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바바라 몰리나르 지음, 백수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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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앙(Viens), 이 말은 어디서 들려오는 것일까? 누군가가 이리 오라고, 여기라고 부르는 이 애처롭고 을씨년스러운 목소리, 왠지 결코 직면하고 싶지 않은, 그럼에도 언젠가는 들려오고야 말 것 같은 음성 같기만 하다. 마르그리트 뒤라스가 오랜 설득 끝에 바바라 몰리나르의 글을 수집하여 엮어 펴낸 소설집이다. 뒤라스의 서문과 바바라 몰리나르와의 짧은 대화록인 지하 납골당, 그리고 총 열세 편의 소설로 이루어진 어렵사리 출간된 책이다.

 

이 책에서 우리가 읽는 것은 바바라 몰리나르가 여덟 해 동안 쓴 글 가운데 극히 일부, 어쩌면 100분의 1 정도에 지나지 않는다. 나머지는 모두 폐기되었다.”

- 마르그리트 뒤라스의 서문중에서

 

책의 원제목 viens(와줘)은 수록작 중 한 편이지만, 몇몇 작품에서도 와 줘라는 문장은 의미심장하게 출현한다. 어쩌면 이야기들 모두가 궁극으로 향하는 심연에서 울려오는 존재근원의 그 무엇을 뜻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끝없는 추락, 캄캄한 어둠이 지배하는 좁은 방, 살아있는 존재가 없는 거리, 지향점이 없어 보이는, 목적지 없는 장소를 향한 부조리한 걸음, 적대적이고 기묘하며 자신이 속할 수 없는 다른 이들의 세계에 있다는 절망과 두려움이 거의 모든 지면을 장악하고 있다. 뒤라스의 말처럼 그럼에도 사람들은 순진한 믿음을 지니고 사랑하고 섬기고 기다리는 불치병을결코 알지 못하기에, 사는 것이 때론 기쁨이고 환희일 수도 있는 것이겠지만 글쎄 삶이란 것의 궁극에 직면해서도 그럴 수 있는 것일지.

 

거의 전편(全篇)을 지배하고 있는 극한까지 치닫는 끔찍하리만큼 황폐한 여정은 고통으로부터의 광적인 도주처럼 보인다. 아니 평화와 평온만이 있는 종국의 장소를 향한 불가능한 행보인지도. 쓰고 나서는 찢어발겨 버려졌던 그녀의 모든 글들이 참을 수 없는 고통의 유일한 배설통로였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문득 스친다. 몰리나르의 계속된 출판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뒤라스의 거듭된 요구로 관철된 단 한 권의 책을 구성하게 된 이 글들은 그렇기에 폐기되는 것이 옳았을 것만 같다. 영원히 반복되는 고통의 순환인 이 세계 속 삶과의 분투의 기록은 단지 버텨내는 하나의 분출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읽는 이의 마음조차 어둡고 아프고 낯선 암흑의 길을 걷고 있는 듯한 기분을 떨쳐낼 수 없는 그런 절망 가득한 여정이었다. 책장을 넘기면 대면하는 첫 작품 산타로사에서 오는 비행기는 한 여자가 갈망하는 행복의 언어들이 오가는 장소에의 참여일 뿐, 산타로사도, 비행기도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단지 산타로사에 출발한 비행기가 도착하는 시간에 공항 대합실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것들을 보기 위한, 죽은 시간에서 도망치기 위한, 매일 매일 그것조차 어려워지는 삶의 고통으로부터의 탈주라는 너무도 우울한 장면들만 그저 씌어있을 뿐이다. 여느 소설과도 확연히 다른 이 황량한 하루의 일정을 담은 이야기에 직면하면 이 책을 모두 읽어낼 자신을 잃어버린다. 그런데 어떻게 마지막 작품까지 모두 읽어냈는지 내 자신이 의아스러울 정도다.

 


사실 내 자신이 의아스러웠다는 말은 거짓말이다. 만날 약속이라는 상처 입은 인간이 암흑 속에 갇힌 채 벽을 더듬으며 탈출로를 찾아 반복적인 행위를 거듭하는, 보이지 않아 더듬는 목적을 잃은 행위 속에서 더 이상의 움직임이 무용함을 깨닫고 부동의 상태로 머물기로 하는 순간, 내 신체에 스며드는 일체의 감정이 예전에 지워버렸던 기억을 일깨웠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착한 것을 알았다는 X의 공포에 찬 비명, 얼빠진 눈으로 공포에 사로잡혀 뒤로 물러서려는 X의 저항불능의 고통이 내가 알고 있던 그것과 같은 것이었다는 동류의식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성이 길을 잃게 될 심연을 파는 동굴 속 짐승처럼 웅크리고 기다림에 짓눌려 있을 몰리나르의 상태를 그릴 수 있음에 나는 진저리치면서 그녀의 글속에 매몰되어갔다.

 

짐승 우리라는 작품은 타 작품과 달리 서사의 줄기가 비교적 선명하게 다가왔는데, 감금된 철창에 갇힌 동물원 동물들에 대한 슬픔, 그 비참함의 감정이 베르트와 피에르 두 연인의 사랑 속에서 환상적 이야기로 선회한다. 두 사람이 즐겨 찾던 동물원 보아뱀 앞에서 존재를 잃은 듯 멈추어 서곤 했던 피에르의 죽음 이후 보아뱀과 뒤엉킨 채 발견되는 베르트의 모습에서 몰리나르가 세상의 어떤 지평에 이르렀는가를 짐작케 된다. 아마도 그녀가 본 것은 존재 일원성, 심연이 도달하는 곳 아니었을까. 동물원 관리인처럼 뭇 사람들의 시선이 결여한 다름의 이해 부재가 없었더라면 베르트의 고통과 불행은 발생치 않았을 텐데.

 


이렇듯 폭력과 정신의 혼돈, 죽음과 신체 자율성의 통제에 대한 바바라 몰리나르의 통찰은 부조리와 모순으로 가득하다. 아니 집착한다. 그 광란적이고 불안정한 정서는 마치 카프카 혹은 실비아 플라스의 전통을 잇는 또 다른 차원의 문학 줄기라 하여야 할까. 이 초현실적이고 악몽같은 글들이 열정적으로 써진 것과 마찬가지로 광적으로 폐기되었던 것은 그녀의 글쓰기가 곧 살아냄 그 자체로서의 행위였기 때문이었을 것만 같다.


쓴 글을 모두 찢어 폐기하며 출판을 거부하던 몰리나르가 출판 직전 뒤라스에게 손수 가져온 네 편의 작품이 있는데, 와줘는 그중 한 편이다. 모든 것을 기록하는 일기인 듯한데, 기차역 대합실 벤치에서 졸음 속에 헤매는 상태라고 하는 것을 보면 몽상의 기록 같기도 하다. 그런데 와줘라는 말로 기억되는 B는 대체 누구일까 하고 의심하며 읽게 되는데, 당신을 이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라고 말하고는 문이 열려 깊은 계단을 내려간 곳이 거대하고 황량한 지하실이다. 그리곤 내려가고 내려가고 또 내려간다. 이렇게 해서 정말로 도착했을 때 기다리고 있겠다는 B에 이른 것일 게다. 사자(死者)가 된 연인을 향한 지하여행의 신화 같기도 하고, 고통의 심연을 한없이 파들어 가는 그 실체를 직면하는 아찔하고 음울한 너무도 아프고 두렵기조차 한 극단의 몸부림같기도 하다.

 

국역본의 표제작인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는 침구에 가죽 끈으로 묶여있는 정신병원 수감자를 상상하게 하는 인물 혹은 악몽처럼 읽힌다. 모든 것이 억압된 존재, 입에 바늘을 가득 꽂아놓아 음식을 먹을 수 없음에도 음식을 갖다놓는 행위, 두 팔을 절단하고, 눈을 보지 못하도록 실명케 하고서는 우리는 당신을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모든 걸 준비해 드렸습니다.”라며, 어떻게 활용할지는 당신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제 가셔도 됩니다. 일어나세요.”라고 누군가 말한다면, 그것은 어떤 의미인가. 오늘 우리들이 살고 있는 세상과 뭐가 다른가.

 

권위를 가진 자들의 폭력은 고상한 미덕의 언어로 포장되어 마치 어떤 배려처럼 들리게 하지 않는가. 나가십시오. (...) 당신은 이제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 이후 나는 혼자고 지금은 밤이다.” 라고 말하는 인물은 다름 아닌 모두 빼앗기고 세계에 내던져진 우리들의 초상(肖像) 같기만 하다. 이 소설집은 번역자 백수린 작가의 말처럼 작품이 시간의 지층 위로 그녀들의 이야기에 매혹된 한 여성에 의해, 그리고 또 한 여성에 의해 한국어로 번역된, 자칫 존재 할 수 없었던 작품의 존재물이다. 깊은 고통과 절망의 극단적 목소리의 음울한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그렇게 즐겁고 기쁜 일은 아닐 것이지만, 우리들의 신체에는 이 목소리에 감응하는 근원적 장소가 분명 있을게다. 그렇기에 이 희귀한 작품에 매혹될 수도 있으리라. 2026년 첫 번째 독서 인연이 참 기이하게 맺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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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3 20:3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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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1-06 15:5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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