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나쁜 무리
예소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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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가장 평온하고 즐거운 마음을 주는 작가와 동시대를 살고 있음이 기쁘다. 그 호감의 정체는 선물(膳物) 같은 감정의 풍경들이 선사하는 내적 단단함 속에 내재된 어진 마음의 인물들이 어른거리고, 딱딱하게 굳은 마음의 벽을 허물어뜨릴 만큼 밀고 들어오는 진짜배기 웃음 코드에 심어져 있는 어쩔 수 없는 사람들의 관계에 벌어진 틈을 연결하려는 애씀과 그 지혜이다.1) 이처럼 관계들이 빚어내는 온갖 감정들의 풍속화는 기 발표작인 단편 우리는 계절마다에서의 이상한 낙차라는 타자와의 간극에서부터, 그 개와 혁명에서의 간극의 이해, 간극이 벌어진 틈새로서가 아니라 의미작용의 변화로써 유대의 가능성이 되고, 이 소설집 너의 나쁜 무리에서는 그 간극의 봉합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냄으로써 극복의 가능성을 열어보이고자 한다.

 

아마 이 작품집은 문학평론가 박혜진이 발문에서 말하는 바로 새로운 관계를 형상화하기 위한 이 시대 풍경의 채집(採集)”일 것이다. 그것은 사람들 사이에서 형성되는 관계의 감각을 포착하는 섬세한 시선이고, 그로부터 소원하고 단절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얽매인 질곡(桎梏)들의 형상을 풀어 보여줌으로써, 그것들에 대한 공감을 통해 연결의 가능성을 엿보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수록된 일곱 편의 작품 모두가 이러한 중심에 모이는 이야기들이지만 특히 표제작 너의 나쁜 무리를 비롯하여 아무 사이소란한 속삭임, 이 세 편의 단편소설만큼 기분 좋은 가벼움, 웃음의 평온 속에서 읽은 작품은 근래에 없었던 듯하다.

 

경쾌하고 소박한 감정들의 정경 속에서 이 시대 사람들이 느끼는 무수한 관계의 형태들을 포착해 드러내는 이야기들은 그대로 내 감각에 스며들어 그 어떤 해석도 요구되지 않는 온전히 평온한 공감과 이해가 되었다. 소설을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는, 그 가운데 절로 수긍케 되는 다채로운 관계의 상황들에서 우리들이 꾸는 작은 소망, 그것은 아무 사이의 노인 돌봄 일을 하는 희지가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오롯이 그러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 말하는 그 작고 높은 자부심에 깃든 소박한 삶의 책임성이고, 뜰의 미래의 문주의 둘째 고모, 뚜비의 도자기 안 쪽지에 써진 유언 지름길로 가지 않을 것이다. (...) 사랑하는 이에게 모든 것을 내주고서, 나의 방식대로 나를 물림할 것일 게다.

 

나는 소란한 속삭임에서 시내가 모아에게 귓속말로 비밀을 속삭이진 않으나 그것이 마치 큰 비밀이라도 되는 양 속삭이듯 들려주는 속삭임을 사람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는 힘 같은 것이라 할 때, 이 소설집 전체를 표현하는 말처럼 내게 다가왔다. 그래, 이 소설집 전체는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해주는 힘으로 가득 차있다. 이 표현이 너무 좋아 몇 번이고 입 밖으로 소리 내 본다. 이 작품은 서로들 자기주장을 어떻게든 펼쳐 보이려는 사람들로 들끓는 이 세계, 그래서 서로 아무것도 알아듣지 못해 갈등과 혐오에 지쳐 타인과 단절된 삶을 살아가게 되는, 우리들의 초상인 네 사람 - 모아, 시내, 수자, 두리 - 이 저마다 안고 있는 질병 아닌 질병을 극복해내려는 시도, 그럼으로써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내려는 속삭임 모임의 인간 풍경이다. 누군가에 속삭이듯 귀엣말을 나누는 것은 친밀감으로 거리감, 단절감을 없앤다. 물론 이 속삭임 모임의 시도는 커다란 은유일 것이지만 나는 그 말랑말랑함이 이 세계의 소외에 대한 하나의 처방이 되어줄 것만 같다고 생각한다. 제발 목소리들을 낮추어주시기를. , 저는요, 저렇게 큰 소리로 외치는 소리가 너무 싫어요, 거기엔 아무 의미도 없어 보이거든요, 어떻게 생각하세요? 2)

 

속삭임은 거리감을 해소하고 친밀감을 만들어주는, 단절의 관계를 연결의 관계로, 서로를 책임의 관계로 연결해주는 하나의 시도이다. 노인들의 돌봄 일을 하는 아무 사이의 일산 일대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베스트 시터(sitter) 중 한 명인 희지의 이야기는 이 시도의 변주된 하나의 현실 속 이야기로 다가온다. 희지는 자신의 일, 노인 돌봄 노동을 가족 사이에 끼어들어 어느 정도의 친밀감을 형성하되, 분명한 선을 지켜야만 하고 가사 노동에 있어서도 어느 정도 제 몫의 일을 해야 하기 때문, 고되다 못해 서러운 노동이라고 정의한다. 친밀감과 책임감, 그러면서도 어느 정도의 선(경계)을 지켜야 하듯 적정의 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관계의 애매성이 놓여있는 일이다.

 

두부 할머니의 돌봄 노동으로 가사일을 하던 중 노인이 희지 모르게 사라지고, 당황한 희지는 노인이 갈만한 전통시장, 성당을 찾아 이리저리 헤매 달린다. 노인은 어디에도 없고 찾기를 포기한 채 노인의 집에 돌아왔을 때 보호자인 며느리의 전화로부터 모멸어린 싫은 소리를 듣는다.

 

며느리: 희지 씨, 어머니한테 초콜릿 사다 주지 말라고 했잖아요. 속상하게 왜 자꾸 그러세요?

희지: 저는 최선을 다했는데.

며느리: 희지 씨, 그러지 말아요. 최선을 다하지 말라고요.

 

희지는 노인 돌봄 노동이라는 자신의 일을 남들보다 잘 할 수 있는 일이 생겼다는, 사회에 비집고 들어갈 자리를 마련했다는 야트막한 기쁨을 느끼게 해준 일로써, 그 작고 높은 자부심을 지키기 온 힘을 다해 살아가고 있는데, 이 이상한 모멸을 주는 언어를 어떻게 다스려야 하는지, 그 깎이는 마음을 도로 채우는 법을 알 수 없어 고통스러워한다. 희지가 담당하는 뮤 할머니, 오 할머니는 희지를 자신들의 연락 목록에 아줌마로 저장해 놓거나, 설거지나 변실금 심한 속옷들의 빨래조차 한겨울에 찬 물만 쓰게 할 만큼 그녀가 선뜻 다정해지는 것을 어렵게 하고, 가슴 한편에 켜켜이 부정적 감정이 일어나 자신을 괴롭혀 안타까워한다.

 

누구도 그런 말을 할 수 없도록 하는 건 나 자신이 해야 할 일이었는데라고 자책하는 희지의 마음에서 나는 굴욕을 무수하게 만들어내는 우리의 던적스럽기 그지없는 세계를 떠올리며 진저리친다. 그녀는 그 최소한의 것을 지키기 위해, 오롯이 그러기 위해 온 힘을 다해서 살아야 하는 것이라고 다짐한다. , 두부 할머니의 연락처 목록에는 희지라고 저장되어있다.줌마도 아니고, 유희지도 아닌, ‘희지’,그걸 본 순간 앞으로 우리가 함께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것을 명백히 알아차렸다.”고 할 때, 그녀가 모호하기 그지없는 친밀과 거리의 딜레마를 극복한 관계성을 찾았음에 안도했다. 제발 사람들아, 사람을 사람으로 대할 줄 알아야 한다. 관계의 균형성을 적중하는 적도(適度), 즉 관계의 좋은 상태를 실현하는 것의 곤란함을 아우르는 우리들 세계의 아무 사이라는 이 문구의 울림이 꽤 크다.

 


표제작인 너의 나쁜 무리는 그 무엇보다 성인이 된 유선이 들려주는 독특한 성장기를 함축하는 발칙한 서사다. 부모에게 버려져 여사로 부르는 할머니의 손에 키워진 손녀 유선이 46년이라는 세월의 격차를 건너뛰어 여사와 주저없이 나누는 서로의 이야기는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의 무게 때문에 정말이지 지적으로 웃었다. “여사 58, 나는 12. 분명히 해두고 싶은 건 나와 여사의 관계가 시종일관 괜찮은 편에 속했다는 것이다. 여사는 나를 아꼈다.”고 시작하는 이야기에서 그 반전의 목소리를 예상해야 했는데, 속절없이 12살 소녀의 음성에 나는 그만 그 경쾌하게 날아오를 듯한 솔직한 시선들에 빠져들고 말았다.

 

여사가 자신을 아꼈다는 것이나,  주저없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었을 정도라는 말은  유선과 여사의 친밀의 정도에서 거의 거리가 없는 관계임을 말하는 것일 게다. 여기에 입시를 위해 가입한 동아리 동료로서 토론대회 파트너인 남자 친구 이해신, 여사의 숫한 남자들, 특히 현구 아저씨로 불리는 인물까지 가세하며 나쁜 무리를 구성한다.

 

유선: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여사가 했던 말 기억나?

여사: ?

유선: 함부로 다리 벌리지 말라고. 기억나지. 근데 왜 여사는 그렇게 살아? 왜 맨날 다리를 벌리느냐고.

여사: 나는 그러지 않고 살기 힘들어. 너는 그러지 않고도 살 수 있으면 좋겠고.

 

유선이 성인이 되자마자 여사의 집을 도망치듯 떠나 5년 남짓 되는 세월 동안 여사를 한 번도 찾아가지 않은 것은 정말 괘씸한 일이다. 두 사람이 5년 만에 대면하는 장면은 짜릿하다. 흑갈색으로 염색한 컬이 돋보이는 머리와 감색 모직 재킷을 입은 허리가 꼿꼿한 여사를 보자 유선은 알 수 없는 기쁨이 흘러나와 활짝 웃어 보인다.” 그런데 여사는 다짜고짜 유선의 뺨을 후려친다. 못된 년”, “나는 그럴 수 있다고 고개를 끄덕였다.” 아이구, 이 쿨함이란. 관계에 내재한 책임성을 소홀히 한 댓가임을 유선이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친밀한 사람들, 그렇게 사람들은 감염을 주고받는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나는 나쁜이라는 이 형용사를 멋진 선택으로 보았는데, 옳고 그름의 판단이 아닌, 좋고 나쁘다는, 언제든지 뒤집어져 해석될 수 있는 언어여서 좋았다. 그래서 나쁜 무리는 선악의 판단과 다른 차원의 얘기가 되어준다. 새로운 다짐과 그에 대한 좌절의 반복이라는 굴레에 대해 아주 잘 배웠다는 유선이 여사와 해신, 현구 아저씨가 징그러운 사건으로 다시 함께하게 되었을 때 이곳에 온 이유는 그 다짐과 가장 큰 관련이 있었다.”는 상처받고 입히면서 떨어질 수 없는 그 친밀감이 주는 말로 표현 가능하지 않은 유대를 지닌 삶을 어렴풋 이해하게 된 것 같다.

 

그동안 나름 그들의 재산이라 할 수 있는 덩그러니 놓인 굴착기를 바라보며 징그럽다, 그치, 징그러워 암만 봐도.”를 중얼거리는 유선과 여사의 목소리, 바로 그러한 관계가 우리들의 삶일 게다. 사람냄새 물씬나는 너의 나쁜 무리란 오늘 우리들이 잃어버린 관계의 감각 그것이지 않을까. 그래서 유선과 여사에게는 어떤 관계의 구원 같은 것은 소용없는 것이기에 그들에게 함께 더불어 울고 웃는 연결의 관계는 좋은 것일 수 있을 테다.

 

이들 작품보다 조금은 애잔하고 쓸쓸한 감정이 느껴지는 단편 작은 별은 자기 삶을 이상한 평화라고 정의내리는 삶의 허무에 시달리는 사설 구급차 요원인 이중일이라는 인물이 환자 이송에서 우연히 겪게 되는 자기 삶의 윤곽이자 견뎌내야 할 현실로부터의 탈주라는 예기치 않은 구원의 이야기다. 서사는 이 중심축과 더불어 우리네 세계의 얄팍한 표상들에 깃든 욕망3) 을 해독하는 깨알같은 시선들이 깜찍하게 병행하며 이상한 평화를 가져다주는 좌절된 꿈의 표상인 구급차, 그 유지를 깨뜨릴 용기가 없어 탈주하지 못했던 구급차를 벗어나게 된다.

 

닥쳐올 죽음을 기다리지 않기 위해 구급차가 필요했던 이송 환자와 보호자의 엉뚱한 요구에 그들이 무엇을 해나가며 함께 그 상태에 당도하고자 하는 것이라는 이해에 이르고 마침내 가져가세요. 제 구급차를 가져가 주세요.”라고 활력 있는 형벌죽지 말라는 지령에 굴복되었다는 생각을 저버릴 수 없게 된다. 구급차로로부터 탈주하는, 그 이상한 평화로부터 벗어나 새로운 삶의 세계를 내딛는 감동적 전환이 가슴을 찡하게 한다. 뜰의 미래의 문주와 둘째 고모 뚜비, 너에게는 지켜야 할 것이 있는가?(오마에니 마모루 모노와 아루카 (は あるか?)”라는 극장판 야누야사 3: 천하패도의 검에 나오는 대사를 중심으로 마치 아무 사이의 요동치는 관계에 대한 의미의 변주된 판본으로 읽히기도 한다.

 

한편 통신 광장은 제법 시간이 지난 영화 접속을 원인으로 하여 온라인 채팅 공간을 매개로 한 오류의 만남들이 영원히 잔류하는 존재들의 관계를 그려가며, 추운 뺨에 더운 손은 영화촬영을 위한 섭외장소에 내키지 않은 동행을 하게 된 선이의 옛 동네 친구 기문과의 관계의 깊이, 관계의 연루성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은 마치 뿌옇게 그려진 영화장면을 본 듯한 기분이 드는데, 정신차려보면 누군가의 공범이 된 자신을 발견하게 되는 순간이 있듯 그렇게 몽롱한 느낌이 어느덧 한통속으로 얽히고 마는 관계의 그 불가해성과 어울려 작품을 더욱 흥미롭게 한다.

 

이제야 사랑하는 마음을 드러낼 줄 알게 되었다작가의 말처럼 이 작품집 일곱 편의 소설들에는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은 말랑말랑한 음성을 지닌 사랑스런 대상의 타자들, 우리 이웃의 초상들이 가득하다. 그래서 나는 당신에게 속삭인다. 유선의 남친 이해신이 나는 원하는 대로 되려는 게 아니야. 최소한으로라도 살기 위해서는 최대한으로 노력해야 하는 거야.” 라는 이 작은 소망을 실현하는 그 소박한 사람들이 상처받지 않는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서로 얽혀들며 그 관계 속에서 사랑과 결함의 자취들을 발견하는 온갖 감정들을 포용하게 되는 기분 좋은 감정의 풍속화라 말해도 될 것 같다. 이 작품집을 어느 누구든 읽는 내내 진심의 웃음을 머금으며 미워할 수 없는 사람들을 잔뜩 보게 될 것이다. 어찌 관계라는 사이, 간극으로만 사람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 이미 모두 공범으로 서로 얽힌 존재들인데


타자와의 관계는 완결적일 수 없는 관계라고 타자성의 철학자 레비나스는 제 아무리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할지라도 삶의 무대에서의 어려움이 모두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지적했다. 끝없는 문제와 끝없는 응답, 타자에 대한 무한 책임을 피할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삶이라는 것이다. 이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이기적이고 경쟁의 폭력이 공기처럼 퍼진 오늘의 세계를 개선해 나가는 길일 것이다. 이 작품집은 그러한 관계의 형상들, 우리에게 익숙한 관계 영역 너머의 보다 근원적인 차원의 삶을 엿보게 해준다.


각주:

1)이전 발표 작품들에 대한 감상글에서 인용함.

2)작은 글자체는 제 속삭임이에요.

3)출신대학과 온갖 추상명사를 갖다붙인 흔하디흔한, 또한 환자와 보호자 인장에서는 더없이 중요한 것들로만 들어찬 이름의 병원 이름”, 이를테면 연세기적사랑희망병원이라고 말하는 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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