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술살인 애거서 크리스티 미스터리 Agatha Christie Mystery 5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정성희 옮김 / 해문출판사 / 199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 제법 오래된 추리소설은 그 시간을 초월하여 인간의 착각, 소위 라캉의 말을 빌면 진실은 허구의 구조를 갖는다.”라는, 허구는 실재와 접속하여 우리를 기만한다는 영원한 진실을 상기케 하는 작품이다. 국역(國譯)된 소설의 제목이 마술 살인인 것은 아마도 추리문학이 지니는 구체적 단서가 될 수 있는 원제목 ‘They do it with mirrors'를 노출하지 않기 위해서였던 것 같다. 그러나 그들은 거울을 사용한다는 문장만으로 소설 속 사건의 실마리로 바로 직결할 수 있는 정신분석학에 해박한 독자들이 아니고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출판편집자의 노파심 과잉의 산물이 아닐까.

 

이 소설은 가장 애거서 크리스티(1890~1976)’ 다운 작품이라는 해석이 따라붙는다. 지적이고, 세련된, 그러면서 인간 세계에 대한 깊숙한 통찰의 시선이 배어있는, 읽는 이에게 지성의 즐거움을 한껏 풍요롭게 하는 작품이다. They do it with mirrors는 백발의 노부인 제인 마플이 활약하는 목사관 살인사건, 잠자는 살인마플 시리즈중 최고작이라 할 수 있다. 원제목에는 포함되어 있지 않은 살인을 한결같이 국역본 제목에 포함시키는 것은 그 발상이 시대의 정서를 따라가지 못한 유치함 같다. 새로운 한글 번역판본이 출간 된다면 재고해야 될 것 같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은 정말 의미심장한 작가의 꾀바른 장치라 할 수 있다. 반 라이독 부인은 거울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한숨을 쉬었다.” , 사실 이 문장처럼 소설의 사건을 바라보라고 작가는 처음부터 독자에게 암시하고 있지만, 그렇다고 쉽사리 그 해법이 보이는 것은 물론 아니다. 거울의 사용이란 이미지가 뒤집혀 보이는, 즉 실제 삶을 잘못 인식케 하는, 즉 마술이나 연극무대에서의 착각의 장치라는 의미를 지닌 영국의 속어이다. 슬라보예 지젝은 그의 저서 자유; 치유되지 않는 질병에서, 이 치명적 모호성, 자기 매개가 자기 재생산을 추론적으로 신비화하는 자본의 거울효과를 설명하면서 이 소설 제목의 기원을 짧게 소개하기도 한다.

 

제인 마플은 여학교 시절 단짝처럼 지냈던 오랜 친구 반 라이독 부인(루스)의 제안으로 그녀의 여동생 캐리 루이스의 저택으로 입주한다. 캐리 루이스는 이상을 지향하는, 그녀는 악이 원초적으로 존재하지 않은 선의 인물로 그려진다. 그런 루이스의 주변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좋지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직관한 언니가 친구 마플에게 도움을 요청한 것이다. 캐리 루이스는 국제적 명성을 가진 박애주의자 대부호 걸브레드센과 혼인하여 입양한 딸과 친딸을 두었다. 그 후 걸브레드센의 죽음과 함께 막대한 재산을 상속받고 회계사인 이상주의 공동체를 꿈꾸는 루이스 세러콜드와 혼인하여 대저택 스토니게이츠에 소년범죄자들의 감화원을 건립하여 박애주의적 삶을 꾸려가고 있다.

 

애거서 크리스티 소설의 한 부류를 장식하는 많은 배역들이 마치 한 무대에 모여 연극을 상연하는 듯한 전개처럼, 이 작품 또한 캐리 루이스를 중심으로 혈연 및 복잡한 가족관계와 감화원의 정신의학자, 소년 범죄자, 정신병자까지 동원되어 인간 군상들의 다면성, 그럼에도 그 엇비슷한 본성들을 전시한다. 걸브레드센과의 결혼생활에서 아이가 들어서지 않자 입양한 딸 피파, 그리고 뒤늦게 가진 딸 밀드레드,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후 죽은 딸 피파가 낳은 지나, 걸브레드센의 죽음 이후 두 번째 결혼의 실패 후 부양하게 되었던 피 한 방울 섞이자 않은 의붓자식들, 손녀 지나가 결혼한 무일푼 미국청년 월터, 캐리의 시녀이자 비서인 빌레버양과 남편 루이스 세러콜드의 비서를 자처하는 에드거라는 청년에 이르기까지 이들의 초상(肖像)이 아마 소설을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소설이 흥미로운 것은 어쩌면 이러한 다채로운 인간들의 면모가 발산하는 그 독특함이기도 할 것이다. 어쩌면 그렇게도 인간은 기발하게 다른 것인지. 그러면서도 그 본성이라 할 탐욕, 질투, 혐오, 충동 등은 그처럼 동일한 양태를 띠고 있는 것인지. 막대한 재산을 가졌으나 검약하고, 그러나 결코 인색하지 않은 캐리 루이스의 저택 스토니게이츠에는 이처럼 많은 인물들이 기생하고 있다. 이제 사건이 벌어진다. 사실 서사의 진행에 따라 이미 무슨 일이든 촉발 될 수 있음을 독자는 기다리게 되는데, 이상주의적 박애주의자인 루이스 세러콜드가 에드거에게 끌려 서재에서 위협받는 일이 발생하고, 자신이 루이스의 아들이라며 권총을 들이대며 다투는 소리가 캐리를 비롯한 가족군상들의 시선을 모은다. 어디서 들리는 것인지 모호한 총소리 한 발, 그리곤 잠시 후 서재에서 들려 온 연속된 두 발의 총소리, 다급하게 잠긴 서재문의 열쇠를 돌리고 군상들은 세러콜드가 무사함을 확인한다. 그런데, 예고없이 스토니게이츠를 방문했던 걸브레드센의 전처 아들인 크리스찬 걸브레드센이 총상을 입은 채 죽은 것이 발견되고, 수사는 본격화된다.

 

이 소설 또한 등장인물 모두가 의심스러운 용의자로서 손색이 없지만, 작가가 마플의 입을 통해서나, 등장인물들의 언행을 통해 드러내는 무수한 암시와 혼선의 장치들을 독자는 분명히 인식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암시가 의미하는 바를 인식하는 것은 결코 수월하지 않은 것이 묘미라면 묘미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감화원 원장인 정신의학자 메버릭 박사라는 인물은 이렇게 말한다. 우리 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랍니다. 그게 바로 존재비밀이지요.”, 라고 스토니게이츠의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정의하며, 사건을 더욱 오리무중에 잠기게 한다. 아마 마플이 수사관인 커플 경감에게 꼭 집어 말할 수는 없지만, 마술사들은 그걸 사람들의 착각 현상이라고 한다지요라고 말하면서도, 그런데 마술사들이 어떻게 하는지 도통 알 수가 없어요.”라는 것이 이 소설의 진가를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말일 것이다.

 

영국 BBC 방송 드라마They do it with mirrors중에서


크리스찬 걸브레센드는 일 년에 두 번 스토니게이츠를 방문하여 이사회의 중요 안건을 논의한다. 그 회합이 불과 한 달 전에 있었음에도 그가 다시 방문한 이유를 군상들은 추상적으로 짐작한다. 아마 감화원 운영과 관련한 긴급한 사업용무였으리라고, 그러나 여기에 또 다른 복선이 추가되는데, 캐리 루이스의 신변에 위협이 발생했다는, 누군가 그녀에게 독극물인 소량의 비소를 포함한 약물을 복용케 하여 서서히 죽음으로 몰고 있음을 알아차린 크리스찬의 발설을 막았다는 것이다. 사건을 안개 속으로 몰고 가는 인간의 내심은 부정의 부정, 이중부정이 지니는 그 교활한 암막(暗幕)장치와 연극무대의 착각 장치는 쌍을 이루면서 사건의 진실을 더욱 혼돈의 상태로 이끈다.

 

세러콜드는 에드거가 정말 날 쏠 생각이 없었습니다라고 수사 경감에게 그것은 단지 연극이었다고 말한다. 사건의 진실은 바로 이 연극무대처럼 펼쳐지는 사건 당시의 군상들의 시선에 놓여있다. 환각은 보는 사람의 눈 속에 있다.” 다시 소설의 첫 문장을 새겨 읽어야 한다. 거울에서 조금 뒤로 물러나 볼 필요가 있다. 착각, 왜곡을 불러 온 무대에서 물러나 관객의 위치가 되면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게 된다. 세상의 실제 현실, 그 실상의 진실이. 막대한 재산을 지닌 캐리 루이스를 중심으로 그녀의 재산을 유산으로 상속받게 될 인물들, 그러나 그 재산이 군상들 개체마다 그 재산의 필요는 시간의 속도를 달리한다.

 

그래 모든 것이 돈에 대한 욕망이다. 그러나 중심인물, 언제나 이상주의적 선만을 지향하는 온화한 인물처럼 묘사되는 캐리 루이스의 강고한 자기 내면의 믿음은 그녀가 악을 부정해서가 아니라, 그 악의 행위조차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는 왜곡되지 않은 시선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지적 총명성이야 두 말하면 잔소리지만, 그녀의 인간에 대한 통찰력은 시간에 지배를 받지 않는 궁극의 진실을 오늘의 독자에게도 선사한다. 이 소설은 추리문학으로서의 품격 있는 서사적 재미도 대단하지만, 내겐 하나의 중대한 발견 때문에 더욱 이 작품에 애착이 간다.

 

칸트가 말했다던가? 모든 자발적 행위는 병리적 원인에 의해 촉발된다. 이 작품을 추리소설로써 작동시키는 사건도 예기치 않은 인물의 방문, 우연성이 야기하는 필연성이다. 사건의 조건 자체인 수동적 결정은 언제나 내 안에서 구조적으로 벌어지는 나를 분열시키는 타자의 결정이다. 즉 내 안에서 나를 결정하는 절대적 존재로서의 타자인 근본의 환상이란 것이다. 이상향 건설이라는 꿈의 지향이라는 환상은 인간 교화에 대한 긍정의 꿈과 함께, 이를 실행하는 모든 것을 그 환상에 굴복시킨다. 이 환상을 연극이라는 또 하나의 왜곡된 환상으로서의 무대라는 장치를 배치하여 그 벗어날 수 없는 환상에 의해 조작된 인물을 바라보게 한다


우리는 과연 자유로운 존재일까? 어쩌면 애거서 크리스티는 이 작품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라는 환상에 대한 거대한 실험을 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삶이란 무대에서 연극배우인 우리들은 좀처럼 관객이 되어 바라보기가 어려운 숙명을 벗어날 수 없는 것일지도. 이 영리한 추리문학에 도전하는 읽기는 가히 책 읽는 재미를 만끽케 하는 즐거움을 충분하고도 넘치도록 제공하리라.  "진실은 인위적 모양새를 가장하고, 거짓은 바로 단서 그 자체다.(슬라보예 지젝, 자유 240쪽에서)" 사실 이 세계의 모든 현상이란 마치 증상처럼 보이도록 하지만 실상은 페티시처럼 작동한다는 말이 진실일지도 모르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