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 Distant Mirror: The Calamitous 14th Century (Paperback)
Barbara Wertheim Tuchman / Ballantine Books / 1987년 7월
평점 :
600년 시차의 낯선 문명의 과거로부터 불변하는 인간본성의 반영을 발견한다.
그 발견은 아마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야만의 세계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그 원인 행위들은 무엇인가?
[summary]
감상글의 요약을 앞세우는 이유는 책의 방대함, 이를테면 ‘중세 백과사전’이라할 만큼 당대의 다채로운 생활상을 비롯한 정치, 종교, 문화의 모든 것이 망라되어 있어 내 누추한 소회가 산만한 감상이 될 수밖에 없는 까닭이다. 한 마디로 이 걸출한 역사저술은 타락해가는 교회와 전장의 참상, 궁정과 귀족들의 흥청만청 풍요와 대비되어 절규하는 농민 모두를 목격한 대영주 앙게랑 드 쿠시 7세라는 인물의 삶을 중심으로 14세기 파국의 유럽을 들여다보는 역사 서사(敍事)이다.
1303년 훗날 소빙하기로 불릴 혹한과 냉해가 유럽대륙 전체를 휩쓸며 대기근으로 14세기를 맞는 당대인들은 이 세기가 인류 역사상 가장 끔찍한 인간 퇴행의 시대로 기록될 것임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한 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 끝나지 않고 지속되며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쟁, 교회의 탐욕과 문란함의 극성 등 모든 것의 부패를 향해 마치 의도적으로 미친 듯 질주해나가는 듯한 재앙의 시대를 통해 이 독특한 역사저술은 600년 시차의 먼 역사의 시간을 오늘의 세계에 비춘다. 그것은 먼 거울, 즉 낯선 문명의 과거에 맺힌 상(像)으로부터 불변하는 인간본성의 반영을 발견하는 것이 될 것이다. 그 발견을 위한 물음은 아마 이런 것이 될 것이다. 야만의 세계는 어떻게 출현하는가, 그 원인 행위들은 무엇인가?
야만과 폭력의 끝을 향하기라도 한 듯 지옥의 구렁텅이로 질주하는 14세기라는 과거는 오늘 우리들의 행동에 여전히 남아있는 인간 본성의 거울이 된다. 변화없이 무한 반복하는 인간의 그 어리석은 행동들을 무엇보다 ‘읽히는 역사(narrative history)’를 통해 모든 대중들이 ‘인간은 역사를 통해 무엇이 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 이 위대한 저술에서 바로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생생하게 직시하게 된다. 이 책의 국역본 출간에 앞서 거듭 두 차례 읽으며, 오래 펼쳐볼 소장본의 필요성을 느낀 책이었다. 가족들 모두 돌아가며 읽어 보고 서로 그 소회를 나누기에 좋은 저작이다. 터크먼은 14세기 이 야만의 인간 양상이 20세기 나치의 잔혹상으로 반복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이것은 다시금 오늘 신파시즘과 극우화되어가는 이 세계 양상의 거울이 되어 인류 자신들의 모습을 돌아볼 것을 제안하는 듯하다. 우리들은 이 책으로부터 무수한 인간 반영(反映)들을 발견하고 현실 통찰의 지혜를 거둬 올릴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
1. 역사는 인간 진보(발전)의 문명 서사가 아니다.
역사철학자로서의 헤겔은 역사는 하나의 방향으로 발전하는, 특히 인간 정신이 자기 자신을 인식해 가는 과정으로서 세계사는 자유의식의 진보라고, 즉 ‘자유의 진보’라는 통일적 의미의 존재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20세기의 대표 역사저술가인 바바라 터크먼(Barbara W. Tuchman)은 이 주장의 빈틈을 쫓기라도 하듯 진보의 대척에 있는 퇴행의 역사로, 오직 폭력과 야만의 지배로 규칙이 무너져 내리며 그 바닥의 한계로 빠져드는 ‘속박의 진보(?)’가 인간 정신을 휩쓸던 14세기 중세 100년의 재앙적 시기를 다루고 있다. 헤겔의 역사관을 조롱하듯 자유의 보편원리가 이성의 운동으로 진전해가기는커녕 이 시대는 인간의 오판과 우연, 모순과 정신적 지체를 넘어 퇴행으로 치달으며 역사의 시간 속에서 인간 본성의 항구적 변화 불능성을 입증한다. “사학자들은 이 시기를 싫어하고 회피하는데, 인류의 진보라는 패턴에 끼워 맞출 수가 없기 때문이다.”라는 저자 서문의 글은 곧 헤겔 부류의 철학에 대한 반박의 의지표명일수도 있을 것이다.
아마 터크먼은 이러한 반(反)헤겔주의 역사관으로서, 과거를 있는 그대로 복원하는 문헌과 사료 중심의 객관적 역사를 강조하여 역사의 정확성을 기술하는 실증주의 역사학에 기초한 연대기적 서사형식으로 독자적인 역사서술방식을 선택하였을 것만 같다. 이처럼 전통적 역사학자와 다른 걸음으로 자유로운 문체와 극적(劇的) 역사서술을 채택하는, 다시 말해 학술적 엄밀성과 문학적 서사를 결합하여 일반 독자도 몰입해서 읽을 수 있는 이야기로 바꾸어 놓았다. 14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휩쓴 흑사병, 끝나지 않고 지속되며 점점 확산되어가는 전쟁, 교회의 탐욕과 문란함의 극성 등 모든 것의 부패를 향해 마치 의도적으로 미친 듯 질주해나가는 듯한 재앙의 시대를 통해 오늘의 세계를 비춘다. 종말로 치닫는 14세기라는 과거는 현재를 비추는 거울이 된다. 무엇보다 ‘읽히는 역사(narrative history)’로서 모든 대중들이 ‘인간은 역사를 통해 무엇이 되는가?’라는 물음을 스스로 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랐던 것인지도 모른다.
이 책 《먼 거울 (A distant mirror)》은 역사 속 인간의 행위로부터 윤리적, 정치적 반성의 사유를 추출하고자 하는 치밀한 노고의 과실이다. 대체 인간과 인간사회의 반복되는 재앙의 뿌리에 있는 근원 혹은 요인들은 무엇인지 역사적 시간을 따라 밀도 높고 긴장감 있는 전개로 마치 소설처럼 몰입하게 한다. 터크먼 역사서술의 한 특징인데 저자는 추상적 구조보다 시대를 대표할 만한 특정인물의 삶을 서사의 도구로 삼아 그들의 판단, 오판, 성격, 감정에 주목하게 하여 역사를 인간적 드라마로 만들어낸다. 어쩌면 이것이 이 독특한 역사서를 흥미로운 이야기로 받아들이게 하는 요인일지도 모르겠다. 해서 이 책의 중심인물은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 지역의 대(大)영주 앙게랑 드 쿠시 7세(1340-1397)의 행적과 관련하여 전개된다.
“공감의 어려움, 즉 중세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가치에 진정으로 들어가기의 어려움이야말로 마지막 장애물이었다. 여기서의 주된 장벽은 바로 당시의 기독교인 것 같다. (...)
중세 기독교의 지배원리와 일상생활 사이의 간극은 중세의 거대한 함정이었다.” -저자 〈서문〉 에서
이 파국의 시대를 둘러보며 “인간이라는 종이 이전에 오늘보다 더 나쁜 일도 견디고 살아남았음을 알게 됨으로써” 오늘의 삶을 안심하게 될 거라는 저자의 조크의 목소리에 독서 내내 연신 머리를 끄덕였다. 대체 14세기가 왜 치명적 재앙의 시기였는지, 역사의 진보라는 이해에 파열음을 내게 하는지, 그 영향의 요인들을 찾는 대항해(총 1,200여 쪽에 이르는)는 그야말로 흥미진진한 시간이 된다. 14세기 100년의 시간 동안 인간을 더할 나위 없는 야만과 폭력의 심화상태로 몰아넣은 현상들을 시시콜콜 열거하려면 아마 이 책의 내용을 모두 쏟아 내놓아야 할 만큼 무수하게 복잡한 사안들의 상호 얽힘을 일일이 기술해야 할 터일 것이다.
2. 세계의 질서와 규칙은 어떻게 무너지는가.
그것은 14세기가 시작되자 몰아치기 시작한 기후변동으로 인한 대기근, 교회의 극단적인 부패와 타락을 비롯한 교권의 분열, 14세기 내내 시차를 두고 6차례나 유럽 인구를 몰살시킨 흑사병의 창궐, 프랑스의 왕위 계승을 빌미로 삼아 영지를 두고 벌어진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전쟁으로 시작되어 이후 100년간 이해관계망의 복잡한 얽힘으로 심화 확장되어간 백년전쟁, 이 전쟁의 부산물인 유럽대륙 전체를 약탈 유린, 방화, 살해가 무법적으로 자행되는 예외없는 유럽전역으로의 귀족과 기사계급들로 구성된 산적단과 용병 무리의 확산, 기사도라는 모순으로 점철된 영예와 관능이 뒤섞인 허위의 정신이 야기한 폭력성의 파급으로서 이식된 파국적 발현들, 여전히 기독교 아마겟돈, 예수 재림이라는 유한 역사성에 매몰된 어리석은 도시평민과 농민들의 노예근성 등이 상호 최악의 상태를 향한 암흑, 즉 적대적이고 폭력적인 사건들의 압력으로 질서와 규칙이 남김없이 무너져 내린 무법의 시대를 목격하게 한다.
정말이지 스위스 역사학자 시스몽디(J.C.LS. de Sismondi)의 말처럼 “14세기는 인류에게 좋지 않았던 시기였다.” 한꺼번에 이러한 동시다발의 재앙적 사건들이 발생했다는 이유만으로 인간과 그들의 사회가 야만으로 복귀하는 것일까? 물론 그럴 수 있겠다. 대량운송 역량이 없던 시대에 기근은 지역자원에 의존해야만 하던 사람들을 굶주림에 시달리게 했을 것이고, 거기에 교회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약탈적 세금 징수, 전쟁으로 인한 자원 강탈, 흑사병과 전쟁으로 인한 인구감소가 불러온 노동력의 가공할 감소, 여기에 일 없는 귀족들이 벌이는 산적단의 약탈과 파괴, 살인 등이 쉴 새 없이 몰아닥치는 세상이라면 그 누가 온전한 정신으로 살아남을 수 있겠는가. 사실 오늘의 시선으로 보면 정말 낯선 문명, 아니 문명이랄 수 없는 세계를 들여다보는 느낌이다.
“14세기의 헤픈 정서의 이면에는 고통과 죽음의 장관에 대한 전반적인 무감각이 있었다.”
이러한 시대에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품게 될까? 그 어디에서도 그 누구에게도 하물며 교회에서도 보증된 미래에 대한 느낌은커녕 하루를 견딜 구원조차도 전혀 찾을 수 없었던 사람들에게 도덕성이란 어쩌면 낯선 언어였을지도 모른다. 거듭되는 국왕 등 귀족세력의 오판과 실정(失政)은 체포된 귀족과 국왕을 석방하기 위한 몸값이라는 납세의 부담 증가로 돌아오고, 그 누구도 살아남을 수 없이 휩쓰는 흑사병은 무의식적으로 인명(人命)에 대한 경시를 조장했을 것이다. 더구나 끊임없이 벌어지는 약탈전쟁과 산적단의 싹쓸이식 집단 학살에 노출되면 삶과 죽음의 경계가 흐릿해졌을 것이다. 여기에 더해 교회는 “삶이란 기껏해야 영원한 고향을 향한 힘들고 지치는 여행”일 뿐이며, “내세인 하느님에게로 나아가는 중에 겪는 유배의 한 단계라는 의식”이라고 떠들어대고 있었으니, 지상의 삶에서 겪는 잔인하고 참혹한 헤어날 수 없는 형편은 더더욱 축적된 인류의 지식들인 규칙들의 가치를 상실토록 하는 요소였을 것이다.
영토의 지배를 통한 권력의 확보는 필연적으로 전쟁이라는 폭력을 요구한다. 14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지옥으로 몰아넣은 백년전쟁은 프랑스 국왕 필리프4세의 손자인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3세가 프랑스왕위 계승권의 주장을 빌미로 시작한 영토 야욕, 즉 교역로의 안정적 확보와 생산물 거점의 확보를 위한 침략전쟁이 발단이다. 이것을 오늘날 형성된 국가와 비교할 수 없는 것이 부계와 모계의 가문들, 결혼으로 인해 얽힌 가문들, 조약과 동맹으로 결합된 관계들로 인해 유럽 대륙 전체에 흩뿌려져 있는 그들의 영지로 인해 발생하는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국가이전의 봉건체제 결과이기 때문이다. 바바라 터크먼이 서사의 중심인물로 내세운 대영주 쿠시가문의 앙게랑 7세는 이러한 양상을 보여주는 전형적 귀족이자, 기사이며, 소위 산적단(용병부대)으로 불리는 세력과의 그 경계가 모호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앙게랑 7세의 아버지인 앙게랑 6세와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공국 카타리나 공주와의 결합은 프랑스 국왕과 오스트리아 공작 사이에 두 번의 조약 체결을 통해서 이루어진 이미 영토와 부와 정치적 거래를 함유하고 있다. 이것은 카타리나를 통한 새로운 영지를 포함하고 막대한 결혼 지참금과 상호 전쟁동맹을 의미한다. 또한 앙게랑 7세는 잉글랜드 에드워드 3세 국왕의 장녀 이자벨라와 결혼함으로써 프랑스, 잉글랜드,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등에 산재한 그의 영지는 유럽 대륙 곳곳에 이해관계를 갖게 된다. 이것이 실체화되는 과정으로서 교황령 회복을 위해 이탈리아 지역을 통과하며 벌이는 전쟁의 양상에서 드러나는 데, 경로의 도처에서 이해관계자들과 마주치게 되고, 분명 적대적 전쟁이지만 혈연으로 맺어진 영주의 지역을 지나갈 때면 상호 양해 아래 공격 없이 그저 통과한다거나, 어제의 우호관계가 돌연 상대의 이해관계의 변화로 인해 배신을 당하는 낭패를 당하는 등 그야말로 정상적 전쟁이라 할 수 없는 혼전의 양태를 드러낸다.
게다가 교황은 이를 자기 권력의 보호를 위한 대리전으로 삼음으로써 그 혼전의 양상은 더욱 복잡해진다. 교황파(그 속에서도 또 여러 분파들), 국왕파(잉글랜드 국왕파 프랑스 국왕파 등), 그리고 개별 영주의 이해득실의 판단에 따른 내편과 네편의 규정 불가능성은 더욱 전쟁을 난감하게 바라보게 한다. 이러한 난맥상이 역사의 유래가 없는 100년 전쟁을 만들어내고 확대시킨다. 이에 대한 피해는 누가 안아야 할까. 고스란히 피지배자들인 농민과 상인 등 평민들이다. 더구나 공식 전쟁이 아닌 지역약탈 전쟁도 쉴 새 없이 발생되는데, 이것의 토대인 당대 기사귀족계급의 정신인 기사도 정신이라는 허무맹랑하고 모순으로 점철된 폭력성과 예절이 결합된 기이함의 발로가 중대하게 작용한다.
프랑스와 잉글랜드의 공식 전쟁이 일시적 휴전 상태에 들어가면 병력은 갑자기 주 수입원인 약탈수입이 사라진다. 이를 벌충하기 위해 약탈을 지속하는 소위 산적단이라는 집단이다. 이것의 세력이 어찌나 강력한지, 그 수장들이 귀족의 이름을 하고 역사 기록에 남아있는 이유이다. 전쟁으로 이미 손상이 극심한 지역의 살아남은 곳을 이들이 다시금 유린한다. 이들 폭력성의 궁극적 배경과 관련해서 눈에 띄게 유치하고 잔인했던 중세 행동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억제되지 못한 충동으로 인한 두드러진 무능력”의 원천을 주목하게 된다.
“인구의 절반이 21세 미만이었고, 3분의 1인 14세 미만”이었다는 사실이다. 각종의 전쟁 지휘자들과 기사들이 대개 20세 전후였다는 사실에서 전장의 잔인한 야수성이 그들의 격렬한 충동의 배설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강간, 약탈, 파괴, 방화, 살인. 한 세기 내내 인구를 절멸하다시피 생명을 반복적으로 습격한 흑사병과 이러한 참혹한 야만적 전쟁은 서로 지옥의 형상을 더욱 재촉했을 것이다. 넘쳐나는 시체들과 악화된 생활환경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그 원인을 모호하게 하며 삶을 더욱 황폐시켰을 것이다. 이 14세기 중세의 심리란 어쩌면 성장하지 못한 유아성 탈피에 실패한 시대성의 한계였는지도 모른다. 교회를 위시한 국왕과 귀족 지배세력의 총체적 부패와 타락이라는 정신적 부패의 기반위에 전염병과 전쟁으로 넘쳐나는 시체와 굶주림은 끊임없이 서로 순환하며 그 부정성의 끝으로 치달았다.
3. 파괴되는 인간의 삶 - 성숙하지 못한 시민 의식
앞서 언급했듯 프랑스 국왕 필리프4세와 교황 보니파시오와의 싸움으로 비롯된 ‘아비뇽 유수(-幽囚, Avignon Papacy)’라고 칭하기도 하는 교황청 이전의 배경도 “어떤 세속 군주에게도 어떠한 형태의 세금도 내지 말라고 금지”하며 국왕의 조세 부과권은 교황 자신의 승인 하에서만 가능하다는 황금 독점의 탐욕이 불러온 결과이다. “권원을 받기 위해서는 모든 피조물은 유일한 거룩한 자인 (자신인)교황에게만 복종하는 것이 필수”라는 이 황당무계(荒唐無稽)한 선언은 프랑스가 지배하고 있던 나폴리와 시칠리아 왕국의 영지가 있던 프랑스 영토 내 아비뇽으로 교황청의 이전을 초래한다. “세입과 모든 통치 조직을 중앙집중화하여 위신과 권력 벌충에 혈안이 되어있던 교황의 무차별적 조세 약취(略取)와 기만적 성물거래 판매 수익, 사면권 판매, 죽어가는 자의 유증 몰수”에 이르기까지 그악한 부에 대한 탐닉이 만들어낸 결과다. 조세 부과를 두고 벌어진 싸움의 피해는 고스란히 농민의 부담이었다.
“아아, 단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나는 장차 어떻게 될까? (...) 촌민으로 태어난 바로 그 순간부터 힘들구나. 태어날 때에 고통도 함께 태어나는 구나 (...) 너희 귀족들은 마치 먹이를 찾는 늑대와도 같다. 너희는 지옥에서 울부짖게 될 것이니...“
이렇게 요구되는 것이란 인내, 고통, 체념뿐이었던 농민의 비참은 절정에 이르렀다. 끊임없는 전쟁 자원의 강제부담과 대기근의 굶주림, 흑사병의 반복적 강타. 교회와 귀족 계급의 폭력적 강탈이 그 어떤 제약도 없이 오직 자신들의 이익만을 위해 자행되는 사회는 사실 그리 쉽게 상상되지 않는다. 홉스가 말한 인간은 인간에 대해 늑대라는 말이 여지없이 들어맞는 사회, 오늘의 독자인 내게는 하나의 폭력을 야기했던 극히 사적 탐욕의 추구를 모두가 개별적으로 자행할 경우, 그것들이 지속적으로 쌓이면 규칙파괴의 압력은 자동적으로 작동된다는 실증 사례로 받아들여진다.
시민이나 농촌 빈민의 저항이 왜 없었겠는가. 1358년 우아즈 강변 생뢰마을에서 시작되어 10만 명에 달하는 농민조직이 교회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으며, 소부르주아와 연합한 이 비(非)귀족 공동전쟁은 기사귀족, 혹은 산적단에 의해 무참하게 도륙되어 한 달 만에 절멸되기도 한다. “젊은 쿠시 영주 앙게랑 7세가 자기 영지의 신사계급의 선두에 나서서 자크들의 절멸을 완수했다.” 이 기록처럼 쿠시의 영주는 자크들이 집결한 클레르몽으로 진격하여 3000명 이상의 농민을 학살하여 저항운동을 압살하는 공(?)을 세우기도 한다. (자크(Jacques)는 귀족계급이 농민을 비하하여 부르던 호칭이다)
사실 이 농민봉기는 얻은 것이 아무것도 없었으며 변화도 전무했다는 점에서 이미 누적된 죽음만을 더 늘렸다는 사가(史家)들의 평처럼 농민저항자들은 스스로의 심리적 열등감을 극복하지 못했음을 보여줄 뿐이다. 아직 그들의 정신이 숙성되려면 역사의 시간이 더 필요했던 것이리라. 이와 더불어 1358년 삼부회의를 소집하여 국왕의 실정과 추밀관 등 왕의 측근들의 부패 척결을 요구하는 상인들로 이루어진 제3계급의 개혁운동도 있었다. 시민지도자인 마르셀의 도시 파리 성벽의 수호를 통해 국왕을 비롯한 귀족과 성직자 계급의 실정과 부패의 시정에 접근했지만 내부 지지자들에 의해 피살됨으로써 좋은 정부를 향한 꿈도 일장춘몽으로 끝나버린다.
바라바 터크먼은 이에 대해 짧은 논평을 하는데, “프랑스 국민은 군주제를 제한하려는 시도를 지지할 준비가 되지 않았다.”고, 시민대중의 인식능력은 시대의 문화를 호령하고 사회구조 깊이 뿌리내린 제도 종교인 기독교 천년 지배가 만들어놓은 수동적 삶을 떠날 수 없었을 게다. 삼부회의 권리가 사라지고, 이들이 결의했던 개혁법 조항들은 페기 되었다. 이로써 프랑스 왕실은 절대왕정 시대를 누리며 더욱 왕권이 방치되는 것을 우리들은 안다. 시민대중은 “모든 문제, 즉 과도한 세금, 부정직한 정부, 변조된 주화, 군사적 패배. 산적단의 도적질, 자국의 영락한 상황 등을 황실의 사악한 추밀관과 비겁한 귀족 탓으로 돌렸으며. 국왕이나 왕세자 탓으로 돌리지 않았다.” 이러한 역사들을 읽을 때마다 항상 역사의 발목을 잡는 시민적 몽매성이라는 수구성의 본질을 보는듯해 울화가 치밀어 오른다.
4. 결어 - 파국의 역사에서 우리가 읽어야 하는 것
이 600년 시차의 먼 거울인 14세기 보증된 미래에 대한 느낌을 전혀 갖지 못했던 고통의 시대로부터 무엇을 볼 수 있는 것인가? 나는 시민 개혁운동의 실패의 과정에 주목했는데, 오늘 우리들이 경계해야하는 것은 실정에 대한 개혁을 주도했던 삼부회의 지도자 마르셀이 자신의 지지토대인 시민집단에 의한 피살로 끝났다는 이면의 실체이다. 이러한 살해집단의 심리적 본성은 아렌트도 지적했듯 오늘날 파시즘으로 지칭되는 것, 특히 전체주의의 특징 중 하나인 강자 동일시의 유해한 감정이다. 자신들은 분명 피지배 계급임에도 왕족과 귀족, 성직자 계급의 그 약탈적 폭력성과 진실을 호도하는 은폐된 탐욕에 자신들의 권한을 떠넘기는 노예근성이다. 이것이 바로 지금 여기에서도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채 떠도는 것은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취약한 본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문제가 복잡해지는 것은 쾌락을 금지하면서 실제로는 단념하지 않았기 때문이며,
교회가 그 금지를 파열시키는 주체였기에. 금전과 소유에 대해서라면 14세기보다
더 관심을 쏟았던 시대가 없었으며, 이른바 육(肉)에 대한 관심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또한 타락의 극한 지점까지 치달은 그들만의 폐쇄된 카르텔을 형성하여 자신들의 이권을 위해 서로 결탁하여 사회를 밑바닥까지 좀먹었던 중세 교회는 오늘의 한국 개신교마피아나, 사법카르텔, 언론 카르텔 등 기득권으로 결탁한 세력처럼 이 사회가 오랜시간 축적한 민주주의 제도와 관행들을 무너뜨리는 중대한 악성 요인의 실체를 보여준다. 혼인과 동맹과 이해거래로 혼란스럽게 엮인, 폐쇄된 카르텔 네트워크로 형성된 14세기 유럽의 귀족들이 보인 양태는 그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어떻게 행동하는지, 그 결과 세계의 파국을 만들어내는 대표적 원인임을 증거 한다. 혈연과 이해(利害)로 얽힌 관계에는 정의(正義)의 윤리가 들어서지 못한다. 즉 규칙과 질서를 무력하게 만들어버린다. 그러한 세계에서 대중의 삶을 실종되기 마련이다. 그렇게 침몰을 맞이하게 될 때, 중세의 사람들처럼 아마겟돈이라는 최후의 전쟁 승리로 새로운 세계가 올 것이라는 망상의 기다림 같은 것은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그저 힘겨운 고통의 나락에 젖은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프랑스와 잉글랜드, 스페인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 공국의 왕과 대영주 귀족들이 그네들의 사적 이익을 위해 벌이는 전쟁이 초래한 것은 무엇인가? 수많은 평민들의 무고한 죽음과 삶의 기반 상실 아닌가. 그런데 그들에게 전쟁을 야기한 지배계급은 어떻게 행동했나? 끊임없는 강탈과 협박, 살해의 위협 아닌가 말이다. 그들 지배계급은 그 오랜 소모적 전쟁에도 불구하고 이 역사의 기록에는 휘황찬란한 궁중과 금을 입힌 산해진미의 성찬 아닌가. 죽을 때까지 쥐어짜여지는 평민과 농민의 한탄이 무얼 말하고 있는가. 전쟁의 폭력을 미화하고 그 야만적 폭력에 환호하는 심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함을 돌아보아야 한다.
이 저술의 제목이 "A Distant Mirror"인 것은 이 야만과 파국의 역사를 오늘의 우리들의 본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읽기를 바라는 의지의 표현일 것이다. 이 역사 속 인간의 행위는 끝없이 반복되고 있다. ‘역사는 결코 반복되지 않지만, 인간은 항상 반복한다.’는 볼테르의 말은 인간행위의 그 반복성에 대한 경고의 선언인 것이다. 역사는 우리들의 거울이다. 우리는 그 거울에서 자신들의 모습을 볼 수 있어야 하며, 그 발견된 모습으로부터 자기 인식의 지평을 돌보아야 할 것이라 믿는다. 세세하게 서술된 방대한 이 역사저술의 미흡한 감상에 머문 것이 유감스러울 뿐이다. 내 능력의 한계이다. 독자들은 흑사병, 십자군 전쟁, 교회의 타락, 세금, 노역, 노예제(봉건제)등 사회구조의 붕괴와 함께 결혼, 출산, 노동, 성 역할 등 개인의 삶을 구체적으로 재구성하여 역사의 시간이라는 흐름 속에 인간의 심리와 정치적 긴장을 극적으로 직조해낸 이 저술로부터 무한한 영감과 반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