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
요아힘 마이어호프 지음, 박종대 옮김 / 사계절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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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행동과 습속을 정면으로 응시하는 건 중요하다. 

그래야만 그것으로부터 떠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미숙의 '근대 욕망구조의 담론'중에서


옛 기억의 한 장면, 연인이었던 두 남녀가 찻집에 마주앉아 있다. 여자는 뽀글거리는 파마 머리를 하고 있다, 그를 바라보던 남자는 웨이브를 살짝 하면 더 예쁠 것 같아 라고 그녀에게 주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남자를 향한 그녀의 사랑하는 마음을 발견하지만 내심으로 그건 아니라고 말한다. 두 사람은 아무 말 없이 마주하다 이별의 걸음을 하고 헤어진다. 이 이별의 장면은 칙칙하고 우울한 자못 짙은 슬픔을 내포한 장면이지만 시간의 경과 속에서 재해석하게 되는 이미 타자가 된 남자의 시선으로 바라볼 때 슬며시 미소와 함께 애틋한 마음이 피어난다. 왜 그 마음을 받지 못했을까. 조금은 본질과 거리가 있지만 과거인 기억은 이해의 눈을 재배치하게 하고 새로운 관점, 즉 자신에 대한 애석함과 자책하는 마음, 그것들과 비로소 해결되지 못했던 마음의 응어리로부터 풀려나게 된다.

 

요아힘 마이어호프의 소설 죽은 이는 모두 날아오른다는 어린 시절 과거의 기억들을 풀어놓아 그 이야기들이 스스로 생기를 찾아 스스로 움직이며 환하게 날개를 펴고 날아올라 현재와 미래를 위한 재해석으로 삶의 의미를 재생성하는 글쓰기, 즉 자신과 자신이 그리워하는 이들에 대한 애도의 기록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허구는 곧 기억이다라는 의미에서 자전적 소설(허구)이며, 허구를 진실로 찾아 낸 이야기이기에 허구로서의 이 소설은 더없이 맑고 진솔한 목소리의 울림을 갖는다.

 

소년 요아힘은 북부 독일의 소도시 슐레스비히의 헤스터베레크로 불리는 천 오백 명의 어린 환자를 수용한 수 채의 건물들과 영지를 지닌 주립 어린이청소년 정신병원에서 원장인 아버지와 이탈리아의 따뜻함과 열정을 그리워하는 오지랖 넓은 어머니, 그리고 손위 두 형과 함께 성장했다. 질병의 분류에 따라 구분되는 병동에는 그 병세의 고저에 따라 상은 고질병, 중은 중간 증세, 하는 미약한 증세를 의미하는 A-, G-, D-다락과 같이 불린다. 소년은 이런 표기 방식으로 말하는 원장인 아버지의 말에 익숙하게 되고, 글자에 높낮이가 있다고 확신한다. 따라서 냄새가 고약하고 맛없는 치즈(Käse;캐제)라면 K를 높게 써야하는 식이다. 요아힘이 학교에서 최초의 분노 발작을 일으키는 사건이 터진다.

 

이 문장은 배가 고픈 체 하는 나쁜 고양이다.’ 를 쓴 것이다.


선생님이 칠판에 나와 고양이가 배고프다(Die katze hat hunger)”를 써보라고 시킨다. 당연히 아이들의 폭소가 터져 나온다. 그에게 중요한 건 글자 자체로 나타나는 명료함과 아름다움이고, “문자는 곧 정체성과 본질, 성질을 담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누구도 이해하지 못한다. 요아힘은 일 학년을 불과 사 개월만 다니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졌다. 조금만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 싶으면 여지없이 절망에 빠져 분노발작을 일으키는 소년. 그의 두 형 중 작은 형은 빈정거린다. 일 학년에 벌써 유급이라니! 넌 앞으로 크게 될 놈이야!”

 

이 기억의 장면, 주변의 몰이해는 그 자체로 당시 어린 요아힘이 감당할 수 없는 분노를 야기하는 고통스러운 사건이다. 그런데 그 장면의 기록들은 슬며시 미소를 짓게 한다. 어린소년이 성장한 어른이 되어서까지 풀려나지 못하게 했던 분노장애, 전반성 불안장애를 만들어 낸 발단의 사건을 바라보면 그 실제의 이야기들은 환한 웃음을 띠게 되고, 자신과 주변 사람들의 이해에 다가서게 된다. 소설은 바로 이러한 마주함이다. 분노를 도발하고 만들어냈던 사람들과 상황들의 기억들, 그를 일생 화해하지 못하게 했던 그 불화하는 사건들의 조각들에 새롭게 숨을 불어넣자 그것들은 저절로 날아올라 새로운 의미로 환하게 미소와 기쁨과 애틋한 다정함의 의미로 다가온다.

 

교실에 도착하자 소년은 외친다. 죽은 사람을 발견했다!”, “내가아아 죽으으은 사라라람을 발견했다아아아!” 선생님은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느냐는 표정과 함께 제정신이니? 난데없이 이렇게 늦게 와서는 뭐? 너 미쳤어?

 

요아힘이 학교에 처음으로 홀로 등교하던 일 학년 어느 날 죽은 사람을 발견함으로써 선생님에게 야단과 함께 추궁받게 되고, 이에 따라 기억의 조작, 즉 화려한 장식과 살을 붙여 급우들과 가족들에게 관심을 이끌고 싶어 했던 일련의 이야기들은 그 자체가 절로 자신만의 삶이 있다는 듯 진실을 향해 스스로 발전해 나간다. 소년의 마음, 사실에 대한 이해가 타자에게 수용되지 못함으로써 거짓의 낙인이 되어 자기 믿음에 대한 불안을 촉발시킴으로써 분노를 만들어냈던 사건들, 아주 사사롭고 세세한 기억의 편린들이 기술되고, 그 수많은 미소짓게 만드는 기억의 표면적 문장들 속에 내재된 그날들에 화자의 내면에 깃들어있던 짙은 애도의 흐느낌을 들을 수 있게 된다. 그 간절한 흐느낌들이 세상 밖으로 나오게 함으로써 새로운 생명으로 다시 살아나갈 수 있는 동력을 비로소 얻을 수 있었음을 요아힘 그는 이제 안다.

 

바람기로 어머니를 내내 고통에 몰아넣었던 아버지, 하지만 어린 자신을 진찰대에 눕히곤 사랑이 맘껏 담긴 진료를 하여주고, 항시 제국의 군주처럼 계획을 지시하거나 집에서는 자신의 안락의자에 책읽기에만 열중하던 그 말없는 이가 숯가마를 만드는 어린 자식을 위해 진흙구덩이에서 어설픈 작업을 해주던 아버지를 그려낸다.

 

그런가하면 아버지와 다툼 속에서 미친 듯 바닥을 뒹굴고 신문지를 발기발기 찢어대며 흩날리던, 요아힘에 낯선 어머니의 얼굴이 두려움을 던져주고, 타인의 내면을 헤아리지 못한 채 선의의 오지랖으로 일을 그르치게 하여 분노를 야기케 했던 어머니, 북부 독일의 추위에 넌덜머리를 내며 이탈리아의 온기와 예술을 그리워하던 어머니, 전신에 퍼진 암의 고통을 겪던 말년의 아버지 곁에서 헌신으로 간병하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다시금 그에게 고통을 안겨주었던 그네들과 화해하고 보내지 못했던 애도의 세계를 써내려가기도 한다.

 


막내인 동생 요아힘의 분노를 도발하곤 했던 큰형과 작은형, 작은 형은 요아힘이 일학년을 불과 사 개월 만 다니고 다시 집으로 돌려보내진 날, 이렇게 빈정거린다. 일 학년에 벌써 유급이라니! 넌 앞으로 크게 될 놈이야!” 특유의 비열한 어조로 비꼬듯 나직이 말하는 큰형의 음성, 샅샅이 꿰뚫어 볼 것처럼 오만하면서도 즐기는 듯한 엑스레이 시선의 작은형은 그가 통제력을 상실하고 분노발작의 막다른 길에 도달케 하는 데 선수들이었다. 그래서였을까. 요아힘이 미국 와이오밍 주 라라미에서 교환학생으로 떠나있을 때 교통사고로 죽고 만다. 요아힘은 당시의 감정에 대해서 나는 그냥 슬퍼하기를 거부했다고 쓴다. 그리곤 자신에게도 형들처럼 순수하고 깊은 연민을 느낄 수 있었으면, 공감 능력을 갖고 있었으면 하고 느낀다.

 

또 다른 기억의 편린에서는 여자 친구와의 관계에서도 그는 절망에 빠지는데, 키스하고 몸을 만질 때 무슨 생각을 해야 하는지 몰랐기에, 일에 집중 할 나름의 방법을 고안했다. 입술을 다물고 다섯 번 키스하고, 혀를 열 번 돌리고 (...) 결국 세기 시작한 것이다.” 이때 여자 친구가 그를 홱 밀치며 너 지금 세고 있지, 아냐?, 미친 거 아냐? 계속 세고 있잖아! 세상에, 무슨 이런 사이코가 다 있어?”, 아마 성인이 된 요아힘은 이 문장을 씀으로써 이러한 강박증을 몰아냈을 것이다. 자기와의 화해를 위한 통렬한 글쓰기의 예가 될 것 같다.

 

요아힘은 난데없이 일이 터진 날들을 수없이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한다. 나는 분노의 화신이었다!“. 그렇지만 요아힘은 진술하듯 그는 정신병원에 운명처럼 갇혀있던 수많은 환자들, 자기 존재의 숨김없는 명료함을, 절망의 절규와 환희의 외침으로 울부짖던 그들을 그리워하며, 죽은 이들에 대한 그리움을 온몸으로 문장 아래에서 흐느끼며 표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그를 억압하던 기억의 꾸러미를 하나하나 풀어놓음으로써 한 세계의 상실을 애도한다, 이 애도는 그저 슬픔의 떠나보냄이 아니다. 그것은 그가 허구는 곧 기억이라고 말한바와 같이 기억을 허구의 이야기로 새롭게 형상화하고 꾸며 기념하는, 그럼으로써 그가 그리워하는 죽은 이들을 모두 생생하게 살려냄으로써 자신이 지금껏 인정했던 것 이상의 낯설고 자율적인 존재로 거듭나게 하는 분투이다.

 

삶이란 피할 수 없이 끝까지 걸어가야 하는 것이지만, 우리를 붙들어 옥죄는 짓누름이 있다. 내면에 켜켜이 누적된 과거란 고착되어 변화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미래보다 훨씬 더 불확실하고 확정되지 않은 것, 이야기되기만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가야 할 과거임을 요아힘은 자신의 허구의 이야기들을 풀어놓음으로써 그것들이 길을 찾아가도록 하는, 바로 자신의 과거를 재구성하여 과거로부터 풀려나 열린 미래의 길에 새로움 숨결을 불어넣는다. 그럼으로써 그는 격렬했던 분노와 길고 긴 포옹과 그들의 기쁨과 하나가 되어 그가 부러워했던 공감과 연민의 감정을, 사랑의 애틋함과 그리움을 자기 삶의 정체로 복원한다.

 

그의 높낮이가 다른 문장처럼 이 소설은 작가의 정체성과 본질, 성격이 스스럼없이 투명하게 그려지고 있다. 이 작품을 읽는 그 어떤 이들도 요아힘과 같이 정화된 느낌을 지니게 될 것 같다. 고고학 도구처럼 그것이 파묻혀 있던 지난날의 세세한 부분을 긁어내 저 깊은 기억 속의 진실을 끄집어낸요아힘의 가파른 감정의 협곡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웃음과 함께 맺혔던 눈물이 주르르 흘러내리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른다. 아마 일종의 카타르시스일 것이다. 마음의 순화를 필요로 하는, 아니 그렇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현재를 살아가는 모든 인류 동지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드물게 맑고 깨끗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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