적 판단에 매몰돼 정의롭지 못한 판결을 한다는 의심의 목소리가 크게 들려온다. 이는 법을 다루는 공직자들이 어떤 시선으로 법을 인식하고 있는가의 문제에 대한 국민의 목소리들일 것이다. 사마천은 <순리 열전(循吏列傳)>에 이치에 맞는 다스림, 즉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진정한 공직자로서 법이란 어두운 밤길을 걷는 사람들이 길을 잃지 않도록 밝혀주는 길잡이로 인식”하고 있으며, <혹리열전(酷吏列傳)>의 인물들은 “법이란 정치적 상대의 목을 치는 날카로운 칼”로서, “법전을 무기로 삼아 국가의 고위관리부터 국민까지 가차 없이 베어 넘기는 자들”을 다루고 있다. 이는 법을 자신들의 사리사욕을 위한 수단으로 여겨 정치적 이익을 위해 법을 수단으로 활용하는 무리들은 법의 이치를 잃어 자신들에 반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도구가 되었을 때, 그 칼을 쥔 자 역시 필연적으로 그 칼날에 베이고 만다는 준엄한 진리를 보여주고 있다. 지금 한국의 사법부 판사들은 순리인가, 혹리인가. 그들만이 자신을 알 것이다. 휘두른 그 법은 그대로 자신을 겨눌 것임을 알아야 하는데 과연 자성(自省)의 지혜가 미칠까 모르겠다.

 

<노자한비열전(老子韓非列傳)>은 노자와 한비자를 대비하여 이들 명쾌한 사상과 재능이 권력의 세계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여준다. 인간 본성의 양면을 첨예하게 보여주는 이야기인데, 엄격한 법(法), 통치기술(術), 절대적 권위인 세(勢)를 주장함으로써 쇠락하는 조국 한나라의 부국강병을 호소했던 한비(韓非)가 쓴 “다섯 좀 벌레를 비판한 <오두(五蠹)〉”는 그대로 오늘 한국사회의 오적을 떠올리게 한다. 법피아, 검피아에서, 핵마피아, 종교마피아, 언론마피아, 재벌마피아에 이르는 이 사회를 더럽히는 신오적(新五賊)은 법치의 진정함이 무엇인지에 대한 오늘의 우리현실을 반성토록 한다. 물론 사마천은 한비를 통해 높은 재능과 사상, 실천력이 권력자들의 경계심을 초래, 화를 부른다는 경고로서 서술되고 있지만, 한비가 동문수학한 재상 이사의 간사한 음모와 계략에 의해 독배로 사살되는 것은 또 다른 경고로 다가온다. 한 탁월한 인물이 얄팍한 투기에 의해 파멸 당할 때 제국 진나라 또한 패망의 길로 들어섰음을 우리는 기억해야만 할 것 같다. 끈질긴 기득권 패거리들이 항시 저들보다 재능 있는 인물을 어떻게 세상에서 몰아냈는지를 안다면 오늘의 우리는 이러한 세태에 대한 이해를 한층 진지하게 인식해야 할 것이라는 교훈으로 새기고 싶어진다.


“臣恐大王之投杼也(신공대왕지투저야; 신은 대왕께서 끝내 베틀의 북을 내던지실까 두렵습니다), 아무리 굳은 믿음도 같은 의심과 모함이 반복되면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 <저리자 감무 열전>, p289

 

열전을 이렇게 읽다보면 한 시대의 뛰어난 인물들이 모두 이를 시기하거나 자기 권력의 유지에 불안을 느낀 집단이나 군주에 의해 척살되거나 자결이 강요되고, 죽음에 내몰린 역사가 인간들의 그치지 않는 행태 바로 그것임을 확인하게 된다. 이간질과 변덕, 의심과 곡해, 배신과 시기에 인간성이라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를 목격하게 된다. 권력과 부 앞에 형제도, 부모도, 오랜 우정을 나눈 벗도 모두 잔악함으로 돌변한다는 것을. 하물며 인간의 신체 질병을 진단치료 하는 신의(神醫)로 불리는 편작(扁鵲)조차 열등감에 이를 시기하던 어의 이혜라는 인물에 의해 길가에서 주살되는 것은 인간의 본성에 도사린 그 수치스러운 잔악성이 얼마나 깊게 인간 세계에 깃든 것인지에 진저리 치게 한다.

 

사마천은 이것이 인간이기에 이조차 삶의 관계에서 종합적으로 헤아리는 지혜를 지녀야 할 것이라 말하는 듯해서 산다는 것, 이 세계에서 함께 산다는 것의 지독한 염오(厭惡)를 느끼게 된다. 하물며 노자(老子)가 “아름답고 좋은 것은 상서롭지 못한 그릇이다.(不祥之器)”라 말 할 정도로 뛰어난 재능이 재앙의 씨앗임을 말하는 것처럼, 타인의 변변치 못한 용렬(庸劣)한 시기심까지 헤아리며 살아야 한다는 삶의 지혜란 것은 왠지 역겹기조차 하다. 아무튼 2000년이란 시간을 건너온 지혜의 긴 여정을 통해 우리는 다시 인간의 욕망과 두려움, 선택과 두려움, 성공과 몰락이라는 오늘의 우리와 닮은 형상의 삶들로부터 인간을 다시 묻게 된다.

 

아마 많은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우리가 살아가며 마주하거나 마주하게 될 중요한 삶의 문제들을 수두룩하게 접할 것이라 여겨진다. 우리는 예측 할 수 없는 변화와 경쟁, 인간관계의 갈등과 집단 안의 이해관계 속에서 끊임없이 선택하고 판단해야 할 것이다. 이 책은 삶에서 한 걸음 뒤로 물러나 우리의 판단을 조금은 겸손하게 다시 생각해보는 기회가 되어 주리라 생각된다. 아무쪼록 “인생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하나의 인간학 지도”라 해도 될 것 같다. <사기열전>을 원(原)저술로 읽을 때의 지루함을 떨쳐내고 오늘 우리들의 실천적 언어로 다시 읽는 기회가 되었다. 인간과 삶의 본리에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이들에게 꼭 읽어보라고 추천한다. 분명 인생의 든든한 길잡이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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